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193화 (193/1,000)
  • 194화 앙신(殃神) (3)

    “……형님. 여긴 저희가 맡겠습니다.”

    임요셉이 나와 조디악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이내 국K-1의 올스타가 나를 대신해 전장에 섰다.

    그러자.

    “푸스스스…이것들은 또 뭐야.”

    조디악이 눈을 가늘게 떴다.

    입꼬리는 쫙 올라가 있었지만 눈매는 전혀 휘어지지 않았다.

    그 정적인 미소를 앞두고도 국K-1의 올스타들은 뒤로 한 발도 물러서지 않는다.

    탁-

    마태강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마동왕은 이제 한국 프로리그의 상징이 되었다. 너 같은 잡배들이 일일이 다 덤비게 둘 수는 없지.”

    그는 건조한 어투로 말했다.

    “…….”

    “…….”

    투신 마태강과 앙신 조디악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붙는다.

    우드드드득!

    조디악은 별 다른 말없이 바로 언데드를 소환했다.

    땅거죽 밑에서 엄청난 수의 해골들이 몸을 일으킨다.

    뼈만 남은 오우거, 외골격만 남은 지네, 푹 썩어 흐물거리는 나무 거인…….

    그리고 칼과 방패로 무장하고 있는 플레이어와 경비병 NPC들도 해골만 남은 채 땅 밑에서 기어 나왔다.

    그야말로 죽음의 군단!

    놈들이 풍기는 시취가 전장에 진동하고 있었다.

    “원래는 시체로 만들어 조종하는 편이지만… 너희들은 특별히 시체도 못 남기게 해 주마.”

    조디악은 낄낄 웃었다.

    이윽고, 무덤사역 특성에 조종되는 언데드들이 국K-1 멤버들을 향해 돌진해 왔다.

    “잡졸들은 내가 누르고 있을게.”

    에이스 임요셉이 앞으로 나섰다.

    콰쾅!

    그는 두 개의 방패, 그리고 그 방패 중앙에 난 뿔을 앞세워 매머드처럼 돌격했다.

    수많은 언데드들이 임요셉이 만들어 낸 철벽에 가로막혀 버둥거린다.

    거기에 천재 이연호가 가세했다.

    빠지지지직!

    이연호의 몸을 둥글게 흐르는 훌라우프 쇼크!

    4클래스의 마법 특성이 언데드들을 지져 버렸다.

    그리고, 이연호가 지금껏 갈고닦은 비장의 무기가 연이어 폭발했다.

    볼트 샤워!

    5클래스에 해당하는 고등급 특성.

    4클래스의 라이트닝 볼트나 훌라우프 쇼크, 체인 라이트닝보다 훨씬 더 강력한 기술이다.

    퍼퍼퍼퍼펑!

    소나기처럼 떨어져 내리는 벼락 줄기에 언데드들이 속수무책으로 바스라진다.

    “푸스스스스!”

    조디악은 바스러지는 골분(骨粉)을 보며 웃어젖혔다.

    “이곳은 전장! 해골병들의 수는 얼마든지 늘릴 수 있지. 네 MP가 얼마나 더 갈까?”

    그는 7클래스의 흑마법사.

    5클래스 전격계열 마법사인 이연호와는 수준 차이가 너무 심했다.

    또다시 무수히 많은 해골병들이 일어나 임요셉과 마태강, 이연호를 향해 몰려온다.

    뒤에서 최연석이 힐과 버프를 퍼붓고 있었지만 판을 뒤집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때.

    푸욱-

    조디악의 두 눈이 크게 벌어졌다.

    등 뒤에 뭔가 뾰족한 것이 닿는가 싶더니, 이내 그의 왼쪽 가슴을 뚫고 긴 칼날이 튀어나왔다.

    츠츠츠츠-

    조디악의 뒤에서 갑자기 무언가가 나타났다.

    “클로킹 쓰는 놈이 클로킹에 방심하면 쓰나.”

    송곳 송병건!

    그가 어느새 조디악의 뒤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쳇!”

    조디악은 클로를 들어 가슴에 튀어나온 레이피어를 잡았다.

    뚝-

    레이피어가 조디악의 악력에 의해 부러졌다.

    원래 세검류의 아이템이 공격력이 높은 데 반해 내구도가 약하기에 그렇다.

    “쳇!”

    송병건은 뭐든 중간만 가는 것이 목표인 선수, 그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조디악에게 추가 딜을 넣지 않았다.

    주 무기인 레이피어가 부러진 이상 변변찮은 무기가 남아 있는 것도 아니었다.

    때문에 송병건은 뒤로 빠지는 것을 선택했고 그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옳은 것이 되었다.

    조디악은 등에 뜨끔한 감각을 느끼자마자 바로 ‘갹출’과 ‘고속재생’ 특성을 발동했던 것이다.

    마침 주변에 언데드 몬스터가 몇 없었기에 데미지는 얼마 떠넘기지 못했지만, 그래도 겨우 목숨만은 부지할 수 있었다.

    퍼억-

    조디악은 클로를 휘둘러 송병건을 공격했지만 빈 허공만을 갈랐을 뿐이다.

    “…오호. 벌써 빠졌어? 눈치 빠르네?”

    “감사.”

    송병건은 조디악의 칭찬에 한쪽 눈을 깜빡여 윙크를 날렸다.

    하지만 얼굴 표정에는 진한 아쉬움이 감돌고 있었다.

    여분의 무기가 있었더라면 추가 딜을 넣는 것도 고려해 보았을 텐데.

    하지만 이미 지나간 찬스는 다시 오지 않는 법.

    조디악은 포션을 마시고는 다시 한 번 클로킹 특성을 발동했다.

    스르르르-

    조디악이 대기에 녹아든다.

    동시에 해골만 남은 트윈헤드 오우거가 다시금 몸을 일으켰다.

    우어어어어어!

    놈은 거구의 덩치로 날뛰며 선수들을 공격해 왔다.

    마태강은 표정을 구겼다.

    “젠장. 그냥 B등급이라면 잡겠는데…….”

    트윈헤드 오우거는 본래 A등급의 몬스터.

    하지만 언데드가 된 지금은 두 랭크가 떨어져 B등급 몬스터에 불과하다.

    그러나 조디악의 손에 조종당하는 해골병은 무작정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이고 효율적으로 동작하고 있었다.

    따라서 실질적인 공략 난이도는 단순 B등급보다 훨씬 높았다.

    콰쾅!

    트윈헤드 오우거가 관절을 이상한 방향으로 꺾어 공격해 놨다.

    비단 놈뿐만이 아니다.

    츠츠츠츠-

    검은 안개가 끼면 어김없이 새로운 해골들이 땅거죽을 뚫고 기어 올라왔다.

    더군다나 새롭게 전장에 등장한 비행종 몬스터들의 존재 역시도 큰 마이너스가 되고 있었다.

    <하피> -등급: B / 특성: 독, 비행, 야수, 뺑소니

    -서식지: 육중한 밀림, 구더기 언덕, 비행로(非行路).

    -크기: 1.8m.

    -살모사와 칡을 먹고 사는 반인반조. 깃털과 목소리에는 독이 있다.

    덥고 습한 곳, 혹은 높고 바람이 많이 부는 곳에 여왕을 중심으로 무리지어 서식한다.

    새의 날개를 가진 인간들이 허공을 푸드덕 푸드덕 날아다니고 있다.

    독이 든 깃털이 바람에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사람들의 시야를 가렸다.

    이 깃털에 닿으면 상태이상 ‘독’에 걸려 HP를 잃는다.

    또한 내지르는 고함소리에도 독 기운이 섞여 있어서 소리를 오래 듣다 보면 귀에서 검은 피가 나오게 된다.

    마태강은 하피들을 향해 눈을 부릅떴다.

    “이런, 비행 타입 몬스터들은 귀찮은데.”

    하늘을 날아다니는 놈들에게는 딜이 잘 닿지 않으니 근접 딜러 입장에서는 퍽 곤란하다.

    심지어 HP가 일정 수치 이하로 떨어지면 몇 번의 공격 후 도주해 버리는 ‘뺑소니’ 특성도 아주 골치 아픈 것이었다.

    땅에는 언데드, 하늘에는 하피.

    전장은 점점 더 혼란스러워지고 있다.

    ♪...♩...♬

    하지만 아직 피리 소리는 들려온다.

    몬스터 웨이브는 계속되고 있었고 일반 유저들의 대피 역시도 지지부진했다.

    “으아! 시체라도 남기게 해 줘! 사망 패널티 4일은 너무 과하잖아!”

    “나도 시체는 남기고 죽어야 해! 관 살 돈 없단 말야!”

    “시상식 보러 왔다가 이게 무슨 꼴이야!”

    “프로들은 뭐 하는 거야! 저것들 안 막고!”

    정말 단순히 시상식을 구경하러 온 팬들은 울상이다.

    동경하는 랭커들의 캐릭터를 실제로 보고 싶어서 왔을 뿐인데 뜬금없이 프로들을 노린 테러에 휘말려서 죽어야 하다니.

    죽었을 시 떨구게 되는 돈과 아이템도 아깝지만 24시간 동안 접속할 수 없다는 것이 더욱 뼈아프다.

    심지어 시체도 남기지 못하고 처참하게 죽을 경우 접속불가 4일이라는 어마어마한 패널티가 부가되지 않는가!

    이 전장에서 죽으면 대형 몬스터들의 발에 밟혀 시체가 걸레짝이 되어 버린다.

    운 좋게 그러지 않더라도 조디악에 의해 해골병이 되어 버리니 시체를 온전히 남길 수 있을 리가 없다.

    “젠장!”

    천지패황의 류요원은 달라붙는 언데드 하나를 멀리 날려 버린 뒤 숨을 몰아쉬었다.

    영원히 닳지 않을 것 같던 그의 HP도 어느덧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쉬바…….”

    스타파이브의 이준호 역시 쌍칼의 이가 빠진 것을 보고 욕설을 내뱉었다.

    한국 랭킹 1, 2위를 다투는 임요셉과 홍지노 역시도 무척이나 지친 기색이었다.

    이대로라면 무고한 유저들을 지키지 못할 것 같다.

    필사적으로 버티고는 있지만 적의 세력이 지나치게 강했다.

    단신으로 쳐들어온 것이라는 게 도저히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푸스스스스. 한국 랭커들은 고작 이 정도야? 북미에 비하면 뉴비들이나 다름없는데?”

    잠시 전장에서 사라졌던 조디악은 트윈헤드 오우거의 머리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한국 랭킹 전체를 비웃었다.

    “그 ‘상징’이라는 마동왕은 어디 갔나? 다시 불러와야 하는 것 아닌가 몰라.”

    “…….”

    한국 랭커들은 그런 조디악에게 아무런 항변도 할 수 없었다.

    힘이 모자란 입장에서는 무슨 말을 해도 웃음거리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굴욕. 압도적 굴욕!

    전장에 있는 모든 프로 선수들이 입술을 깨물고 조디악을 올려다본다.

    앙신(殃神)!

    조디악 번디베일은 마치 재앙을 불러오기 위해 태어난 존재처럼 높은 곳에 오시하고 앉아 사람들을 깔아보고 있었다.

    누구도 그가 앉아 있는 저 높은 곳에 도달할 수 없다.

    조디악의 태도는 고고하고 또 절대적인 것이었다.

    한국 프로리그의 시상대조차도 초라하게 보일 정도로

    …….

    적어도…….

    빡!

    홀연히 나타난 누군가가 그의 뒤통수를 냅다 후려갈기기 전까지는 그렇게 보였었다.

    “……!?”

    뒤통수에 느껴지는 묵직한 감각!

    통증은 없었지만 극도로 불쾌한 기분이 든다.

    조디악이 고개를 돌리자, 뒤에 서 있는 한 남자가 보였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망토에 신발.

    그리고 그 외에는 전부 알몸.

    “프로들이 이런 빌런 하나한테 쩔쩔매서야 쓰나.”

    진짜 고인물의 등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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