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국내리그 정복 (2)
‘국K-1’은 쭉쭉 뻗어나가고 있었다.
강타자가 때린 홈런처럼, 파아란 창공을 향해 솟구쳐 오른다.
마치 기세가 오른 물소와도 같이 가로막는 것은 모조리 짓밟아버리며 전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국K-1’을 플레이 오프에서 마주하게 된 강원 대표팀 ‘매드독’
마치 물소를 마주하는 병아리처럼 보이는 팀이다.
플레이오프에서의 성적도 그냥 그렇다.
애초에 인구가 많지 않은 강원도를 대표하는 팀이 아닌가.
연습실도 문막읍이라는 외진 곳에 위치해 있단다.
자연스럽게 경쟁률도 다른 지역보다 많이 낮았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서울의 한 구에서 열린 예선전 경쟁률보다도 낮을 정도였으니.
하지만.
미래를 살아 본 나는 알고 있다.
누구나 뻔히 승패를 예측할 수 있는 이 싸움에서, 놀랍게도 국K-1은 올킬을 당하게 된다.
‘타이밍이 나빴지.’
나는 대진표를 보며 과거를 회상했다.
딱 이때쯤 해서, 원래대로라면 팀 내 랭킹 2위였던 이연호와 팀 내 랭킹 3위였던 마태강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게 된다.
동갑내기 선수인 이 둘은 경기 내내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고 급기야는 이연호가 경기 중 마태강과의 버톤 터치를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팀의 주장이었던 임요셉은 계속된 승리 끝에 자만해져 있었다.
그는 이연호와 마태강의 사이를 조율하지 않았고 경기 도중 방심한 끝에 역상성에 찔려 어이없게 패하고 만다.
임요셉과 이연호, 마태강이 연달아 어이없게 패하자, 송병건은 큰 부담을 느낀 끝에 제 기량을 절반도 내지 못하고 패배해 버렸고 그 뒤로 나온 최연석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국K-1 내부의 불화와 더불어, 매드독의 신흥 강자가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 역시도 패인 중 하나였다.
‘흠, 국K-1 내분은 내가 본의 아니게 막은 셈이 되었지만. 매드독의 역습은 그대로일 텐데. 과연 어찌되려나?’
나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경기장을 바라보았다.
내 등장으로 인해 임요셉은 오만하지 않게 되었고, 이연호와 마태강의 기싸움도 거의 사라졌다. 송병건 역시도 나름대로 열심히 하게 되었다.
하지만 매드독 신흥 강자들의 등장은 막을 길이 없다.
그들은 배틀로얄 그라운드제로 때와는 달리, 선수단 엔트리를 상당히 바꾸어 출전한 것이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경기 상황은 내가 알고 있는 미래와 똑같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역시나 싶은 일이었지만 나를 제외한 모든 이들에게는 ‘이변’이었다.
* * *
투신 마태강.
그는 유문암으로 이루어진 판판한 돌산 위에 오연히 서 있었다.
그런 마태강을 맞이하는 상대는 매드독의 첫 번째 타자 ‘김정은’
그녀는 커다란 플로피 햇 아래로 다크서클이 늘어진 눈을 가늘게 떴다.
“씨1발아.”
김정은이 입을 열자, 광활한 유문암 대지 곳곳에서 무언가들이 툭툭 튀어나왔다.
그것들은 김정은이 시합 시작과 동시에 뿌려놓은 씨앗들이었다.
씨앗 1이 김정은의 명령에 따라 발아(發芽)했다.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씨앗 2, 씨앗 3, 씨앗 4 들이 줄줄이 발아한다.
황량한 대지를 가득 채우는 식물들을 보며, 마태강은 조소했다.
“마법 특성 ‘씨 발아’인가. 조잡하군.”
이 특성은 으레 ‘지형 마법사’라 불리는 이들의 종특이다.
그들은 항상 태그매치 전에 첫 타자로 나와 지형을 식물들로 도배해 놓는다.
식물들은 경기 내내 적 선수와 스칠 때마다 발목을 잡거나 흡혈을 하는 것이다.
넓은 필드를 도배해야 하는 일이니만큼 마나의 소모가 막심하지만 장차 뒤에 나올 4명의 아군들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피해량이라서 시도해 볼 만 하다.
하지만.
투신 마태강에게는 별로 효과가 없는 전술이었다.
그는 팔과 다리에 강력한 화염 데미지 옵션을 추가해 놓은 상태였으니까.
쿠르륵!
마태강이 주먹을 앞으로 뻗자, 시뻘건 불길이 일어 식물들을 태워 버렸다.
폭풍 홍지노와 상당히 비슷한 메타였다.
한데?
놀랍게도, 김정은이 뿌려 놓은 씨앗은 마태강의 불에 전혀 타지 않았다.
식물들은 불이 붙은 상태로 여전히 파릇파릇하게 돋아나 있다.
“…뭐지?”
마태강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자, 김정은이 호호 웃었다.
“식물이 불에 약하다는 편견을 버려. 내가 ‘부진목(不盡木)’ 마법 특성이 기록된 마법서를 얻느라 얼마나 고생했는 줄 알아?”
그러고 보니, 김정은이 발아시킨 식물은 상당히 기괴한 외형을 하고 있었다.
지형마법사들이 뿌리는 일반적인 식물과는 다르게, 줄기와 잎이 더 굵고 넓었으며 색깔도 녹색이 아니라 검붉은 색이다.
스프링처럼 구불구불한 줄기와 넙데데한 대가리, 날카로운 이빨이 달린 입은 적을 조소하듯 비죽 웃고 있었다.
아무래도 화염 저항력이 상당히 높은 식물 종류인 듯하다.
“귀찮은 것들.”
마태강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올킬을 해서 다른 팀들과 포인트를 벌려놓기 위해 나섰는데 시작부터 영 귀찮게 되었다.
씨앗 발아 특성을 봉인하지 못한 이상 일정량의 고정 피해는 감수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올킬 계획도 좌초되는 것이다.
“올킬만은 면하기 위해 수를 쓴 건가? 졸렬하군.”
“어머? 마음대로 생각하렴. 호호호.”
김정은은 마태강을 향해 고혹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내.
쾅!
마태강이 진각을 내뻗었다.
바닥에 깊은 발자국이 패이며, 마태강의 몸이 비호처럼 앞으로 쏘아졌다.
…한데?
부웅-
마태강의 주먹은 김정은이 있는 곳이 아닌, 전혀 엉뚱한 곳을 향해 휘둘러졌다.
지켜보는 이들로 하여금 ‘뭐야?’ ‘왜 저래?’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뜬금없는 실수였다.
하지만.
김정은은 마태강의 실책을 예측이라도 한 듯 움직였다.
빠지지직!
그녀의 스태프에서 뻗어나온 전격이 마태강의 전신을 두들겼다.
“큭!?”
마태강은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불에 타지 않는 식물들이 이때다 싶어 마태강의 발목을 휘감고 피를 빨아댔다.
꿀렁- 꿀렁- 꿀렁-
부진목들은 마태강의 피를 빨아 한층 더 굵고 질기게 변했다.
“쳇!”
마태강은 발목에 붙은 부진목들을 찢어발기며 다시 돌진했다.
부웅-
하지만 이번에도 빈 허공을 갈랐을 뿐이다.
‘뭐지?’
마태강은 인상을 찌푸렸다.
분명 김정은을 공격했다고 생각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면 그녀는 이미 수 미터 밖으로 도망쳐 있다.
한편.
‘저게 뭐지?’
엄재영 역시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전광판 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용진 캐스터가 흥분한 어조로 외쳤다.
[아, 놀랍습니다! 김정은 선수! 지금껏 없던 마법사 메타를 가지고 나왔는데요!? 저걸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정신계 마법사 메타?]
그렇다. 김정은은 지금 환각 마법이라도 펼치고 있는 듯했다.
“젠장!”
마태강은 또다시 김정은을 향해 달려들었다.
퍼펑!
텅 비어 있는 김정은의 안면을 향해 주먹을 날린 마태강.
하지만.
핏-
김정은은 마치 유령처럼 마태강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빠지지직!
그리고 그의 등 뒤로 워프해 전격 마법을 쏟아 놓는다.
비명을 꾹 눌러 참은 마태강이 거리를 벌리자, 김정은이 샐쭉 눈웃음쳤다.
“어머, 너 마법 저항력이 꽤나 높구나? 아직까지 HP가 남아 있네.”
“…….”
“근성이 대단해. 이름을 기억해 두고 싶은데, 혹시 알려 줄 수 있니?”
그러자, 마태강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싸우는 상대의 이름도 모른다고?
애초에 투신 마태강은 한국 랭킹 6위에 있을 정도로 유명한 랭커이며 두터운 팬층을 형성하고 있는 인기 프로 게이머다.
김정은이 왜 저런 질문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마태강은 일단 대답을 해 주었다.
“마태강.”
그 순간.
“……!”
마태강은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핑-
머리가 순간 멍해지는가 싶더니 몸이 축 늘어진다.
정신은 깨어 있었지만 육체가 모든 힘을 잃어버렸다.
마치 잠이 든 것처럼.
-띠링!
<상태이상 ‘수면’에 걸렸습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마태강은 몸부림쳤지만, 그것은 정신뿐이었다.
그의 육체는 꼼짝없이 수면 상태에 빠져 버렸다. 이제는 최대 5초까지 정지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PVP에서 5초 동안 가만히 있는다는 것은 게임을 던진 것이나 다름없다.
“태강아! 교대!”
이연호가 애타게 외쳤지만 마태강은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퍼펑!
결국 김정은이 날린 2서클의 마법 특성 ‘매직 미사일’에 의해. 마태강은 사망하고 말았다.
* * *
푸슉-
캡슐 문이 열리고, 멍한 표정의 마태강이 걸어 나왔다.
엄재영이 황급히 이온음료랑 수건을 들고 달려왔다.
마태강은 흥건한 땀을 닦으며 얼떨떨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제가 왜 졌는지 모르겠어요.”
“지금부터 같이 분석하자.”
엄재영은 마태강을 데리고 선수 대기열로 와 전광판을 보여 주었다.
이제 막 이연호와 김정은의 매치가 시작되고 있었다.
엄재영은 화면 속의 김정은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여자, 언랭이다. 챌린지리그 때의 경기 데이터도 거의 없어. 하지만 전 게임인 배틀로얄 그라운드제로에서 혼자 5명을 죽이고 올라온 실력자다.”
아니나 다를까, 이연호 역시도 김정은을 향해 계속 미스를 띄운다.
결국 부진목들에 HP를 탕진한 이연호는 황당한 표정으로 엄재영에게 보고했다.
“이상하게 저 여자랑 싸울 때는 마나 회복속도가 느려져요. 명중률도 현격히 낮아지고.”
과연 그 말대로.
같은 결과가 송병건에게도 일어났다.
송병건 역시도 김정은에게 한 대의 유효타도 맞추지 못했다.
“분명 허리를 칼로 찔렀는데, 제 허리에 구멍이 났어요. 뭐죠 이거?”
손이 빠르기로 소문난 송병건의 APM이 절반도 나오지 않았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엄재영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래도 ‘환각’이나 ‘정신조종’ 등의 페이크 특성을 이용하는 것 같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안에서 마법사는 일반적인 경우와는 조금 다른 개념의 플레이어들이었다.
일반적으로 궁수, 도적, 전사 등의 클래스가 딱히 구분되지 않는 것과 달리, 마법사는 명확하게 구분이 된다.
‘스킬북’ 혹은 ‘마법서’라는 개념의 아이템을 따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1클래스 마법서 / D 등급.
2클래스 마법서 / C 등급.
3클래스 마법서 / C+ 등급.
3클래스 마법서 / B 등급.
5클래스 마법서 / B+ 등급.
6클래스 마법서 / A 등급.
7클래스 마법서 / A+ 등급.
.
.
마법서의 등급이 높을수록 강력한 특성들이 기록되어 있으며 한 아이템만으로 복수 개의 특성을 한꺼번에 쓸 수 있기에 활용성이 아주 높다.
즉.
마법사는 다른 직업의 플레이어들이 아이템을 바리바리 착용했을 때의 경우와 같은 개수의 특성을 마법서 하나를 든 것으로 커버한다는 것이다.
물론 마법서에 기록된 특성의 개수는 랜덤이고 그 종류 또한 랜덤이니 좋은 마법서를 잘 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한편,
김정은은 눈을 가늘게 뜨고 다음 상대를 맞이했다.
“당신은 이름이 뭔가요?”
“……? 임요셉이다.”
김정은의 질문에 대답하자, 임요셉은 머리가 멍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결국 그 역시도 앞의 3명의 전철을 밟고 말았다.
HP와 MP의 회복량이 극도로 느려질 뿐만 아니라 명중률과 집중력이 대폭 저하된다.
스탯이나 장비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엄재영의 안색은 창백해져 있었다.
올킬 직전.
설마 이런 상황에 내몰릴 줄이야.
올킬을 하려던 상대에게 올킬을 당하게 생겼다. 이 어찌 기가 막히지 않겠는가.
“…마왕아.”
엄재영은 침중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형님.”
임요셉과 마태강, 이연호, 송병건 역시도 나를 바라본다.
너무나도 간절한 눈빛.
탁-
나는 반쯤 마신 코코아를 내려놓았다.
아군 전원이 쓰러진 시점.
내 순번이 왔다.
전용진 캐스터가 놀란 어조로 외친다.
[아 마동왕 선수! 팀이 4:0으로 지고 있는데 웃고 있어요!? 이게 어찌된 영문이죠!?]
어찌된 영문인지 지금부터 드러날 것이다.
내가 소파에서 일어나자.
후다닥-
마태강과 이연호가 재빨리 내가 내려놓은 종이컵을 집어 들었다.
“내가 치울게.”
“아냐, 내가 치울 거야.”
대기하고 있는 2군 선수들도 있건만, 둘은 또 쓸 데 없는 걸로 티격태격하기 시작한다.
나는 그런 둘에게 손사래를 쳤다.
“거기 그냥 둬.”
그러자 마태강과 이연호가 머쓱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아, 식을까 봐서.”
“새로 뽑아 놓을게요, 형님.”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됐어. 식기 전에 돌아올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