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185화 (185/1,000)
  • 186화 왕좌의 게임 (4)

    ‘얼티메이트 리그(ultimate league)’

    진정한 왕좌를 가리는 날이 밝았다.

    용산에 있는 E스포츠 스타디움으로 모든 선수들이 몰려들었다.

    승자든 패자든 간에, 누가 왕좌에 앉는지 궁금해하는 것은 모두 똑같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MVP 로얄스타’ 트로피가 누구 차지가 될 것인지가 최대의 관심사였다.

    1위 팀 중에서도 가장 활약이 뛰어난 선수에게 수상되는 트로피.

    이 트로피의 방향을 놓고 온갖 게임 커뮤니티들이 시끄럽게 들썩이고 있었다.

    -<성지글예정> 마동왕 올킬예상한다ㅋㅋㅋ

    ↳누구나 다 예상할수 있는걸로 성지는 무슨;;

    ↳이번에도 10분컷 본다

    -뎀붕이들아 MVP 로얄스타 트로피 누가 받을거 같음?

    ↳장난하냐?

    ↳마동왕이 못받으면 경기장에 폭탄테러함ㅅㄱ

    ↳ㅋㅋㅋㅋㅋㅋ솔삐 따놓은당상 아님???

    ↳의외로 임요셉이나 마태강이 받을수도 있음

    ↳마태강도 활약 쩔었는데...ㅋㅋ마동왕에 묻힘

    -천지패황ㅠㅠ잘하긴 하는데...이번 시즌 국K-1이 너무 넘사벽이잖냐

    ↳엄밀히 말하면 국K-1이 넘사벽이 아니라 마동왕이 넘사벽이지...

    ↳류요원이 캐리하긴 하는데...마동왕한테 걸리면 별수없ㅠㅠㅠ

    ↳익산인으로서 마음아프다...

    ↳몇 분이나 버티려나?

    -그래도 잘했다 천지패황! 이번 시즌에서 2위 한 거면 사실상 1위 한 거야!

    ↳맞아ㅋㅋㅋ1등이 너무 넘사벽이자너~~

    .

    .

    아마 우승은 국K-1팀이, 그리고 개인에게 돌아가는 최고의 영광인 MVP 로얄스타 트로피는 마동왕이 받을 것이라는 게 대부분의 여론이었다.

    그리고.

    그 여론을 몹시 마음에 안 들어 하는 선수가 하나 있었다.

    쾅!

    주먹을 책상으로 내리치는 소리.

    콧김을 황소처럼 쒸익쒸익 뿜어내는 거구의 사내가 있었다.

    류요원.

    한국랭킹 4위.

    “아따, 누구 맘대루다가 1위를 정해쌌냐?”

    그는 네티즌들의 태도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듯싶다.

    천지패황의 패배를 기정사실화 하고 있는 것은 그냥 불쾌해하며 넘겼지만……몇 분이나 버틸지로 토토를 하고 앉아 있는 것은 정말 너무 빡친다.

    그러자, 류요원의 뒤로 정장을 입은 남자가 다가왔다.

    천지패황의 감독 김철현이다.

    “야 요원아. 이번 경기…어떻겠냐?”

    그는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류요원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저번에 매드독 놈들 역올킬 하는 거 못 보셨습니까?”

    “……으음, 그래도. 국K-1에는 ‘그놈’이 있잖냐.”

    마동왕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자 류요원은 더욱 더 인상을 썼다.

    “뭐 인터넷 보니까 다들 10분 컷 10분 컷 하는디…….”

    그는 뒤에 ‘그런 건 겜알못들이나 하는 말이고, 꼭 이겨 버릴 겁니다!’ 라는 말을 하려 했다.

    하지만, 김철현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류요원의 말을 끊었다.

    “그래, 우리 꼭 10분은 넘겨 보자.”

    “…….”

    “무조건 10분은 버티는 거야! 파이팅!”

    류요원은 인상을 더욱 찌푸렸다.

    의도치 않게 말을 잘라 먹혀서 기분이 더 나쁘다.

    ‘……무슨 감독부터가 저런 말을 하고 있어.’

    자기만 빼고 모두가 천지패황의 패배를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

    ‘마동왕!’

    류요원은 이를 빠득 갈았다.

    베스트리그 1/3차전, 배틀로얄 그라운드제로에서 놈에게 패했을 때 직감했다.

    참마도를 휘두르는 지금의 스타일로는 절대로 놈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네놈 하나만큼은 반드시 엿먹이고 만다!’

    류요원은 눈을 감고 자신의 새로운 아이템과 특성들을 떠올렸다.

    매드독에게 시운전을 해 본 결과는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플레이오프에서 무승부를 기록했던 상대를 근소한 차이로나마 꺾을 수 있었으니까.

    ‘10분 컷? 택도 없게 만들어 주지.’

    류요원은 마동왕에게 굴욕을 안겨 줄 생각이었다.

    최후의 경기 전에 준비한 새로운 아이템 트리로 말이다.

    *       *       *

    “마왕아! 올라갈 시간이다!”

    엄재영 감독의 말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와아아아아-

    저 멀리서 관중들이 지르는 환호성 소리가 옅게 들려온다.

    무대 뒤편의 복도를 걸으며, 엄재영 감독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네 덕에 이런 자리에도 서 본다야.”

    그답지 않은 겸손.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했다.

    국K-1은 개인전이라면 몰라도 팀전은 정말로 약했다.

    15년 전의 기억 속에서도 그랬다.

    뛰어난 선수들을 가졌음에도 선수들 간의 조합이나 유대감이 좋지 않아 챌린지리그 서울 경합에서 엘리트즈에게 패배.

    이후 고시 준비를 하겠답시고 은퇴를 선언한 금은동 자매 때문에 엘리트즈가 와해되어 서울 대표로 출전.

    (이때 엘리트즈의 에이스였던 홍지노 블루스컬로 이적)

    이후 베스트리그에 올라가 배틀로얄 그라운드제로에서 다구리를 당해 꼴찌로 겨우 진출.

    그리고 플레이오프에서 매드독에게 올킬을 당해 떨어져 버렸다.

    하지만 이번 시간대에서는 다르다.

    현재 국K-1은 내가 멱살 잡고 캐리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기에 엄재영 역시도 나에게 고마워하고 있는 것이겠지.

    “너를 만난 게 내 올해 최고의 행운이다.”

    “인생 최고가 아니고요?”

    “음, 인생에선 두 번째로 하자. 첫 번째는 내 마누라야.”

    엄재영 감독은 상당한 애처가인 듯싶다.

    나는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와아아아아아-

    관중들의 환호성이 점점 가까워진다.

    이제 진검승부가 머지않았다.

    저 코너를 돌아 몇 안 되는 층계만 올라서면 바로 최후의 전장이 보일 것이다.

    옆에서 들려오는 숨소리.

    긴장으로 인해 팽팽하게 당겨진 폐.

    엄재영과 임요셉, 마태강, 이연호, 송병건. 그들은 분명 긴장하고 있었다.

    심지어 뒤에 공부를 위해 따라오고 있는 2군, 3군 선수들 역시도 달달 떨고 있는 게 보인다.

    문득.

    “아참. 마왕아.”

    엄재영은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런데 너, 왜 우리 팀에 들어온 거냐?”

    “……네?”

    “아니, 다른 데서도 컨택 많이 왔을 것 아냐? 좋은 조건들도 많이 제시받았을 거고.”

    다른 선수들의 긴장을 풀어 주기 위해서일까?

    그는 비교적 짓궂은 어조로 물어왔다.

    그래서 나 역시 가벼운 말투로 대답했다.

    “연습실이 집이랑 가까워서요.”

    그러자 엄재영은 파하하 웃었다.

    “자식, 센스하고는.”

    나의 개그센스를 칭찬하는 엄재영이다.

    ……하지만 그는 알까?

    진심도 반쯤 섞여 있다는 것을.

    *       *       *

    이윽고.

    무대 위에 양 측 선수들이 모두 올라왔다.

    나는 묘하게 기합이 들어가 있는 천지패황 선수들을 보며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

    특히나 상대편 에이스인 류요원은 나를 뜨겁게 노려보고 있다.

    엄청난 승부욕이 엿보이는 눈빛.

    그때.

    [자! 이제부터 왕좌를 눈앞에 둔 선수들의 소감을 한 번씩 인터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전용진 캐스터가 특유의 밝은 입담으로 무대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했다.

    그는 마이크를 들고 선수들 하나하나에게 지금의 심경과 각오를 물었다.

    자신의 차례가 되자, 류요원은 결연한 표정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많은 시청자님들이 예상하시는 것이랑 조금 다른 경기결과가 나올 수도 있겠네요. 국K-1 팀은 아마 오늘 조금 힘들 겁니다.

    그는 자신이 기죽지 않았다는 것을 강하게 어필했다.

    그리고 말미에 한마디 덧붙였다.

    “저 쎕니다.”

    그러자. 관중석에서 뜨거운 환호가 일었다.

    전북 익산에서 올라온 열성팬들이 플랜카드를 흔들며 목청껏 응원한다.

    다음 차례는 국K-1이었다.

    임요셉을 비롯한 모두가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응원에 보답하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등의 멘트를 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의 차례가 왔다.

    “아, 아.”

    툭- 툭-

    나는 마이크를 한번 점검했다.

    그리고 짧게 말했다.

    “경기, 길지 않을 겁니다.”

    그것이 내 소감의 전부였다.

    그러자.

    우-와아아아아아!

    관객석에서 어마어마한 함성이 일어난다.

    나는 소감에서 말한 대로 마이크를 빨리 넘겨 버렸다.

    그러자, 전용진이 조금 당황했다.

    누가 뭐래도 나는 지금 프로리그의 간판이다.

    인터뷰를 이렇게 빨리 끝내면 안 된다.

    그는 넉살 좋게 인터뷰를 한 번 더 시도했다.

    [많은 시청자님들이 국K-1을 우승후보로 점치고 계신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다들 이길 것이라 기대하고 있는 승부를 앞두고 부담감이 있느냐는 질문이다.

    나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네. 뭐. 다들 저희가 이겨 오는 것에 익숙해져 있으신 것 같아서. 어떻게 하면 시청자님들을 놀래켜 드릴 수 있을지 고민 많이 했습니다. 방법이 몇 없더라구요.”

    [오오! 시청자님들을 놀라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요!? 그게 뭔가요?]

    전용진이 잔뜩 기대하며 던진 질문에, 나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지는 거요.”

    그러자, 전용진 캐스터가 당황한다.

    관객석에서는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국K-1 선수들은 다들 뜨악한 표정이다.

    류요원을 비롯한 천지패황 선수들의 표정은 미묘했다.

    나는 마이크를 든 채 전용진 캐스터와 관객들을 달랬다.

    “진정하세요. 농담입니다.”

    너무나도 능숙하게 무대를 휘어잡는 내 태도에 전용진 캐스터는 깜짝 놀란 것 같았다.

    ‘무슨…수없이 우승해 본 사람 같네. 정체가 뭐지?’

    아마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지.

    대부분의 신인 프로게이머들은 이런 자리에 서면 긴장하기 마련이다.

    나이도 어리고 사회경험도 적다보니 수많은 시선 앞에서는 위축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나에게는 해당사항 없는 일이지.’

    나는 가면 속으로 싱긋 웃었다.

    지난 수년간 세계급 랭커들의 수상소감을 하도 많이 봤더니 이 정도는 따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헛먹은 나이라도 꽤나 있는 편이니까 어린 친구들 앞에서 어느 정도 침착을 유지하는 것도 가능하다.

    나는 말을 계속했다.

    “승리에 익숙해진 관객들을 놀라게 하려면, 더욱 압도적인 기록을 세워서 이겨야겠죠.”

    그러자, 관객들이 또다시 환호하기 시작했다.

    우와아아아아아!

    신기록 예고.

    어찌 흥분되지 않을 수 있으랴?

    하지만 천지패황 선수들의 표정은 확 썩는다.

    자신들을 제물로 삼아 신기록을 세우겠다는데 기분 나쁘지 않을 수가 없다.

    특히나 에이스인 류요원의 이마에는 핏줄이 잔뜩 서 있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전용진 캐스터가 물었다.

    [더욱 압도적인 기록이라 하시면……?]

    궁금함이 물씬 묻어나는 질문이다.

    스타디움 안의 모든 시선들이 내 입을 향하고 있다.

    나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매드독 올킬이 10분 컷이었죠? 이번에는 8분 컷 예상합니다.”

    …….

    내 멘트가 끝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무도 웃거나 화내지 못했다.

    인터뷰 하던 전용진 캐스터도, 관객들도, 국K-1 선수들도, 심지어 천지패황 선수들까지도.

    모두 멍한 표정이다.

    탁-

    나는 마이크를 탁자 앞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뒤로 돌아 캡슐 앞에 있는 계단으로 향했다.

    경기 첫 타자를 알리는 신호탄이다!

    동시에.

    우-와아아아아아!!!

    잔뜩 흥분한 관중들이 지르는 엄청난 함성이 스타디움의 천장을 날려 버릴 듯 폭발했다.

    [……!]

    그러자, 사태를 파악한 전용진 캐스터가 재빨리 움직였다.

    원래라면 개최 선언은 한 3분쯤 뒤에 있어야 하지만, 지금의 이 엄청난 호응을 이대로 사라지게 둘 수는 없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분위기를 후끈 달아오르다 못해 팔팔 끓여 버린 것은 오히려 중계측에게 있어 절호의 찬스인 것이다!

    [그럼 이 뜨거운 여세를 몰아! 얼티메이트 리그! 지금 바로~ 시작하겠습니드아아아아!]

    전용진 캐스터의 우렁찬 선언을 시작으로.

    최후의 싸움 ‘얼티메이트 리그(ultimate league)’가 그 장대한 서막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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