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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172화 (172/1,000)

172화 생태계 교란종 (2)

매드독 멤버들 3명을 연달아 사냥하는 데 걸린 시간 5분 52초.

그러니까 한 명을 잡는 데 약 2분 정도가 걸렸다는 뜻이다.

나는 혀를 한번 찼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는데?’

조금 더 서둘러야겠다.

나는 가면을 고쳐 썼다.

내 얼굴을 덮고 있던 흰 가면은 이제 시뻘겋게 물들어 있다.

까락-

가면은 손이 닿을 때마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그리고 마치 원래 내 얼굴이라도 되는 것처럼 단단하게 밀착해 온다.

-<피카레스크(Picaresque) 마스크> 가면 / A+

사이코 연쇄살인마의 얼굴 가죽을 도려내어 그대로 건조했다.

쓰는 순간, 집계는 시작된다.

-특성 ‘연쇄살인’ 사용 가능 (특수)

-공격력 +42

※ 이 가면은 착용자의 카르마 수치를 대신 적용받습니다.

※ 가면을 착용한 순간부터 Kill 수에 따라 공격력이 증가합니다.

※ 1 Kill 당 상승하는 공격력은 1입니다.

※ Kill 수의 집계는 오로지 플레이어 캐릭터에 한정되어 이루어집니다.

도플갱어의 왕에게서 ‘뜯어낸’ 아이템.

이 마스크를 쓰고 살인을 하거나 그에 준하는 죄를 저질렀을 경우 가면이 그 카르마 수치를 대신 흡수한다.

나는 마동왕 모드일 때 항시 이 가면을 쓰고 다니는데 이 대회에 참가한 뒤 벌써 킬 수가 42나 쌓였다.

즉, 이 가면을 쓰고 있으면 나의 공격력이 +42된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엔 아직 없는 것이나 다름없이 미세한 수준에 불과하지만 보통 공격력 300~500대의 무기를 가지고 있는 프로게이머들에게는 이것만 해도 상당한 양으로 여겨질 것이다.

“다음. 빨리빨리.”

나는 협곡 끝에서 대기하고 있는 ‘매드독’ 멤버들을 향해 손짓했다.

이윽고.

쿵-

협곡 위에서 다음 선수가 떨어져 내렸다.

“…음?”

나는 눈앞에 드리워지는 거대한 그림자에 주목했다.

이번에 출전한 선수는 아까 나왔던 방철우와 상당히 비슷한 외형을 하고 있었다.

크고 뚱뚱하다.

딱 그렇게 묘사할 수 있는 체형.

2미터가 넘어가는 키에 수백 킬로그램은 되어 보일 듯한 몸매.

방철해.

형인 방철우의 동생이다.

방철우가 큰 키에 근육질의 몸을 가졌다면 방철해는 큰 키에 육중한 몸을 가졌다.

보디빌더와 씨름선수의 차이랄까?

뭐, 어디까지나 외형만 놓고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형이랑 대장님의 원수를 갚겠다.”

방철해는 나를 보며 콧김을 쒹쒹 내뿜었다.

“…….”

나는 눈을 가늘게 좁혔다.

방철해. 한국 랭킹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20위권 내일 것이다.

이 녀석 역시도 형인 방철우와 마찬가지로 초반에만 반짝했던 랭커.

하지만 게임을 접었는지 어쨌는지, 언젠가부터 랭킹에서 사라지고 매스컴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는 인물이다.

착-

나는 두 주먹을 말아 쥔 채 자세를 잡았다.

퍼펑!

내가 주먹을 내뻗자, 방철해의 배에 커다란 주먹 자국이 생겼다.

하지만.

“후후후.”

방철해는 그저 웃을 뿐이다.

놀랍게도, 그는 뒤로 단 1mm도 밀려나지 않았다.

그뿐이 아니였다.

츠츠츠츠-

녀석은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 힐을 쓰기 시작했다.

방철해는 의외로 힐러였던 것이다!

그는 낄낄 웃으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챌린지리그에서 투신이 신박을 잡는 걸 봤지. 그때 힐 파훼법 알려 준 사람이 너라며?”

방철해의 말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렇다.

예전에 마태강이 엘리트즈의 힐러이자 탱커인 이근형과 싸울 때 힐 마법을 무효화시키는 방법을 알려 준 적 있다.

힐러가 자신의 위치를 계산해 힐을 쓸 때 넉백기를 이용해 힐러를 뒤로 날려 버리는 것.

이 경우 힐 마법이 미세한 차이로 뒤늦게 터져 미스가 뜨는 것이다.

이를 잘 이용하면 힐러의 자힐을 자신이 대신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방철해는 나를 향해 검지를 흔들어 보였다.

“나의 ‘육중한 바디’는 모든 넉백기를 씹어 뭉개 버리지.”

그렇다.

방철해는 ‘육중’, ‘천근추’ 등의 무게 증가 특성으로 전신을 도배하고 있는 듯했다.

거기에 강력한 힐 마법까지 있으니 자힐을 막을 도리가 없다.

그는 나를 보며 낄낄 웃었다.

“그뿐이냐! 이런 공격도 가능하다!”

이내, 방철해는 옆으로 뛰었다.

쿵! 쾅! 쿵! 쾅!

녀석이 달려가는 방향은 꽤나 지대가 높은 지형이었다.

펄쩍!

놀랍게도, 놈은 1라운드에서 김정은이 만들어 놓은 스프링 모양의 식물을 밟고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

나는 옆으로 슬쩍 피했다.

그러자, 방철해의 무거운 몸이 포탄처럼 떨어져 내린다.

콰-쾅!

놈은 나를 ‘깔아뭉갤’ 셈인가 보다.

“그렇군. 넉백이 안 되니 한번 깔리면 들어 올릴 수도 없다 이건가.”

‘육중’, ‘천근추’ 등의 넉백 불가 특성은 수평이 아니라 수직으로도 적용된다.

때문에 놈에게 한번 깔리면 어지간해서는 들어 올릴 수가 없는 것이다.

들어 올리는 것도 밀어내는 것으로 볼 수 있으니까.

꽤나 머리를 잘 쓴 메타라고 할 수 있겠다.

“하하하하! 한번 깔리면 아무리 너라고 해도 끝이야!”

방철해는 또다시 스프링 식물을 향해 뛰었다.

그리고 나를 향해 펄쩍 뛰어들었다.

“죽어도 안 밀린다!”

그는 나를 향해 떨어져 내리며 껄껄 웃었다.

이에, 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짧게 대꾸했다.

“제발 밀리지 마라.”

나는 양 주먹을 조금 더 꽉 말아 쥐었다.

그리고, 떨어져 내리는 방철해의 배를 향해 난타를 시작했다.

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

무수히 많은 주먹이 땅에서 하늘로 쏘아진다.

“요오즘 젊은 것들은 당최, 몇 대 치기만 해도 멀리 나가떨어지니 치는 맛이 읎어~”

하지만 투덜대면 뭘 하나?

플레이 시간 3천도 되지 않는 이들이 랭커라고 돌아다니는 마당이다.

플레이 시간 7만 5천인 나에게 스릴을 줄 수 있는 PVP 상대가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러니 이렇게 튼튼한 놈이라도 쥐어 패야지 뭐.’

이렇게 오래 가는 샌드백은 오랜만이니 간만에 기분 좀 내 볼까?

펑! 펑! 퍼펑! 펑!

나의 주먹은 방철해의 복부, 안면, 다리 등등을 골고루 난타했다.

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무다!

그의 몸은 나의 주먹에 닿아 더 이상 아래로 낙하하지 않는다.

하지만 넉백 불가 특성이 있기 때문에 위로 솟구치지도 않는다.

방철해는 붕 뜬 채로 허공에 ‘갇혀’버린 것이다.

“어억! 억! 억! 으억! 컥! 이 데미지 무엇!?”

그는 땅으로 내려가고 싶은 듯 했지만, 그건 안 될 말이다.

내 주먹은 떨어져 내리는 방철해의 몸 전신을 구석구석 골고루 때려서 허공으로 띄우고 있다.

하지만 넉백 불가 특성 때문에 그는 절대로 하늘로 날아가지 않는다.

쾅! 콰쾅! 쾅!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내 주먹에는 ‘지진’과 ‘와류’의 힘이 담겨 있다.

하나하나가 지형을 뒤틀어 버릴 정도의 힘을 가진 ‘광역기’

그것들이 허공에 떠 있는 상대에게 퍼부어지자 오로지 1:1 기술로 변모했다.

콰쾅!

지진이 방철해의 몸을 때리면 그 지진파가 어디로 가겠는가?

민약 땅에 발을 딛고 있었다면 충격이 대지로 분산되겠지만,

허공에 떠 있으니 이건 뭐 어떻게 데미지를 분산시킬 여지도 없다.

우직! 우지직! 빠득!

살이 찢어지고 그 안의 뼈가 엇각으로 부러진다.

마치 정단층, 역단층처럼 뚝뚝 끊어져 나가는 뼈.

결국.

HP 0.

사망 로그아웃.

나는 방철해를 허공에 띄운 상태로 K.O시켜 버렸다.

놈은 단 한 번도 땅을 밟지 못한 채 공중 분해되었다.

정확히 19초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

나는 눈을 감았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지금 캡슐 밖의 상황이 어떤지.

열광하는 관중들의 모습이 눈에 절로 그려지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캡슐을 벗고 잠시 휴식을 취할 법도 하건만.

“다음.”

나는 바로 상대편 진영을 향해 손짓했다.

이제 마지막 라운드.

매드독 멤버 4명을 잡는 데 걸린 시간 6분 11초.

잘하면 10분 안에 전부 잡을 수 있겠다.

*       *       *

우-와아아아아아!

홀이 떠나갈 것 같은 함성.

수만 명의 관중들이 대형 스크린을 보며 열광하고 있었다.

전용진 캐스터는 도무지 믿기지가 않는다는 표정으로 중계를 진행해 나간다.

[바, 방금 보셨습니까? 방철해 선수가 어떻게 리타이어 당하는지?]

[아아, 잠깐 방철해 선수의 지난 약력 들여다보느라 못 봤습니다! 세상에 어떻게 그 새 K.O를 당하지!?]

[아니, 방철해 선수가 누구입니까!? HP랑 방어력으로만 따지면 현 한국 랭킹 1위인 ‘매머드 임요셉’과도 비교되는 선수예요! 거기에 넉백 불가 특성을 이용한 누르기 기술은 말 그대로 ‘압권’인데! 그런 랭커를 어떻게 십 몇 초 만에…!?]

[마동왕 선수! 여러모로 생태계 교란종입니다! 지금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어요! 선수 한 명에게 프로리그 전체가 압도당하고 있습니다! 이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입니까!?]

캐스터들이 이렇게 놀랐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장내는 그야말로 흥분의 도가니다.

“사랑해요 마동왕!”

“우윳빌깔 마동왕!”

마교 팬클럽은 그야말로 축제를 맞이하고 있었다.

유다희는 가슴 벅찬 표정으로 환호한다.

처음으로 인정한 ‘랭커’이자 ‘프로게이머’

처음으로 인정한 ‘타인(他人)’

…그리고 ‘남자’

마동왕은 그녀에게 있어 그런 존재였다.

‘으음, 뭐 따지고 보면 ‘처음’은 아닌가.’

순간, 유다희는 뇌리를 스치는 불쾌한 기억에 고개를 흔들었다.

확실히.

다른 게이머를 보며 진심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한 적은 마동왕 이전에 딱 한 번 있긴 하다.

‘고인물’

오로지 그만이 마동왕에 비교되는, 아니 그 이상을 웃도는 존재.

하지만 그 사실을 절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에, 유다희는 애써 잡생각을 지우고 눈앞의 마동왕에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한편.

국K-1 팀에는 웃음꽃이 만발했다.

“역시 형님이야! 역시 최고라고! 그래, 이게 마동왕이지!”

‘천재’ 이연호가 두 주먹을 불끈 움켜쥔 채 외쳤다.

예전에 마동왕의 국K-1 입단 신고식에서 그와 겨뤄 본 적이 있다.

그 싸움에서 4:1로 싸웠음에도 호되게 역관광 당한 뒤부터, 이연호는 마동왕의 골수팬이 된 상태다.

이연호는 옆을 돌아보며 물었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

하지만. 옆에 있던 마태강은 입을 다문 채 대답이 없다.

말을 씹힌 이연호의 미간 사이에 주름이 잡혔다.

“쳇, 좀 나아졌나 했더니. 여전히 재수 없는…응?”

그러나 이연호는 투덜거림을 끝맺지 못했다.

마태강이 슬며시 자기 백팩에 서 무언가를 꺼내들었기 때문이다.

<마!동!왕! 최고♥ 로열로더 가즈앗~~!!>

그것은 손수 만든 티가 나는 플랜카드였다.

“아, 그 정도임?”

“…….”

이연호의 말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마태강.

끄덕-

그 둘은 이내 서로를 향해 고개를 주억거린다.

뭔가 통한 듯한 묘한 분위기.

그때.

전용진 캐스터의 중계멘트가 들려온다.

[아! 매드독! 드디어 마지막 선수가 올라옵니다! 국K-1의 마지막 선수와 매드독의 마지막 선수가 마지막 9라운드에서 맞붙습니다!]

이윽고.

전광판에 마지막 선수의 모습이 드러난다.

이번에 등장한 이는 ‘마법사’였다.

마법사 오승훈.

한국 랭킹 14위.

하지만 팀 내 랭킹은 1위로 알려져 있다.

그의 메타는 꽤나 유명한 것이었다.

‘분신(分身) 메타’

수없이 많은 분신술을 이용해 상대방을 압살하는 것.

모든 분야, 모든 매체에서 강력한 기술로 통하는 것이 바로 이 분신술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오승훈이 나온 시점에서, 국K-1의 멤버들은 하나 같이 안심했다.

“분신술의 천적이 바로 광역기지!”

“분신 아무리 만들어 봐라! 지진 한 방에 다 날아가지!”

“마동왕 형님은 광역기 전문이라고! 분신 특성에 하드 카운터다!”

분신술 메타가 광역기 메타에 약한 것은 3군 멤버들, 아니 관객들도 안다.

아무리 많은 분신을 만들어 내도 지진이나 소나기 등의 광역기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재수 없으면 기껏 공들여 만들어 놓은 수많은 분신들이 광역기 한 방에 전멸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개인의 기량 역시도 마동왕이 압도적으로 앞선다.

어떻게 봐도 이길 수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

오로지 한 명.

엄재영 감독만은 굳은 표정으로 전광판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걸 알고도 나왔다는 건, 뭔가 있다는 것이겠지.”

그렇다.

마동왕이 광역기 메타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다.

…그런 마당에 ‘분신’ 메타를 쓰는 ‘마법사’가 나왔다?

당연히 어딘가 찜찜할 수밖에.

1라운드에서 김정은에게 4명의 에이스를 연달아 잃은 엄재영 감독으로서는 당연히 불안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리고.

명장(名將)의 불안은 적중했다.

세상 일이 언제나 뜻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이변(異變)’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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