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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174화 (174/1,000)
  • 174화 어린 여왕님의 펫이 되었습니다 (1)

    대회가 열리기 이틀 전.

    음, 정확히는 이틀 하고도 16시간 전.

    나는 한 던전을 공략하고 있었다.

    -띠링!

    <‘포자늪 수렁지대’에 입장 하셨습니다>

    귓가에 들려오는 알림음.

    주위를 살피자 진득한 점액과 풀썩이는 포자로 뒤덮인 늪지대가 보인다.

    <포자늪 수정지대> -등급: C

    늪지대 주변은 온통 눅눅하고 퀴퀴하다.

    멀쩡한 식물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커다란 버섯이 이리저리 뒤틀린 채 높이 솟았고 솜털 같은 곰팡이가 잎사귀처럼 잔뜩 피었다.

    땅을 뒤덮고 있는 관목이나 덤불들은 거의 대부분이 곰팡이였다.

    “…흠.”

    나는 피카레스크 마스크를 뒤집어썼다.

    입 안으로 들어오는 포자는 시큼털털한 맛이 났다.

    숨을 쉴 때마다 이것들이 밀려들어오는 통에 아주 귀찮다.

    퍼석- 퍼석- 퍼석-

    발을 내딛을 때마다 곰팡이 가루가 날리는 늪지대로 한참이나 들어가자, 이내 몬스터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에에에에에…….]

    [게에에에엑…….]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지네, 딱정벌레 류의 몬스터들이 수렁늪 근처를 어기적 어기적 배회하고 있었다.

    탁하게 풀린 동공, 어딘가 묘하게 둔한 움직임.

    기존에 알던 곤충들의 이미지가 아니다.

    나는 이것들을 슬슬 피해 점점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낯익은 몬스터 하나가 보인다.

    [기익… 기이익…….]

    시야를 가득 채울 정도로 커다란 거미.

    살이 통통하게 오른 이 커다란 거미는 멍한 표정으로 버섯의 갓 아래 웅크리고 있었다.

    <감염된 젖거미> -등급: B / 특성: 독, 벌레, 매복, 갹출

    -크기: 9.5m.

    -서식지: 포자늪 수렁지대

    -강력한 힘을 가진 충왕종도 이 포자에는 저항하지 못한다는 것이 밝혀진 최초의 사례이다.

    충왕족 특유의 영성(靈性)은 사라졌지만 맹목적인 전투본능만은 그대로 남아 의미 없는 싸움을 계속한다.

    젖거미.

    아주 친숙한 몬스터가 아닌가?

    하지만 이 녀석은 전의 그 위협적인 모습을 모두 잃어버렸다.

    거미줄로 은신처를 만들어 매복하던 골치 아픈 습성은 사라지고 지금은 그저 탁하게 풀린 눈으로 늪지대를 하염없이 배회할 뿐.

    [기이이익…!]

    젖거미는 나를 향해 바로 달려들었다.

    “쳇.”

    나는 샌드웜의 망토를 뒤집어써 ‘흙장난’ 특성을 발동했지만 운이 나빴는지 바로 발각되었다.

    파삭-

    젖거미의 앞다리가 뒤에 있던 버섯의 밑동을 반으로 갈라 버렸다.

    풀썩-

    버섯이 무너지며 또다시 포자들이 물씬 피어올라 나와 젖거미를 뒤덮었다.

    그러자.

    불룩! 불룩! 불룩!

    젖거미의 몸 곳곳에 난 버섯들과 곰팡이들이 더욱 더 커진다.

    [기이이이…….]

    젖거미는 이제 입에서 침을 흘리기 시작했다.

    원래 탁하던 눈이 더욱 더 탁하게 변했다.

    이 녀석은 한 층 더 크고 흉악해진 몸으로 나를 덮쳐 온다.

    하지만.

    “미안, 시간이 많이 없어서 말이야.”

    나는 손을 빠르게 놀렸다.

    일반적으로 젖거미를 잡기 위해서는 머리와 배를 잇는 하단부 배자루나 허파, 밥통홈에 칼자국을 내줘야 한다.

    하지만, 나는 오로지 젖거미의 몸 외부를 뒤덮고 있는 버섯들을 제거해 나가고 있었다.

    픽- 픽- 픽- 파삭!

    깎단을 거꾸로 쥐고 야구배트처럼 휘두르자, 젖거미의 몸에 붙은 버섯들이 야구공처럼 날아간다.

    몸에 돋아난 십수 개의 버섯들을 모두 떼어내자.

    쿵!

    젖거미, 아니 감염된 젖거미는 그대로 땅에 퍼져 버렸다.

    꾸물…꾸물…꾸물…….

    젖거미는 몸을 덮고 있는 버섯들이 사라지자 마치 뇌의 기능을 잃은 것처럼 방황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젖거미를 뒤로하고 잽싸게 튀었다.

    ‘굳이 잡몹들을 다 잡을 필요는 없지.’

    수렁늪 지대에 널린 것이 버섯이다.

    이 버섯은 특수한 포자를 내뿜는데 다른 생물체들에게는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지만 유독 벌레 타입 몬스터들에게는 치명적인 변이를 일으킨다.

    이 포자에 닿은 벌레 몬스터는 크기가 두 배 가까이 커지고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흉폭해진다.

    심지어 위험등급까지 1랭크 상승할 정도다.

    다만 이 포자에 닿는 순간 전의 행동 패턴들은 전부 사라지고 오로지 아주 단순한 전투 본능만이 남게 된다는 것이 다행일까?

    젖거미처럼 상대하기 귀찮은 공격패턴을 가진 녀석도 포자에 감염되는 순간 그저 그런 육전형 야수가 될 뿐이다.

    “어디보자, 이쯤인데?”

    나는 곰팡이 넝쿨과 버섯 점액들을 파헤치며 계속해서 늪지대 심층부로 향했다.

    이윽고.

    내 귓가에 희미한 알림음이 스쳐 지나간다.

    -띠링!

    <‘와두두 둥지 (1)’에 입장 하셨습니다>

    <최초 방문자: 조디악 번디베일>

    내가 발견한 곳은 ‘와두두 둥지’

    평균 난이도 B+등급의 히든 던전이었다.

    늪지대 최심층부로 통하는 좁고 깊은 굴.

    하지만 아쉽게도 내가 최초 방문자는 아니다.

    ‘앙신(殃神) 조디악’

    녀석이 악의 고성에 들어오기 전 이 맵을 들렸다가 간 것 같았다.

    그 증거로 놈은 ‘잭 오 랜턴’과의 싸움 당시 이곳의 최종 보스가 떨구는 목걸이를 사용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글쎄? 놈이 과연 이 던전의 진가를 알아봤을까?’

    나는 깊은 굴 안으로 들어가며 생각했다.

    일반적인 던전은 한번 클리어 하고 나면 다시 클리어 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 특이점이 발생하는 던전이 있다.

    한번 클리어한 뒤 추가로 다시 클리어하면 설정이나 시스템 등이 전과는 미묘하게 달라지는 던전.

    그것이 이 와두두 둥지의 특징이다.

    아니나 다를까.

    던전 안으로 들어가니 수많은 몬스터들이 보인다.

    <와두두 일반병> -등급: C+ / 특성: 고속재생, 갹출, 하수인, 맹독

    -서식지: 와두두 둥지

    -크기: 3m.

    -작은 곤충의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있지만, 그 안에 든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와두두 정예병> -등급: B / 특성: 고속재생, 갹출, 하수인, 맹독

    -서식지: 와두두 둥지

    -크기: 6m.

    -큰 곤충의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있지만, 그 안에 든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와두두 거신병> -등급: B+ / 특성: 고속재생, 갹출, 하수인, 맹독

    -서식지: 와두두 둥지

    -크기: 9m.

    -거대한 곤충의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있지만, 그 안에 든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와두두.

    이것은 무엇인가?

    언뜻 보기에, 와두두는 벌레 타입의 몬스터로 보인다.

    어떤 와두두는 지네의 모습을 하고 있고 어떤 와두두는 딱정벌레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 외에도 어떤 놈은 거미, 어떤 놈은 벌, 어떤 놈은 사마귀, 어떤 놈은 땅강아지…….

    언뜻 보기에는 한 종이 아니라 전부 다른 종의 몬스터로 보일 정도다.

    하지만, 나는 이 몬스터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었다.

    ‘…곰팡이지 뭐.’

    그렇다.

    와두두는 곰팡이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곤충 타입의 몬스터에게 기생하여 그 몸을 빼앗는 무시무시한 몬스터다.

    아까 본 젖거미 역시도 시간이 지나면 와두두 포자들에게 몸을 빼앗겨 ‘와두두 정예병’으로 변할 것이다.

    와두두 포자에 몸을 빼앗긴 벌레 몬스터는 아까의 젖거미처럼 이성을 잃고 늪 주위를 배회하게 된다.

    몸은 더욱 부풀어 오른다.

    한 층 더 육중해진 피지컬로 인해 전투 능력은 크게 상승한다.

    하지만 정작 껍데기 밑에는 와두두 포자들이 가득 차 있는 것이다.

    이 와두두가 무서운 점은 숙주로 삼는 벌레 타입 몬스터들의 전투능력을 그대로 재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어떤 와두두는 딱정벌레의 몸을 빼앗아 강력한 방어력을 가지게 되는가 하면 어떤 와두두는 말벌의 몸을 빼앗아 강력한 공격력을 가지게 된다.

    땅강아지나 물방개의 몸을 빼앗은 와두두는 특수한 지형을 오갈 수 있게 되기도 한다.

    이렇게 다양한 군상의 면모를 보이면서도 하나의 종(種)으로 분류되는 몬스터는 와두두가 유일하다.

    ‘기생종(寄生種)’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서 유일하게 독자적으로 일개 종을 이루고 있는 종족이 바로 와두두인 것이다.

    하지만.

    제아무리 와두두의 생태 다양성이 굉장하다고 해도…….

    “지금은 제 점심이죠.”

    자그마치 1만 종이 넘는 벌레 타입 몬스터들에 대한 공략법을 모조리 꿰고 있는 나에게는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

    ‘척살 포인트만 알면 뭐, 그렇게 어렵지는 않지.’

    나는 눈앞에 있는 거미형 와두두를 향해 태연하게 걸어갔다.

    턱-

    거미형 몬스터의 약점은 배자루 밑이다.

    딱딱한 뚜껑처럼 되어 있는 폐서덮개판을 발로 걷어차 열면 게의 배딱지처럼 갈라지며 안쪽이 훤히 드러난다.

    그곳에는 시퍼런 허파들이 펄떡거리고 있는데 거기에다가 깎단을 한번 푹 쏴 주면 끝.

    와두두로 변해 공격패턴이 단순해진 곤충형 몬스터들은 내 손길을 피할 수 없다.

    나는 달려드는 말벌 와두두의 팔을 잡아 꺾고는 어깻죽지 사이의 견갑골 부분의 삼각지를 깎단으로 쿡 찔러 주었다.

    쥐며느리 와두두는 몸을 둥글게 말면 무적처럼 보이지만, 사실 가슴의 일곱 마디 중 3번째 마디, 배의 다섯 마디 중 3번째 마디마다 급소가 분포한다.

    딱정벌레 와두두는 뒷가슴 배판을 열면 바로 보이는 책허파를 들어내면 끝.

    물방개 와두두는 방패판 중앙, 작은 홈의 물렁물렁한 부분을 깎단으로 찌르면 끝.

    그 외 수많은 와두두들의 줄줄이 내 손에 잡혀 불구가 된다.

    와두두는 곤충의 몸을 숙주로 삼은 것이니만큼 끈질기게 달라붙지만, 내 깎단이 주는 도트 데미지에는 장사 없다.

    쿵- 쿵- 쿵-

    거대 곤충들이 줄줄이 쓰러진다.

    나는 둥지 깊은 곳에서부터 기어나오는 와두두 거신병들까지 모조리 해체해 버렸다.

    이윽고.

    나는 와두두 둥지의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갔다.

    -띠링!

    <‘와두두 둥지 여왕굴’에 입장 하셨습니다>

    <최초 방문자: 조디악 번디베일>

    와두두 퀸.

    이 늪지대를 통째로 지배하는 곰팡이 여왕이 사는 곳.

    내 기억 속 와두두 여왕은 상당히 무시무시한 몬스터였다.

    수없이 많은 와두두 군단을 이끌고 있던 와두두 여왕.

    심지어 본인의 개체값 역시도 A등급이다.

    그녀는 대격변 전까지만 해도 최고 난이도의 보스 중 하나로 으레 손꼽힐 정도로 강했다.

    하지만.

    지금 와두두 여왕은 조디악에 의해 살해당해 없는 상태.

    여왕이 리젠되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꿀렁-

    나는 점액으로 된 벽에 구멍을 뚫고 여왕의 둥지로 몸을 밀어 넣었다.

    이내, 눈앞에 커다란 둥지가 보였다.

    점액과 포자, 버섯 등등이 둥글게 뭉쳐 새의 둥지 형상을 하고 있었다.

    원래라면 여기서 거대한 몸을 가진 여왕이 등장하지만, 지금은 그저 텅 비어 있을 뿐이다.

    …….

    아니.

    마냥 텅 비어 있지는 않았다.

    “찾았다.”

    나는 둥지 중앙을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조디악.

    그 자식은 하나만 알았지 둘은 몰랐다.

    와두두 던전은 최초 클리어라는 게 별로 의미가 없다.

    두 번째 클리어.

    그것이 비로소 진짜배기인 것이다!

    “…….”

    나는 시선을 내려 둥지 중앙, 움푹하게 파인 곳을 향했다.

    [……?]

    둥지 중앙에는 작디 작은 소녀 하나가 웅크리고 앉아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키는 한 엄지손가락 정도 될까?

    흰 피부에 붉은 눈동자.

    몸을 전부 덮고 있을 정도로 긴 옥색의 머리가 아름다운 소녀였다.

    […웅앵?]

    작은 소녀는 나를 바라보며 해맑은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한다.

    “…안녕?”

    나는 몸을 숙여 이 작은 소녀와 시선을 맞췄다.

    수렁늪 지대의 거대 군단을 통째로 지배하고 있는 와두두 족의 여왕!

    그것의 유아기(乳兒期) 모습과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