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180화 (180/1,000)

181화 폭주하는 망령 (5)

-마동왕 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부디 저 PK범을 처리해주세요ㅠㅠ

-제발 썩은물 좀 퇴치해 주십쇼ㅠㅠㅠㅠ

-직접 PK를 뜨고 싶지만...무참하게 발린 처지라서...

-믿을 것은 마동왕 님 밖에 없네요ㅠㅠㅠ프로리그의 빛이시여...

.

.

마동왕 계정으로 온 수많은 메일들.

그것들의 대부분은 썩은물에게 당한 피해자들이 보낸 것이었다.

지금 시점에서 폭주하는 썩은물을 막아낼 수 있는 랭커는 마동왕뿐이라고 다들 생각한 모양이다.

NPC들이 아니라 유저들이 준 퀘스트.

어차피 그들의 요청이 아니더라도 나설 생각이었기에, 나는 국K-1 연습실의 캡슐로 접속해 바로 이곳 침수림 수몰지대로 달려왔다.

“여러분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저 PK범을 참교육 시키겠습니다.”

나는 실시간으로 켜놓은 카메라를 보며 선언했다.

이 방송을 통해 저 썩은물 녀석을 단죄하고 고인물의 결백함도 함께 입증해 보일 생각이다.

아울러 썩은물에게 당한 유저들의 피해보상 역시도.

그때.

“마왕님. 저희가 먼저 간을 보겠습니닷!”

유다희가 씩씩하게 외쳤다.

“…….”

나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막을 명분이 딱히 없기 때문이다.

여기 있는 500명의 마교 대원들은 고인물, 즉 나를 북방의 끝까지 추격해 왔던 이들.

눈앞에 있는 썩은물에게 덤벼들 이유가 충분하다.

파팟! 콰콰콰쾅!

유다희를 비롯한 마교인들이 썩은물을 향해 집중포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우와, 살벌하다.’

나는 허공을 날아가는 마법과 화살, 참격의 소나기를 보며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내가 직접 나선다고 해도 저런 광경 앞에서는 암담함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썩은물은 달랐다.

[…큭큭큭큭.]

놈은 전신에 힘을 콱 주었다.

밧줄 같은 핏줄들이 시커멓게 툭툭 불거져 나왔다.

어찌나 심하게 튀어나왔는지 마치 몸에서 뽑혀 나온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퍼-펑!

썩은물은 발을 휘둘러 커다란 파도를 일으켰다.

실로 엄청난 힘!

연쇄살인 특성이 극한까지 개화한 덕분일까?

커다란 파도가 장벽처럼 일어나 마법과 화살들을 모두 막아 버렸다.

출렁- 출렁- 출렁-

물로 된 지면이 크게 격동하자 통나무들도 함께 요동친다.

“으아앗!?”

주변에 있던 근접 딜러들은 균형을 잃고 물속으로 빠져 버렸다.

콰긱!

썩은물이 허우적거리는 마교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놈은 딥러닝으로 배우고 예측한 대로, 해일에 휩쓸린 통나무들의 이동경로를 정확히 꿰뚫어보고 있었다.

타타타타타타탁-

썩은물은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유목들을 밟고 점프했다.

목표는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한 힐러였다.

“꺄아아악!”

아직 어린 소녀로 보이는 힐러는 자기에게 겨누어진 송곳을 보고는 비명을 질렀다.

그때.

까-앙!

소녀의 미간을 향해 떨어져 내리는 송곳을 도끼 하나가 막아 냈다.

“물러서!”

바로 유다희였다.

그녀는 죽을 수도 있는 위기를 무릅쓰고 손을 뻗었다.

촤악-

그리고 물에 빠진 소녀의 뒷덜미를 확 잡아채 건너편 통나무로 던져 버렸다.

이내, 유다희는 썩은물과 정면으로 대치하기 시작했다.

“뭘 봐, 이 짝퉁 X끼야.”

그녀는 썩은물을 향해 조소를 날렸다.

부웅-

유다희의 거대한 도끼가 썩은물을 향해 휘둘러진다.

파캉!

하지만, 물리공격력의 차이는 너무나도 현저했다.

썩은물은 그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맨손으로 유다희의 도끼날을 잡아냈다.

“……!”

유다희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녀 역시도 물리공격력이라면 어디서 뒤지지 않는 근접딜러가 아닌가?

한데 이렇게 압도적인 격차라니……!

[큭큭큭큭.]

썩은물은 여유로운 미소로 유다희를 응시한다.

하지만.

그 미소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잘했다.”

유다희를 향한 짧고 무뚝뚝한 칭찬.

화악-

이윽고, 유다희의 커다란 도끼날이 옆으로 기울자.

그 뒷면에 숨어 있던 내가 앞으로 나섰다.

나는 유다희의 넓은 도끼날 뒤에 숨어 썩은물의 시야 사각으로 날아들었던 것이다.

콰쾅!!!

지진의 힘이 담긴 내 주먹이 썩은물의 안면 정중앙에 때려 박혔다.

…참고로 내 물리공격력은 유다희의 것과는 자릿수 자체가 다르다.

휘끼리릭-

실실 쪼개고 있던 썩은물의 머리통이 몸통에서 뽑혀 나올 기세로 재껴졌다.

[끄륵!?]

버틸 수 있을 리가 없다.

썩은물은 뒤로 맹렬하게 내팽개쳐졌다.

하지만, 나는 놈을 놓아줄 생각이 없다.

“승패는 초반 5초에 정해지는 법이지.”

이것은 마동왕 식 전투의 룰이다.

나는 날아가는 썩은물에게 빠르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동안 힘을 비축해 두었던 왼손 손바닥을 들어 놈의 싸대기를 후려갈겼다.

퍼-엉!

충격파는 썩은물의 몸을 때림과 동시에 물 밑으로 엄청난 크레이터를 만들어냈다.

물과 통나무들이 반경 십 수 미터 바깥으로 밀려나며 바닥의 맨 땅이 드러날 정도였다.

[카아아아악!]

썩은물은 물이 사라진 맨 땅 바닥에 누워 버둥거린다.

충격파에 의해 밀려났던 물들이 다시 돌아와 한 점으로 모여들었다.

철썩!

물론 나는 그 전에 훌쩍 몸을 날려 통나무 하나에 올라탔다.

한편. 썩은물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았다.

첨벙! 첨벙!

놈은 물 밑에서 무언가를 꾸미고 있는 모양이다.

아마 잠영을 통해 통나무 밑으로 다가와 나의 발목을 자를 셈이겠지.

인공지능은 복잡한 것 같으면서도 참 단순하다.

나는 물 밑에 도사리고 있는 썩은물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말했다.

“모두 1백 미터 밖으로 물러서라.”

500명의 마교인들은 내 말에 착실히 따랐다.

유다희를 비롯한 모든 이들이 이내 나를 빙 둘러쌌다.

그 상태로, 나는 수면에 왼손 손바닥을 댔다.

“원래 ‘와류’ 특성은 이렇게 쓰는 거지.”

내가 건틀릿에 힘을 주자.

쿠르르르르르륵!

지름 1백 미터짜리 소용돌이가 생기며 주변의 모든 것을 휩쓸어 간다.

[크-아아아아아악!]

호수 위로 높게 솟아오른 용오름 속에서 썩은물이 지르는 괴성 소리가 들려왔다.

물속에 숨어 기습을 할 생각이었겠지만,

공격은커녕 물과 함께 통째로 허공에 딸려 올라간 신세가 되었다.

“그대로 공중분해시켜 주마.”

나는 무미건조한 말과 함께 오른손 주먹을 용오름에 가져다 댔다.

콰콰쾅!

그동안 축적해 준 지진의 힘이 용오름의 와류에 뒤섞여 솟구친다.

이내, 수직으로 뻗어 올라가던 회오리의 허리 부근에서 거대한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그것을 시작으로…….

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무수히 많은 충격파가 회오리의 상단, 중단, 하단에서 마구 폭발한다.

회오리 중심부에 꽉 찬 지진력(地震力)이 와류의 벽을 뚫고 터져 나온 것이다.

본래 넓은 지면에 골고루 퍼져 분산되어야 했을 지진파가 회오리 속의 좁은 공간, 그것도 허공에 갇혀 버렸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이윽고.

퍼-엉!

회오리가 갈가리 찢어지며, 높은 허공에서 시커먼 걸레조각 같은 것이 떨어져 내리는 것이 보였다.

썩은물이었다.

놈은 한 눈에 보기에도 빈사상태임을 알 수 있었다.

우선 머리의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한쪽 눈은 뽑혔고, 그 많던 이빨은 다 어디로 가 버렸나 남아 있는 게 몇 개 없다.

팔다리는 죄다 ㄹ자로 뒤틀렸고 몸통 역시도 넝마쪼가리처럼 너덜너덜했다.

‘와류’와 ‘지진’은 둘 다 광역을 초토화시키는 자연재해류 특성.

그것들을 1:1 대인기로 맞았으니 저 꼴이 나는 게 당연한 일이다.

“…쿨럭!”

나 역시도 썩은물이 반사한 데미지에 꽤나 많은 피해를 입었지만…….

백전노장 특성과 혈액포식자 특성 덕분에 바로 회복해 낼 수 있었다.

애초에 나는 포션도 꽤 많이 챙겨왔으니까.

한편.

그 광경을 본 500명의 마교인, 그리고 수없이 많은 시청자들은 뜨겁게 열광한다.

-여윽시 마동왕이다!

-퍄! 썩은물도 발라버리는 마동왕 클라스!

-ㅋㅋㅋㅋ미쳤다...마동색의 패기 보소!!!

-ㄷㄷㄷ공중 리타이어 실화냐? 거의 뭐 10초컷이네...

-잘 뒤졌다 썩은물! 소리질러!

-아아, 이게 프로의 『격』이란 거다.

-444,444원을 후원받았습니다!

-1,000,000원을 후원받았습니다!

-1,515,151원을 후원받았습니다!

- 1,529원을 후원받았습니다!

- 퍄! 10 5지9요!

-근데 저거 고인물 님 아닌 것 같은데? 저리 쉽게 죽을 리가..

-맞음 저거 고인물 아닌듯...짭인거 같네여ㅋㅋㅋ

.

.

통쾌한 결과에 후원금이 팡팡 터져 나온다.

자연스럽게, 고인물에게 씌워졌던 누명도 벗겨졌다.

마동왕과 1승 1패를 기록했던 고인물이 저리 허무하게 당할 리 없다는 것이다.

이윽고.

철썩-

썩은물이 수면 위로 힘없이 떨어져 내렸다.

[…! …! …!]

아직 생존본능은 남아 옆에 있는 통나무를 붙잡고 있지만... 이제 파리목숨이나 다름없게 된 몸이다.

“밟아 죽이는 일만 남았군.”

나는 어수선하게 널브러진 통나무 위를 걸어 썩은물에게 다가갔다.

이제 이놈이 사라지면 고인물의 누명도 완전히 벗겨질 것이다.

내가 막 손을 들어 놈의 몸을 짓이겨 버리려는 순간.

퍼-펑!

커다란 물무리와 함께, 갑자기 썩은물이 수면 아래로 푹 꺼졌다.

“……!”

나는 예상치 못한 광경에 눈을 크게 떴다.

썩은물은 자의로 인해 물 밑으로 잠수한 것이 아니었다.

분명 무언가가 놈을 아래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젠장. 하필 이런 때.”

나는 사태를 금방 파악했다.

표정이 절로 썩을 수밖에 없는 우연!

<유목 악어> -등급: C+ / 특성: 매복, 변온, 하극상, 뺑소니

-서식지: 침수림 수몰지대

-크기: 8m.

-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통나무는 좋은 발판이지만… 가끔 어떤 통나무는 주의해야 할 것이다.

침수림 수몰지대에 서식하는 이 귀찮은 몬스터가 공교롭게도 딱 이 타이밍에 나타난 것이다.

[…크르륵!]

썩은물은 시커먼 물속에서 눈을 빛내며 나의 시선을 맞받았다.

이내, 놈은 자신의 몸을 물고 있는 유목 악어를 향해 손톱을 박아 넣었다.

상대방의 HP를 빼앗는 ‘혈액포식자’ 특성이 발현되었다.

꿀꺽- 꿀꺽- 꿀꺽- 꿀꺽-

유목 악어는 동급 몬스터에 비해 최대 HP량이 무척 많은 몬스터.

자연히 썩은물에게 초당 빼앗기는 HP의 양도 상당했다.

“참 나. 야생 도플갱어가 이렇게까지 발악하는 건 처음 보네.”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야생의 몬스터가 자력으로 진화한 것도 황당한데 거기에 스텟을 쌓아 강해지기까지 하다니.

물론 도플갱어라는 몬스터의 특성과 나의 개입 등, 상황의 특수성이 고려되어야 하겠지만.

…그래도 놀라운 일이다.

“아무튼 잘 가라.”

나는 생각보다 싱겁게 끝난 전투에 안도했다.

고인물을 카피한 개체이기에 승부가 힘들어질 것이라 예상했지만, 크라켄을 잡기 이전의 고인물을 카피한 것이기에 그다지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만약 저 도플갱어가 크라켄의 특성까지 흡수한 고인물을 카피했더라면 정말로 사태가 위험해졌겠지만…….

‘그럴 일은 없지.’

나는 모든 불안한 가능성을 일축했다.

죽어 가는 적을 앞에 두고 잡생각을 많이 하는 것은 좋지 않은 법이다.

나는 바로 게임을 끝내고자 했다.

퍼펑!

내 눈앞으로 날아든 시커먼 참격만 아니었더라면 분명 그렇게 했을 것이다.

“…뭐야?”

나는 고개를 돌렸다.

어지럽게 뒤엉킨 맹그로브 군락.

그 거대한 뿌리들의 끝에 누군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검은 로브로 몸을 뒤덮고 있는 남자가 한 명.

“푸스스스스. 방해했다면 미안. 거기 시커먼 친구에게 볼 일이 있어서.”

그는 로브 아래로 음침한 웃음을 흘리며 썩은물을 지목했다.

한편.

[끄르륵!]

썩은물은 악어의 시체를 밟고 물에 반쯤 침수된 언덕배기로 기어 올라갔다.

마치 변기에 빠진 바퀴벌레와도 같은 움직임.

하지만.

“…….”

나는 더 이상 썩은물을 쳐다보고 있지 않았다.

‘그’가 나타난 더 이상 썩은물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번디베일.”

나는 씹어 내뱉듯 중얼거렸다.

“…오? 날 아나?”

그러자, 검은 로브의 사내는 약간 놀란 듯 보인다.

이내, 그는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후드를 벗었다.

시체처럼 창백한 피부, 광대뼈 밑까지 내려온 다크서클.

앙신(殃神) 조디악이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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