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190화 (190/1,000)
  • 191화 MVP 로얄스타 (5)

    다음날 오후.

    시상식은 이례적으로 게임 안에서 이루어졌다.

    ‘육중한 밀림’

    얼티메이트 리그가 펼쳐졌던 필드.

    그 외곽에 자리한 크고 높은 바위 위에 커다란 시상대와 단상이 세워졌다.

    선수들은 자신들의 캐릭터로 각각 승자석에 선다.

    관객들은 그 광경을 현실 세계에서 모니터로 볼 수도 있었고 직접 게임에 접속해 필드에 가서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관객들은 랭커들의 캐릭터를 육안으로 직접 보고 싶어 했고 그래서 시상식장이 있는 필드로 직접 몰려오는 이들의 수가 훨씬 많았다.

    이윽고,

    전용진 캐스터가 자신의 게임 캐릭터로 접속해 시상식 무대 중앙에 섰다.

    “아아! 랭커님들 앞에 서니 정작 해설을 하는 제 캐릭터가 너무 초라한 것 같아서 부끄럽네요.”

    그는 수많은 관중들 앞에서 뻘쭘한 표정으로 웃었다.

    관중들은 그를 따라 웃었다.

    이윽고.

    매드독 팀의 선수들이 단상 위로 올라왔다.

    그들에게는 ‘3’이라는 숫자가 음각된 동메달이 수여되었다.

    선수들이 메달을 받자 박수 소리가 요란하게 터져 나왔다.

    곳곳에서 폭죽 소리가 요란하다.

    “감사합니다. ‘지켜봐 주시는 분들’이 많은데…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김정은은 힘을 주어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말했다.

    다음 차례는 천지패황 팀이었다.

    류요원을 비롯한 모든 멤버들이 단상 위로 올라왔다.

    어제 심리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던 류요원은 하루 만에 당당히 회복해 단상에 섰다.

    “조금 아쉽긴 하지만 경기 결과에 깨끗하게 마음으로 승복했습니다. 무척이나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응원해 주신 팬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어색한 표준어 억양으로 수상 소감을 말하는 류요원이었다.

    천지패황에게는 ‘2’라는 숫자가 새겨진 은메달이 수여되었다.

    그리고.

    대망의 1위.

    ‘1’이라는 숫자가 새겨진 금메달을 위해 국K-1이 시상대를 향해 다가간다.

    그러자,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함성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동왕! 마동왕!”

    “멋지다! 우승팀!”

    “세레모니 해라!”

    어마어마하게 많은 인파가 환호성을 지르고 발을 구른다.

    폭죽들이 빵빵 터지고 곳곳에서 스크린샷 찍는 소리들이 요란했다.

    “역시 형님 인기가 제일 많네요.”

    임요셉이 내 팔을 툭 치며 웃었다.

    “…….”

    나는 그냥 고개만 한번 가볍게 끄덕여 주었다.

    “게임 속에서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모인 것은 오랜만에 보네.”

    무대 앞에 모인 인파를 보자 감회가 새롭다.

    그러자, 마태강이 나에게 진지한 얼굴로 소근거린다.

    “샌드웜 레이드 때도 이랬잖습니까.”

    “…조용히 해.”

    나는 마태강을 향해 집게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입을 다문다.

    이윽고, 우리가 시상대를 앞두고 서자, 앞줄에 있던 관객들이 저마다 뜨겁게 소리쳤다.

    “세레모니 해라! 세레모니!”

    3위를 한 매드독의 선수들과 2위를 한 천지패황의 선수들도 입장하면서 다 한 번씩 세레모니를 했었다.

    그러자 국K-1의 선수들은 모두 당황했다.

    “어어? 세레모니?”

    “뭐 하지?”

    “나 준비한 거 없는데?”

    “콩댄스라도 추면서 나가야 하나?”

    임요셉과 마태강, 이연호, 송병건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십 수 미터만 가면 시상대로 향하는 계단이 있다.

    그 안에 빨리 장기자랑 할 것을 생각해 놔야 하는 것이다.

    거의 칠보시(七步詩)에 버금가는 난이도.

    바로 그때.

    “……쉽지.”

    내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같은 팀 선수들을 포함해 어마어마한 수의 시선들이 나를 향한다.

    내가 어떤 퍼포먼스를 보여 줄지 기대하는 모양새.

    앞서 나온 김정은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수 미터씩 몇 번을 이동해 시상대 위로 올라가는 개인기를 보였다.

    류요원은 계단을 밟지 않고 서전트 점프로 5층 건물 높이의 시상대 위로 올라가는 기염을 토했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과 달리, 움직이지 않았다.

    다만 내가 올라가야 할 시상대를 움직였을 뿐이다.

    꾸득-

    나의 손가락 열 개가 지면에 단단히 박혔다.

    꽈악-

    그 상태로, 나는 땅거죽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손아귀에 꽉 잡힌 지면.

    이내, 나는 내 두 건틀릿에 깃든 ‘자연재해’의 기운을 끌어냈다.

    우-지지지지직!

    요란한 굉음과 함께.

    땅이 통째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어어어어엇!?”

    앞줄에 서서 환호하던 수많은 관객들이 휘청한다.

    나는 십 수 미터 앞에 있는 거대한 바위를 땅거죽 채로 내 앞까지 잡아당겨 버린 것이다!

    이윽고, 어지간한 5층 상가건물만한 바위와 그 주변 일대가 통째로 내 손에 휘어 잡혀 끌려왔다.

    쿵!

    묵직한 지진파가 사람들의 발바닥을 타올라 머리끝까지 여운을 남긴다.

    나는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계단을 올랐다.

    시상대로 가지 않고 시상대가 오게끔 하는 세레모니.

    우와아아아아아!

    휘청거렸던 관중들은 앞으로 껑충 다가온 바위를 향해 환호한다.

    “야! 방금 나 넘어지는 거 봤지? 진짜 대박!”

    “보면서도 안 믿긴다. 저 바위를 앞으로 끌어당겼다고? 땅거죽 잡아당겨서?”

    “도대체 물리공격력이 얼마나 세면 저럴 수 있냐?”

    “……저런 주먹을 견뎌 왔던 다른 팀 선수들이 불쌍해진다.”

    “그러게, 마동왕이랑 싸웠던 탱커들 몇 대 맞고 리타이어 당하는 거 보고 물몸이라고 비웃었었는데…나는 스치기만 해도 죽었겠구나…….”

    “일반적인 우승자는 상을 받지만, 마동왕이 우승했을 경우는 상이 마동왕을 받습니다.”

    관중들은 놀라움과 흥분을 담아 나를 올려다본다.

    이쯤 되면 퍼포먼스는 성공적이다.

    국K-1 팀 멤버들은 전원 시상대 위에 서게 되었다.

    이윽고.

    숫자 ‘1’이 새겨진 금메달이 선수 대표인 내 앞에 놓였다.

    그리고.

    나는 또 하나의 특별상을 함께 수상 받게 되었다.

    MVP 로얄스타.

    한 시즌에서 최고의 플레이를 보여 줬던 선수 한 명에게만 주어지는 영예.

    당연한 말이게도 그 트로피는 내 차지가 되었다.

    스폰서, 캐스터, 독자들 문자투표 등등이 주가 되어 이루어지는 평가도에서 나는 독보적으로 1위를 했고 이것이 그 결과다.

    전용진 캐스터는 내게 메달과 트로피를 수여하며 웃었다.

    “게임 속에서는 별 옵션도 없는 아이템이지만, 그래도 현실에서도 똑같은 트로피와 메달이 배송될 테니 너무 실망하지 말아 주세요, 마동왕 선수.”

    “현실에서도 별 필요가 없는 것은 마찬가진데요 뭐.”

    “하하하. 맞아요. 메달이랑 트로피는 그냥 뽀대용이죠.”

    나는 전용진 캐스터와 마주섰다.

    이윽고.

    내 눈앞으로 트로피와 메달이 다가온다.

    게임 아이템이지만 현실에서도 이와 똑같은 물건이 배송되어 올 것이다.

    제 1회 우승.

    게임 역사에 길이 남을 첫 기록이 세워지는 순간이다.

    찰칵- 찰칵- 찰칵-

    수많은 스크린샷들이 나를 찍고 담아 저장한다.

    전용진 캐스터는 메달과 트로피를 든 채 나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아, 마동왕 선수. 정말 대단한 업적을 세우셨는데…앞으로 게임 역사에 영원히 남을 전설로서 굳건히 자리매김 하는 이 기념비적인 순간을 역사가 높이 평가…정말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는 것이…….”

    “…이래저래 해서…마지막으로 한 말씀만 더 드리자면….”

    “……특히나 10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쟁쟁한 선수들을…강력한 프로 팀들을…연달아 올킬로 꺾어 버린 것은…지켜보는 이들로 하여금 전율을…제 캐스터 역사상 처음 보는…….”

    “…그렇게 해서…진짜 마지막으로 한 말씀만 짧게 더 드리자면…….”

    “……이 자리에 서서 역사적인 선수에게 메달을 수여하는 것에 대한 거룩한 책임감과 자부심과 영광을…이 기상과…이 맘으로…충성을 다하여…괴로우나…즐거우나…게임 사랑하세…….”

    “…자, 이 시점에서 진짜 마지막으로 훈화 한 마디만 덧붙이자면…옛말에 이르기를…….”

    ……우와, 멘트 진짜 길다.

    끊어질 듯 말 듯 하면서 계속 이어지는 것이, 마치 교장선생님 조회 풍경을 보는 것 같다.

    ‘거 참 줄 거면 빨리 주지.’

    이래서 공식 행사는 피곤하다. 자꾸 말을 시키거나 들려주니까.

    이윽고, 전용진 캐스터의 길고 긴 말씀이 끝났다.

    나는 짧게 답변했다.

    “한 게 없는 몸이라 황송합니다.”

    MVP 로얄스타 트로피를 거머쥔 자의 소감 치고는 지나치게 짧고 겸손하다.

    전용진 캐스터는 내 등을 가볍게 한번 팡 쳤다.

    “하하하! 한 게 없다뇨! 마동왕 선수가 다 했죠! 지나치게 겸손한 것은 오히려 기만입니다!”

    나는 바로 덧붙였다.

    “한계가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러자 전용진 캐스터는 벙 찐 표정을 짓는다.

    동시에 시상대 밑의 관중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이내, 메달과 트로피가 내게 다가온다.

    나는 몇 초 뒤면 내 손에 들어올 메달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지금은 초대 리그의 우승자지만 마음만 먹으면 2회, 3회, 4회, 5회…올 시즌 메달을 다 쓸어버릴 수도 있다.

    ‘뭐, 비효율적이지만 재밌을 것 같기도 하고.’

    나는 내 목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는 메달을 보며 생각했다.

    메달이 목에 걸리는 순간, 저것은 국내리그를 완벽하게 장악했다는 증표가 될 것이다.

    하지만 여기는 결코 내 종착역이 아니다.

    이 뒤로 펼쳐질 더 크고 높은 무대.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더 나아가 세계 선수권 대회까지.

    아직 갈 길은 먼 것이다.

    “축하합니다, 마동왕 선수!”

    전용진 캐스터는 내게 트로피를 안겨주었다.

    그리고 손수 메달의 줄을 끌러 내 목에 걸어 주려는 순간…….

    쿵!

    시상대가, 아니 바위 전체가 뒤흔들렸다.

    지진이 일어나 대지를 옅게 흔들고 있었다.

    “……뭐임?”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한 곳을 돌아보았다.

    수상이 이루어지고 있는 이곳은 ‘육중한 밀림’

    그중에서도 몬스터들이 거의 없는 땅.

    NPC들이 모여 부락을 이루고 있는 세이프 존이다.

    하지만.

    세이프 존이라고 해서 항상 안전한 것은 아니다.

    ‘이변’ 하나가 이 안전구역을 덮쳐오고 있었다.

    쾅! 우지직! 콰쾅! 쿠르릉!

    저 멀리서 큰 나무들이 연달아 쓰러지는 것이 보였다.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난다.

    거대한 무언가가 이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오-오오오오오!

    멀리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렷하게 울려 퍼지는 포효!

    주최 측은 당황했다.

    선수들도 당황했다.

    팬들은 더욱 당황했다.

    “…….”

    오직 나만이 침착하게 사태를 파악하고 있을 뿐이다.

    ‘……설마?’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것은 흔들리는 땅, 쓰러지는 나무, 거대 몬스터의 포효 때문이 아니었다.

    ♪…♩…♬…….

    끊겼다가 이어지기를 반복하는, 어디선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피리 소리’

    그것이 지금 나의 표정을 구겨지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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