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189화 (189/1,000)
  • 190화 MVP 로얄스타 (4)

    스타디움 관객석을 가득 매우고 있는 8만 명의 관객들.

    그들의 머리 위에는 각각 8만 개의 물음표가 떴다.

    ‘?’

    그리고 그것은 중계진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

    중계를 하고 있는 세 명의 캐스터의 머리 위에 세 개의 물음표가 떴다.

    국K-1 팀의 선수 대기실 역시도 비슷했다.

    “?”

    엄재영 감독, 임요셉, 마태강, 이연호, 송병건 등의 선수들 모두 벙 찐 표정이다.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가장 혼란스러운 곳은 천지패황 팀의 대기실이다.

    “???”

    김철현 감독을 비롯한 모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있다.

    마치 심판의 오심에 항의하는 축구선수처럼, 두 손으로 머리를 잡거나 양 팔을 넓게 벌리고 선 모습.

    결백함과 황당함을 전신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다고 한번 로그아웃한 녀석이 다시 돌아올 리가 없었다.

    “…….”

    나는 한숨을 한번 작게 내쉬었다.

    그리고 커다란 화면으로 나를 들여다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한마디 했다.

    [상대가 로그아웃 했으니 제가 이긴 것 맞죠?]

    류요원을 두들겨 패기 시작한 지 정확히 59초가 지난 시점.

    그러니까 전광판의 숫자가 6분 59초를 표시하고 있는 시점에 벌어진 일이었다.

    원래 선언했던 올킬 8분 컷에서 1분이 앞당겨진 기록.

    ‘올킬 7분 컷’

    앞으로 15년간 깨지지 않을 절대무적의 신화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       *       *

    중계석은 그야말로 혼란의 도가니다.

    전용진 캐스터는 지금 일생일대의 곤혹스러움을 경험하고 있었다.

    [음…….]

    중계의 핵심은 뭐니뭐니 해도 말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쭉쭉 이어지는 멘트.

    이것들을 얼마나 맛깔나게 잘 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멘트가 끊겨본 역사가 없는 전용진 캐스터조차 이번만큼은 당황해서 멘트를 치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베테랑 캐스터 두 명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음…오…아…예….]

    셋 모두 너무 갑작스러운 전개에 순간 말문이 막혀 버벅거린다.

    이내, 전용진 캐스터가 제일 먼저 정신을 차렸다.

    [……아 네! 음…관객 여러분들께서도 방금 보셨다시피…류요원 선수가 갑자기 경기 도중 갑작스럽게 로그아웃을 해 버리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게 무슨 상황일까요? 저희도 얼떨떨하네요.]

    [으음, 이 경우 사고인지 아닌지의 여부가 중요한데요. 만약 본인이 실수로 로그아웃을 한 것이라면 자동으로 기권 처리가 됩니다.]

    [네, 하지만 방금 류요원 선수가 꽤나 유리한 상황이었거든요? 지금 공개된 딜 미터기나 잔여 HP바를 보더라도 모두가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일부러 로그아웃할 이유가 전혀 없는 상황이었으니만큼 사고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겠는데요.]

    캐스터들은 애써 당황함을 숨기며 멘트를 이어 나갔다.

    하지만 그들 역시도 혼란스럽기는 관객들과 매한가지였다.

    거대한 물음표 하나가 용산 E스포츠 스타디움 홀 위에 떠 있었다.

    바로 그때.

    무대 위로 올라간 기술팀 직원들이 머리 위로 OK사인을 그리는 것이 화면에 잡혔다.

    캐스터들은 그제야 살짝 안도했다.

    [네, 양쪽 선수 모두 캡슐의 기술적 문제는 없었다고 합니다.]

    [으음, 그렇다면 류요원 선수가 자발적으로 로그아웃을 했다는 건데요. 이 경우에는 아무리 실수라고 해도 재경기가 불가능합니다. 기권패에요.]

    [한데 이상합니다. 로그아웃을 하려면 상태창을 켜야 하고 또 버튼을 몇 개 눌러야 하죠? 모두가 알다시피…약간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거든요. 굳이 그렇게 한 이유가 뭘까요?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예전에 리그가 개최되었던 고전게임이랑은 달라서 실수로 로그아웃 할 여지가 전혀 없는데…….]

    캐스터들의 의문은 계속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결국, 세 명의 캐스터는 결론을 하나로 모았다.

    이제 곧 캡슐 속에서 나올 류요원에게 직접 물어보자는 것이다.

    이윽고.

    푸슉-

    캡슐이 가동 중지되는 소리와 함께.

    “…….”

    안에 탑승해 있던 류요원이 캡슐 밖으로 걸어 나왔다.

    우당탕!

    천지패황의 김철현 감독을 비롯한 모든 선수들이 무대 위로 우르르 달려 나온다.

    김철현 감독은 지금 인생 최대의 당황을 맛보고 있었다.

    “요원아! 너 인마 왜!? 왜 로그아웃 한 거야!?”

    그러자.

    “…….”

    류요원이 고개를 들었다.

    그를 본 김철현 감독은 순간 헛바람을 집어삼켜야 했다.

    물에 빠졌다가 기어 나온 듯 식은땀으로 푹 젖은 몸.

    고카페인 음료를 수십 캔 연달아 들이킨 것처럼 팽창된 동공.

    수명이 다 된 사람처럼 달달 떨리는 팔다리.

    풀썩-

    이내 류요원은 자리에 주저앉는다.

    그리고.

    “……!”

    그는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김철현 감독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눈에는 눈물마저 그렁그렁 매단 채로.

    “당신이 사람이야?”

    “……?”

    너무나도 뜬금없는 말.

    김철현 감독의 머리 위에 물음표가 하나 더 떴다.

    이 무슨 아침드라마 대사란 말인가?

    남편이 바람피운 흔적을 발견한 새댁도 아니고.

    “얌마, 뭔 소리야!”

    김철현 감독이 버럭 소리치자, 류요원은 울먹이는 표정으로 외쳤다.

    “어떻게 경기를 말리지 않을 수가 있어! 사람이 죽을지도 모르는데!”

    “……뭐?”

    “나 거기서 죽었으면 당신이 책임졌을 거야!? 선수도 사람이야! 사람!”

    “……뭔 소리야 인마! 거기서 왜 말려!? 네가 이기고 있었는데!”

    김철현 감독이 기가 막히다는 듯 외치자.

    “……?”

    이번에는 류요원이 고개를 갸웃한다.

    “…내가…이기고 있었다고?”

    그 모습을 본 모든 천지패황 관계자들은 한 번 더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김철현 감독은 그제야 류요원의 상태를 다시 돌아보았다.

    그러고 보니, 그의 몸은 단순히 축축하기만 한 게 아니다.

    꾸리꾸리한 냄새.

    그렇다.

    그는 캡슐 안에서 실례까지 지려 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전신이 땀으로 흠뻑 젖어서 티는 잘 나지 않고 있었다.

    그 정도로 흘린 땀이 많다는 이야기다.

    류요원은 손으로 얼굴을 짚었다.

    손가락 사이로 땀에 젖은 동공이 파르르 떨린다.

    “미, 믿을 수 없어…내, 내가…이, 이긱, 이기고,,,익, 있었다니 그럴 리가…마, 마, 말이 아, 안 되잖아. …그, 그렇게 쳐, 쳐, 쳐, 쳐맞았는데?”

    그러자 김철현 감독은 류요원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정신 차려 인마! 너 HP 거의 만땅이었어! 방어력도 탄탄했잖아! 반사 데미지 스텍도 착실히 쌓아가고 있었다고! 네 딜 미터기 못 봤어!? 상태창은!? HP바만 봐도 바로 알 수 있잖아!?”

    김철현 감독은 계속해서 캐물었다.

    이건 다그치는 것이 아니라 궁금해서 묻는 것에 더 가까웠다.

    자기 HP바와 상대방의 HP바.

    그리고 딜 미터기만 보면 바로 알 수 있는 사실이 아닌가?

    하지만.

    “…….”

    류요원은 흔들리는 눈을 들었다.

    그리고 이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못 봤어.”

    “……뭐?”

    “못 봤다고요. 아무것도…아무것도…….”

    류요원은 울음을 터트렸다.

    “무서워서 아무것도 못 봤어요.”

    그의 말을 듣는 순간.

    오싹-

    천지패황 관계자들의 등골에 소름이 돋아났다.

    류요원은 바들바들 떨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계속해서 말했다.

    “진짜, 진짜로 죽을 것 같았어요. 타격음이랑 이펙트 때문에 시야가 완전히 하얗게 멀어서…머릿속도 하얗게 말라붙어서…HP바도, 딜 게이지도, 상태창조차도……볼 틈이, 아니 켤 틈도 없었어요.”

    “……세상에.”

    “그리고 저, 저 놈이 나를 때리면서…계속 중얼거렸어요…….”

    “……뭐라고?”

    김철현 감독이 물었다.

    뒤에 있는 모든 선수들이 침을 꿀꺽 삼킨다.

    이내.

    류요원의 입술이 천천히 달싹였다.

    “…‘제발 죽지 마라’……‘제발 도망가지 마라’…라고…….”

    “…….”

    “이렇게 계속…영원히…같이 놀자고…너무…좋다고…행복하다고…평생…함께…하자고…네 곁에서…이렇게…매일…때릴 수 있게 해 달라고…”

    “…….”

    “데미지도 100에서 200… 200에서 400… 400에서 800… 800에서 1600… 1600에서 3200… 튼튼해서 좋다며… 두 배씩… 계속… 데미지 늘려가면서 놀자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천지패황 관계자들의 안색은 전부 하얗게 질릴 수밖에 없었다.

    로맨틱한 척 하는 폭력.

    그 또라이 같은 광기를 접하자 얼굴의 핏기가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대체 딜량의 한계가 어느 정도이기에 공격력을 계속 두 배씩 높였다는 말인가?

    “…….”

    류요원은 그 말을 끝으로 몸을 웅크렸다.

    그리고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내.

    류요원은 전율에 몸을 떨며 들것에 실려 나가게 되었다.

    그는 실려 나가는 내내 흑흑 울었다.

    “…저거 진짜 미친 X끼야!”

    관중들을 향해 일러바치듯 한마디 빽 소리친 것.

    그것이 오늘 류요원이 표명한 마지막 오피셜 입장이었다.

    한편.

    “…….”

    류요원의 심경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는 이가 하나 있었다.

    의외로 국K-1 팀의 전 에이스인 임요셉이었다.

    ‘내가 그 마음 잘 알지.’

    그는 침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 임요셉 역시 똑같은 일을 겪은 적이 있다.

    막 팀의 신입으로 들어왔던 마동왕에게 텃세를 부리기 위해 4:1 대전을 했을 때.

    임요셉은 그의 동생들과 함께, 그야말로 영혼까지 탈탈 털렸었다.

    그때 그가 겪었던 것이 바로 저런 공포였다.

    용암으로 가득한 웅덩이에 푹 담가진 채 워해머와도 같은 주먹을 밑도 끝도 없이, 계속, 줄창, 끊임없이, 무한정, 기약 없이 얻어맞았던 과거의 기억.

    ‘…정말 끔찍했지.’

    임요셉은 몸을 파르르 떨었다.

    아직도 가끔 그 날의 기억이 꿈으로 나온다.

    상대는 나의 머리를 때리는지, 배를 때리는지, 발을 때리는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어 보인다.

    그저 무작정 패고 패고 또 팰 뿐.

    딜 미터기. HP바. 상태창.

    그 모든 수치화된 데이터보다 앞서는 것은 바로 인간의 ‘감정’이다.

    ‘공포’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의 심박 수가 지나친 불규칙성을 보이는 순간, 캡슐은 의료 조치가 필요한 응급상황으로 판단해 사용자의 게임 접속을 강제로 차단시킨다.

    이것은 혈중 알코올 농도가 일정 수치 이상이거나 급성 심장마비가 올 경우 자연스럽게 로그아웃 되는 것과도 비슷하다.

    눈앞을 하얗게 물들이는 타격 이펙트,

    시야에 꽉 차는 상대방의 주먹,

    감히 똑바로 쳐다볼 엄두도 안 나는 눈알,

    그리고 소름끼치는 변태적 광기.

    류요원은 이 모든 것들에 지나치게 압도된 결과, 심박 수 이상을 일으켜 자동 로그아웃 처리 되었던 것이다.

    ‘한 일주일 푹 쉬다 보면 나아질 거다. 이번 일을 계기로 더욱 굳세져라.’

    임요셉은 저 멀리 실려 나가는 류요원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묘한 동지의식이 싹튼 모양이다.

    한편.

    “…….”

    김철현 감독은 고개를 떨구었다.

    결국.

    그는 기권을 알리는 흰 수건을 무대 위로 던질 수밖에 없었다.

    전광판에 떠 있는 초시계가 정확히 6분 59초를 가리키고 있던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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