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191화 (191/1,000)
  • 192화 앙신(殃神) (1)

    콰쾅! 우지지직!

    나무들이 연달아 뽑히는 것이 보였다.

    우지끈!

    수천 년을 뿌리내린 거목들이 마치 도미노처럼 쓰러진다.

    흙먼지가 하늘을 덮을 정도로 누렇게 피어올랐다.

    오-오오오오오!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것.

    이내 우렁찬 포효 소리와 함께, ‘그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콰쾅!

    박살나는 나무들, 그리고 그 위로 넘어오는 것은 단순히 하나가 아니었다.

    몬스터 웨이브(Monster wave)!

    거대한 몬스터들이 마치 파도처럼 우르르 몰려든다.

    그 수가 일일이 다 셀 수도 없이 많았다.

    커다란 전갈, 두 개의 뿌리로 걷는 나무, 돌 같은 피부를 가진 풍뎅이, 전신에서 독안개를 내뿜는 도마뱀…….

    하지만 그런 몬스터들 중에서도 가장 많은 개체수를 자랑하고 있는 것은 바로 녹색 피부를 가진 거인형 몬스터였다.

    <오우거> -등급: B / 특성: 거인, 백전노장, 천근추

    -서식지: 전 대륙

    -크기: 13m.

    -한때 이 세상의 지배종이었던 ‘정령’이 악마에 의해 오염되고 타락한 결과물.

    순결하고 아름다웠던 모습은 추악하고 뒤틀린 몸으로 변해 버렸다.

    오우거(ogre).

    동급 몬스터에 비해 강력한 물리공격력과 투쟁심을 가지고 있는 육전형 야수거인.

    거대한 육체로 강력한 물리력을 행사하는 이 몬스터들은 본래 무리생활을 하지 않는다.

    드넓은 ‘육중한 숲’ 곳곳에 자기의 영역을 정해 그곳만 배회하는 것이 습성.

    하지만 어째서인지, 이 녀석들은 고유의 영역마저 버리고 이곳에 무리 지었다.

    무언가 작위적인 느낌이 물씬 났다.

    “무, 무슨 상황입니까 이게?”

    전용진 캐스터는 당황한 표정으로 단상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검은 로브로 전신을 감싼 몇몇 사람들이 당황한 듯 수군거렸다.

    GM. 그 중에서도 ‘처리반’이라고 불리는 이들.

    대회 전 맵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것을 임무로 수행하는 존재들이다.

    “…이상하네? 분명 이 주변의 몬스터들은 전부 청소했을 텐데?”

    처리반의 리더 격으로 보이는 여자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항변했다.

    ……하지만.

    지금 일어나는 상황은 분명 실제상황이다.

    지금도 곳곳에서 관중들이 지르는 비명소리가 메아리치고 있지 않은가!

    “으아아아! 오우거다!”

    “살려줘! 습격해 온 놈들이 죄다 C+급 이상이야!”

    “으아 시상식 구경하러 왔다가 이게 뭔 봉변이야!”

    대부분의 유저들은 아직 C+급 몬스터를 혼자 상대할 실력이 되지 않는다.

    그들은 파도처럼 덮쳐오는 몬스터 웨이브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

    하지만.

    지금 이곳이 어딘가?

    한국 랭커들이 모두 모여 있는 프로리그!

    그중에서도 진짜배기들만 남아 상을 받는 자리가 아니던가!

    콰-쾅!

    플레이어 전선을 미친 듯이 밀고 들어오던 오우거 하나가 자리에 우뚝 멈췄다.

    펑! 퍼펑!

    그러자 그 뒤를 따라오던 다른 몬스터들이 우르르 놈의 등 뒤로 넘어져 쌓인다.

    꾸구국…….

    그 거대한 몬스터 뭉텅이를 막아 내고 있는 이는 한 명의 남자였다.

    류요원!

    한국랭킹 4위의 프로 선수이자 현존하는 탱커 중 가장 방어력이 높은 랭커!

    “……이 느자구 없는 것들이 어디서 튀어나왔담?”

    그는 자기 앞에 있는 거대한 몬스터 몇 마리를 한꺼번에 막고 있다.

    뒤로 1mm조차 밀려나지 않은 채로!

    그러자, 그 옆으로 몇몇 사람들이 더 달라붙었다.

    “몸이 좀 단단한가 봐? 잘 버티네.”

    “젠장, 시상식 보러 왔다가 이게 무슨 봉변인지.”

    한국 탱커의 자존심 ‘매머드’ 임요셉, 그리고 서울 대표팀 경합에서 패했던 엘리트즈의 멤버 ‘신박’ 이근형.

    두 명의 정상급 탱커가 류요원의 양 옆으로 방어벽을 짜서 오우거를 비롯한 대형 몬스터들을 막아서기 시작했다.

    우오오오오오오!

    그러자, 몬스터들은 이내 커다란 팔을 뻗어 탱커 라인을 부수려 든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했다.

    파삭!

    오우거 하나의 머리통이 수박 깨지듯 박살났다.

    치이이익-

    두개골 속에서 빠져나온 피와 뇌수는 순식간에 끓어 선지처럼 변했다.

    “얌마, 딜 미터기 터지겠다.”

    임요셉은 위를 쳐다보며 농담조로 말했다.

    그 위에는 투신 마태강이 붉은 바람처럼 날아다니며 몬스터들의 머리통을 박살 내고 있었다.

    “으아! 버프에도 한계가 있어! B급 몬스터 떼거지는 벅차다고!”

    그 뒤에는 귀족 힐러 최연석이 마태강에게 힘을 불어넣고 있는 중이다.

    “허미, 버프 혼자 받냐?”

    “좋은 건 좀 나눠 씁시다!”

    그 외에도 ‘쌍칼’ 이준호, ‘폭풍’ 홍지노 등등의 탑 티어 딜러들이 몬스터 웨이브 사이를 휘젓고 있었다.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하압!”

    골렘술사인 조현아가 철인 28호를 소환해 냈다.

    철의 거인은 눈앞에 있는 나무 거인들을 닥치는 대로 두들겨 패고 저 멀리 밀어내 버렸다.

    “프로리그는 사망 패널티가 적어서 다행이네! 리타이어 당한 선수들 없었으면 어쩔 뻔했대?”

    블루스컬의 원딜 장보람이 기어오는 도마뱀의 머리통에 화살을 박아 넣으며 외쳤다.

    우-우우우우!

    몬스터 웨이브의 기세가 조금 주춤했다.

    한국 랭킹을 대표하는 랭커들이 한 자리에 다 모여 있다!

    그러자, 단순히 시상식을 구경하러 왔을 뿐인 일반 유저들의 피도 서서히 끓기 시작했다.

    “신세만 질 순 없지! 우리도 가즈아!”

    “랭커들이 싸우는데 가만히 있을쏘냐!”

    “옆에 껴서 싸우다 보면 뭐 떡고물이라도 떨어질 듯!”

    거기에 수많은 유저들 역시도 랭커들의 분투에 힘입어 전선에 뛰어들고 있었다.

    제아무리 강력한 몬스터들이 우글우글 모여 있다고 해도 당해 낼 수가 없는 것이다.

    …….

    하지만.

    콰-쾅!

    나무들이 박살나며, 저 깊은 숲 속에서 더 육중하고 포악한 무엇인가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

    “뭐, 뭐야 저거?”

    최전선에 있던 탱커 선수들이 그 모습을 제일 먼저 발견했다.

    기형적으로 발달한 녹색 근육이 잔뜩 부풀어 있는 몸, 옆에 있는 다른 대형 몬스터들보다 몇 배는 더 큰 덩치.

    무엇보다 기괴한 것은 어깨 위에 돋아나 있는 두 개의 머리통이었다!

    <트윈헤드 오우거> -등급: A / 특성: 거인, 백전노장, 만근추

    -서식지: 육중한 밀림, 썩고 불타는 땅,

    -크기: 47m.

    -한때는 평화의 상징으로 통하며 자연의 질서를 관장하던 존재였다.

    한때는.

    크-아아아아아악!

    트윈헤드 오우거는 두 개의 머리에서 두 개의 입을 쩍 벌리고 포효했다.

    삭아서 너덜거리는 잇몸이 드러나자 제멋대로 삐죽삐죽 돋아난 매복치 사이로 고기 썩은 냄새가 나는 침이 후두둑 후두둑 떨어져 내린다.

    “……세상에 저게 뭐야.”

    “A등급…이라고?”

    “으아아, 나 저런 거 처음 봐….”

    그 압도적인 기괴함과 흉악함에 많은 이들이 얼어붙었다.

    콱- 콰긱-

    트윈헤드 오우거는 4개나 되는 팔을 앞으로 뻗는다.

    그리고 자기 앞에서 걸리적거리던 칼날도룡뇽과 늪고릴라의 목을 잡아서 그대로 꺾어 버렸다.

    뚝!

    집요하게 딜러 라인을 괴롭히던 B등급 몬스터 두 마리가 허무할 정도로 쉽게 죽어 버렸다.

    크워어어어억!

    이내, 트윈헤드 오우거는 자신을 가로막는 탱커들을 죄다 후려쳐 뒤로 날려 버린다.

    그리고 플레이어 전선의 방어벽에 커다란 구멍을 낸 채 안으로 돌격해 오기 시작했다.

    “젠장! 라인 밀렸다!”

    “아오! 우리 탱커 뭐함?”

    “아이씨! 저 구멍 뭐냐고!? 부모님 안부 궁금해지네!”

    탱커 라인에 난 구멍을 본 이들은 큰 소리로 불평했다.

    하지만.

    플레이어 진영 깊숙이 난입해 들어오는 트윈헤드 오우거를 보자 다들 급격하게 말수가 적어진다.

    콰콰콰쾅!

    트윈헤드 오우거가 휘두르는 4개의 주먹에 플레이어들이 속수무책으로 나가떨어지고 있었다.

    바로 그때.

    “몬스터 난입은 규격 외. 현 상황에서 배제하겠습니다.”

    GM의 처리반이 현장에 뛰어들었다.

    다소 뒤늦은 투입이었지만 원래 한국의 보고 체계라는 게 다 그렇지 않겠는가?

    위로 보고하고 아래로 하달되는 시간이 이 정도라면 그래도 제법 빨리 결정이 내려진 셈이다.

    쿠르르르르륵!

    처리반은 압도적인 화력으로 트윈헤드 오우거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뒤늦게 뛰어온 NPC, 부락 자경단원들이 아틀라틀을 던져 공격에 가세했다.

    경찰은 언제나 늦지만 일단 그들이 등장하면 상황은 어느 정도 정리되기 마련이다.

    그것이 흔한 클리셰가 아닌가?

    “좋아! 다시 가 보자!”

    프로 선수들을 위시한 플레이어 연합도 다시 한 번 진열을 재정비해 몬스터 웨이브에 맞서고 있었다.

    한편.

    “……뒤로 빠져.”

    매드독의 김정은.

    그녀는 최전선에 투입된 GM ‘처리반’을 보며 인상을 팍 찌푸렸다.

    욱신-

    김정은은 코 속 보형물이 주는 이물감(異物感)을 씹으며 뒤로 슬쩍 물러났다.

    그런 그녀를 따라 매드독의 4명은 모두 전선의 후미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할 만큼 은밀한 동작이었다.

    매드독의 5명이 슬며시 전선에서 자취를 감출 때쯤.

    우-오오오오!

    트윈헤드 오우거가 무릎을 꿇었다.

    놈의 심장에 창을 박아 넣은 것은 부락의 자경단원 NPC들이었다.

    퍽! 퍼퍽! 퍽!

    수없이 많은 투창들이 트윈헤드 오우거의 몸을 벌집으로 만들어 놓았다.

    거기에 GM 처리반의 마법이 퍼부어지자.

    쿵-

    결국 트윈헤드 오우거도 그 거대한 몸을 지면에 뉘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됐다! 잡았어!”

    “세상에! 저 괴물도 죽기는 하는구나!”

    “A급 몬스터 죽는 거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야!”

    수많은 유저들이 경탄에 겨워 외쳤다.

    프로 선수들도 놀라워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애초에 프로 선수들은 PK를 하는 것이 전공이었기에 몬스터 레이드 경험은 파이오니아들에 비해 떨어질 수도 있다.

    때문에 트윈헤드 오우거 정도 되는 A급 상위 티어의 몬스터가 눈앞에서 사냥당하는 것은 프로 선수들에게도 상당히 신선한 경험이었던 것이다.

    그때.

    ♪..♩...♬...

    어디선가 피리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끊길 듯 말 듯 희미하게 들려오는 선율.

    그러자.

    콰쾅! 우지지직!

    나무들이 부서지며 한 떼의 몬스터들이 웨이브에 추가되었다.

    “뭐야!? 몬스터들이 더 늘었어?”

    겨우 한숨 돌리려나 싶었던 유저들이 다시금 바짝 긴장했다.

    ……한데?

    유저들의 얼굴에서 핏기를 한 순간에 싹 쓸어 가 버리는 일이 발생했다.

    후우우욱-

    전장의 바닥에서 시커먼 증기가 피어오르는가 싶더니 죽었던 몬스터들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우…….

    뼈만 남은 괴물들이 느린 걸음으로 일어나 유저들을 덮쳤다.

    더욱 무서운 것은 시체가 되어 일어나는 존재들 중에는 몬스터뿐만이 아니라 플레이어나 NPC들도 있었다는 것이다.

    “으, 으아아 뭐야!?”

    유저들은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방금 전까지 같이 싸웠던 아군들이 좀비나 스켈레톤이 되어 역공을 해 온다.

    심지어 랭커, 프로 선수들의 시체들이 되살아난 언데드는 정말로 무서웠다.

    천지패황의 마법사 오태식이 경악하며 외쳤다.

    “이, 이건 흑마법이다! 나는 비교도 안 되는 수준의…….”

    그는 4클래스의 흑마법사.

    때문에 눈앞의 시체 소생 마법이 얼마나 대단한 경지에 있는지 바로 눈치 챌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말을 증명하듯.

    “…푸스스스스. 여기까지가 한국 랭커들의 실력인가.”

    되살아난 트윈헤드 오우거의 거대한 몸 위로 검은 로브의 사내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조디악 번디베일!

    그는 트윈헤드 오우거의 빠져 버린 눈알 구멍에 걸터앉은 채로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이윽고.

    그는 저 아래에 있는 수많은 한국 랭커들을 내려다보며 집게손가락 하나를 뻗었다.

    “PK라는 게 썩 유익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알지. 그래도 이건 날 미소 짓게 하는군.”

    다소 의뭉스러운 말과 함께.

    조디악의 한국 랭커 사냥이 시작되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