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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195화 (195/1,000)
  • 196화 고인물 당신은 대체… (1)

    빡!

    요란한 소리와 함께 조디악의 뒤통수가 확 젖혀졌다.

    “……?”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고개를 돌리겠지 그래.

    그러면 윙크를 하고 있는 내가 보일 것이다.

    나는 황당한 표정을 짓는 조디악에게 혀를 끌끌 차 주었다.

    “에에잉~~ 요오오오즘,,, 프로들은 말이야~~헝그리 정신이 읎서,,,이게 다 전쟁을 안 겪어 봐서,,,나 때는~~”

    이 말투가 어찌 번역되어 들리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 의도가 잘 전해졌으면 좋겠는데.

    나는 그 짧은 순간 몇 초 전의 일을 회상했다.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나는 순간, 나는 마동왕 메타로 나서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광역기를 뻥뻥 날릴 수 있는 메타만큼 이 상황을 해결하는 데에 적합한 것이 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은 또다시 뒤집어졌다.

    조디악이 허공으로 붕 떠서 지진을 피하는 법을 알아낸 데다가 공중 몬스터인 하피들이 전투에 개입했다.

    거기에 시간이 갈수록 전장이 혼란스러워진다.

    무고한 플레이어들이 몬스터들과 뒤죽박죽되면서 지진이나 와류 등의 광역기를 난사하는 것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다.

    과연 조디악은 만만한 빌런이 아니었다. 상황을 조금 잘못 판단한 감이 있었다.

    나는 국K-1 멤버들이 시간을 벌어 주는 동안 재빨리 밀림의 외곽, 바위와 나무가 뒤섞여 거대한 옹벽을 이룬 사이로 숨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바로 아이템 메타를 갈아 버렸다.

    고인물.

    마동왕에서 고인물로 변신하는 것은 아주 짧은 순간만을 필요로 한다.

    눈에 확 띄는 핵심 아이템 몇 개를 갈아입는다.

    얼마든지 커스텀 변형이 가능한 평범한 외형의 아이템들은 그냥 내버려 뒀다.

    나는 고인물로 변신하자마자 잽싸게 전장을 가로질렀다.

    샌드웜의 ‘흙장난’ 특성이 시기적절하게 발현해 준 덕분에 혼란스러운 전장에 있던 대부분의 존재들은 나의 등장을 눈치 채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은 조디악 번디베일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너, 언제 여기에?”

    조디악의 얼굴에서 웃음이 걷혔다.

    나는 굳이 대답해 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한국 랭커들은 다행스럽게도 아직 큰 피해가 없다.

    일반 유저들이야 GM측에서 해 줄 수 있는 보상으로도 충분하겠지만, 랭커들의 경우에는 GM 재량 선에서 해 줄 수 있는 보상 따위로는 택도 없는 피해를 입을 것이다.

    접속불가 24~48시간은 개개인적으로 보면 그냥 귀찮은 제한일 수 있지만, 한국 랭킹 전체가 그 시간 동안 마비된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

    이 순간에도 일본,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라이벌들은 앞으로 쭉쭉 달려 나가고 있을 것이 아닌가?

    ‘실제로 이때를 분수령으로 한국 랭킹이 크게 쇠퇴하지.’

    원래 미래에는 한국의 랭커들이 접속불가로 자리를 비우고 있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세계 각국의 랭커들이 사냥터와 보스몬스터 점유율을 높이게 되었다.

    때문에, 한국 e스포츠의 발전을 위해서 지금 눈앞에 있는 조디악 놈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퍼억-

    나는 깎단을 꺼내 조디악의 몸을 찔렀다.

    고인물 메타는 딱히 광역기가 없지만 1:1 대인기에는 특화되어 있다.

    하물며 이 거리에서야!

    “……큭!”

    조디악은 예측 못한 습격에 몸을 뒤로 물린다.

    펄럭-

    놈의 로브가 휘날리자, 뻥 뚫린 구멍과 함께 멀쩡한 몸이 드러났다.

    조디악은 그 와중에도 품이 넓은 로브를 이용해서 내 공격을 피한 것이다.

    “머리를 노릴 걸 그랬네.”

    나는 씩 웃으며 조디악을 따라붙었다.

    애초에 깎단으로 바로 찌르지 않고 뒤통수부터 날린 것은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주변에는 데미지를 떠넘길 다른 아군도 없고 해골병으로 되살려낼 시체도 없다.

    흑마법사는 철저히 준비했을 때에는 무섭지만 무방비 상태일 때는 정말 약한 직업이 아니던가?

    콱-

    나는 물러나는 중이던 조디악의 로브 끝자락을 발로 밟았다.

    그러자 조디악은 그 자리에 나동그라졌다.

    “이 자식!”

    조디악은 황급히 마도서를 꺼냈다.

    그리고 나를 향해 7클래스의 공격마법 ‘유극지옥’을 시전하려 했다.

    하지만 내가 조금 더 빨랐다.

    번쩍-

    내 눈동자가 시뻘겋게 물들었다.

    메두사의 특성 ‘마나 번’이 발동되어 조디악의 체내에 흐르는 마나를 아주 일순간이나마 돌로 만들었다.

    물론 상대는 7클래스의 마법사이니 만큼 석화 시간은 아주 짧았지만.

    스팟-

    고수들의 싸움에서는 그 짧은 시간은 아주 치명적이다.

    나는 깎단으로 조디악의 얼굴을 찔렀다.

    뻐-억!

    이내, 조디악의 안면 전체에서 피가 튀며 놈의 머리가 뒤로 튕겨져 나갔다.

    도트 데미지는 들어가지 않았다.

    …왜냐고?

    그것은 내가 지금 깎단을 거꾸로 쥐고 있기 때문이다.

    내 깎단은 긴 원뿔 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바로 잡으면 송곳이 되고 거꾸로 잡으면 방망이 모양이 된다.

    파괴불가의 빠따,

    나는 조디악에게 데미지를 가하기 직전, 생각을 조금 바꾸었다.

    “너는 좀 맞자.”

    지금 이 모습은 한국 게이머 모두에게 생중계되고 있다.

    밑에서는 한국의 모든 랭커들이 자존심을 짓밟힌 채 이를 갈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위해.

    나는 조디악을 조금 더 잘근잘근 밟아 줄 필요가 있었다.

    “요놈 요놈 요 미운 놈.”

    나는 깎단을 들고 조디악의 전신 구석구석을 쥐어 팼다.

    “……큭!”

    조디악은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지라 짜증스럽게 가드만 올리고 있을 뿐이다.

    이내, 그는 품속에서 송곳 세 개가 박힌 클로를 꺼내들었다.

    그것을 본 마태강이 다급하게 외쳤다.

    “조심해요! 그 클로에 5번 맞으면 치명타가 들어갑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조디악의 특성을 알고 있다.

    오체분시 특성.

    상대방에게 5번째 공격을 성공시키면 엄청난 치명타가 들어가는 스킬.

    나는 그걸 알면서도 조디악에게 공격을 허용했다.

    퍼억-

    조디악이 내 몸에 닿는 순간 나는 숨을 참았다.

    꿀렁-

    씨어데블의 점액이 땀처럼 송글송글 배어 나와 내 전신을 뒤덮었다.

    미끄덩!

    조디악의 클로는 내 몸을 어루만지듯 훑고는 바로 미끄러져 버렸다.

    나는 또다시 깎단을 거꾸로 쥐고 조디악의 전신 구석구석을 쥐어 팼다.

    “…! …! ……!”

    조디악은 속수무책으로 얻어맞는다.

    도트 데미지가 없으면 깎단의 데미지 자체는 B~B+급 아이템 수준이지만, 그래도 맞으면 기분이 불쾌한 것은 어쩔 수 없다.

    한편.

    조디악이 개처럼 얻어맞는 장면은 한국에 있는 모든 이들의 모니터로 생중계되고 있었다.

    저 아래 서 있는 랭커들은 전부 입을 딱 벌린 채 멍한 표정을 짓는다.

    범접불가(犯接不可).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내뿜던 저 괴물을 이렇게 손쉽게 쥐어 패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히.”

    멍한 표정을 짓던 한 랭커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힘내라……!”

    그의 응원을 시작으로, 곳곳에서 우렁찬 응원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힘내라! 힘!”

    “한국인의 저력을 보여 줘!”

    “그냥 패지 말고 이걸 써 주세요!”

    그 와중에 한 플레이어가 내게 거래창을 걸고 아이템 하나를 던졌다.

    -<잘 익은 배추김치> / 한손무기 / C+

    비만을 방지하고 혈압을 낮추며, 암을 예방하고 노화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풍부한 유산균은 장을 깨끗하게 하는 정장작용을 해 변비와 대장암을 예방하기도 한다.

    -공격력 +150

    -맛있음 (특수)

    -특성 ‘김치싸대기’ 사용 가능 (특수)

    이런 아이템이 있었나?

    하지만 지금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메시지’다.

    나는 배추김치 한 포기를 손으로 집어 들고는 온 힘을 다해 조디악의 뺨을 후려쳤다.

    철-썩!

    한국인의 매운맛!

    “으악! 이게 뭐야!”

    김치 싸대기를 맞은 조디악이 비명을 질렀다.

    통증은 없지만, 무척이나 불쾌한 감각이 전신을 지배한다.

    눈물이 나고 시야가 붉게 흐려진다.

    양념 같은 게 입에도 들어갔는데 짜고 화하고 아주 죽을 맛이었다.

    ‘깎단을 김치에 싸서 드셔보세요!’

    나는 양 손을 파닥거리는 조디악을 향해 근엄하게 한마디 해 주었다.

    “우리나라는 조현우의 오른팔, 추신수의 왼팔, 김연아의 오른발, 황의조의 왼발, 손흥민의 군면제, 방탄소년단의 얼굴, 싸이의 선글라스가 있는 나라다. 다시는 한국을 무시하지 마라.”

    이른바 국조디아!

    나의 멘트를 들은 모든 랭커들은 왈칵한 표정으로 왼쪽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다들 한 마음 한 뜻으로 애국가를 부르기 시작했….

    ……뭐, 여기까지는 너무 나갔고.

    한편.

    내 말을 들은 조디악은 김치국물에 범벅된 채 잠시 말을 잃었다.

    “F*ck you.”

    이내, 조디악은 나를 향해 욕설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이 자리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나는 그런 조디악을 바짝 뒤쫓았다.

    이제 국뽕 놀이는 그만. 진짜로 승부를 낼 시간이다.

    착-

    나는 깎단을 거꾸로 쥐었다.

    그리고 도망치는 조디악을 향해 빠르게 접근했다.

    주변의 한국 랭커들도 용기백배하여 조디악을 쫓았다.

    “우리도 가즈아아!”

    나의 선전에 다들 희망의 불씨를 활활 피워 올린다.

    바로 그 순간!

    빙글-

    조디악은 몸을 빙글 돌려 비장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무덤사역 특성의 응용 버전.

    조디악은 전장에 남은 잔여 해골병들을 한 곳으로 모았다.

    꽈드드드드득-

    전장의 풍경이 재구축되기 시작했다.

    조디악을 뒤쫓던 랭커들은 일제히 한 곳에 멈춰서야 했다.

    “어엇!? 이게 뭐야!?”

    트윈헤드 오우거를 비롯한 거대 해골병들이 한 곳에 모이더니 이내 거대한 덩어리처럼 엉겨 붙기 시작한 것이다!

    뼈와 뼈들이 서로 맞물리고 엉킨 결과.

    전장을 양분하는 거대한 뼈의 장벽이 생겨나 버렸다.

    “푸-스스스스! 날 쫓아오려면 이거나 넘어와 봐라!”

    조디악은 뒤에 남은 랭커들을 비웃었다.

    이 높고 거대한 뼈의 벽은 어지간한 물리공격으로는 부수기 힘들 만큼 단단했다.

    또 흙이나 철로 만든 벽처럼 낮지도 않았다.

    산처럼 쌓인 뼈다귀들의 벽!

    랭커들은 그 넘을 수 없는 사(死)차원의 벽 앞에서 한 번 더 좌절해야 했다.

    ……나만 빼고 말이다.

    “……흠.”

    나는 눈앞에 있는 뼈의 벽을 바라보았다.

    수많은 뼈다귀들이 뒤엉키며 생긴 벽에는 무수히 많은 구멍과 틈이 보인다.

    당연한 일이었다.

    흙이나 철과 달리, 서로 모양이 다른 뼈다귀들이 뒤엉킨 것이니 서로 완벽하게 조응할 리가 없다.

    자연스럽게 수많은 빈 공간들이 생겨날 수밖에.

    나는 그 극도로 좁은 구멍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

    동시에.

    꿀렁- 꿀렁- 꿀렁-

    내 몸을 뒤덮는 씨어데블의 점액.

    그리고 크라켄의 ‘틈’ 특성이 함께 발현되었다!

    그 어떤 좁은 구멍도 통과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기묘한 특성.

    나는 점액으로 인해 미끌미끌해진 몸을 좁은 구멍 안으로 밀어 넣었다.

    뼈다귀의 벽!

    뼈와 뼈 사이의 그 좁은 균열로 거침없이 삽입되는 나의 몸.

    하지만 그 동안에도 시야는 계속해서 유지된다.

    흐물~흐물~흐물~

    뼈의 벽 속을 연체동물처럼 기어가 빠져나오자.

    이윽고 귓가에 조디악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흐악! 이게 뭐야!?”

    진짜 놀라서 토해 내는 헛바람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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