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199화 (199/1,000)

200화 또 팬미팅 (3)

Q. 고인물 님의 목에 난 점의 개수는 총 몇 개일까?

나는 퀴즈의 난이도에 심히 당황했다.

아니, 애초에 난이도의 문제가 아니지 않나 이건.

‘……이딴 걸 어떻게 알아?’

내 나이 35세.

살아오면서 내 목에 난 점의 개수에 신경 써 본 적은 단언컨대 한 번도 없다.

‘죽을 때까지 신경이나 쓸까?’

내가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정답! 7개!”

앞자리에 있던 딸7I겅듀™씨가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외쳤다.

덕분에 그의 콧김과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술기운이 내 목덜미에 와 닿게 되었지만,  괜히 자리를 피하는 둥 시선을 끌었다간 정체가 탄로 날 수 있으니 참을 수밖에.

‘…그보다 내 목의 점 개수를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나는 이 자리에 모인 아저씨들의 기묘한 뜨거움에 전율을 느꼈다.

이렇게 관심을 가져 주는 것이 고맙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미묘하게 양가적인 감정이다.

한편.

모임장은 계속해서 퀴즈를 던지고 있었다.

“자, 다음 퀴즈입니다!”

Q. 고인물 님은 왼손과 오른손을 둘 다 쓰는 양손잡이로 알려져 있는데…!

다음 퀴즈를 듣는 순간,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어느 손을 주로 쓰느냐 같은 것은 정말로 내 전문분야(?)가 아닌가!

당연히 내가 맞출 수밖에…….

하지만.

Q. …그렇다면 검지와 약지 중 어느 쪽 손가락이 더 길까?

?

아니, 그게 양손잡이인 거랑 뭔 상관이냐고…

내가 항의하려 손을 들었지만, 그보다 더 빨리 손을 든 아저씨가 있었다.

물론 그는 항의를 위해 손을 든 것이 아니라 정답을 말하기 위해 손을 든 것이다.

“정답! 왼손은 약지가 더 길고 오른손은 검지가 더 길다.”

ID별님두개, 현 육군 특전사 투스타 아저씨가 정답을 맞혔다.

‘세상에!’

나는 경악했다.

재빨리 손을 들어 손가락의 길이를 비교하자 정말로 왼손은 약지가, 오른손은 검지가 더 길었다.

미세한 차이였기에 뚫어져라 보지 않으면 잘 알 수 없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나도 지금 알았겠나?

‘아니,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냐고!’

나는 덜덜 떨며 주위를 살폈다.

술기운 때문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아저씨들이 정면을 향해 숨을 쒸익쒸익 몰아쉬고 있다.

다음 문제는 무조건 맞히겠다는 집념이 가득한 눈초리.

퀴즈는 빠르게 이어졌다.

Q. 고인물 님이 다리를 꼴 때는 주로 어느 쪽부터 꼴까?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책상 아래로 다리를 꼬아 보았다.

자연스럽게 왼쪽 다리가 오른쪽 다리 위로 올라간다.

나는 재빨리 손을 들었다.

“정답! 왼쪽 다리!”

하지만, 모임장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든다.

“오답입니다. 정답은 오른쪽 다리입니다.”

“네? 하지만…….”

나는 황당한 마음으로 항의했다.

아니 내가 방금 다리를 꼬아 봤는데 왼쪽이 올라갔다니깐?

본인이 그렇다는데……!

하지만, 모임장은 객관적인 태도로 내 말에 반박했다.

“카페 운영진이 100개가 넘는 영상을 일일이 분석한 결과. 왼쪽 다리를 꼰 횟수는 26번, 오른쪽 다리를 꼰 횟수는 28번입니다. 고로 통계적으로 보면 정답은 오른쪽 다리지요.”

“…….”

할 말이 없다.

나는 모임장이 보여 주는 편집 화면을 끝까지 보지 못한 채 시선을 아래로 떨구고 말았다.

세상에! 내가 맞힐 수 없는 내 문제라니!

그 뒤로도, 퀴즈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Q. 고인물 님의 혀 길이는!

“정답! 구강 기준 11cm! 와! 하고 고함을 칠 때 알 수 있습니다!”

Q. 고인물 님이 씨어데블 레이드 당시 한 명대사 ‘참 쉽죠?’의 횟수는?

“정답! 총 3회!”

Q. 고인물 님이 설산 지형에서 걸었던 효과적인 걸음법의 박자는?

“정답! 강약약 강강강약 강중약*3*3*7 박자로 깡충깡충!”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나의 정보들이 우르르 쏟아진다.

고인물을 추종하는 고인물들.

“…….”

나는 ‘진짜 고인물’들의 기에 눌려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Q. 고인물 님은 긴장할 때 한쪽 엉덩이가 앙증맞게 떨리곤 하는데, 그게 어느 쪽일까?

“헤이! 즈엉다압. Left! Left butt! 왼쪽 엉덩이애오!”

그 와중에 존예보스인 존 예 씨가 나의 엉덩이를 입에 담으며 열렬하게 소리친다.

그러자 곳곳에서 아쉬움이 가득한 한탄들이 들려온다.

“아아, 나도 아는 건데.”

“다른 건 다 그렇다 쳐도 이것만큼은 자신 있었다고.”

“퍄, 아깝다 아까워.”

전부 40~50대 아조시들이 내뱉는 한숨이다.

이번 문제는 유난히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체 왜 아쉬워하는지, 왜 이 문제만큼은 자신 있었다는 건지 정말 죽었다 깨어나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윽고.

모임장은 증거 장면을 확인하기 위해 국밥집 벽면에 빔 프로젝터를 쐈다.

위잉-

커다란 화면에 내 엉덩이가 가득 잡힌다.

‘바실리스크의 심장’이 발동하자, 내 전신이 검게 물들어 가는 것이 보였다.

씰룩!

그 와중에 왼쪽 엉덩이만 짧고 가늘게 경련하는 것이 커다란 화면에 가득 클로즈업되었다.

“오오오오!”

아저씨들이 술 때문에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바로 내 엉덩이를 향해서!

‘……집에 가고 싶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가 원하던 팬미팅 분위기는 이런 게 아니었는데!

나는 대체 누구를 위하여 어제부터 두근거렸던 것인가?

누구를 위하여 마스크팩을 붙이나?

누구를 위하여 머리를 자르나?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회귀 후 유다희가 보고 싶어진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       *       *

이윽고.

퀴즈대회가 끝났다.

나는 벌칙을 피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퀴즈에 임했지만 결국 한 문제도 맞추지 못했다.

결국 내가 한 것은 나의 신상과 굿즈(애장품) 등을 팔아서 살아남는 것이었다.

“저, 저한테 고인물 친필 사인이랑 희귀 셀카가 있어요. 직접 쓰던 애장품도 있고요. 원하시면 나눠드릴게요. 생년월일이나 혈액형, 체중, 좋아하는 음식 같은 신상정보도…….”

“오옷! 그럼 우리야 너무 좋은데. 혹시 탈덕하려는 것 아냐?”

“아, 아니에요! 그거 말고도 수집품 많아요!”

“껄껄껄! 그런 거야? 그렇다면 언제든지 환영이지! 젊은 친구가 통이 크구만!”

딸7I겅듀™는 내 어깨를 팡팡 치며 껄껄 웃었다.

이윽고.

빈 소주병이 150병에 이르러 갈 무렵, 모임장은 박수를 쳐 분위기를 환기했다.

“자, 1차는 간단하게 마무리 했으니 이제 어디로 갈까요?”

이게 간단하게 마무리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좁고 더운 함바집을 나서는 것에는 대찬성이다.

“그럼 당구장이나 가는 게 어때요?”

한 아재의 발언에 다른 이들은 모두 좋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게임 정모랑은 별로 상관없지 않나?

뭐 아무튼. 모임장은 박수를 치며 공지를 했다.

“자, 그럼 다들 연초 한 개비씩 태우시고 다리 옮기십시다!”

이 함바집은 실내에서도 흡연이 가능하다고 쓰여 있었기에 다들 마음 놓고 담배를 꺼내 문다.

이내, 덥고 좁은 함바집 전체에 뿌연 담배 연기가 가득 차기 시작했다.

‘……집에 가고 싶다.’

나는 마스크를 써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함바집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집에 가고 싶지만 아저씨들이 입구를 꽉꽉 막고 있었기에 저기를 뚫고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차피 곧 모임이 파할 분위기이니 조금만 버티다가 자연스럽게 집에 가야지.

하지만.

뜻대로만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다.

갑자기 함바집 문이 쾅 열리며, 소방관 한 명이 호스를 들고 뛰어 들어왔다.

“신고 받고 출동했습니다!”

???

이게 뭔 상황이란 말인가?

아저씨들은 다들 고개를 갸웃하며 밖으로 나갔다.

알고 보니, 담배 연기가 너무나도 많이 올라오자 불이 난 줄 알았던 위층 당구장 주인이 119에 신고를 한 것이었다.

결국 소방관님들은 아무 일 없이 되돌아가셨지만… 그 와중에 신고를 했던 당구장 주인은 2층에 소화기를 비치해 두지 않았다는 이유로 벌금 50만 원을 선고받았다.

때문에 당구장 주인은 모임장의 멱살을 잡고 고함치기 시작했는데 그 때문에 화가 난 당구장 주인은 홧김에 함바집 앞에 있는 화분을 발로 찼고 그 때문에 산세베리아 화분이 깨져 버리는 바람에 함바집 주인도 싸움에 참전했다.

“야이 씨! 왜 담배를 그렇게 뻑뻑 피워 대! 그것 때문에 벌금 나왔잖아!”

“누가 소화기 비치 안 해 놓으래!?”

“남의 집 화분은 왜 깨 놓아!”

세 남자들은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린다.

이내, 한 아재가 비교적 공평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거, 현실에서 싸우면 깽값밖에 더 나옵니까? 이럴 게 아니라 게임 속에서 PK 뜨는 게 어때요? 다들 뎀 하시잖아요?”

그러자 세 명의 아저씨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셋 다 뎀 유저였던 것이다.

“거 요즘 뎀 안 하는 사람이 어딨나!?”

“아 당연히 나도 하지! 고인물 님 방송을 몇 번을 봤는데, 너네들 다 뒤졌스!”

“내가 계정에 쏟아부은 과금이 얼만데. 뎀벼 봐라 요 핏덩이 아그덜아~”

당구장 주인과 함바집 주인과 모임장은 분에 겨워 씩씩거리며 근처 캡슐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아재들의 자존심을 건 캐삭빵이 펼쳐졌다.

1:1:1 무차별 난투극.

의외로 이긴 것은 당구장 아재였다.

그는 큐대 모양으로 커스텀한 창을 들고 함바집 주인과 모임장을 두들겨 팼고 결국 모임장은 분에 못 이겨 씩씩거리며 캐릭터를 삭제해야 했다.

모임장이 캐삭빵에서 져서 캐릭터를 삭제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오늘 정모 분위기도 최악이 되었다.

“……….”

“…….”

“….”

구경하던 아저씨들은 술기운이 올라 벌겋게 물든 얼굴로 말이 없다. 그저 간헐적으로 딸꾹질을 할 뿐이다.

그 땀내와 술내 나는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나는 생각했다.

두 번 다시는 정모 같은 거 안 나갈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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