206화 다리 많은 것들의 섬 (2)
<부유섬> -등급: ?
-바다 위를 음울하게 표류하는 섬. 누가 어떤 목적으로 만들었는지는 불명.
휘이이이잉!
해풍이 불어온다.
자욱하게 낀 물안개가 살아 있는 것처럼 요동칠 때면 그 너머로 섬의 외형이 군데군데 드러난다.
“……움직여?”
드레이크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섬은 조그맣게 흔들리다가 바람이 멎으면 동시에 언제 그랬느냐는 듯 멈춰 서서 시침을 뚝 뗐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 엄밀히 말하면 섬은 아니지. 그냥 물에 둥둥 떠다니는 던전일 뿐.”
바다 위를 부유하고 있는 섬.
그것은 폭풍우 치는 밤, 자욱한 해무 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히든 던전이다.
끼걱… 끽… 끼긱…
우리는 노를 저어 부유섬으로 진입했다.
가까이서 본 부유섬은 실로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시커먼 흙 위에는 허옇고 끈적끈적한 실 같은 것들이 잔뜩 붙어 바람에 휘날린다.
섬 연안으로 들어가자 지독한 악취가 풍겨 왔다.
대량의 고기가 한데 모여 썩는 듯한, 그런 냄새였다.
드레이크가 섬으로 첫 발을 내딛자.
철푸덕! 쑤욱-
섬의 토양은 그의 발을 발목까지 빨아들였다.
마치 늪의 수면을 디디기라도 한 것처럼 발이 쭈욱 들어간다.
발을 휘감아 오는 기분 나쁜 감각.
“가만히 있다간 허리까지 빠지겠군.”
드레이크는 황급히 발을 움직였다.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제자리뛰기를 하는 것처럼 발을 부지런히 놀려야 했다.
휘이이잉…
마르고 역한 바람이 불어온다.
부유섬은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곳이었다.
온통 흑과 백만이 이 섬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섬의 풍경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마치 그 외의 색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착각이 일 정도다.
“……냄새 한번 더럽네.”
나도 드레이크를 따라 배에서 내렸다.
바닷물 위를 첨벙거리며 해변으로 들어오자 저 멀리, 삐죽삐죽 튀어나온 산 같은 것들이 보인다.
그것들은 전부 뼈였다.
수없이 많은 뼈다귀들이 모여 만들어진 섬과 산.
그리고 그 뼈들을 한데 묶어놓고 있는 것은 바로 끈적한 점액과도 같은 실이었다.
“이 검은 진흙은 썩은 살점이군. 골자는 뼈다귀고. 던전 자체가 무언가의 뼈와 살로 이루어져 있는 건가?”
드레이크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섬의 주인이 먹고 남긴 먹이들이 모여서 섬을 이룬 것이지.”
“많이도 먹었군.”
나와 드레이크는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부유섬 안쪽으로 들어갔다.
꽤 오래 전, 내가 메두사 퀘스트를 받기 위해 들어갔던 작은 동굴을 향해서.
* * *
부유섬의 제일 외곽.
-띠링!
<히든 던전 ‘썩어 가는 지하수로’에 입장하셨습니다>
<최초 방문자: 고인물>
예전에 들어온 적이 있는 동굴.
달려드는 오물 뱀 따위를 처리하며 안으로 들어가자 이내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피그말리온!
온몸이 돌조각으로 변해 버린 조각가.
그는 품에 새로운 조각상 하나를 끌어안은 채 너무나도 평화로운 얼굴로 잠들어 있었다.
“늦어서 미안합니다.”
나는 고개를 숙여 피그말리온의 앞으로 다가갔다.
피그말리온이 끌어안고 있는 조각상은 예전 메두사의 얼굴과 꼭 닮았다.
새 메두사의 얼굴에는 커다란 구멍이 나 있었는데 나는 이 구멍을 메꿀 수 있는 조각을 가지고 있었다.
-<우는 천사의 조각> D
상아석 파편이다.
어딘가 불길한 느낌이 든다.
나는 이 조각을 메두사의 얼굴에 난 구멍에 끼워 맞추었다.
달그락-
내가 가져온 조각과 조각상에 난 구멍은 꼭 들어맞았다.
그러자.
파팟!
환한 광채가 일어나며 피그말리온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고맙네. 덕분에 새로운 아내를 완성할 수 있겠어.]
이윽고, 피그말리온의 몸에서 발생한 광채는 나의 몸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띠링!
<피그말리온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24시간 동안 ‘조각가의 눈’ 효과를 얻게 되었습니다>
내 귓가에 들려오는 알림음.
피그말리온이 준 버프가 눈에 깃드는 것이 느껴졌다.
“이 버프를 이제야 받네.”
나는 눈을 감고 버프의 효과를 떠올려 보았다.
‘조각가의 눈’
↳조각가는 정으로 한 점을 찍을 때 어느 곳이 깨질지를 미리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균열이 생길 곳을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한다면 귀한 재료를 버리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어느 곳이 깨지거나 무너질지 미리 알아채는 육감형 버프인 것이다.
“돌아가자.”
나는 드레이크를 데리고 지하수로를 나왔다.
외곽동굴을 벗어나 섬의 중앙부를 향하자.
“……!”
드레이크의 눈이 가늘어졌다.
“뭐가 온다.”
그의 말대로, 넘실거리는 물안개 저편에서 긴 그림자들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지독한 악취와 함께, 수많은 괴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끼긱… 끼긱…
정면을 가로막은 것은 수없이 많은 뼈다귀들이었다.
스켈레톤.
원래는 살아 있던 몬스터가 죽어서 만들어진 언데드 몬스터.
간혹 플레이어 출신으로 보이는 해골병들도 눈에 띈다.
그리고.
이 스켈레톤들의 몸에 실을 휘감아 인형처럼 조종하는 것들이 있었다.
[킥킥킥킥…]
위에서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자 뼈와 점액으로 만들어진 나무 위에 무언가가 올라가 있는 것이 보였다.
<망자 거미> -등급: B / 특성: 독, 벌레, 인형술사, 매복
-서식지: 부유섬
-크기: 2m.
-젖거미가 척박한 환경에서 더욱 억척스럽게 진화한 형태.
잡은 먹이의 살점을 발라내 해골병으로 만들어 조종한다.
그것은 한 마리의 거미였다.
언뜻 보기에는 악몽숲에 서식하는 젖거미와도 비슷해 보였지만 그보다는 크기가 훨씬 더 작고 얼굴도 더 징그럽게 생겼다.
오동통한 몸은 숨을 쉴 때마다 팽창했다 수축했다를 반복한다.
여덟 개나 되는 눈은 부드럽게 휘어진 채 나를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망자거미는 앞다리를 휘저어 뼈의 나무 아래 해골병들을 조종했다.
문제는…그런 망자거미의 수가 한둘이 아니라는 것!
삐그덕- 삐그덕- 삐그덕-
곳곳에서 해골들이 몸을 일으켰다.
수많은 망자거미들이 발을 놀려 마리오네뜨를 조종한다.
“……아무래도 던전 안으로 들어가는 게 쉽지는 않겠군.”
드레이크는 침음성을 삼켰다.
하지만.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냐, 쉬워.”
동시에, 나는 제자리에서 팔벌려뛰기를 시작했다.
“하나 둘 셋, 하나! 하나 둘 셋, 둘! 하나 둘 셋, 셋! 하나 둘 셋, 넷! 하나 둘 셋 다섯!…….”
그러자.
움찔-
나를 향해 다가오던 해골병들이 일제히 제자리에 멈춰 섰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해골병들을 조종하던 망자거미들이 멈춰 섰다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케헥!]
[키익!]
[응기잇!]
내가 팔벌려뛰기를 시작한 것과 거의 동시에, 망자거미들은 해골병들을 버리고 호다닥- 도망가기 시작했다.
“허…….”
드레이크는 그 광경을 보고 감탄했다.
망자 거미들이 도망간 이유를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커피 냄새 때문이었다.
부유섬의 지독한 썩은내를 몰아낼 정도로 짙은 커피향이 내 몸에서 진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래서 일일퀘를 깨자고 한 거였군.”
드레이크 역시도 앞으로 한 발을 내딛었다.
그러자 그 주변에 있던 망자거미들 역시 코를 감싸 쥐고 호다닥 도망친다.
광활한 커피밭에서 머무는 동안 우리의 몸에는 커피향이 진하게 배인 것이다.
“거미가 커피향을 싫어하는 줄은 처음 알았군. 근데 거미도 냄새를 맡을 수 있나?”
“보통 벌레들이 커피를 싫어하지. 계피(Cinnamon)나 시나몬(桂皮)도 효과적이야.”
우리는 부유섬 심층부에 있는 던전 입구까지 진입하는 내내 거미들의 습격을 거의 받지 않았다.
나무 위에 사는 거미도, 필드 위를 돌아다니는 거미도, 땅굴을 파고 사는 거미도.
그 어떤 거미들도 전신이 커피에 절어 있는 우리를 상대해 주지 않는다.
몇몇 등급이 높은 거미들은 냄새에도 불구하고 싸움을 걸어오긴 했지만… 그럴 때는 자루에 담아온 커피 찌꺼기를 뿌려 손쉽게 쫓아 보낼 수 있었다.
“피그말리온이 걸어 준 버프는 시간제라서 잡몹들을 일일이 상대할 수가 없거든. 그래서 일부러 커피농장에서 일했던 거다.”
“역시나. 괜히 시간을 낭비한 게 아니었어.”
내 말을 들은 드레이크는 무릎을 탁 쳤다.
커피농장에서 깬 일일퀘스트가 지금에 와서 엄청난 도움이 되고 있었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띠링!
<히든 던전 ‘부유섬 대왕로(大王路) 입구’에 입장하셨습니다>
<최초 방문자: 고인물, 드레이크>
부유섬의 중앙에 목구멍처럼 뻥 뚫려 있는 동혈(洞穴).
주름지고 구불구불한 동굴 속에서는 계속 뜨뜻한 악취가 섞인 바람이 불어온다.
뼈와 썩은 살점, 거미줄이 치렁치렁 늘어진 동굴 속.
지글지글지글……
드레이크는 기름 먹인 횃불을 앞으로 들었다.
빛 너머로 동혈의 속이 얼마간 들여다보인다.
벽의 곳곳에는 미처 덜 썩은 바다괴물들의 사체가 툭툭 삐져나와 있었다.
그 위로 하얀 점액들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흘러내린다.
마치 추악한 내면을 서둘러 덮으려는 것처럼.
“커피 찌꺼기도 거의 다 떨어졌군. 앞으로는 조심해야겠어.”
드레이크는 커피찌꺼기가 담긴 자루를 뒤적거리며 앞으로 발을 디뎠다.
그 순간.
우르릉!
요란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드레이크가 밟은 바닥이 갑자기 푹 꺼지며, 가로 세로 1m의 네모난 구멍이 생겨났다.
바닥이 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깊은 함정이었다.
드레이크는 눈 깜짝할 사이에 그 밑으로 떨어져 죽어 버렸다.
……내가 재빨리 그의 뒷덜미를 잡아채지 않았더라면 분명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헉. 뭐였지 방금?”
드레이크는 멍한 표정으로 아래를 바라본다.
밑도 끝도 없이 푹 꺼져 버리는 바닥이라니?
하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드레이크가 뒤로 발을 딛자마자 그 쪽의 바닥도 밑으로 푹 꺼져버렸다.
“으헉!? 뭐, 뭐야? 사방이 함정인 건가?”
드레이크는 황당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세히 보니 바닥은 온통 하얀 점액들로 뒤덮여 있어 도저히 무언가를 살필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끼릭… 끼릭…끼릭…
동굴 저편의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기어 다니는 것이 보였다.
<굴거미> -등급: B+ / 특성: 독, 벌레, 착굴(鑿掘)
-서식지: 부유섬
-크기: 8m.
-굴거미가 파 내려간 구멍은 바닥이 없다고 알려져 있다.
굴거미. 아주 귀찮은 몬스터이다.
이놈들이 서식하는 땅은 온통 놈들이 파놓은 굴 투성이인지라 잘못 밟으면 바닥이 없는 구멍 속으로 끌려들어 간다.
그렇다고 굴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동굴의 천장, 벽, 바닥이 모두 거미들의 점액과 실, 허물, 먹다 남긴 시체들의 썩은 살점으로 뒤덮여 어디가 함정이고 바닥인지 분간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굴거미 본인조차 다른 굴거미들이 파 놓은 함정에 빠져 죽을 때가 있을 정도이니 말 다한 셈이 아닌가?
“이거, 어떻게 앞으로 갈 방법이 없는데?”
드레이크는 난감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화살이나 마름쇠를 뿌려서 두드려 보는 방법도 있지만… 그렇게 하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싸울 때 쓸 무기가 죄다 사라지는 것이니 낭패.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나에게는 방법이 있다.
“…….”
나는 바닥에 무릎을 대고 눈앞을 자세히 살폈다.
번쩍!
피그말리온이 걸어 준 버프가 발동했다.
조각가 특유의 눈썰미로 바닥을 보자, 그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하나의 숫자였다.
‘2’
바닥에는 ‘2’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그것은 지금 드레이크가 딛고 있는 바닥에 적힌 숫자다.
참고로 드레이크가 딛고 있는 바닥의 앞과 뒤에는 커다란 구멍이 하나씩 뚫려 있다.
“이 주변은 안전하다.”
나는 거침없이 드레이크가 딛고 있는 땅의 주변을 딛고 나갔다.
과연, 그 주위에 함정은 아까 드레이크가 밟았던 두 개가 전부였다.
나는 파죽지세로 전진했다.
땅을 밟을 때마다, 1*1m 정도 되는 공간 안에 새로운 숫자들이 드러난다.
‘3’
‘5’
‘1’
‘6’
그리고 그 공간 주위에는 어김없이 세 개, 다섯 개, 한 개, 여섯 개의 굴거미 굴이 도사리고 있었다.
드레이크는 마름쇠를 뿌려 주변 함정들의 개수를 확인한 뒤 탄성을 질렀다.
“……대체 어떻게 아는 거냐? 아무리 조각가의 눈 버프가 있다고 해도.”
그는 딱딱 맞아 들어가는 나의 예측에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는 듯하다.
나는 그를 돌아보며 씨익 웃었다.
“지뢰찾기라고 알아?”
내가 소싯적에 좀 날렸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