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187화 (187/1,000)

188화 MVP 로얄스타 (2)

츠츠츠츠츠…….

내 몸에서 시커먼 기운들이 빠져나간다.

언데드 상태가 해제되었다.

지금까지 천지패황의 선수들 두 명을 잡는데 걸린 시간 1분 12초.

경기를 길게 끌어 나갈 생각은 없다.

“다음.”

나는 비스듬하게 쓰러진 나무들 건너편을 향해 짧게 말했다.

그러자, 뿌리가 반쯤 뽑혀 기울어진 거목의 위로 한 사람이 올라왔다.

최무홍.

한국랭킹 30위권의 플레이어.

특이하게도, 그는 게임 내에 몇 없는 소환 메타를 사용한다.

-<미치광이 뽑기할배의 보따리> 양손무기 / B+

먼 옛날, 커다란 자루를 들고 다니던 노인이 있었다.

그의 자루 속에는 달콤한 케이크부터 시작해 썩은 시체, 거대한 괴물까지 없는 게 없었다고 한다.

이름은 ‘성 니콜라스(St. Nicholas)’였다나 어쨌다나…….

-공격력 +690

-이동속도 +50%

-특성 ‘뽑기’ 사용 가능 (특수)

-특성 ‘클로킹’ 사용 가능 (특수)

의외로 B+등급의 고등급 아이템.

붙어 있는 옵션도 아주 준수하다.

공격력은 양손무기인 것에 비해 조금 아쉽지만 이동속도 증가 +50%가 모든 것을 커버한다.

‘그런데 특성이 진짜 애매하네.’

나는 최무홍이 들고 있는 커다란 보따리를 보며 생각했다.

‘뽑기’

↳몬스터 하나를 랜덤으로 소환합니다.

(높은 확률로 아이템과 동 등급의 몬스터가 출현)

‘클로킹’

↳몸을 투명하게 합니다.

(투명화 지속시간은 호흡을 참는 시간에 비례합니다)

15년 전의 기억에서도 한 번도 써본 적 없던 아이템.

그래서일까?

신기한 마음으로 구경하느라 몇 초를 낭비해 버렸다.

“지금이다!”

최무홍은 자기가 공격을 준비할 시간이 있다는 것에 안도했다.

그리고는 보따리의 끈을 끌러 입구를 열기 시작했다.

이내. 보따리 안에서 무언가 거대한 것이 튀어나온다.

<쌍뿔칠흑> -등급: B+ / 특성: 백전노장, 과식, 독 면역, 마법면역

-서식지: 거인국, 똬리를 튼 사념(巳念)

-크기: 20m.

-노오란 눈알, 두 개의 뿔을 보고 있자면 저도 모르게 홀려 버린다. 사악한 주술을 이용해 자기보다 강한 적에게 맞선다.

몸을 촘촘히 덮고 있는 칠흑의 비늘은 모든 독, 마법 데미지를 흘려 버린다.

크고 아름다운 칠흑뱀.

얼굴도 뭔가 되게 낯익다.

‘네가 왜 거기서 나와?’

나는 벙찐 표정으로 눈앞의 몬스터를 바라보았다.

[쉬스스스스-]

쌍뿔칠흑은 조그마한 자루 속에서도 어떻게 잘도 빠져나온다.

물리법칙을 완전히 무시한 전개였다.

한데?

일반적으로 소환된 몬스터가 소환사의 말을 잘 따를 것이라는 클리셰가 순식간에 박살났다.

[샤아아악!]

소환된 쌍뿔칠흑은 테이밍 되지 않은 야생 개체.

자신이 살고 있던 터전에서 갑자기 소환된 처지이다.

놈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일단 눈앞에 바로 보이는 최무홍을 공격했다.

하지만.

그것을 대비하기 위해 ‘클로킹’ 특성이 있는 것이다.

“흡!”

최무홍은 숨을 참고 자신의 몸을 투명하게 만들었다.

스스스스…….

대기 중으로 사라지는 최무홍의 몸.

사라지기 직전, 그는 나를 보며 씩 웃었다.

내가 B+등급 몬스터를 상대하는 동안 자신은 어디 숨어 있을 셈인가 보다.

‘확실히 시간을 끌려고 작정하긴 했군.’

나는 피식 웃었다.

안타깝게도, 쌍뿔칠흑이라고 하면 내가 너무나도 잘 아는 몬스터이다.

지금 당장이라도 반지 안에 잠들어있는 ‘내 쌍뿔칠흑’을 꺼내고 싶지만, 녀석은 고인물의 전용 펫이므로 참기로 했다.

이내.

[쉬익!]

쌍뿔칠흑의 노란 눈이 나를 노려본다.

‘그래! 가라! 가서 놈을 물어 죽여!’

최무홍은 투명해진 상태로 외친다.

자루에서는 한 번에 한 마리의 몬스터밖에는 꺼내 놓을 수 없다.

저 쌍뿔칠흑이 죽으면 다른 몬스터를 또 꺼내 놓을 심산이었다.

하지만.

[……쉿?]

쌍뿔칠흑은 고개를 두리번거린다.

내가 앞에 있지만 나를 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의 ‘흙장난’ 특성이 발동한 것이다.

‘흙장난’

↳50%의 확률로 선공형 몬스터의 눈을 피합니다.

(움직일 때마다 확률 감소, 공격 시 해제)

샌드웜을 죽이고 얻은 망토의 패시브 스킬.

요즘 이것만큼 부쩍 자주 쓰이는 특성이 또 없다.

망토는 흔하게 생겨서 그런가 마동왕에게도 고인물에게도 다 잘 어울렸다.

“……후후후.”

나는 그저 팔짱을 낀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시간은 나의 편이다.

나는 가만히 있어도 은신이 되지만 저쪽은 숨을 참아야 하기 때문이다.

약 2분 남짓한 시간이 지나자.

“……푸하!”

최무홍이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자.

[쉬익!]

쌍뿔칠흑은 가만히 있는 나를 두고 재빨리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최무홍을 순식간에 독니로 물어 죽였다.

“어억!?”

최무홍은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하고 당해 버렸다.

애초에 포대자루 하나 들고 다니는 그에게 B+급 몬스터의 스피드와 공격력은 버거운 것이었으니까.

“좋아. 이걸로 3명째.”

나는 슬쩍 시계를 보았다.

3명의 선수를 사냥하는 데 3분 16초.

매드독 전 당시보다 2분가량 앞선 기록이다.

“자, 다음.”

나는 건너편을 향해 손짓했다.

한데?

캐스터들의 반응이 어째 난감하다.

[아! 최무홍 선수! 필드에 풀어 놓은 뱀 몬스터를 처리하지 않고 그냥 가 버렸어요!]

[큰일났는데요? 저거 소환 몹이긴 해도 완전 야생 개체 아닙니까?]

[저걸 어떻게 정리해야 하지 저걸?]

난데없이 경기장 한가운데 떨어진 B+급 몬스터.

주최측에서는 플레이어가 소환한 몬스터를 터치할 수 없기에 척살도 불가능하다.

때문에 저 몬스터는 이제 지형지물로 인식되는 것이다.

‘내가 치워 줄까?’

나는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굳이 내가 나서서 스테미나를 낭비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다.

누구 좋으라고?

어차피 내가 가만히 있으면 칠흑뱀은 다음에 나올 천지패황의 선수를 공격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아마 다음 선수는…….’

나는 B+등급의 저 골치 아픈 몬스터를 처리할 수 있는 천지패황의 선수 엔트리를 머릿속에 떠올려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콰쾅!

필드로 튀어나온 4번째 주자는 내가 예상한 얼굴들 중 하나였다.

[우…우우우우!]

거대한 목조 거인이 필드에 우뚝 섰다.

그리고 그 거인의 몸 한가운데에는 한 여자 마법사가 탑승해 있었다.

‘골렘술사’ 조현아.

그녀가 소환한 골렘은 전신이 나무로 만들어져 있다.

<우드 골렘 ‘피노키오’> -등급: B / 특성: 풀, 독, 거짓말쟁이, 하수인

-서식지: 전 대륙

-크기: ?m.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움직이는 통나무. 죽여도 경험치 따위는 일절 없다.

다만 아이템 제작에 필요한 재료를 얻을 수 있을지도……?

“나왔네. 피노키오.”

나는 눈앞에 있는 커다란 나무거인을 보며 피식 웃었다.

골렘 소환사는 전에 나왔던 소환사와는 메타가 조금 다르다.

골렘은 공격도 방어도 모두 준수할 뿐만 아니라 소환자 마음대로 조종할 수도 있다.

거기에 지형에서 자연 발생하는 것처럼 소환되니 친환경적 이점 역시도 확실히 챙겨가는 편.

물리방어력이 약한 쌍뿔칠흑을 견제할 수 있으면서도 맵의 특성상 유리한 메타가 되겠다.

급하게 빼들은 히든카드치고는 제법 센스가 괜찮다.

나는 김철현 감독에 대한 평가를 조금 상향 조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뭐, 그냥 그뿐이지.’

눈앞에 있는 우드 골렘이 나를 향해 주먹을 날려 온다.

B급 몬스터의 주먹쯤이야 맞상대할 가치도 없는 일.

나는 훌쩍 몸을 날려 우드 골렘의 발목에 미들킥을 날렸다.

우드득-

일격!

그 한 방에 우드 골렘의 다리가 부러졌다.

동시에.

쿠르르르륵!

우드 골렘의 전신이 ‘불걸음’ 특성에 의해 불타기 시작했다.

[대, 대단합니다 마동왕 선수!]

[B급 몬스터를 일격에! 선수들 상대하는 거 봐서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까지 셀 줄은 몰랐네요!]

그렇다.

마동왕이 플레이어가 아니라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은 대다수의 관중들은 처음 보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가 시청자들의 반응이 꽤나 좋았다.

한편.

“이익!”

조현아는 재빨리 우드골렘을 컨트롤했다.

촤아악! 치이이익-

우드골렘의 몸속에서 뿜어져 나온 수액이 주변의 불을 껐다.

“별 수 없지! 최후의 카드를 쓰는 수밖에!”

조현아는 우드골렘을 역소환시킨 뒤 새로운 골렘을 소환해 냈다.

<철인 28호> -등급: B+ / 특성: 강철, 백전노장, 하수인

-서식지: 썩고 불타는 땅

-크기: ?m.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움직이는 철 덩어리. 죽여도 경험치 따위는 일절 없다.

다만 아이템 제작에 필요한 재료를 얻을 수 있을지도……?

전신이 강철로 만들어진 거인.

아까의 우드 골렘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다.

“호호호! 강철이라서 불에 타지도 않고 백전노장 특성 때문에 잘 부서지지도 않는다! 이젠 어쩔 거냐!?”

조현아는 철인 28호의 몸통 가운데 조종석에 앉은 채 깔깔 웃었다.

하지만.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아이언 골렘은 오히려 우드 골렘보다 처리하기가 더 쉬운데.’

정확히 말하자면 골렘을 처리하는 게 아니라 그 조종자를 처리하는 것이지만.

쿠르륵!

나는 뒤로 연신 물러났다.

동시에 불걸음 특성을 이용해 바닥을 온통 불바다로 만든다.

“소용없어! 철인 28호는 불에 타지 않는다!”

조현아는 아이언 골렘을 조종해 나를 추격해 왔다.

하지만, 나는 잡힐 듯 말 듯 하며 계속 도망 다닌다.

그리고 어느새, 조현아의 아이언 골렘은 불타는 땅 한복판에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치이이익-

어디선가 삼겹살 굽는 냄새와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어?”

조현아는 이변을 감지했다.

철의 거인 전체가 불에 의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나무 거인은 수액으로 불을 끌 수 있었지만, 철의 거인은 그런 것도 없다.

“아아아아앗!?”

조현아는 황급히 철의 거인을 돌려 회항하려 했지만.

“안 되지.”

내가 땅을 뒤집어 거인의 진격을 막았기에 그것은 불가능했다.

지글지글지글지글…….

고기가 익어 가는 소리와 함께.

우뚝-

철인 28호가 불타는 정글 한복판에 갑자기 멈춰 섰다.

그리고는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영원히.

*       *       *

우-와아아아아!

스타디움 안은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였다.

미친 듯이 환호하는 관중들.

캐스터들 역시 잔뜩 흥분한 기색으로 떠든다.

[아아! 조현아 선수! 결국 회항에 실패한 채 화염 데미지에 리타이어 되었습니다!]

[아이언 골렘을 이런 식으로 잡을 수도 있군요! 정말 놀랍습니다!]

[현재까지 천지패황의 선수 4명이 리타이어 되었고요. 여기까지 걸린 시간 5분 59초입니다!]

[세상에! 심지어 지금까지 데미지를 1도 안 입었어요! 이러다가는 정말 올킬에다가 8분 컷 되겠는데요? 그것도 노히트런으로!]

스타디움 안의 모든 사람들이 다 흥분에 겨웠다.

“…….”

딱 한 군데. 천지패황의 선수 대기실만 빼고.

“크으윽!”

천지패황의 김철현 감독은 죽상을 하고 있었다.

‘이러다간 진짜 ‘올킬’ ‘노히트런’ ‘8분 컷’이 되게 생겼어! 그 매드독 녀석들도 10분은 버텼었는데!’

이러다간 정말 3위 팀인 매드독보다도 평가가 나빠질 수 있다.

가뜩이나 경기 순서가 좋아서 운빨로 2위까지 올라왔다는 소리를 듣고 있는 마당에 이것은 정말 치명적이다.

바로 그때.

“뭔 감독묵시록 같은 표정을 짓고 있어요?”

김철현 감독의 어깨를 턱 짚는 손이 있었다.

류요원. 한국랭킹 4위.

그는 전광판을 노려보며 눈을 빛내고 있었다.

“걱정 마요. 8분 올킬은 절대 불가능할 테니까.”

“……가능하겠어?”

“제 전혀 새로운 메타라면 가능하죠.”

류요원은 전광판 속 마동왕의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 자신만만하게 한마디 했다.

“8분이 뭡니까? 8시간도 더 넘게 걸릴 겁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