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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196화 (196/1,000)
  • 197화 고인물 당신은 대체… (2)

    흐물~흐물~흐물~

    뼈의 벽 속을 연체동물처럼 기어가 빠져나오자.

    “……미친!?”

    귓가에 조디악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는 평소에 짓는 꾸며 낸 표정이 아닌, 정말로 놀란 표정을 지은 채 나를 돌아보았다.

    뚝- 뚝-

    나는 몸에서 끈적한 점액들을 늘어트리며 바닥에 섰다.

    원래 크라켄의 ‘틈’ 특성만으로 이 뼈의 균열을 빠져나오려면 시간이 꽤 오래 걸렸겠지만, 씨어데블의 점액이 뒷받침되자 그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

    우득-

    나는 구멍을 빠져나온 즉시 엄지손가락을 깨물었다.

    그리고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조디악의 얼굴에 피를 뿌렸다.

    촤악-

    강력한 독이 녹아들어 있는 나의 혈액이다.

    “……큭!”

    조디악은 재빨리 눈을 가렸지만 이미 늦었다.

    시야를 가렸을 뿐만 아니라 초당 0.04%의 독 데미지가 들어간다.

    (맹독은 체내로 들어갈 경우 도트 데미지가 4배)

    그가 눈을 더듬으며 비틀거리는 순간.

    푸욱-

    드디어 내 깎단이 놈의 허벅다리에 구멍을 내 주었다.

    능지처참 특성으로 인해 초당 HP의 0.01%의 도트 데미지가 추가되었다.

    이건 죽을 때까지 지속되는 저주이기에 맹독의 도트 데미지보다 훨씬 더 악랄하다.

    잔여 HP가 얼마 되지 않은지라 목숨줄은 더더욱 짧았다.

    포션을 먹거나 자가 치유를 하지 않는 한 무조건 사망 확정.

    “……이 귀찮은 놈!”

    조디악은 두 눈을 꽉 감은 채 검은 피눈물을 흘렸다.

    가까운 마을의 신전에 가지 않으면 죽는다.

    능지처참 상태이상을 없앨 수 있는 존재는 마을에 있는 신관 NPC가 거의 유일하니까.

    하지만 이 근처에 신전이 있는 규모의 마을은 없다.

    때문에 조디악은 품을 뒤적여 귀환 스크롤을 꺼내 들 수밖에 없었다.

    “젠장, 네놈 하나 때문에 스크롤을 얼마나 낭비하는 거야! 이거 진짜 비싼데…….”

    하지만 나도 할 말이 있다.

    “나도 그게 궁금하다. 왜 비싼 돈 들여 이런 짓을 하냐?”

    PK는 기본적으로 소모적 행위이다.

    준비물을 구비하는 데 돈도 많이 들고 시간과 정신력 소모도 크다.

    몬스터는 잡으면 아이템이나 경험치라도 주지, PK는 드랍율도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로 낮고 획득 골드도 적다.

    하지만.

    “푸스스스스!”

    조디악은 그저 웃기만 할 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품에서 꺼낸 스크롤을 찢을 뿐이다.

    찌익-

    귀환 스크롤이 찢어졌다.

    동시에 조디악의 몸이 환한 빛무리에 휘감긴다.

    놈은 그렇게 나에게서 도망쳐 영영 사라져 버렸다.

    …….

    내가 소환한 쌍뿔칠흑이 1초만 늦었더라도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파앗!

    반지에서 튀어나온 쌍뿔칠흑은 몸을 일자로 쭈욱 뻗었고 이내 조디악이 반쯤 찢어놓은 스크롤을 입으로 낚아챘다.

    “나이스 리치!”

    나는 한 끗 차이로 조디악의 도주를 막는 데 성공했다.

    “으아아! 이 뱀 새끼!”

    조디악은 마법을 써 쌍뿔칠흑을 강타했지만.

    [쉬익!]

    안타깝게도 쌍뿔칠흑은 마법면역력이 높다.

    우드드득-

    이 칠흑의 뱀은 거대한 몸을 움직여 조디악을 꽁꽁 옥죄였다.

    나는 그런 쌍뿔칠흑의 머리 위에 앉은 채 조디악에게로 다가간다.

    “……시체라도 남겨 줄까?”

    내가 묻자, 조디악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그려졌다.

    “카악- 퉷!”

    놈은 나에게 시커먼 가래침을 뱉었다.

    하지만 나는 재빨리 그것을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철퍽-

    조디악이 뱉어 낸 침이 조디악의 얼굴에 다시 철썩 떨어졌다.

    “…….”

    조디악은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뭔가가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이내, 그는 껄껄 웃어 버렸다.

    “푸스스스스! 결국 이렇게 되었군.”

    “…….”

    “이번에도 완패다.”

    내가 말이 없자, 조디악은 눈을 빛냈다.

    “고인물을 노리면 마동왕이 방해하고, 마동왕을 노리면 고인물이 방해하는구나. 최고의 케미야.”

    “…….”

    “너희 둘이 한국 랭킹의 실질적인 대표자지? 내가 반드시 찾아내서 둘 다 죽여 버릴 테다. 두고 보자고.”

    조디악은 웃는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눈은 웃고 있지 않다.

    독에 오염된 혈액을 눈물처럼 줄줄 흘리며, 그는 나를 똑바로 노려보고 있었다.

    그런 조디악에게.

    “뭘 두고 봐?”

    나는 다가가서 눈을 맞추었다.

    “지금 많이 보렴.”

    “…….”

    “꼭 약한 것들이 질 때 딱히 할 말 없으니까 두고 보자고 하더라. 자신 있으면 지금 보지 왜 두고 보냐?”

    나는 조디악의 머리를 깎단으로 딱딱 때리며 웃었다.

    희번뜩!

    조디악은 연쇄살인마 특유의 무시무시한 눈초리로 나를 노려보았지만.

    번쩍!

    게임 속의 내 눈은 현실 속의 연쇄살인마의 눈보다 무섭다.

    “끼약!?”

    메두사의 특성 마나 번이 발동하자, 조디악은 또 비명을 질렀다.

    몸 내부가 일순간이나마 돌이 되는 것은 무통증 증후군이 있는 그로서도 매우 불쾌한 경험인 모양이다.

    “잘 가.”

    나는 말없이 쌍뿔칠흑을 역소환시켰다.

    굳이 녀석을 죽여서 카르마 수치를 쌓기 싫었기 때문이다.

    툭-

    만신창이가 된 조디악의 몸이 땅에 떨어졌다.

    그리고.

    그곳에는 아까부터 이를 뿌득뿌득 갈고 있던 한국 랭커 수백 명이 우글우글 몰려들어 있었다.

    콰콰콰콰콰쾅!

    이윽고.

    조디악은 쏟아지는 포격 세례에 맞아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갈가리 찢겨 죽었다.

    우-와아아아아!

    전장에서 직접 그 광경을 눈으로 본, 그리고 모니터나 전광판으로 시청하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환호한다.

    “역시 고인물이다!”

    “세상에! 프로들도 쩔쩔매던 빌런을 그가 해결했다고!”

    “아아, 역시 아마추어 리그의 황제…그저 빛……도덕책.”

    “도대체 왜 프로리그로 데뷔를 안 하는 걸까!?”

    프로와 아마추어를 막론하고 모든 랭커들이 찬탄을 마지않았다.

    하지만.

    콰쾅!

    아직 전장의 혼란은 계속되고 있었다.

    조디악은 죽었지만 그가 불러온 몬스터들은 아직도 필드에 남아 있다.

    여전히 어마어마한 수의 몬스터들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오우거, 칼날도룡뇽, 하피, 늪고릴라, 장수지네, 방랑자 전갈, 귀신 삵, 마삥과리…….

    수많은 잔여 몬스터들이 무고한 유저들의 피난길을 습격하고 있었다.

    심지어.

    [까아아아아아악-]

    하늘에서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공중을 날아다니던 하피들이 일제히 한 곳으로 모여든다.

    그곳의 중심에는 거대한 하피 한 마리가 부유하고 있었다.

    매혹적인 얼굴과 육감적인 몸매.

    하지만 팔과 다리는 영락없는 괴조의 그것이다.

    <하피 퀸> -등급: B+ / 특성: 맹독, 비행, 야수, 뺑소니

    -서식지: 육중한 밀림, 구더기 언덕, 비행로(非行路).

    -크기: 8m.

    -평소에는 고아한 귀부인의 모습으로 있지만 둥지가 공격받거나 새끼들이 죽으면 처절한 모습으로 덤벼들어 온다.

    발톱과 깃털, 목소리와 시선에 깃든 독은 일반 하피들의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

    하피 퀸!

    이 거대한 몬스터는 입에 장미를 물고 있는 우아한 모습으로 허공에 떠 있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알껍질 조각을 보며, 하피 퀸은 격렬하게 분노하고 있었다.

    한편.

    비행 타입 보스 몬스터의 등장에 랭커들의 표정이 또다시 암담함으로 물들었다.

    “고인물 씨! 도와주십쇼!”

    한 프로 선수가 나를 향해 외친다.

    블루스컬의 홍지노였다.

    그 외에도 많은 프로 선수들이 나를 돌아본다.

    국K-1, 와이번즈, K2빅토리, 프릭쇼, 블루스컬, 코리아철강축산, 천지패황, 스타파이브, 다이너소어…….

    다 낯익은 얼굴들. 그들의 간절한 시선들.

    하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프로리그에서 생긴 일이니 프로들이 극복해야 할 문제 같네요. 아마추어인 저는 여기까지입니다.”

    나는 짤막하게 입장을 정리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바로 모습을 감춰 버렸다.

    -<심해마귀 씨어데블의 발가락> 신발 / A+

    익사 직전에 놓인 이가 마지막으로 치는 발버둥.

    그 필사적인 간절함이 담겨 있다.

    -이동 속도 +200% (특수)

    -물 속 이동 속도 +300% (특수)

    -특성 ‘마찰계수’ 사용 가능 (특수)

    재빨리 움직여 사라지는 나의 움직임을 육안으로 쫓을 수 있는 이는 랭커들 중에서도 많지 않다.

    내가 사라지자 몇몇 랭커들은 투덜거렸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다들 고개를 끄덕이는 분위기가 되었다.

    “히잉. 좀 도와주면 어때서….”

    “…아냐, 그래도 프로리그에서 생긴 일이니 프로들이 해결해야지!”

    “하긴. 고인물 씨가 도와주면 사태는 금방 해결되겠지만, 프로들의 명예는 곤두박질 할 거야.”

    “애초에 그 흑마법사 놈을 해치워 준 시점에서 고인물 씨는 할 일을 다 했지 뭐.”

    “우리 명예는 우리가 스스로 찾는다! 프로들의 힘을 보여 주자고!”

    그렇다.

    지금부터는 좋아질 일만 남았다.

    힘이야 좀 들겠지만, 이 정도는 프로들의 힘으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에 확신의 말뚝을 박는 사건이 일어났다.

    “한국 프로리그? 충분히 잘하고 있다.”

    마동왕.

    내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나는 마동왕의 모습으로 전장에 출격한 즉시 허공으로 손을 뻗었다.

    콰콰콰콰콰콰-

    거대한 와류가 일어 대기에 폭풍을 만들었다.

    [까악!?]

    하피 퀸은 날개를 퍼덕거렸지만, 그 거대한 몸으로도 나의 힘에는 저항할 수 없었다.

    터억-

    나는 소용돌이 중앙으로 빨려 들어온 하피 퀸의 머리를 한 손으로 붙잡았다.

    그리고 지진의 힘을 발동해 하피 퀸의 두개골을 그 자리에서 두들겨 부숴 버렸다.

    우-지끈!

    산산조각 나는 두개골.

    전장의 모든 랭커들을 암담하게 만들었던 이 무시무시한 비행타입 보스 몬스터가 눈 깜짝할 사이에 격침되었다.

    그것도 단 일격에!

    그 뿐만이 아니었다.

    “모두 물러서.”

    나는 발로 바닥을 굴러 용암의 파도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지진과 와류가 대지와 창공을 한꺼번에 휩쓸어 간다.

    [가-아아악!]

    [꺄-아아악!]

    오우거와 하피들이 우르르 떼죽음을 당했다.

    압도적인 힘(power overwhelming)!

    전장에서 유저들이 조금 빠지는 순간 마동왕 특유의 강력한 광역기가 뻥뻥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러자 플레이어 측의 분위기가 최고로 고양되었다.

    “그래! 프로리그에는 마동왕이 있잖아!”

    “우리도 마동왕 씨와 함께 싸우자! 탱커 라인 출격!”

    “딜러들도 질 수 없다! 고고!”

    “일반 유저들은 저를 따라오세요! 힐 해 드립니다!”

    프로 선수들은 자신감 있게, 주체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어떠한 사명감, 그리고 벅차오름이 그들의 가슴을 쿵쿵 뛰게 만든다.

    그리고 모두의 시선은 오로지 한 곳을 향하고 있었다.

    전장의 최선두에서 수많은 몬스터들을 한꺼번에 싹쓸이하고 있는 한 명의 프로게이머.

    바로 나의 등을 향하여!

    *       *       *

    한편.

    쑥대밭이 된 ‘육중한 밀림’의 외곽.

    전쟁의 흔적이 빗겨 간 이곳에서는 목소리 몇 개가 작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저거 ‘그놈’ 맞지?”

    나직한 목소리로 묻는 이는 바로 매드독의 에이스 김정은이었다.

    그녀는 오래 전부터 저 멀리 전장을 주시하고 있었다.

    조디악 번디베일.

    그가 죽을 때 김정은은 눈을 빛냈다.

    그녀는 고인물도 마동왕도 아닌 조디악만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불신과 경악, 불안, 흥분, 기대감으로 뒤범벅된 눈빛.

    김정은은 말라붙은 입술을 혀로 한 차례 핥았다.

    “이거 옛날 생각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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