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화 MVP 로얄스타 (3)
류요원.
그가 무대 위로 올라오자 캐스터들이 감탄성을 냈다.
[아, 출전했습니다! 천지패황의 에이스!]
[드디어 류요원 선수가 나섰네요. 과연 작정하고 나온 마동왕을 막을 수 있을까요?]
[글쎄요, 지금 마동왕 선수의 기세를 보면 이게 정말 무섭거든요? 무슨 물소처럼 질주하는데…빠꾸가 없어요 빠꾸가. 들이받히면 다 죽는 거예요 그냥!]
[에헤이, 빠꾸가 뭡니까 빠꾸가. 후진! 뒷걸음!]
[아, 죄송합니다. 아무튼 류요원 선수. 지금 팀을 구원할 구세주인데요. 과연 마동왕 선수는 류요원 선수를 맞아 ‘8분 올킬 선언’을 지킬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현재까지 마동왕 선수가 천지패황의 선수 4명을 혼자 꺾었거든요? 제가 호오옥시나 해서 걸린 시간을 한번 재 봤어요,]
[오오, 얼마나 나왔나요?]
[정확히 5분 59초입니다!]
[……진짜 마동왕 선수 일 한번 내겠는데요?]
캐스터들은 류요원의 전적과 프로필을 읊으며 시선몰이에 여념이 없다.
그들은 류요원과 마동왕의 커리어를 서로 비교하며 중계를 계속했다.
[네, 류요원 선수는 한국랭킹 4위로 현재 공식 전적은 52전 37승이군요!]
[그중 딜러 타입과의 전적은 21승 4패로 상당히 가파른 상승세입니다!]
[승률이 자그마치 84%에요! 상대가 딜러일 경우 8할은 먹고 들어간다는 거죠.]
[문제는 이번 딜러가 마동왕이라는 점이에요. 지금까지 ‘딜러 킬러’로 통했던 류요원 선수와 오늘 작정하고 출전한 마동왕 선수가 지금! 이 자리에서! 맞붙는! 겁니드아~!]
[와, 진짜. 저 지금 너무 행복하거든요? 이런 명경기를 이렇게 좋은 자리에서 직관할 수 있다는 게 정말…….]
[동감입니다. 저흰 성공한 덕후죠. 왜 덕 중의 덕은 성덕이라는 말도 있잖…….]
캐스터들 역시 관객들만큼이나 흥분해 있다.
그들은 지금 중계를 하는 것인지 응원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사심 가득한 멘트를 치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기대를 받으며, 류요원이 캡슐 속으로 투입되었다.
국K-1의 파죽지세.
그리고 천지패황에게는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라운드.
살 떨리는 긴장 속에서.
때앵-
이내 마지막 경기가 시작되었다.
* * *
쿵-
천지패황의 마지막 주자 류요원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를 본 순간, 나는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후후후후. 어떠냐.”
류요원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매드독의 에이스 김정은이 사전에 경고한 대로, 그는 메타를 완전히 바꾼 채 이번 경기에 출전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뭐 깜짝 놀랄 만한 수를 준비한 것이냐?
그건 또 아니다.
상황은 별로 심각하지 않았다.
…다만 몹시 귀찮고 짜증날 뿐.
“뭐야 이 돼지는?”
나는 눈앞에 있는 류요원을 향해 한마디 했다.
그렇다.
류요원의 상태는 한마디로 ‘극탱돼지’로 정의할 수 있었다.
‘하극상’, ‘고속재생’, ‘흡흡’, ‘힐’, ‘백전노장’. ‘행운의 계란’…….
방어구를 있는 대로 껴입고 온갖 특성을 HP와 방어력, 반사 데미지, 체력 흡수, 자힐로 도배해 놓았다.
그야말로 딜 0, 탱 100!
극한 변태 M 탱돼지의 등장인 것이다!
“……참 나. 정말 이거 믿고 나온 건가?”
나는 어이가 없어 실소가 나올 지경이었다.
류요원.
그는 큰소리 뻥뻥 친 것과는 달리 상당히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이 메타는 나를 쓰러트리겠다는 목적으로 맞춘 것이 아닐 것이다.
방어.
오로지 시간을 끌고 또 끌어 나의 8분 올킬 선언을 좌절시키겠다는 의도.
거기에 조금 더 나아가면 나의 스테미나를 다 소진시켜서 탈진하게 만들고 그 틈을 노려 나머지 선수들도 잡아 보겠다는 야심찬 계획일 것이다.
‘그렇다면, 아마도 허를 찌르는 한방기가 있겠군.’
그 한방기는 매드독의 김정은도 모르는 것이다.
공식 경기에서 한 번도 쓴 적이 없는 기술이기 때문.
하지만 뭐, 앞으로 15년 뒤의 미래를 모두 알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겨진다.
내 기억 속 류요원은 지역 자부심이 대단한 선수였다.
그는 항상 필살기를 쓸 때 ‘전북익산!’이라는 구호와 함께 돌진하곤 했는데 그것은 바로 ‘카운터’ 펀치다.
회심의 일격, 일명 ‘천지패황권’!
기본 데미지는 그다지 높지 않지만 상대방이 공격 중일 때 카운터 기술로 쓰기에 좋은 특성이다.
이 기술은 상대방이 공격 중일 때 명중시켰을 경우 데미지가 4배로 들어가며 스턴 효과까지 함께 들어가기에 난전 중 쓰기에 적합하다.
멋도 모르고 류요원을 그냥 돼지 취급하며 두들겼다간 허를 찔리기 십상일 것이다.
이단옆차기 이후에 강펀치,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천지패황권 콤보를 맞으면 스턴, 이후 악발 두 번, 원거리 약손, 다음에 또 한 번 천지패황권.
이 콤보만 제대로 들어가면 상대방은 즉사를 면치 못한다.
…….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딜러를 상대할 때의 방법이다.
“2분 남았지 올킬까지?”
나는 눈앞에 있는 류요원을 바라보았다.
그는 방어구를 너무 껴입어 동글동글하게 보일 정도였다.
내가 묻자, 류요원은 씩 웃었다.
“그래. 쫄리냐? 나를 2분 안에 꺾지 못하면 네 공약도 물 건너가는 거야.”
아주 자신만만한 태도다.
누가 보면 이기기라도 한 줄 알겠어.
그런 류요원을 향해, 나는 한마디 했다.
“2분도 많다. 1분 안에 끝내 줄게.”
허공에 뻗는 집게손가락 한 개.
내 선언을 들은 류요원의 두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동시에, 캐스터들 역시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치기 시작했다.
[아아! 이게 무슨 일인가요!?]
[마동왕 선수! 여기서 1분 단축을 선언했습니다!]
[대체 무슨 전략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거!]
[천하의 류요원을 상대로 1분 컷이라니! 귀가 의심될 지경입니다!]
내 한 마디에 스타디움 전체가 들썩인다.
수만 명의 관중들이 일제히 수군거리고 있었다.
함성에 앞서는 수군거림. 아마도 내 말을 완전히 믿을 수가 없나보다.
하지만 류요원은 코웃음을 쳤다.
“어설픈 도발로 내 가드를 열 생각인가 본데, 너 생각 잘못했다.”
그는 아예 바닥에 자리를 잡아 버렸다.
어설픈 카운터기로 역습할 생각을 완전히 버리고 100% 방어에 집중하기로 한 모양새다.
“나는 말이야. 그런 싸구려 도발에는 넘어가지 않아.”
“…….”
“너는 내가 호승심 때문에 역공을 가해 올 거라고 생각했지? 틀렸어. 나는 더욱 더 방어에만 전념할 거다.”
류요원은 나를 향해 비릿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를 심리전으로 완전히 제압했다고 생각하는 듯싶다.
하지만.
“그래. 버텨 봐, 어디.”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본게임이 시작되었다.
나는 전신의 힘을 통째로 개방했다.
온 세상천지를 요동치게 만들 정도로 강력한 힘!
지진과 와류의 기운이 내 양 주먹에 고스란히 담겼다.
나는 두 주먹을 들어 눈앞에 있는 류요원을 마구 쥐어 패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쾅! 쾅! 쾅! 쾅!
한 방 한 방이 일격기.
평범한 플레이어였다면 내 주먹에 스치는 풍압만으로도 리타이어 될 것이다.
A+등급 건틀릿이 무려 두 개다.
그것들이 숨 쉴 틈도 없이 폭풍처럼 몰아쳐 류요원의 전신을 가격하고 있었다.
빠직- 빠직- 뿌드득-
류요원의 전신 방어구 곳곳에서 균열이 가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
류요원은 버티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는 자리에서 밀려날 뿐 두 팔과 무릎으로 굳게 가드하고 있다.
쾅! 쾅! 쾅! 쾅! 쾅! 쾅! 쾅!
내 주먹은 그의 전신을 워해머처럼 두들기고 있었지만, 워낙에 두꺼운 탱돼지인지라 쉽게 쓰러트릴 수가 없다.
우직! 우지지직! 쿠르릉!
지형이 변한다.
주먹이 만들어 내는 충격파가 땅을 뒤집고 근처의 나무들을 뿌리 채 뽑아 놓았다.
‘육중한 정글’이 나 하나에 의해 황무지로 변해 간다.
“……! ……! ……! ……!”
그리고 류요원은 그 격동의 중심에 알 박혀 있었다.
놈은 단 1mm도 빠져나올 수 없다.
오로지 나의 사정권 안에 갇혀 내 주먹을 받아 내고 또 받아 낸다.
퍼퍽! 퍼퍼퍽!
놈은 맞으면 맞을수록 조금씩 조금씩 데미지에 비례하여 HP를 회복하고 있었다.
방어력 또한 점점 상승한다.
반면.
류요원을 때릴수록 나에게는 반사 데미지가 들어오고 있다.
점점 HP가 깎여 나간다.
쾅! 우르릉! 콰콰콰쾅!
지형이 통째로 뒤틀리며, 류요원은 점점 구덩이 깊숙한 곳으로 파묻혀 가고 있었다.
하지만 놈은 여전히 단단했고 HP 역시도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오히려 수세에 몰린 건 내 쪽이다.
때리면 때릴수록 돌아오는 반사 데미지 탓에 내 HP는 이미 빨피.
하지만.
쾅! 쾅! 쾅! 쾅! 쾅! 쾅! 쾅!
나는 여전히 무자비하게, 쉬지 않고, 꾸준히, 줄창 류요원의 몸을 두들긴다.
놈이 카운터를 찌를 틈도 없었다.
공격을 하기 위해 가드를 푸는 그 순간 나의 주먹이 놈의 안면을 짓뭉개고 몸뚱이에 구멍을 뚫어 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계속해서 류요원을 때리고 또 때린다.
땅이 갈라지고 나무가 뽑힌다.
그리고 나는 계속해서 류요원을 때린다.
그냥 때리는 것이 아니라 집어던지고 휘두르고 밟고 짓이기고 뭉개고 으깨버린다.
때리고때리고때리고때리고때리고때리고때리고때리고때리고때리고때리고때리고때리고때리고때리고때리고때리고때리고때리고때리고때리고때리고때리고때리고때리고때리고때리고때리고때리고때리고 또 때린다.
그리고 그 난타의 속에서.
“… …… … …… ….”
류요원은 말없이 버티고 또 버티기만 할 뿐이다.
한편.
무대 위에 있는 캐스터들은 우려와 의문이 섞인 탄식을 내뱉었다.
[아아, 벌써 시간이 6분 32초. 마동왕 선수가 예고한 8분, 아니 7분 컷이 곧 다가옵니다.]
[이러다가는 오히려 류요원 선수가 역전하겠는걸요? 반사 데미지 보세요. 마동왕 선수의 HP가 훨씬 적습니다.]
[아아. 이대로 마동왕의 타임어택 올킬 선언은 실패하는 걸까요.]
캐스터들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카운트를 시작했다.
[마동왕 선수가 예고한 시간이 6분 59초 컷이었죠? 10초 남았습니다.]
[아, 하지만 류요원 선수의 현재 잔여 HP를 보면 10초 안에 승부를 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거든요!]
[맞습니다. 마동왕 선수의 현재 잔여 HP를 보면 오히려 류요원 선수에게 역습당할 위험까지 있을 정도예요!]
[결국 1분 단축 올킬 선언, 아니 올킬 선언 자체가 실패로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뭐, 생각해 보면 그게 당연한 결과이긴 하지만요.]
[아, 말씀드리는 순간. 이제 6초 남았네요.]
[…5!]
[…4!]
[…3!]
[…2!]
캐스터들은 약간은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카운트를 시작했다.
…….
바로 그때.
-띠링!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 절대 들려올 수가 없는 소리.
그리고 절대 들리면 안 되는 소리였다.
[로그아웃 하셨습니다.]
[다음에 또 와 주세요.]
로그아웃을 알리는 환한 빛무리.
류요원.
그가 경기 도중 로그아웃해 버린 것이다.
아무도 알 수 없는 이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