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169화 (169/1,000)
  • 169화 국내리그 정복 (3)

    내 이름은 김정은.

    나이는 스물아홉.

    성별은 여자.

    지금부터 질문 받는다.

    .

    .

    .

    Q: 북한과는 무슨 관계?

    A: 뒤질래? 내가 이 질문 나올 줄 알았다.

    Q: 랭킹은 어느 정도인지?

    A: 언랭이야. 일부러 등록 안 했어, 모종의 이유가 있어서. 하지만 등록하게 된다면 3위 안에는 들 거라고 생각해.

    Q: 프로게이머인지?

    A: ㅇㅇ강원도 대표팀 ‘매드독’ 소속임. 참고로 주장이다.

    Q: 클베 때부터 게임을 했다고 하는데, 일반인이 어떻게 클베에 참여 했는지?

    A: 그야 내가 일반인이 아니니 했겠지?

    Q: 직업이 무엇인지?

    A: 지금은 프로게이머. 예전에는 프로그래머.

    Q: 프로글래...아니 프로그래머라면 혹시 뎀 사의?

    A: ㅇㅇ

    Q: 지금도 일하고 있는지?

    A: ㄴㄴ짤림ㅋ

    Q: 왜 그만두게 되었는지?

    A: 개발자나 GM보다는 플레이어 생활이 더 좋아서? 라고 해 둘게 ‘일단은’

    Q: 현재 마법사 유저로 알고 있는데,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A: 4클래스 마스터.

    Q: 4클래스 마스터면 어느 정도나 되는 티어인지?

    A: 1% 이내라고 생각해. 애초에 4클래스 유저는 되기 쉬워도 4클래스 마스터는 되기 어려우니까.

    Q: 일반 4클래스 유저와 4클래스 마스터의 차이는?

    A: 4클래스 마법 몇 개 익힌 게 고작이면 4클래스 유저. 4클래스 마법 전부 다 익혔으면 4클래스 마스터. 보통 한 클래스를 전부 마스터하기는 쉽지 않다.

    Q: 왜 쉽지 않은지?

    A: 몬스터가 랜덤으로 드랍하는 마법서에는 1~5개의 마법밖에 기록되어 있지 않으니까. 1클래스 마법 10개, 2클래스 마법 15개, 3클래스 마법 20개, 4클래스 마법 25개 이상을 숙지하고 있어야만 한 클래스의 마스터 칭호를 받을 수 있어. 조금 빡셀 거야.

    Q: 마법서를 쉽게 얻을 수 있는 노하우가 있는지?

    A: 개인적인 팁을 주자면, 흔들귀의 미궁 보스인 아카오니가 3클래스의 염계 마법서를 잘 드랍하니 꼭 습득하도록 해. 한 권당 좋은 염계 스킬이 1개 이상씩은 꼭 들어있더라. 중복되지 않게 잘 모아봐~ 그 외에도 히든 퀘스트들 깨면 보상으로 주더라고.

    Q: 마법사는 머리가 좋아야 할 수 있는 직업이라는데 맞는 말인지?

    A: 글쎄, 머리는 상관없지만. 아무래도 공식을 외우고 해와 풀이를 구해야 하는 작업이 수반되니 이과 쪽이 조금 유리하지 않으려나 싶네. 하지만 나는 문과인데도 플레이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어.

    Q: IQ가 몇 정도나 되는지?

    A: 얼마 전에 멘사 회원가입 했어. 170정도 된다는 것 같아.

    Q: 마법사 육성은 노잼, 노가다, 노답. 이렇게 ‘3노’라고 들었는데 마법사의 길을 선택한 이유는?

    A: 손 안 쓰고 적을 죽이는 게 좋아서? 중학교 때부터 뒤에서 소문 퍼트리고 다른 애들 조종해서 이간질시키고 친한 애들끼리 싸우게 만들고 하는 게 좋았어. 그래서 게임에서도...(웃음).

    Q: 음침하고 소름끼치는 성격인 것 같은데, 혹시 그게 마법을 쓰는 스타일에도 반영되었는지?

    A: 반영되었다고 봐. 그래서 내가 택한 게 ‘정신계’니까.

    Q: 정신계 마법사라는 건 못 들어본 개념 같은데, 정확히 무엇인지?

    A: 별 건 아니고. 우연히 얻은 마도서 하나가 나를 바꿔놓았어.

    Q: 특급 정보 같은데 이렇게 막 공개해도 되는지?

    A: ㅇㅇ 우리 독자님들에게 줘서 아까울 건 없지. 아낌없이 썰 풀게.

    -<고통스러운 환청> 5클래스 마도서 / B+

    마탑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축출된 사도(私道)들은 몬스터를 상대로 수많은 실험을 자행했다.

    그 중 하나는 지성이 있는 열등종 몬스터가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 보는 것이었다.

    -기록된 마법(4개): ‘기시감’, ‘호명’, ‘역소환’, ‘눈깜짝할새’

    -드랍 몬스터: 고블린 주술사(B+)

    Q: 이게 무슨 아이템인지?

    A: 말 그대로 마도서. ‘언령마법’이 기록되어 있는 히든 피스야. 내가 공격대 이끌고 ‘고블린 부락’을 공략하다가 우연히 얻은 거지. 5클래스부터는 정식 마법 트리에 기록되어 있는 것 말고도 여러 기형 마법들을 쓸 수 있어.

    Q: 정확한 능력에 대해서 질문해도 되겠는지?

    A: 물론. 독자님들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기시감’: 나를 보는 것만으로도 HP나 MP의 회복능력이 대폭 저하되게끔 하는 것.

    게임 몰입도가 뛰어난 사람들은 멀미를 하거나 구토증상을 보일 수도 있음.

    ‘호명’: 내가 이름을 묻는 것에 대답했을 때 일시적으로 수면 혹은 스턴 상태이상을 거는 것.

    ‘역소환’: 나를 상대로 ‘피어’를 터트리면 상대의 특성 발현이 취소되는 것.

    피어의 기준은 나의 행위에 의해 상대방이 겁을 먹었는가, 스탯이 저하되었는가가 기준.

    상대가 기합만 내질러도 겁을 먹는 겁쟁이라면 아주 유익할 것.

    ‘눈깜짝할새’: 눈을 한번 길게 꾹 감았다 뜨는 조건으로 상대방의 뒤로 순간이동하는 마법.

    블링크라고도 불림.

    Q: 표를 보니 다양한 마법들이 있는 것 같은데, 상대의 입장에서 보면 이 마법들의 발동 조건이나 타이밍을 모를 경우 상당히 골치 아플 것 같다는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A: 동감이야. X같겠지. 내가 제대로 마음만 먹으면 1:1로 못 이길 상대는 없다고 생각해. 그래서 챌린지리그 때나 배틀로얄 때는 힘을 조금씩 숨겨왔어. 다구리 당할 것 같아서.

    Q: 마법 말고 다른 ‘특성’은 없는지?

    A: 왜 없겠어? 나보다 강한 적에게 공격받으면 피어와 반사 데미지를 주는 ‘하극상’ 특성, 강력한 화염 저항력을 부여해주는 ‘부진목’ 특성 등이 패시브로 있어.

    Q: 히든 피스와 기본기, 특수기가 버무려진 메타 같은데, 이와 같은 메타가 전에도 있었는지?

    A: 이런 짬뽕 메타가 달리 또 어디 있겠어(웃음).

    Q: ‘배틀로얄 그라운드제로’에서 5명의 강적을 죽인 것도 모자라 수많은 사람들을 선동하고 통제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는데, 혹시 이것도 마법의 효과인지?

    A: 설마(웃음). 마법이 그 정도까지 영향력이 있지는 않지. 이건 어디까지나 게임인걸. 그냥 현실에서 하던 대로 했을 뿐이야.

    Q: 곧 ‘무서운 적’을 맞이해 싸우게 될 터인데. 마음의 준비는 되었는지?

    A: 무서워? 누가?

    Q: ‘마동왕’이 두렵지 않은지?

    A: 어이가 없네 (웃음). 내가 그 사람을 왜 무서워 해야 해? 바뀐 것 아냐? 그 사람이 나를 무서워 해야 할 걸?

    Q: 그 말은, 마동왕과의 승부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것인지?

    A: 미안한데, 배틀로얄 그라운드제로에서도. 내가 그 사람과 1:1로 만났던 상황이었으면 절대로 안 졌을 거야. 뜬금없이 기습해서 광역기를 냅다 펑펑 터트리니 안 죽을 수가 있나.

    Q: 자꾸 말이 길어지는데, 그래서 마동왕을 이길 수 있다는 건지?

    A: 당연하지. 보라고. 내가 그 사람을 얼마나 처참하게 박살내는지(웃음).

    *       *       *

    김정은.

    그녀는 유문암 대지에 오연하게 선 채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윽고.

    쿵-

    국K-1팀의 마지막 주자 마동왕이 필드로 나왔다.

    그는 필드에 나오자마자 하품을 했다. 그리고 여유로운 기색으로 주변 지형을 살핀다.

    마치 김정은의 기습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한 태도.

    ‘흥! 그 버르장머리를 고쳐 주지.’

    음흉한 생각과는 달리, 김정은은 생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날씨가 좋죠?]

    [응.]

    마동왕은 그녀의 질문에 순순히 대답했다.

    ‘멍청한 놈. 앞의 팀원들이 줄줄이 박살나는 걸 보고도 대답을 하냐?’

    김정은은 속으로 고소를 머금었다.

    [배틀로얄 때 활약 보고 팬 됐어요. 닉네임이 마돈왕 맞나요?]

    김정은은 일부러 한 글자를 틀리게 말했다.

    역시나 예상대로, 마동왕은 고개를 저으며 그녀의 말을 정정해 주었다.

    [마돈왕이 아니라 마동왕.]

    그 순간.

    ‘걸렸다!’

    김정은은 쾌재를 불렀다.

    앞서 4명을 거의 같은 방식으로 잡았기에 이번에는 실패할 줄 알았다.

    하지만 상대방은 뇌가 없는 건지 이번에도 똑같은 수법에 걸려들었다.

    ‘후훗! 대답을 했으니 끝이야. 잘 가라고!’

    김정은은 곧바로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꽤나 멀찍이 떨어져 있는 마동왕의 뒤로 순간이동했다.

    블링크.

    일반적인 이동에 비해 MP를 훨씬 더 많이, 무지막지하게 잡아먹는 이동기술이지만 이번만큼은 아낌없이 썼다.

    이내 눈앞에 보이는 마동왕의 뒤통수. 가면에 가려지지 않은 흑발과 흰 목선이 그대로 보인다.

    [죽어라!]

    김정은은 마동왕의 뒤통수에 대고 강력한 철계(鐵系) 마법을 사용했다.

    ‘아이언 피스트’

    4클래스 마법 중에서 가장 깡공격력이 강한 기술.

    우지지지지직-

    땅에서 솟구친 강철의 주먹이 마동왕을 향해서 내뻗어졌다.

    김정은의 눈에는 잠시 뒤의 상황이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었다.

    현 프로리그 최강이라 평가받는 슈퍼루키 마동왕.

    그의 처참한 미래가.

    ...

    한데?

    뻐억!

    요란한 강타음.

    ‘...?’

    김정은은 순간 자신의 머리가 멍해지는 것을 느꼈다.

    뭐지 이 감각은?

    일순간 시야가 팽그르 회전했다.

    땅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땅이 되었다.

    방금 전까지 눈앞에 있던 마동왕의 뒷모습은 어느새 보이지 않게 되었다.

    ‘???’

    그녀가 가까스로 멍한 정신을 다잡자.

    화악-

    이내 무시무시한 고통이 안면 정중앙에서부터 터져 나와 전신으로 퍼진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녀는 코를 감싸 쥐고 비명을 질렀다.

    게임에 몰입하기 위해 신경 싱크로율을 최대한으로 설정해 놓은 것이 독이 되었다.

    이렇게까지 고통이 리얼할 줄이야!

    [으으으으...이건 대체?]

    김정은이 코피가 줄줄 쏟아지는 것을 손으로 받친 채 고개를 들자.

    마동왕이 무표정한 얼굴로 뒤돌아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어느새 위치를 간파당한 것일까?

    살짝 올라와 있는 그의 주먹이 김정은의 코피로 붉게 물들어 있다.

    이내.

    마동왕은 노골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팀을 위기에 몰아넣은 것에 대한 복수심이나 동료들을 줄줄이 리타이어 시킨 것에 대한 분노.

    ...그런 감정은 일절 없었다.

    [귀찮아 죽겠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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