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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177화 (177/1,000)
  • 178화 폭주하는 망령 (2)

    인터넷 사이트에 동영상이 하나 올라왔다.

    <이게 뭐죠? 레이드 뛰다가 고인물 씨에게 PK 당했습니다ㅠㅠ..> [HIT]

    처음에는 딱히 주목받지 못하던 게시물이었지만.

    ↳ 아씨, 저도 그 사람한테 죽었는데8ㅅ8...

    ↳ 어? 저도요! 그게 실수가 아니었군요! 워낙 순식간에 당해서...

    ↳ 와;;;나도 당했는데! 안 믿어줄까봐 말 안했었음ㅠㅠㅠ

    시간이 가면 갈수록 같은 주장을 하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며 조회수가 오르기 시작했다.

    영상의 내용은 간단하다.

    평범한 뉴비들이 삼삼오오 모여 열심히 레벨업을 하고 있는데 웬 괴인(怪人)이 나타난다.

    그는 시커먼 알몸에 망토를 휘날리며 오픈필드 전장에 거침없이 난입했다.

    푹- 푹- 푹!

    괴인은 날카로운 송곳으로 뉴비들이 잡던 몬스터에게 막타를 먹여 순식간에 스틸했다.

    [저기,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그거 저희가 다 잡아 놨던 건데…….]

    [보아하니 레벨도 높으신 분 같은데 이러시면 안 되죠.]

    이에 뉴비들이 항의하자, 괴인은 뉴비들마저 송곳으로 찔러 죽여 버린다.

    […….]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로.

    땅그랑! 땅그랑! 땅그랑!

    플레이어들은 죽으면서 돈과 아이템을 떨궜지만, 괴인은 그런 것 따위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뉴비를 죽이면 카르마 수치가 미친 듯이 올라가지만, 괴인은 그것 역시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

    이내, 괴인은 다음 사냥감을 찾아 달리기 시작했고 무성한 덤불숲 사이로 모습을 감추었다.

    댓글 반응은 점점 뜨거워지고 있었다.

    댓글 13: 저거 BJ고인물 아님???

    댓글 68: 헐;; 요즘 뜸하시다 했는데 저기서 양학하고 계셨나...

    댓글 186: 않이 왜 뉴비들을 죽이고 그래요 고인물 횽ㅠㅠㅠ

    댓글 213: 너무 자극적인 방송 콘텐츠 아님?

    댓글 336: 근데 그렇다기엔..방송도 안 올라오는데?

    댓글 457: 아니 애초에 저거 고인물 맞음? 사칭 아님?

    댓글 536: 저 까만 타이즈랑 망토랑 송곳 보면 고인물 맞는 것 같은데?

    댓글 683: 얼굴이 그냥 까맣게 처리되어 있는 거 보면 아닐 수도 있음

    댓글 792: 에이~고인물이 머가 아쉬워서 저럼ㅋㅋㅋ

    댓글 804: 당연히 사칭이지, 진짜 고인물에 비해 액션이 부자연스럽다

    댓글 957: 그래도 저런 아이템 구하기 힘들텐데...컨트롤 피지컬도 수준급이고..

    댓글 1,036: 비슷한 코스튬이야 얼마든지 만들지ㅋㅋㅋ성능 말고 모양만 베낄 거면~

    댓글 1,147: 아무튼, 고인물 님이 방송 켜서 해명 한번 해야 할 각인데??

    댓글 1,265: 그러게 예전에 대망자 레이드 이후로 방송 소식이 없어서 더 불안하네...

    댓글 1,369: 진짜 저 PK범 고인물 아니에요?? 그런데 왜 고인물님은 입장 표명이 없죠?

    .

    .

    여론이 뜨거워진다.

    댓글들은 서로 나뉘어 싸우기 시작했다.

    고인물이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쪽과 고인물에게 실망했다고 하는 쪽, 그리고 한 발 물러나 고인물의 입장 표명을 기다리는 쪽.

    하지만 어찌 되었건 간에, 고인물의 무차별 연쇄 PK는 화제에 오르고 있었다.

    각종 포털사이트 인기검색어에 ‘고인물’이 오를 정도이니 말 다한 셈이다.

    사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저 괴인이 고인물일 가능성은 낮다.

    고인물은 현재 부동의 아마추어 비공식 랭킹 1위.

    프로랭킹 비공식 1위인 마동왕과 더불어 현 한국 랭킹을 양분하고 있는 ‘쌍벽(雙璧)’중 하나다.

    막대한 광고료와 후원 수익과 같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먹고 사는 처지에 대중들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 행동을 할 리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서 먹고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기에 취해 짐승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들이 심심찮게 있는 바닥이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스트리머, BJ, 작가, 스포츠선수, 게이머, 연예인들이 자신들을 사랑해 주는 팬들을 개, 돼지 취급하다가 골로 가 버리지 않았는가?

    아니나 다를까.

    ↳ 피지컬이랑 템트리로 봐서는 진짜 고인물 맞는 것 같다

    ↳ 저건 고인물이 아니다 썩은물이지...

    ↳ 썩은물ㅋㅋㅋㅋㅋ맞네

    ↳ 고이다 못해 썩어버린 것....

    ↳ 만약 저 연쇄 PK범이 진짜 고인물님이면 저는 정말 실망할 것 같아요ㅠㅠㅠ

    댓글들의 반응에는 점점 날이 서기 시작했다.

    ‘고인물’은 ‘썩은물’로 불리기 시작했다.

    원래 사람들은 영웅의 탄생보다 몰락에 더욱 더 열광하는 법.

    고인물을 싫어하는 몇 안 되는 이들 역시도 이때다 싶어 부화뇌동하기 시작했다.

    질투, 원한, 애증 등등.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이 키보드 싸움에 합류한다.

    …….

    그리고.

    여기 미묘한 태도의 악플러가 하나…….

    “이 X끼 봐라, 내가 언젠가 본색을 드러낼 줄 알았지!”

    모니터를 보며 욕을 하고 있는 남자.

    그는 바로 유창이었다.

    유창은 모니터 속의 고인물, 아니 썩은물을 보며 열을 내고 있었다.

    “누나! 이 자식 봐! 역시 쓰레기 놈이었어! 그렇게 강해져서 뭐 하나 했더니 뉴비들이나 죽이고 다니는 것 봐라 이거, 이거. 이렇게 양민학살하면 재밌나?”

    말을 마친 유창은 이때다 싶어 키보드를 잡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큰형님’ 놈한테 낼 이번 달 상납금 때문에 골치 아팠는데, 그래도 이거 보니 속이 좀 풀리긴 하네. 댓글도 달아야지. 고… 인… 물… 이… 아니라… 썩… 은… 물… O… U… T…….”

    하지만 유창은 엔터키를 누르지 못했다.

    따-악!

    유다희가 유창의 뒤통수를 강타했기 때문이다.

    “와오 씨! 왜 때려!? 또라이X아!”

    유창은 빽 소리쳤지만.

    “…뒤질?”

    “…….”

    이내 유다희의 눈빛을 보고 찔끔하며 자리를 피한다.

    한편.

    유다희는 무표정한 얼굴로 동영상 속의 고인물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건 아냐.”

    유다희는 말했다.

    “뭐?”

    유창이 묻자, 유다희는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이거 고인물 그놈 아냐.”

    유다희의 단호한 말에 유창은 잠시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뭐래. 복장이나 컨트롤이나 피지컬이나 다 고인물 풀세트구만. 아니, 이제 썩은물인가?”

    그러나 유다희는 여전히 고개를 젓는다.

    “아냐. 나는 알 수 있어.”

    “뭘 봐서?”

    “여자의 촉이야.”

    유다희는 한 번 더 단호하게 말했다.

    유창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네, 다음 촉나라 출신.”

    “…….”

    “뭐, 누나 촉이 맞든 틀리든 간에. 좋은 기회 아냐? 고인물 놈의 평판을 끌어내릴.”

    유창은 동영상 속의 괴인 ‘썩은물’을 보며 말했다.

    하지만.

    “…….”

    유다희는 여전히 침묵을 고수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뭐지? 이 더러운 기분은.’

    어쩐지 미묘한 마음이 든다.

    그토록 밉고 또 미운 놈이 저 고인물이다.

    어찌나 미운지 자다가도 잠이 안 와 벌떡벌떡 일어날 정도다.

    제일 좋아하는 TV에 나와 술맛을 떨어트리질 않나, 잡으려고 벼르고 있던 몬스터를 스틸해서 밥맛을 떨어트리질 않나, 꿈에 등장해서 잠맛을 떨어트리질 않나.

    하여간 진짜 X같은 X끼였다.

    …하지만.

    놈이 부당한 일로 다른 사람들에게 욕을 먹고 있는 것을 보자 기분이 몹시 나쁘다.

    ‘까도 내가 깐다!’

    유다희는 입술을 깨물었다.

    고인물 놈의 몰락은 정말 절실하게 원했던 것이지만, 그것이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의 손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은 싫다.

    유다희가 생각하기에 그들은 ‘자격’이 없었다.

    제까짓 것들이 이제 와서 감히 무슨 낯짝으로 고인물을 끌어내려?

    그동안 물고 빨고 해 주면서 잔뜩 키워 준 것들이 누군데?

    “애초에 늬들은 별로 당해 본 적도 없잖아! 적어도 나 정도는 당해야…”

    유다희는 이를 으득 갈았다.

    고인물 놈의 머리통에 도끼날을 박아 버리고 싶은 것은 지금도 여전하다.

    하지만 그것은 내 손으로 직접 박아야 의미가 있는 거지 남이 해 주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나는 먹방을 보기보다는 직접 가서 먹는 스타일이니까.’

    …라고, 유다희는 이 미묘한 기분의 정체를 규정하기로 했다.

    “아무튼, 그놈을 죽이는 건 나만 되는 거라고! 다른 놈 손 타면 안 된단 말야!”

    그녀는 펄펄 뛰며 말했다.

    “어쨌든 간에. 고인물 그 X끼는 절대로 양학이나 하고 다닐 놈이 아냐. 뉴비 죽이는 건 너무 쉬워서 재미도 없고 스릴도 없고, 무엇보다도 돈이 안 되잖아!”

    가장 명확한 이유를 짚어내는 유다희였다.

    그렇다.

    뉴비를 죽이는 것은 돈이 안 된다.

    오히려 장기적으로 보면 돈이 줄어든다.

    스트리머는 인기에 편승해서 먹고사는 직업이니까.

    유다희는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그래, 내가 그놈을 잘 알지. 절대로 그럴 리 없어. 저 움직임만 봐도 그래, 고인물 그놈이었으면 저기서 유턴을 하지 않고 그대로 돌진해서 더블 킬을 했을걸? …그리고 여기서 바보같이 멈칫하지 않고 바로 물 흐르듯 연계해서 트리플 킬! …이때 백스텝으로 쿼드라 킬! …그 뒤에 자연스럽게 점프로 펜타킬! …이쯤은 나도 했겠다! 크라켄도 잡은 그 놈이 이렇게 둔할 리가 없지, 으흠! 음!”

    유다희는 동영상 속 ‘썩은물’의 움직임을 보며 쉬지 않고 외쳤다.

    모니터에 침이 튀었지만 그런 것 따위는 보이지도 않는 모양.

    어지간한 애청자나 열혈팬보다도 고인물을 잘 아는 그녀였다.

    “아무래도 마왕님한테 한번 문의를 드려 봐야겠어. 고인물이랑은 두 번이나 겨뤄 본 적 있으시니 지금은 연락하고 지내실지도 몰라. …애초에 지금 이놈을 잡을 수 있을 정도의 강자는 그분뿐이기도 하고.”

    그녀는 재빨리 핸드폰을 눌러 마동왕의 번호로 연결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그녀의 눈은 모니터 속 썩은물에만 고정되어 있다.

    지금 이 순간.

    마동왕보다도 신경이 쓰이는 쪽은 아무래도……?

    *       *       *

    …한편.

    유창은 그런 누나의 모습을 보며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언젠가 이렇게 생각했던 적이 있다.

    과거의 ‘어떤 사건’ 이후로, 누나는 변했다.

    암울한 삶을 저주하며 골방으로 숨기에만 급급했던 누나였다.

    재활을 위해 게임에 손을 댔을 때도 누나는 부정적인 생각으로만 가득했다.

    하지만 마동왕의 출현 이후, 누나는 처음으로 삶에 목적을 찾은 듯 보였다.

    처음으로 뭔가에 빠져 보았으며 처음으로 현실에서의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유창은 지금 ‘썩은물 사태’를 보며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기분 탓일까?

    고인물에게 당하기 시작한 뒤로.

    그리고 그놈을 증오하게 된 뒤로.

    어째 누나가 점점 더 활기차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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