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204화 (204/1,000)
  • 205화 다리 많은 것들의 섬 (1)

    철썩- 촤악-

    파도가 뱃전에 닿아 하얗게 바스라진다.

    곳곳에 낭화(浪花)가 만개했다.

    “날씨 좋네.”

    나는 바다를 향해 말했다.

    부슬부슬…… 우르릉!

    바다는 거칠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해무가 숨을 막히게 한다.

    짙은 물안개 저 너머로 간혹 천둥이 치는 소리.

    “……이게 날씨가 좋은 건가?”

    드레이크는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출항 전에 뱃일을 하는 NPC들이 몇 번이나 뜯어 말렸었다.

    이 날씨에 바다에 나가면 100% 죽거나 실종된다고.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날씨가 좋은 게 맞다.

    오늘 내가 공략할 던전은 이런 날씨가 아니면 갈 수 없는 곳이니까.

    ‘부유섬’

    아주 오래 전, 내가 능력 부족으로 인해 공략을 포기하고 돌아가야만 했던 곳이다.

    ‘고기 삶는 밀림’을 통과해 ‘육중한 밀림’을 지나면 나오는 작은 항구도시 아크레.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 모든 NPC들이 외출을 만류할 때 아크레의 항구에서 배를 타고 나서면 특수한 던전으로의 진입이 가능하다.

    나는 예전에 그곳에서 피그말리온의 조각상 퀘스트만 받아서 바로 돌아갔던 적이 있다.

    드레이크는 노를 저으며 물었다.

    “너는 이런 곳을 어떻게 아는 거냐?”

    “예전에 갔던 적이 있어. 동영상도 찍어 뒀었지. 그때는 실력이 부족해서 그냥 돌아갔었지만.”

    “…대단하군.”

    드레이크는 그냥 그러려니 할 뿐이다.

    그는 어지간해서는 나에 대한 것을 먼저 묻지 않는다.

    그 과묵한 점이 마음에 들었다.

    촤악-

    나는 비바람을 뚫고 계속 노를 저었다.

    꽤나 근력을 요하는 일이었지만 레벨이 많이 오른 나에게는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배는 불안하게 흔들거리면서도 용케 중심을 잃지 않고 나아간다.

    후드득- 후드득-

    돛에 붙은 안개가 물이 되어 줄줄 흘러 우리 둘의 몸을 적신다.

    내가 노를 저으면 드레이크가 양동이를 집어 들고 배에 찬 물을 퍼냈고 그가 노를 저을 때는 내가 양동이로 물을 퍼냈다.

    우리 둘이 탄 배는 이래봬도 아크레에서 제일 비싼 것이다.

    삼각돛과 조르기줄, 노만 잘 다룬다면 절대 침몰하지 않는다.

    ‘물론 안전한 항로를 모두 외우고 있다는 전제 하에 말이지.’

    나는 흔들리는 물결을 계속 살피며 돛의 방향을 조절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재미난 광경을 목격했다.

    삐걱- 삐걱-

    앞에서 배 하나가 다가오고 있었다.

    배는 몹시도 낡고 헤졌다.

    폭풍우와 안개 속을 오래 떠돌아다닌 듯 보인다.

    너덜거리는 돛과 썩어 문드러진 선미, 군데군데 구멍이 난 선벽과 그 밖으로 축 늘어진 밧줄들.

    영락없는 유령선이었다.

    끼긱! 끼기긱!

    이 폐선은 천천히 우리 배 옆을 스쳐 지나갔다.

    간발의 차이로 부딪치지 않았다.

    "뭐야, 우리 말고도 여기를 돌아다니는 플레이어가 있나?"

    드레이크는 감탄했다.

    배의 상태를 보니 꽤나 격한 레이드를 뛰고 온 모양.

    과연 세상은 넓고 천재는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헉!?”

    이윽고, 가까이 다가온 배 내부를 확인한 드레이크의 두 눈이 크게 벌어졌다.

    뿌연 물안개 속.

    폐선의 갑판 위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해골!

    그것들은 썩어빠진 갑판 위에서 마치 마리오네트처럼 춤추고 있었다.

    보는 이들로 하여금 절로 오싹한 소름이 돋게 만드는 움직임.

    그 기묘한 동작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기분이 나빠진다.

    "……."

    드레이크는 폐선 위의 해골들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몬스터는 아니었다.

    걸치고 있는 아이템의 흔적으로 봐서는 플레이어들의 시체가 해골만 남은 것 같다.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플레이어들인가? 왜 이런 곳에서 저런 꼴로…….”

    “으음.”

    나는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예전에, 나는 부유섬에 가는 공략을 인터넷에 올린 적이 있다.

    ……그게 조회수가 꽤 나왔지 아마?'

    그때 내가 올린 영상을 보고 꽤나 많은 사람들이 부유섬 레이드를 떠났을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부유섬은 당시의 나조차도 공략할 엄두를 내지 못했던 곳.

    내 공략을 보고 어설프게 따라한 이들은 전부 다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그 결과가 저것이겠지.”

    나는 갑판 위에서 빙글빙글 춤추고 있는 해골들을 자세히 쳐다보았다.

    유령선과 해골들.

    그것들은 잘 보면 투명한 실에 칭칭 휘감겨 있다.

    마치 마리오네트처럼.

    실에 휘감긴 채 영원히 물안개 속을 헤매어야 하는 저주.

    그리고 그들을 옭아매고 있는 실들은 저 안개 너머를 향해 쭉 뻗어 나가 있었다.

    대체 무엇이 저들을 죽음 이후까지도 조종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째서 플레이어들의 시체가 분해되지 않고 남아있는 거지?”

    드레이크가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팔짱을 낀 채 설명을 시작했다.

    “분명 못된 몬스터에게 당해서 시체를 빼앗긴 것이겠지.”

    나는 설명을 하는 척 하면서 슬쩍 노를 놓고 농땡이를 쳤다.

    “이곳의 항로는 복잡해서, 조금이라도 노를 잘못 저으면 금세 이상한 곳으로 빠져 버리거든. 뉴비들이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야.”

    나는 드레이크를 향해 조언을 시작했다.

    그는 잘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진. 근데 노는 왜 안 젓나?”

    “……으응, 이제 다시 잡으려고.”

    그리고.

    내 예상대로, 난파선은 해류에 떠밀려 위험한 구역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퍼펑!

    난파선 앞으로 요란한 물무리가 일어난다.

    [뿌오오-]

    [키에에에!]

    커다란 뱀장어와 오징어가 배 앞을 가로막은 것이다!

    <씨 서펜트> -등급: B / 특성: 물, 야수, 뺑소니, 살금살금

    -서식지: 전 바다

    -크기: 10m.

    -잔잔한 바다 위의 배가 소리도 없이 갑자기 침몰했다면 십중팔구 이 녀석 짓이다.

    긴 목을 뻗어 하늘 위를 날아가는 비행종 몬스터들도 잡아먹는다.

    <무투광 오징어> -등급: B+ / 특성: 물, 싸움광, 고속주먹, 1:1

    -서식지: 전 바다

    -크기: 14m.

    -열 개나 되는 다리에 권투 글러브를 끼고 다니는 바다 속 승부사. 1초에 백 번 이상의 주먹을 날릴 수 있다고 한다.

    권투 글러브는 메이커 제품만 고집하는 편이다.

    해류를 조금이라도 잘못 타면 이런 해양 몬스터들의 습격이 이어진다.

    코끼리처럼 커다란 귀가 달린 뱀장어, 그리고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오징어.

    둘 다 폭풍우 치는 밤에만 나타나는 필드몹들.

    콰쾅!

    안개 속의 난파선은 이 두 바다괴물의 등장으로 인해 완전히 부서졌고 이내 곧 침몰해 버렸다.

    드레이크와 나는 얼른 노를 저어 난투의 현장에서 멀어졌다.

    “저것들이 이 구역에 출몰하는 잡몹이야. 쪽수도 많고 각자의 영역 본능도 확실하지. 심지어 하나하나가 꽤나 고등급이라서 적으로 돌리면 무척 성가셔.”

    “바다 몬스터랑 싸우는 것은 이제 지긋지긋하다.”

    드레이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예전 크라켄과의 싸움이 생각났나 보다.

    하지만.

    “이걸 어쩌나, 이번에는 잡고 가야 하는 몬스터가 하나 있는데.”

    나는 뱃머리에 선 채 손가락을 뻗었다.

    “……?”

    드레이크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바다 위에 무언가 거대한 것이 둥둥 떠 있는 것이 보인다.

    그것은 하나의 해파리였다.

    <부유하는 기름촉수 ‘오일텐타’> -등급: B+ / 특성: 물, 부유, 무한성장, 과식

    -서식지: 부유섬 연안

    -크기: ?m.

    -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것이 일상인 대형 해파리.

    딱히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지만 때론 볼락이나 정어리들을 너무 많이 잡아먹는 통에 어부들에게는 미움을 받는다고 한다.

    실로 어마어마하게 큰 해파리 하나가 수면 위에 둥둥 떠 있는 것이 보였다.

    반투명한 젤리 같은 몸에 실타래 같은 촉수들이 수없이 하늘거린다.

    둥그런 몸뚱이 양쪽에는 지금은 막혀 있는 커다란 구멍이 두 개 있었는데 하나는 입이고 다른 하나는 항문이었다.

    (둘 다 주름투성이의 쭈글쭈글한 구멍이라서 어느 쪽이 입이고 항문인지는 알 수 없다)

    기름촉수 ‘오일텐타’

    네임드 몬스터의 등장!

    드레이크는 커다란 암초처럼 보일 정도로 큰 이 해파리를 향해 인상을 찌푸려 보였다.

    “이것을 잡겠다고?”

    “정확히는 끌고 가는 거지.”

    나는 해파리를 노로 툭툭 건들며 말했다.

    이 오일텐타는 바다 밑의 생선들을 잔뜩 잡아먹고 그것들이 소화되는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바다 위에 둥둥 떠다니는 몬스터이다.

    딱히 공격성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플레이어들을 먼저 공격하는 일도 없다.

    그저 아주 가끔, 배가 고플 때 커다란 입을 벌려 정어리 떼를 빨아들이고 또 소화가 다 되었을 때 항문을 열어 배설물을 분사하는 것이 일과의 고작.

    24시간 동안 바닷물을 빨아들이고 24시간 동안 소화하고 24시간 동안 배설물을 뿜어낸다.

    “아름다운 삶이로군.”

    나는 부러운 표정으로 이 해파리를 내려다보았다.

    지금은 마침 오일텐타가 먹이를 잔뜩 먹은 채 휴식을 취하고 있는 시간인가 보다.

    철썩-

    나는 노를 저어 해파리의 옆에 배를 가져다 댔다.

    그리고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놈의 촉수를 집어 들었다.

    미끄덩-

    기름에 잔뜩 절어 있는 촉수는 말랑말랑하고 미끄러웠다.

    나는 그것을 배 뒷전에 단단히 붙들어 맸다.

    “무거울 텐데?”

    “어차피 이 해파리의 몸속에는 죄다 생선기름만 꽉 차 있어서 그리 무겁지도 않아.”

    우리는 천천히 노를 저었다.

    마침 해류와 바람도 우리 편인지라 배는 커다란 해파리를 뒤에 매달고도 순탄하게 전진할 수 있었다.

    이윽고.

    뿌연 물안개 저편에서 으스스한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드레이크는 노를 젓던 것을 멈추고 정면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저기 보이는 게 혹시 이번 목적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개와 폭풍우 너머로 일렁이는 그림자.

    그 압도적인 불길함과 음침함.

    꽤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다.

    <부유섬> -등급: ?

    해류에 밀려 둥둥 떠다니고 있는 섬.

    땅도 아니고 바다도 아닌.

    변변찮은 좌표조차 없는 기묘한 맵.

    미치광이가 그린 소묘 속에서나 등장할 것처럼 생긴 괴기스러운 외형에 역겨운 시취들이 넘실거리는 공간.

    그 악몽 같은 것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오늘은 이 섬을 공략하는 건가? 저 섬의 주인은 누구지? 위험 등급은?”

    드레이크는 그답지 않게 이것저것을 캐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부유섬은 정말로 기괴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보는 순간 진입해야겠다는 생각이 싹 사라질 정도로.

    A+등급의 초고위험군 몬스터 바실리스크가 갇혀있던 ‘패륜아의 둥지’.

    그곳마저 거침없이 뛰어들었던 드레이크가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망설일 정도면 부유섬이 주는 불길함이 어느 정도인지 말 다한 셈이다.

    나는 그를 향해 순순히 대답해 주었다.

    “잡을 것은 이 섬의 주인 ‘여덟 다리 대왕’. 등급은…….”

    이윽고.

    내 말을 들은 드레이크의 표정이 경악으로 일그러진다.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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