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197화 (197/1,000)
  • 198화 또 팬미팅 (1)

    한국의 모든 게임 커뮤니티 사이트가 발칵 뒤집어졌다.

    의문의 랭커 하나가 프로리그 시상식에 테러를 한 사건은 엄청난 이슈가 되었다.

    ‘프로리그 습격사건’, ‘메달 헌터’, ‘랭커 킬러’ 등등 다양한 이름들이 붙었지만 가장 대중적으로 불린 별명은 다음과 같았다.

    앙신(殃神).

    공식 랭킹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정체불명의 랭커.

    흡사 흑마법사와 격투가를 섞어 놓은 듯한 기묘한 메타.

    단신으로 일개국의 프로리그를 궤멸 직전까지 몰고 가는 카리스마.

    이름도 레벨도 국적도 아무것도 알려진 것이 없는 언랭.

    하지만 그가 일으킨 대사건은 게임사에 영원히 남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특히 이번 프로리그가 제 1회였던 만큼 사람들의 충격은 컸다.

    사람들은 한국 랭킹 밖에 존재하는 천재들에 대해 호기심을 갖기 시작했다.

    과연 세계는 넓고 천재는 많다는 것이 이번 일로 증명되었다.

    하지만.

    한국 게이머들은 좌절하지 않았다.

    어둠의 카리스마가 넘치던 ‘앙신’.

    한국 랭커들을 비웃고 무시했던 그의 최후를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다.

    고인물.

    한국 게이머의 자존심!

    모든 프로 선수들이 빌런 하나에게 쩔쩔매고 있을 때, 고인물은 홀연히 나타나 그를 쓰러트렸다.

    그것도 말도 안 된다 싶을 정도로 압도적이게!

    고인물은 어떠한 사례나 공치사도 하지 않았다.

    그저 앙신을 죽인 뒤 유유히 사라졌을 뿐이다.

    한국 프로리그를 멸망 직전까지 몰고 갔던 역대급 빌런 ‘앙신’

    그리고 그 앙신을 단번에 제압하고 사라져 버린 고인물.

    심지어 고인물은 프로 선수도 아니고 공식 랭킹에 등록된 랭커도 아니다.

    그저 아마추어 리그에서, 모두와 같은 눈높이에 머물고 있는 일개 게이머에 불과한 것이다.

    심지어 그는 협회에서 주는 감사패마저도 전부 거절했다.

    자기는 협회와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상을 받을 자격도 이유도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 때문일까?

    이번 시즌 리그에서 가장 눈부신 활약을 보였던,

    게이머 개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인 MVP로얄스타 상을 받은,

    마지막에 골치 아픈 몬스터들을 한 방에 싹쓸이해 버린,

    마동왕.

    전 프로리그를 통틀어 최고의 업적을 세운 그조차도 상대적으로 고인물에 비해 덜 주목받고 있었다.

    마동왕 역시도 이번 테러에서 공익을 위해 큰 기여를 했지만 아무래도 고인물에 비해 주목도가 조금 밀리는 것이 사실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현재 모든 게임 관련 게시물에는 댓글 풍년이 들었다.

    전부 다 고인물에 관련된 내용들이었다.

    -그 누구도 고인물의 천재성을 따라올 수 없다.

    -고인물은 모든 게임의 시작이며 끝이다.

    -그는 게임의 신이다. 모든 게이머들은 게임 전에 고인물에게 기도해야 한다.

    -만약 인류의 탄생 이후로 만들어진 모든 게임이 사라진다고 해도 괜찮다. 고인물의 플레이를 토대로 다시 재건할 수 있다.

    -고인물은 게임을 할 때 24시간 중 25시간을 플레이한다.

    -신을 믿지 않는 게이머는 있어도 고인물을 믿지 않는 게이머는 없다.

    -고인물은 게임계의 최고존엄이자 입법자이며 4대 성인인 예수, 부처, 공자, 소크라테스와도 견줄 수 있는 거장.

    -그가 흘린 눈물은 암을 치료할 수 있다. 하지만 고인물은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눈물조차도 흐르지 않고 고여만 있기에.

    -고인물은 게임을 무한대 시간 플레이 해 본 적이 있다. 그것도 두 번이나.

    -고인물이 레이드를 뛸 때 몸을 숨기는 이유는 몬스터를 두려워해서가 아니다. 몬스터가 그를 두려워할까 봐이다.

    -사실 고인물은 이미 10년 전에 죽었다. 다만 염라대왕의 그의 플레이를 더 보고 싶어서 아직 데려가지 않았을 뿐이다.

    -고인물은 누구와도 파티를 하지 않는다. 그 누가 와도 발목만 잡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인물은 생일파티조차도 항상 혼자 한다.

    -사실 산소는 생명 유지를 위해 고인물을 필요로 한다.

    -고인물은 칼로 레이드를 뛰는 게 너무 쉬워서 이쑤시개를 발명했다.

    -사람은 누구나 왼손과 오른손 중에 더 빠른 손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고인물은 양쪽 손이 다 맞은편 손보다 빠르다.

    -고인물이 레이드 시간을 놓치면 시간이 알아서 속도를 늦춘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 펜이 고인물의 손에 들려 있을 경우에만 그렇다.

    -고인물은 방의 불 스위치를 끄고 어두워지기 전에 몸을 숨길 수 있다.

    -사실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세계관에 몬스터 생태계라는 개념은 없다. 다만 아직 고인물에게 사냥당하지 않은 ‘운 좋은 녀석들’만이 존재할 뿐.

    -고인물이 옷만 입고 다녔어도 세계인을 모두 팬으로 거느렸을 것.

    .

    .

    현재 고인물에 관한 여론 반응은 엄청났다.

    MVP로얄스타가 된 마동왕의 소식이 완전히 묻혀 버렸을 정도로 고인물 찬송이 넘쳐흐른다.

    <2021년 7월 7일 검색어 순위>

    1: 고인물 (-)

    2: 고인 물 (1↑)

    3: 변태 메타 (NEW)

    4: 프로리그 습격사건 (1↑)

    5: 알몸 히어로 (1↑)

    6: 마동왕 (4↓)

    .

    .

    리그 시즌에서 정작 리그에 참가하지도 않은, 심지어 프로게이머도 아닌 고인물이 검색어 순위 1위를 차지했다.

    심지어.

    [예전에 침수림 수몰지대에서 ‘썩은물’에게 피해를 입으셨던 분은 제가 피해 보상을 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썩은물과 저는 전혀 다른 별개의 존재이지만, 저의 모습과 메타를 이용해 무분별한 PK를 즐기는 카르마 유저가 나타났다는 것에 나름대로 큰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고인물은 자신의 개인 방송에서 중대 발표를 했다.

    예전 ‘썩은물’에게 사망 패널티를 입었던 피해자들에게 보상을 지급하겠다는 선언이다.

    절대고수의 이미지에 대인배+보살 이미지가 추가되며, 그의 주가는 그야말로 미친 듯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아마추어 리그의 황제.

    균형과 빛을 지키는 수호자.

    한국 랭킹을 대표하는 절대강자.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심지어 고인물을 국회로 보내자는 청와대 청원까지 등장할 정도였으니 말 다한 셈이다.

    *       *       *

    그리고 현재.

    “아하하하. 뭐야 이거. 되게 웃기네.”

    나는 인터넷 검색어 순위에 뜬 내 이름을 보며 웃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나의 플레이를 찬양하는 수준이었는데, 짓궂은 유저들은 어느새 나를 반쯤 신격화 하고 있었다.

    오죽했으면 보는 내가 조금 민망할 정도다.

    하지만 고인물이라는 이름 자체가 브랜드를 넘어 하나의 ‘밈(Meme)’이 되고 있는 현상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사람들은 나의 영상과 사진을 가지고 다양한 짤방을 만든다.

    지금 모니터 화면 속에서는 내가 조디악 번디베일을 두들겨 패는 움짤들이 무수히 재생되고 있었다.

    특히나 김치를 가지고 조디악의 뺨싸대기를 때리는 장면의 조회수는 그야말로 폭발적!

    이로 인해 만들어져 돌아다니는 밈은 그야말로 그 수를 셀 수도 없을 정도였다.

    나는 수많은 사진들에 웃으며 유저들의 창의력과 드립 센스에 감탄하고 있었다.

    그때.

    “……어라?”

    나는 우연히 대형 게임 커뮤니티 사이트의 한 자유게시판 게시글을 보게 되었다.

    <고인물 님 팬미팅 정모 주최합니다!!>

    고개가 절로 갸웃거려지는 제목이다.

    “뭔 소리야 이거? 내가 들은 게 없는데.”

    게시물을 클릭하자, 한 유저가 올린 글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고인물 님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팬들끼리 모여 화목한 시간 나눠요^^♥

    PS-고인물 님이 메일 답변이 없으시면 팬들끼리라도 한번 모여 봐요ㅠㅠ...

    -장소: 서울시 금천구 가산디지털 2로 98 글로번T캐슬 1동 앞.

    -시간: 오후 6시

    -회비: 고인물님을 사랑하는 만큼♥

    .

    .

    “아, 메일을 보냈었나?”

    나는 메일함을 열어 보았다.

    과연 모르는 사람이 보낸 메일 하나가 와 있었다.

    -24살희은이♥: 안녕하세요오오◕‿◕♥ 고인물 님의 플레이를 평소에 너무나도 사랑하고 존경해왔던 회사원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 프로리그 습격사건 일로 완전히 반해버리고 말았...இ‸இ(꺄악)...그래서 고인물 님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간단한 다과회를...

    뭐 요약하자면 팬 미팅을 열어도 되겠느냐는 내용이었다.

    “...어디보자, 마동왕 팬 미팅 때 꽤나 재밌었지?”

    나는 얼마 전에 있었던 마교 정모를 떠올렸다.

    유다희가 주최한 마교 정모에서는 후원금을 모아 사막에 나무를 심는 일, 결식아동을 돕는 일 등의 기부와 봉사활동을 내 이름으로 나가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나에게 ‘조공’이라 불리는 다양한 선물들을 보내거나 첫 데뷔일 축하, 첫 올킬 축하, 생일 축하 등의 여러 기념일 파티를 챙겨 준다.

    그때 당시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었었는데 성비는 약 8:2 정도로 여자가 더 많았었다.

    “…이번에도 그러려나?”

    나는 정모에 참석하겠다고 하는 이들의 닉네임을 살폈다.

    -별님두개★★: 저도 살며시 참가신청해봅니다 (>///<) (수줍)

    -딸7I겅듀™: 와아! 고인물 님 정모면 당연히 가야죠!! ㅎㅎㅎ아쟈따위...!

    ↳마카롱마싯땅♥: (๑ŐεŐ๑)22222...

    ↳존★예★보★스: (๑•ิܫ•ั๑)333333...

    -T없이맑은예슬: 부산 사는 대학생이에요^^ 바로 기차표 예약완료!(찡긋)

    -24살희은이♥: 다들 흔쾌하시네요^^ 고인물 님도 오시면 좋을텐데...아쉽게도 연락이 닿지 않으셔서 일단 저희끼리만...

    .

    .

    대부분 여자로 추정되는 닉네임들이다.

    나는 댓글에 적혀 있는 그들의 신상정보를 통해 성비를 유추했다.

    “오…거의 다 여자네 이번에도.”

    대충 여대생 11명, 커리어 우먼 13명, 여고생 6명 정도려나?

    총 30명 중 여자만 30명.

    100% 여자들로만 이루어져 있다!

    “아~ 참, 이거 곤란하네. 아휴~ 계절 바뀌어서 옷도 별로 없는데.”

    나는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꾹꾹 내리눌렀다.

    나 참. 이놈의 인기는 정말. 여자들의 관심도 이제는 조금 지겨울라고 그런다.

    “어디 보자, 옷을 좀 사야겠네. 요즘은 남자들도 화장 한다는데…화장품도 좀 살까? 머리도 좀 자르고…….”

    마동왕 팬미팅 때 온 여성팬들과 참 재밌게 놀기는 했지만, 그때는 가면을 쓰고 있었고 캐릭터 콘셉트 상 무뚝뚝한 척을 해야 했으니 조금 아쉬웠던 것이 사실이다.

    고인물일 때는 그런 게 없으니 마음껏 놀아 버려야겠다.

    나는 화장실로 달려가 깔끔하게 면도를 했다.

    그리고 윤솔이 선물로 준 마스크팩까지 얼굴에 붙였다.

    시계를 보자 바늘이 오후 8시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 보인다.

    “오늘은 일찍 자야지.”

    정모가 내일 오후 6시까지라니까 지각하지 않게 지금쯤 자야겠다.

    혹시라도 늦잠을 잘 수도 있으니깐.

    바스락-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었다.

    두근두근-

    살면서 이렇게 내일이 기대되어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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