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화 일일 퀘스트 노가다 (2)
“일일퀘 노가다……?”
드레이크는 멍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일일 퀘스트 노가다
(Daily Quest Nogada).
그것은 매일 매일 받을 수 있는 퀘스트를 뜻한다.
24시간마다 1번씩 반복해서 꾸준히 수행할 수 있는 과업.
누구나 쉽게 발견, 수행할 수 있기 때문에 난이도는 매우 낮은 편이다.
그렇다면 왜 ‘노가다’ 라는 단어가 뒤에 붙어 있느냐?
그것은 대부분의 일일퀘스트들이 아주 긴 수행 시간을 요하는 단순 반복 작업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하루에 한 번씩 누구나 쉽게 발견하고 수행할 수 있는 퀘스트이지만 오래 걸리는 단순 노동이고 보상도 적은 퀘스트인 것이다.
아무나 받을 수 없고, 까다로운 자격 요건을 필요로 하는데다가, 꼭꼭 숨겨져 있고, 위험도도 크고, 보상도 좋은 히든 퀘스트와는 아주 대조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걸 왜 하나?”
드레이크는 다소 기운 빠진 목소리로 되물었다.
더 크고 웅장한 던전에 가서 더욱 흉악하고 무시무시한 몬스터와 대결할 생각에 잔뜩 기대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 마당에 뉴비들도 귀찮아서 잘 하지 않는 일일퀘를 하겠다고 하니 맥이 빠질 수밖에.
드레이크는 일일퀘를 할 시간에 다른 것을 해 보는 게 어떻냐는 식으로 은근히 자기 의견을 피력해 왔다.
“시간은 금이라구, 친구.”
하지만.
나는 단호했다.
“잡일은 모든 일의 근간이 되는 일이지.”
“…….”
“일일퀘 역시도 히든 퀘스트, 더 나아가 메인 퀘스트의 발판이 되는 거야. 기초부터 차근차근 해야지. 요오-즘,,, 것덜은~~아주 기냥 편하고 보상 좋은 퀘만 깨려고,,!! 노오오오력을 해야지!”
다소 꼰대 같은 훈계와 함께, 나는 드레이크를 잡아끌었다.
* * *
내가 드레이크를 데려간 곳은 중앙대륙 남부에 있는 커다란 커피농장이었다.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커피 밭.
중남부 특유의 따사로운 햇볕 아래 수많은 종류의 커피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났다.
주렁주렁 매달린 커피원두와 꽃에서 나는 달달한 향이 필드 전체를 풍요롭게 하고 있었다.
붕-
커다란 벌 한 마리가 커피 밭 위를 날아간다.
<살육 벌> -등급: D / 특성: 독, 벌레, 군락
-크기: 1m.
-서식지: 전 대륙.
-덩치는 크지만 느린 벌. 날개를 움직이는 속도조차 느려 높이 날 수도 없다.
양 앞다리와 꽁무니에 붙어 있는 송곳 끝에는 맹독이 감돌고 있다.
이 벌은 고렙 유저들조차도 당황시킬 정도로 강력한 마비독을 가지고 있지만 움직이는 속도가 너무나도 느려 D급으로 분류된 몬스터.
뎀의 세계관에서 먹이사슬 최하위에 위치하는 피식자종이다.
원래는 죽은 몬스터의 살점이나 균사 따위를 먹고 살지만, 어째서인지 이곳 커피 밭에서는 꿀을 먹고 사는 습성을 보이고 있었다.
붕- 붕- 붕- 붕-
살육 벌들은 커피 밭 사이를 부지런히 날아다니며 꿀을 모은다.
다만 그 속도가 너무 느려서 하품이 날 지경이라는 것이 문제.
나는 그런 살육 벌들을 자극하지 않게 밭을 빙 에둘러서 돌아갔다.
이윽고. 광활한 커피 밭의 중앙에 있는 오두막이 보인다.
오두막 앞 나무 그루터기에는 두 명의 사람이 서 있었다.
모두 NPC였다.
그는 험상궂게 생긴 얼굴에 사각턱이 두드러진 배불뚝이다.
커다란 카우보이 모자를 비스듬하게 걸치고 있는 아래로 두터운 시가를 두 개비나 태우고 있었다.
그녀 역시 상당히 표독스럽게 생겼다.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으레 입는 작업복을 입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검은 드레스라도 입었다면 영락없이 마녀 계열 몬스터인 줄 알았을 것이다.
레글리와 마리는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대사를 읊는다.
[젠장, 수확철은 다가왔는데 일꾼 놈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도망쳐 버리니 원. 에잉! 요오오즘 것들은 당최 근성이 읎어! 돈 되는 거, 쉬운 거만 찾아서 하려고 하고! 나 때는 돈이 뭐야! 일 배울 수 있는 것도 감지덕지 하면서…….]
[이게 다 당신이 너무 잘해 줘서 그래요! 젊은 애들이 노오오오오오력을 할 수 있게끔 석식까지 제공해 주면서 일을 시켰어야지! 물론 그것은 급료에서 까고! 오호호호!]
나와 드레이크는 그 앞으로 다가갔다.
“저기, 커피 수확을 돕고 싶은데요.”
내가 퀘스트 오픈 키워드를 입에 담자마자.
짜악-
난데없이 레글리가 휘두른 채찍이 날아들었다.
“……?”
드레이크에게로 말이다.
말은 내가 걸었는데 채찍은 드레이크가 맞았다.
‘운이 나쁘구나, 드레이크.’
나는 드레이크를 향해 측은한 눈빛을 지어보였다.
한편, 난데없이 채찍을 맞은 드레이크는 황당한 표정이다.
HP는 얼마 깎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사람이 느끼는 수치심이라는 게 꼭 HP 수치로만 정해지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농장주 레글리는 다짜고짜 버럭 소리를 지른다.
[뭘 멍하니 앉아 있어, 이 노예들아! 빨리 가서 커피나 따!]
드레이크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상대가 NPC라고 해도 이런 대우를 받는 것은 익숙하지가 않다.
하지만 농장주 레글리는 여전히 마이 페이스였다.
[마! 일 시켜 주는 것만도 감사해 해! 너 아니더라도 이 일 할 사람 많아!]
결국, 우리는 중소농장 주인 레글리가 건네주는 구린 디자인의 카라티를 입고 바로 작업현장으로 투입되었다.
하는 일은 비교적 단순했다.
1. 커피나무에서 커피를 따고 그것을 자루에 담아 운반한다.
2. 그리고 그것을 커다란 솥에 넣고 볶은 뒤 개별 포장한다.
하지만.
이 단순한 작업들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들은 다음과 같았다.
1. 농장이 돈이 없어서 땅값이 싼 중남부 외지에 위치함. 초보자 마을에서 5분 거리.
(※단 마하의 속도로 비행 시)
2. 노예들이 출퇴근하기 힘들어 할까봐 컨테이너로 기숙사를 만들어 둠.
(※냉난방 및 몬스터 침공 방어 안 됨)
3. 석식 제공, 야식 제공.
(※단 식대는 퀘스트 완료 시 보상에서 깜)
4. 야근수당, 추가수당 없음.
(※명절 경험치 보너스, 각종 복지비용 기타 등등 일절 없음)
5. 퀘스트 수행에 도움이 되는 아이템들 전부 사비로 부담해야 됨.
(※바구니, 자루 등 기본템만 제공)
6. 퀘스트 도중 몬스터 습격에 의한 부상 시 치료비 지원 없음.
(※산재 처리 안 해줌)
7. 규모가 작다 보니 네 일 내 일 구분 없음.
(※커피 따고 나르고 볶고 포장하고 다 네 일임)
8. 직원들이 다 사장 가족이나 친척, 친구임.
(※심지어 인원도 별로 없음)
9. 농장은 크지만 인력 규모는 작다보니 매뉴얼이 따로 없음.
(※못하면 쓰레기 새끼, 잘하면 밥값은 하는 놈)
10. 자발적으로 일하면 욕먹고, 시키는 일만 하면 욕먹음.
(※알아서 일한다☞왜 시키지도 않는 걸 하는가?)
(※시키는 것만 한다☞왜 알아서 못하는가?)
(※몰라서 물어본다☞스스로 배워서 해라)
(※안 물어보고 스스로 배운다☞왜 물어보지도 않고 네 마음대로 하는가?)
.
.
심지어 고된 농장 일을 하고 있노라면 안주인인 마리가 시시때때로 개인적인 퀘스트를 부탁해 온다.
마을에 있는 돼지치기 청년에게 연애편지를 전달하라느니…….
새로 나온 신상 구두를 사러 가야 하는데 짐꾼 역할을 해 달라느니….
자기 몸, 혹은 키우는 개가 아프니 죽이나 약을 구해 오라느니….
부녀회 회람판을 돌리라느니….
밀린 빨래나 설거지를 하라느니….
물론 이 퀘스트들의 보상은 전혀 없다.
그렇다고 해서 거절한다면 노동의 강도가 몇 배로 힘들어질 뿐만 아니라 퀘스트 완료 시 보상도 턱없이 적어진다.
…….
이 외에도 수많은 이유들이 있지만, 위와 같은 10개의 기본적인 이유들 때문에 유저들은 레글리의 농장에서 일일퀘스트를 하지 않는다.
보상도 터무니없이 적고 비전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대접도 못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레글리는 늘 불만이 많다.
[어휴, 농장주인인 나도 돈이 없어서 쌍두마차 하나 못 끌고 다니는데. 이번 명절 접속 보상은 없는 줄 알아 다들. 퀘스트 보상도 전년도랑 동결이야~ 요즘 경기가 어렵잖아. 아니 근데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플레이어 지원자가 없어서야 원. 중소농장들 다 죽겠다!]
그는 얼마 전에 새로 뽑은 신상 마차의 바퀴를 닦으며 투덜거렸다.
한편.
우리는 작업을 잠시 멈추고 새참을 먹고 있었다.
농장 구석에는 허름한 함바집이 있는데 그곳의 칠판에 이름을 적고 식판에 음식을 받아서 먹으면 된다.
고기는 없었고 대부분이 나물 위주로 구성된 식단.
워낙 부실해서 먹어도 HP는 조금씩 밖에는 차지 않는다.
하지만 이마저도 먹지 않으면 뜨거운 땡볕에 닳는 HP를 채울 수가 없기에 꾸역꾸역 먹어야 했다.
“젠장, 사비로 사온 포션 값이 퀘스트 보상보다 더 나가겠다.”
드레이크는 결국 포션 병을 따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나는 그저 그러려니 하는 표정으로 나물을 씹는다.
드레이크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어진, 분하지 않은가?”
“…응? 뭐가?”
“세상에 이런 기업 윤리가 어디 있나? 플레이어들의 노동권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잖아!”
“…그래?”
나는 고개를 한번 갸웃했다. 그리고 반문했다.
“원래 이런 거 아냐?”
“……뭐?”
“한국에서는 익숙한데?”
내 대답을 들은 드레이크는 입을 딱 벌렸다.
아무래도 드레이크는 외국인이라 그런가 한국 특유의 기업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때.
농장주 레글리가 채찍을 들고 또다시 난입해 들었다.
[야 이 짜식들아! 언제까지 밥 처먹고 재잘대기만 할 거야! 하루종일 퍼질러 노는구만 아주!?]
구내식당의 급식으로 인해 약간 차오른 HP가 다시 레글리의 채찍에 의해 깎인다.
“…….”
드레이크는 부들부들 떨며 일어났다.
활에 시위를 메기려는 것을 나는 겨우 말렸다.
“참아 드레이크! NPC를 죽이면 카르마 수치가 폭등한다고!”
“크윽!”
“일일퀘 중이잖아. 얼른 끝내고 가자고.”
나는 드레이크를 겨우 달랬다.
다시 커피밭으로 복귀하며, 드레이크는 연신 투덜거렸다.
한편 레글리는 그런 드레이크를 졸졸 따라다니며 채찍질을 하고 있었다.
찰싹- 찰싹- 찰싹
[일해! 일해! 일해! 이 노예야! 너는 네가 아직도 사람 같지!?]
하지만 상대방은 NPC, 퀘스트의 ‘갑(甲)’인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다.
“…….”
드레이크의 이마에 시퍼런 핏줄이 섰다.
NPC의 사정에 웃거나 눈물 흘리는 짓은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했지만, 어째서 이렇게 빡치는 걸까?
하지만 나는 그 채찍을 맞으면서도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
“후후후. 한국의 청년들은 이미 익숙하다구, 이런 취급.”
이미 현실 세상에서 군대와 알바, 중소기업 취업 경험을 통해 단련된 멘탈이다.
이 정도에 꺾일소냐!
한편.
나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일일퀘스트 보상을 떠올리며 미소 짓고 있었다.
곧 굴욕을 갚아 줄 시간이 올 것이다.
“그때까지만 힘내자고.”
“후, 상대가 NPC라서 뭘 할 수가 있나. 카르마 수치를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 천추의 한이다.”
하지만, 나는 드레이크를 향해 호언장담했다.
“걱정 마. 일일 퀘스트 보상만 받고 나면 성질대로 날뛸 수 있게 해 줄 테니까.”
“……어떻게?”
드레이크의 질문에, 나는 말없이 인벤토리 속의 아이템 하나를 꺼내 보여 주었다.
내 손에서 반들거리고 있는 흰색의 가면.
바로 ‘피카레스크(Picaresque) 마스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