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173화 (173/1,000)
  • 173화 생태계 교란종 (3)

    매드독의 마지막 주자는 마법사 오승훈이었다.

    작은 키, 동글동글한 얼굴.

    아직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앳된 소년이다.

    하지만 겉보기와는 달리 그의 손속은 상당히 매섭다.

    또한 티어 역시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한국 랭킹 14위.

    아시아 랭킹 31위.

    구단 내 랭킹 1위.

    한 팀의 에이스가 되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티어다.

    하지만.

    그가 출전하자 캐스터들은 다소 의아함을 표했다.

    [아, 마지막 주자는 오승훈 선수입니다!]

    [어라? 이건 다소 예상 못했던 엔트리가 아닙니까? 아무리 오승훈 선수가 팀 랭킹 1위라고 해도…]

    [오승훈 선수가 분신술을 쓰는 강력한 마법사인 것은 맞습니다만, 강력한 광역기를 주로 쓰는 마동왕 선수와는 상성이 별로 안 좋을 텐데요?]

    [마지막 라운드에서 역상성 베팅을 한다는 것은… 뭔가 노림수가 있는 배치라고밖에는 볼 수가 없습니다, 매드독!]

    [올킬 당할 위기에서 역올킬의 기회를 잡은 국K-1! 이에 강력한 배수진으로 맞서는 매드독! 승부의 귀추가 주목되는 순간입니다!]

    캐스터들의 중계와 함께, 관중들의 환호도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캐스터들이나 관중들의 반응은 거의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집중해야 할 대상은 오직 하나뿐.

    ‘잘 내보냈네.’

    나는 오승훈의 등장을 이미 예측하고 있었다.

    비록 과거 국K-1과 매드독의 대결에서 그는 나오지 않았었지만 이후로 펼쳐지는 경기에서 그의 무시무시한 힘을 여과 없이 구경했던 것이다.

    ‘확실히 나를 잡기에는 최적의 카드지.’

    일반적인 분신술은 광역기에 약하나, 오승훈의 분신술은 다르다.

    분신술 카운터라고 불리는 광역기, 그리고 오히려 광역기에 카운터를 거는 오승훈의 분신술.

    놈에게 어설프게 광역기를 썼다가는 오히려 내 쪽이 비명횡사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 사실은 앞으로 15년의 미래를 살아 본 나만이 알고 있다.

    ‘…어디 보자.’

    내가 침착하게 대응책을 떠올리고 있을 때.

    “잘 부탁해요.”

    오승훈이 나를 향해 인사를 건네 왔다.

    그는 한쪽 눈을 찡긋했다.

    어린 천재의 당돌한 도발.

    그것을 신호로 오승훈의 몸이 여러 개로 분열하기 시작했다.

    츠츠츠츠츠츠…….

    이윽고, 수십여 개에 달하는 분신들이 대지에 발을 디딘다.

    약 40명에 달하는 마법사들이 나를 포위했다. 전부 다 본체와 똑같이 생긴 분신들이다.

    “어디 받아내 보시죠!”

    ‘죽음부름 협곡’에 울려 퍼지는 40개의 메아리.

    동시에, 40명이나 되는 마법사들에게서 벼락줄기들이 쏟아진다.

    4클래스의 강력한 마법 특성 ‘체인 라이트닝’이다.

    콰콰콰콰쾅!

    요란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벼락들은 구불구불 휘어진 용암대지의 물결을 따라 불규칙적으로 퍼져나간다.

    우르릉!

    굉음과 함께, 커다란 바위들이 박살나 흩어졌다.

    하나같이 고압전류가 흐르는 파편들이다.

    “…흠.”

    나는 쏟아지는 돌조각과 벼락줄기들을 피해 움직였다.

    40개의 분신들은 하나하나가 본체와 비슷한 움직임을 흉내 내어 움직이기에 상대하기 까다롭다.

    나는 수많은 분신들 틈에 끼어있을 본체를 찾아 눈알을 빠르게 굴렸다.

    아무래도 분신은 본체에 비해 움직임이 좀 어눌한 것이 특징.

    하지만.

    언뜻 보기에 오승훈의 분신들은 본체와 아무런 차이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움직임이 복잡한 근접 딜러의 경우에는 본체와 분신의 움직임을 구분하기가 쉽지만, 상대적으로 움직임이 단조로운 마법사의 경우에는 분간이 쉽지 않다.

    쏟아지는 포격과 급변하는 지형들을 살피면서 분신과 본체의 차이를 구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때.

    나는 오승훈의 마법 공격을 피해 움직이다가 놈의 분신 하나와 마주쳤다.

    콱!

    나는 분신을 공격하지 않았다.

    다만 분신의 목덜미를 잡아 저 멀리 내던져 버렸을 뿐이다.

    마치 날파리를 치우듯.

    …….

    왜 죽이지 않고 그냥 내던지냐고?

    그건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쿵!

    오승훈의 분신이 돌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자,

    욱신!

    이상하게도 내 엉덩이가 아파 온다.

    그렇다.

    반사 데미지!

    오승훈은 ‘분신’, ‘갹출’, ‘하극상’ 등의 반격 특성으로 무장하고 있는 마법사이다.

    나는 머리를 굴려 이 특성들의 능력을 떠올렸다.

    ‘분신’: 최대 100명에 이르는 분신을 만들어 낸다.

    분신은 본체와 능력치가 동일하며 생성된 순간부터 1초당 최대 HP의 1%가 감소한다.

    ‘갹출’: 자신이 파티의 리더였을 때 아군에게 데미지를 떠넘길 수 있다.

    단 이 경우 자신의 특성이나 버프 역시도 함께 떠넘겨진다.

    ‘하극상’: 자신보다 레벨이 높은 적에게 공격당했을 때 피어와 함께 반사 데미지를 분출한다.

    자신보다 레벨이 낮은 이의 공격에는 발현되지 않는다.

    이 3가지가 오승훈을 대표하는 연계 특성이다.

    분신의 좋은 점은 데미지의 한계가 없다는 것.

    가령 최대 HP가 100인 분신에게 5,000의 데미지가 가해지면 입은 데미지가 –100으로 처리되는 것이 아니라 –5,000 그대로 처리된다는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구만.’

    나는 피식 웃었다.

    만약 오승훈을 상대로 섣부르게 지진 등의 공격을 시전했다면?

    나는 40마리의 분신이 한꺼번에 뿜어내는 반사 데미지에 고스란히 노출되었을 것이다.

    더 볼 것도 없이, 일격에 골로 갔겠지.

    1. 분신을 공격하지 않으면 분신들이 쏟아내는 마법에 피격당해 사망.

    2. 분신을 공격한다면 분신들이 반사하는 반사 데미지에 피격당해 사망.

    빠져나갈 구석이 없다.

    고로 오승훈의 분신 메타는 무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실제로 오승훈과 김정은 덕분에 과거 기억 속의 매드독은 국K-1 등의 강팀들을 연달아 누르고 우승컵을 차지했으니까.

    아마 이번 리그에서도 그렇게 될 것이다.

    ‘…상대가 나만 아니었더라면 말이지.’

    나는 오승훈과 그의 분신들을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지금 시대의 일반적인 랭커들이야 저 분신 메타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지만… 나는 다르다.

    ‘어디에나 약점은 있는 법!’

    오승훈의 분신이 정말로 무적이었다면 사람들이 지난 15년간 분신 메타만 주구장창 키웠을 것이다.

    하지만, 닳고 닳은 고인물들은 기어코 이 분신 메타의 약점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너무나도 치명적인 약점을 말이다.

    사삭-

    나는 쏟아지는 마법들 사이로 재빨리 움직였다.

    그리고 40명의 분신들 사이, 중간 즈음에 숨어 있는 오승훈의 본체를 잡아냈다.

    “잡았다 요놈!”

    내가 오승훈을 향해 주먹을 날리자.

    “히익!?”

    오승훈의 입가에 깃들어 있던 미소가 싹 사라졌다.

    그는 뒤로 허둥지둥 물러나는 동시에 아무 방어마법이나 시전 했다.

    우지지지직-

    지면에서 커다란 머드 월(Mud wall)이 몸을 일으켰다.

    방어력이 낮은 대신 소환 시간이 짧은 흙벽.

    퍼펑!

    하지만 나와는 상성이 안 좋다. 흙을 부수는 게 지진 아니던가?

    딱!

    지진의 힘이 깃든 내 주먹은 흙벽을 부수고 오승훈의 머리통에 핵꿀밤을 날렸다.

    “으엑!?”

    처음 겪는 이 상황에, 오승훈은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났다.

    너무 놀라서 데미지를 분신들에게 나누어 뿌리는 것도 잊은 모양이다.

    오승훈은 나에게서 멀리 떨어진 채 얼떨떨하게 물었다.

    “아, 아니 내가 진짜인 줄 어떻게 안 거죠!?”

    그가 눈을 휘둥그렇게 뜨자 40명의 분신들도 모두 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뻔하지. 분신들은 눈을 안 깜빡이잖아.”

    그렇다.

    시선(視線).

    이것이 가장 치명적인 단점이다.

    분신들은 눈을 깜빡이지 않는다.

    “후… 후후후… 그래요? 시선? 그런 차이가 있었단 말이죠?”

    오승훈은 이내 침착함을 되찾았다.

    이내, 그는 눈을 깜빡이지 않은 채 버티기 시작했다.

    “어떤가요! 이제는 모르겠지요!?”

    붉게 충혈된 눈에는 촉촉한 눈물이 맺힌다.

    눈 매운 것을 꾹 참고 부릅뜨느라 고생이 많다.

    호다다다닥-

    그는 또다시 수많은 분신들 틈이 뒤섞였다.

    그 와중에 분신의 수는 더욱 늘어나 이제 거의 70명에 육박할 정도.

    하지만.

    “또 잡았다 요놈.”

    나는 또다시 70명의 분신들 속에서 오승훈의 본체를 잡아챈다.

    딱!

    요란한 꿀밤과 함께, 오승훈의 HP가 뭉텅 깎인다.

    “어, 어떻게!? 이번에는 눈도 안 깜빡였는데!?”

    오승훈이 외치자, 나는 또다시 어깨를 으쓱했다.

    “체온으로 구분하는 거지.”

    “…네? 뭘로요?”

    “체온.”

    “…그게 뭐요?”

    “몸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잖아. 본체의 심장에서 멀어진 분신들은 체온이 낮아져서 차갑거든.”

    나는 옆에 있던 분신을 고이 접어 날려 보내며 말했다.

    그렇다.

    분신은 만지면 몸이 차갑다.

    근처에만 가도 미묘하게 온도가 낮아질 정도로.

    “이익!”

    오승훈은 또다시 내 손에서 벗어나 도망쳤다.

    이미 HP가 상당히 닳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호다다다다닥-

    오승훈은 또다시 도망쳐 분신들 틈에 섞였다.

    이제 분신들의 수는 거의 100명에 가깝게 늘어났다.

    심지어.

    쿠르르르륵-

    분신들의 손에서 일제히 불길이 일어나 주변을 태우기 시작했다.

    100명의 오승훈들이 비릿하게 미소 지었다.

    “하하하하하! 자 어떤가요!? 이제 체온은 무의미하게 됐습니다!”

    주변이 온통 뜨거워지자 온도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게 됐다.

    하지만.

    “요 잡았다 또놈.”

    나는 또다시 100명의 분신들 속에서 오승훈의 본체를 잡아챈다.

    딱!

    요란한 꿀밤과 함께, 오승훈의 HP가 또 뭉텅 깎인다.

    “아니 X! 또 왜!?”

    오승훈은 충혈된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는 나를 올려다본다.

    나는 또다시 어깨를 으쓱했다.

    “색깔로 구분할 수도 있어.”

    “뭐라구요!?”

    “분신은 가면 갈수록 색깔이 옅어져. 물이 빠지는 것처럼 조금씩 조금씩 말이지.”

    그렇다.

    분신은 거듭되어 만들어질수록 계속 색이 옅어진다. 마치 물이 빠지는 것처럼.

    물론 극도로 미약한 차이긴 하지만, 나는 쉽게 구분할 수 있었다.

    한편.

    오승훈은 황당한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아니 그걸 대체 어떻게 아는 거야!? 맨 눈에 그게 보여!?”

    물론 특수한 아이템이나 물약, 버프의 효과를 빌리면 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대회 시작 전에 엄격한 도핑 테스트를 통해 걸러진다.

    24시간 안에 먹거나 받은 모든 물약이나 버프 등은 전부 해제된 상태로 경기장에 들어오는 것이 룰.

    이를 어기면 바로 실격이다.

    때문에, 경기장에 들어가기 전 주최측에서 나온 신관들이 선수들의 몸에 걸린 특수효과들을 엄격하게 제거하곤 한다.

    신성 마법 ‘리그레션(regression)’

    대상의 몸에 걸린 모든 (24시간이 지나지 않은) 상태이상들을 캔슬시키는 마법이다.

    참고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 안에 존재하는 모든 물약과 버프 등의 제한시간은 최대 24시간.

    이것을 넘어가는 상태이상이나 버프는 없다.

    따라서 리그레션 마법에 걸리면 몸에 걸린 모든 버프나 물약 효과 등은 초기화된다.

    이런 이유로 그 누구도 대회의 도핑 테스트를 뚫고 물약이나 버프 등을 가지고 들어갈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핑을 좀 하긴 했지.’

    그렇다.

    나는 뽕쟁이다.

    그것도 대회의 도핑 테스트에 절대 걸리지 않을 방법으로 약을 빠는.

    나는 분신들을 만드느라 MP가 한계까지 떨어진 오승훈을 보며 씩 웃어 주었다.

    지금 내 머릿속에는 대회가 시작되기 직전,

    그러니까 정확히 이틀 하고도 16시간 전의 일이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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