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폭주하는 망령 (6)
“방해했다면 미안. 저 친구에게 볼 일이 있어서.”
조디악 번디베일.
그는 썩은물을 가리키며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예전에 빚을 좀 진 적이 있거든.”
아마 악의 고성에서 잭 오 랜턴과 싸울 당시의 일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조디악은 썩은물을 나로 오인하고 있는 모양이다.
하긴.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현재 나는 마동왕 메타, 고인물 메타일 때와는 장비한 아이템도 플레이 스타일도 완전히 다르다.
정작 눈앞에 있는 나를 못 알아볼 만도 한 것이다.
[끄르르륵…!]
썩은물은 무너져 가는 몸뚱이를 간신히 곧추세웠다.
그리고는 무성한 수초들 사이로 뛰어들어 잠영을 하기 시작했다.
“도망친다! 잡아!”
“이번에야말로!”
마교인들이 썩은물을 잡기 위해 우르르 몰려간다.
한편.
조디악은 그 광경을 보고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고인물이라고 했던가? 그 놈인 줄 알고 왔는데… 아무래도 카피캣(Copycat)이었던 모양이군.”
그는 그제야 썩은물과 고인물이 다르다는 것을 눈치 챈 듯싶었다.
“재미없네.”
조디악은 이내 발걸음을 돌렸다.
이대로 수몰지대를 벗어날 모양이다.
…….
하지만.
턱-
내가 그것을 허락해 줄 리가 없다.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는 조디악의 퇴로를 차단한 뒤 그를 정면으로 마주보았다.
“나갈 때는 아니란다.”
그러자 조디악은 노골적으로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나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한 태도로 말했다.
“…뭐냐 넌?”
“…….”
“나는 바빠. 한국 랭커들을 만나봐야 한다고.”
나는 조디악의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한국 랭커들?
놈이 한국 랭커들은 왜 찾아다닌단 말인가?
나는 궁금한 것은 못 참는 스타일이라서 바로 질문했다.
“한국 랭커들은 왜 찾나?”
그러자, 조디악은 한 번 더 표정을 찌푸렸다.
“왜긴 왜야. 사냥하려고 그러지.”
그 순간, 내 머릿속에 15년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앙신 조디악, 그가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유명해지게 되었던 계기!
‘랭커 사냥’
그래, 이제 기억난다.
이걸 왜 생각 못 하고 있었을까?
조디악은 원래 이맘때쯤 해서 아시아 지역의 랭커들을 찾아다니며 연쇄 PK를 했었다.
그때 하도 많은 한국 랭커들이 조디악에게 살해당하는 바람에 프로리그가 미뤄지는 참사까지 벌어질 정도였다.
그가 왜 굳이 한국 플레이어들만을 대상으로 무차별 연쇄 PK를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때 그 사건이 15년 뒤에까지도 회자될 정도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는 것만큼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때문에.
“…….”
나는 가면 속 표정을 딱딱하게 굳힐 수밖에 없다.
조디악.
그는 내 머릿속의 기억대로 이곳에 나타났다.
이번에도 한국 랭커들을 사냥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유가 궁금했지만 묻는다고 말해줄 리가 없다.
대답해 줄 만한 이유였다면 이미 15년 전에 밝혀졌었을 테니까.
나는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국 랭커들이 목적이라면 더욱 더 보내 줄 수 없다.”
그러자. 조디악은 웃음을 터트렸다.
“푸스스스스! 이봐. 이만하면 많이 참아 줬다고 생각해. 더는 어울려 줄 시간이 없으니 어서 비키라고.”
그는 한국 랭커들을 사냥하기 위해 왔다고 하면서 정작 나에게는 아무런 전의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다.
나는 언랭이었으니까.
계정 정보를 공개하기 싫어서 일부러 공식 랭킹에 등록하지 않은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다.
덕분에 지금 이렇게, 조디악 놈을 방심시킬 수 있지 않았는가?
‘무슨 이유인진 모르겠지만, 저 자식. 나를 쌩판 모르는 것 같은데...’
‘유튜뷰도 안 보냐 넌?’ 이라고 묻고 싶었지만 관두기로 했다.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답무용(問答無用).
눈앞에 메인 빌런이 나타났는데 스토리 질질 끌 것 있나?
나는 바로 진도를 뺐다.
후욱-
내가 쏜살같이 앞으로 달려 나오자.
“……!”
조디악의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놀라고 자시고 할 시간도 없었다.
나는 최대 필살기를 조디악의 안면 정중앙에 냅다 때려 박았다.
콰쾅!
두개골 박살나는 소리와 함께, 조디악의 몸이 뒤로 팩 나가 떨어졌다.
“전투는 초반 5초.”
나의 룰은 한결같다.
‘지진’과 ‘와류’의 힘이 내 오른손, 왼손에 꽉 쥐여 펄떡거린다.
그리고 그 힘은 훌훌 날아가고 있는 조디악의 가녀린 몸에 미친 듯이 작렬했다.
콰콰콰콰콰쾅!
살점들이 사방팔방으로 비산한다.
“어억!?”
조디악은 미친 듯이 떡락하는 HP를 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뭐, 뭐야? 이런 놈 랭킹에서 본 적 없는…!?”
놈은 바닥을 박차며 뒤로 물러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콰쾅!
내가 주먹으로 수면 위를 때리자.
철-썩!
거대한 파도가 일어 조디악을 휩쓸어간다.
이처럼 필드 전체로 압박해 조이는 것이 나의 스타일.
‘근접 딜러인 너는 절대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나는 확신을 가지고 온 지형을 뒤흔들었다.
그러자.
“…헤에.”
조디악은 거대한 파도를 올려다보며 입을 반쯤 벌렸다.
“한국 랭커들을 사냥할 때 고인물… 그놈이 가장 걸리적거릴 줄 알았는데. …어디서 이런 녀석이 괴물이 튀어나왔지?”
그는 나를 보며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더니…….
슥-
허리춤에서 무언가를 꺼내든다.
“……!”
나는 조디악이 꺼낸 아이템을 보고는 깜짝 놀라야만 했다.
“하멜른의 피리!?”
귀찮은 아이템이 나타났다.
저것은 악의 고성에서만 드랍되는 A급 히든 피스로 주변에 있는 몬스터들을 끌어 모으는 기묘한 능력이 있다.
‘소집’ 특성.
나도 있다는 것만 알지 정확히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는 알지 못하는 히든 피스.
‘나한테는 딱히 필요 없는 아이템이라서 굳이 안 뒤졌는데, 기어코 그것을 찾아낸 모양이군.’
내가 알기로 저 피리를 얻기 위해서는 상당히 운이 좋아야 한다.
저걸 얻었다는 것은 조디악, 저 놈이 비상식적일 정도로 운이 좋다는 것이겠지.
‘기연이 따르는 체질인가? 부럽군.’
나는 속으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앞으로 내달렸다.
삐익-
조디악이 피리를 불자.
촤아악!
몰아치는 파도 속에서 몇 마리의 몬스터들이 튀어나왔다.
유목 악어.
통나무처럼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고 있던 이 거대한 몬스터들은 영문도 모른 채 조디악의 어그로에 이끌려 왔다.
퍼억! 으드드득!
그것들은 그대로 내가 일으킨 파도에 맞아 전신이 꺾이고 뒤틀려 죽어 버렸다.
후욱-
동시에, 조디악의 두 눈에서 시커먼 흑빛이 뿜어져 나온다.
조디악의 검은 로브 안에서 피리 다음으로 튀어나온 것은 시커먼 ‘마도서’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정말 진심으로 놀랐다.
‘…메타가 바뀌었어?’
조디악은 내 기억 속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다.
내 기억 속의 조디악은 깎단을 들고 근접 전투를 즐기던 사이코 광전사.
하지만 지금 저 모습은 어떤가?
…흡사 흑마법사 같지 않은가!
-<어둠 대왕의 일기장> 7클래스 마도서 / A+
어둠 대왕이 악마(惡魔)와 싸우며 겪었던 길고도 처절한 경험들이 기록되어 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단 한 줄을 읽는 것만으로도 어둠에 먹혀 버린다.
-마법 공격력 +4400
-어둠 속성 저항력 –10%
-기록된 마법(?개): ‘무덤사역’...
조디악은 내가 악의 고성을 떠난 후 기어코 어둠 대왕을 잡은 모양이다.
그 대가로 얻은 아이템은 나와는 조금 달랐지만 말이다.
후욱-
마도서에서 검은 기운이 뿜어져 나오자 죽어 나자빠져 있던 유목 악어들이 다시끔 생명을 되찾아 움직인다.
삐그덕- 삐그덕- 삐그덕-
해골이 된 유목 악어들이 내 앞을 막아섰다.
7클래스의 흑마법 ‘무덤사역’
근처의 죽은 몬스터들을 언데드 상태로 소생시키는 기분 나쁜 스킬이다.
언데드가 되었기 때문에 등급이 두 단계 내려간 유목 악어들은 하나하나가 D급 몬스터에 불과하다.
…하지만 놈들은 제법 덩치가 컸기에 내 시야를 가리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가능했다.
“젠장!”
나는 시야를 가리는 악어 해골들을 주먹으로 때려 부쉈다.
그러자, 어느새 저 멀리 내빼고 있는 조디악이 보인다.
‘빌어먹을! 마동왕 모드가 아니라 고인물 모드였으면 바로 추격해서 잡는 건데!’
나는 이를 뿌득 갈았다.
만약 고인물 메타였다면 알몸의 기동성과 신발이나 악세서리의 민첩+이동속도 증가 옵션을 이용해 조디악의 속도를 압살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방송 중이니 함부로 아이템을 갈아 낄 수는 없다.
그랬다간 마동왕과 고인물이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만천하에 광고하는 꼴이 될 테니까.
한편.
“푸스스스! 한국에는 인재가 많네. …아무래도 더 준비하고 와야 할 것 같아.”
조디악은 한번 크게 웃더니 나를 돌아보았다.
순간.
오싹-
나는 전신에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나를 돌아보는 조디악의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 얼굴 기억해 뒀다.”
조디악은 짤막하게 말했다.
순간적이나마, 나는 놈의 기세에 압도당했다.
조디악은 한때 단신으로 뎀 안의 모든 세계를 멸망 직전까지 몰고 갔던 사내.
그런 사내의 표적이 되었다는 것은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나에게는 상상 이상의 중압감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중압감은 얼마 가지 않았다.
썩뚝!
허공에서 떨어져 내린 거대한 도끼 하나가 조디악의 목을 그대로 잘라 버렸기 때문이다.
“자식이 어디서 쎈 척이야? 기껏해야 마법사 나부랭이가.”
뒷치기로 조디악의 목을 벤 자.
바로 유다희였다!
생긋-
그녀는 활짝 웃으며 나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그녀의 얼굴이 이때만큼 찬란해 보인 적이 없었다.
나도 그 순간만큼은 그녀와의 해묵은 원한을 잊고 엄지손가락을 마주 들어 보였다.
유다희는 도끼를 어깨에 메고 나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저 자식, 저랑은 구면이에요. 예전에 악의 고성이라는 던전에서 마주친 적 있어요.”
응, 나도 그때 거기 있었어.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니 꾹 참도록 한다.
이내, 유다희는 말을 이었다.
“그때만 해도 분명 ‘고속재생’ 특성을 주 스킬로 쓰는 무투가 타입이었는데, 어느새 마법사로 메타를 바꿨나 보네요.”
하긴, 조금만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내가 들고 다니는 깎단은 원래 조디악의 손에 들어갔어야 할 무기니까.
깎단을 손에 넣지 못했으니, 놈은 그 다음으로 나름의 독자적인 메타를 개발했으리라.
‘그게 네크로맨서인가…….’
나는 손으로 얼굴을 짚었다.
과연 앙신은 앙신이다.
놈은 깎단을 위시한 변태 고문 메타를 쓸 수 없게 되자 그 다음으로 성가시고 귀찮은 메타를 손에 넣었다.
아직은 숙련도가 낮아서 유다희에게도 죽을 정도지만, 곧 아이템을 모으고 레벨을 높여 온 세계에 재앙을 가져올 것이다.
‘하여간 보는 대로 죽여 놔야지 아주.’
나는 조디악을 막을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놈은 분명 가까운 시일 안에 한국 랭커들을 노리고 사냥을 시작할 것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분명 얼티메이트 리그가 폐막되기 전에 유혈사태가 일어났었다.
“그나마 오늘 죽였으니… 그 사태는 막을 수 있으려나.”
마음이 한결 가볍다.
유다희가 아니었더라면 며칠간 찜찜한 기분으로 밤을 새웠을 것이다.
“…아참, 썩은물은?”
나는 물 밑으로 잠수해서 도망친 썩은물을 떠올렸다.
그러자 유다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추격했는데 이동 속도가 너무 빨라서 못 잡겠더라고요.”
그래 그럴 것 같았다.
고인물 메타를 그대로 카피해 낸 녀석이니까 속도 하나는 빠르겠지.
하지만, 유다희는 이내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놈의 흔적이 끊긴 곳은 엄청나게 높은 폭포였어요.”
“…폭포?”
“네. 그 높이에서 떨어졌으니 아마 무사하지 못할 거예요.”
유다희와 다른 마교원들이 확신을 가진 채 말했다.
“…….”
나는 이번에도 이마를 짚었다.
‘너무 노골적인 플래그잖아.’
원래 폭포에서 떨어진 적은 무조건 살아있는 법이다.
그리고 더욱 더 강해진 몸으로 돌아와 결정적인 순간 내 일을 방해하겠지.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냥 어딘가에 살아있다고 생각하고 미리미리 대비해 놓는 게 마음 편하겠군,’
그래도 오늘의 빌런 퇴치는 꽤 유의미한 기회였다.
덕분에 마동왕의 주가가 확 높아지고 고인물에게 씌워졌던 억울한 누명도 벗겨졌으니까.
이제 집에 가서 고인물 계정으로 접속해 피해자들에게 보상을 해 주는 일만 남았다.
‘대회 전까지는 정신없겠네.’
한동안은 지루한 시간이 될 것 같다.
아, 누가 시간을 좀 앞으로 팍 당겨 줬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