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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166화 (166/1,000)
  • 166화 팬미팅 (3)

    “내가 게이머들의 관상을 좀 볼 줄 알지.”

    내가 입을 열자, 주변 반응들이 꽤나 뜨겁다.

    “와아, 저 이런 거 되게 좋아해요!”

    유다희는 눈을 반짝거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말이 거짓말임을 안다.

    과거, 내 기억 속의 유다희는 지독한 현실주의자이며 점괘나 미신 등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제 사주 말해 드려야 하나요? 저는…….”

    의외로, 유다희는 사주나 관상 등에 관심이 있어 보였다.

    ‘아, 이때의 유다희는 아직 이런 것에 관심이 있었던 건가?’

    나는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이를 먹고, 모종의 이유로 이런 것을 믿지 않게 되어 버린 것일 수도 있겠지.

    지금의 그녀는 평범한 20대 여자답게 눈을 반짝거리며 내 말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나는 일단 되는 대로 주워섬겼다.

    “사람의 얼굴은 집과 같아서, 머리카락이 기와, 이마가 지붕, 눈썹이 처마, 눈이 창문, 귀가 울타리, 볼이 마당, 코가 기둥, 입이 대문, 턱이 대문과 집을 잇는 길이라…….”

    그러자 주위의 팬들이 리액션을 해 준다.

    나는 옆에 있는 유창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유 부회장님의 경우에는, 이마가 넓고 머리숱이 비교적 적으니 이는 지붕은 큰데 기와가 그것을 다 덮지 못하는 관상이라. 그러면 비가 오면 물이 졸졸 새겠죠? 돈이 잘 모이지 않을 관상입니다.”

    유창의 만년 적자 생활을 잘 알고 있는 내가 관상을 말하자, 유창은 깜짝 놀라한다.

    나는 말을 계속했다.

    “코가 오뚝하니 기둥이 지붕을 단단하게 받쳐 주는 모양새라, 주위에 자기보다 작은 이들을 품고 갈 관상이니 조직을 꾸리고 운영할 상이군요. 혹시 사회적으로 어떤 조직을 이끌고 있는 위치에 있으시지는 않는지 궁금합니다.”

    물론 나는 유창의 직업을 미리 알고 하는 말이다.

    유창은 놀랍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제가 작은 사업체를 이끌고 있기는 한데, 예전부터 계속 적자를 보고 있어서 조금 심란한 상황이기는 했습니다. 와, 정말 용하세요.”

    그러자, 주변 사람들이 모두 다 대박이라며 맞장구친다.

    이내, 수많은 여자들이 내게 관상을 물어왔다.

    물론 내가 다 대답을 해 줄 수는 없었기에, 나는 내가 현재 신상과 미래의 신상을 알고 있는 다른 한 명만을 집었다.

    바로 유다희다.

    “다희 씨는…….”

    나는 잠시 침묵했다.

    유다희는 기대감 어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이 여자의 앞날을 어디까지 내다 봐야 할까?

    앞으로 나를 비롯한 수많은 남자들에게 여우짓을 해서 아이템 파밍을 하고 랭킹에 오르고 유명해지고 방송계로 진출하고 점점 더 승승장구 할 것이라고?

    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욱 하는 성격이 심해서 서른 전에는 결혼하면 안 돼요.”

    “……! 어머, 저 완전 순한 성격인데?”

    “음, 사주에는 그렇게 나오네요.”

    시작부터 정곡을 찔린 유다희는 진심으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는 말을 이어나갔다.

    “관상을 보니, 주변에 이성이 많고 이로 인해서 운세가 좋을 거예요. 보통 이런 관상은 중간에 위험에 이르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다희 씨는 그런 게 없어요.”

    “…그렇다 하면?”

    나는 손을 들어 위를 가리켰다.

    “…앞으로 위로 쭉쭉 뻗어나갈 상이네요. 이런 분들은 보통 연예인 되시던데.”

    나는 그저 적당히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유다희는 꽤나 만족한 표정이다.

    주변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유다희에게 부럽다는 시선을 보냈다.

    “언니는 예쁘시니까 정말 연예계 나가셔도 되겠어요!”

    “1화 뎀 걸 응모하셨댔죠? 대박! 분명 따 놓은 당상!”

    “게임도 잘하시니 어쩌면 탑 티어 급 랭커가 되실 수도 있겠네요!”

    곳곳에서 유다희를 띄워준다.

    유다희는 짐짓 얌전한 표정으로 겸손을 떨었지만, 15년 뒤의 미래를 아는 나는 저 중 대부분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다.

    ‘쩝.’

    어쩐지 씁쓸해지면서도 미묘한 감정.

    *       *       *

    이윽고, 술자리가 슬슬 파장을 향해 간다.

    사람들은 취기가 오른 채 떠들썩하다.

    “아 맞아! 그거 정말 싫지! 파티 모집할 때 여자는 은근 무시하잖아! 컨트롤 잘 못한다고!”

    “나는 무시하는 것 보다는 집적대는 게 더 열 받더라. 게임은 하지도 못하는 것들이.”

    “나는 그래서 마교 길드가 너무 좋아. 분위기도 좋고 다들 서로 잘 도와주잖아.”

    그 외에도 다양한 이야기가 오간다.

    뭐니뭐니 해도, 가장 이야기꽃이 풍성하게 피어나는 주제는 바로 ‘북대륙 레이드’였다.

    “와, 그때 북대륙으로 추격전 할 때 진짜 스릴 넘쳤지.”

    “뭐, 결국 실패하기는 했지만 말야.”

    “근데 고인물? 그 변태 진짜 너무 짜증나지 않니?”

    주제는 북대륙 환경의 가혹함에서 점점 고인물에 대한 성토로 변해간다.

    종국에는 고인물 성토대회, 혹은 증오 대회로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어 버릴 정도였다.

    “하여간 그 변태는 진짜 죽여야 해!”

    “맞아 맞아, 마동왕 님하고 동급으로 놓이는 것도 마음에 안 들어. 감히 어딜 비벼? 그 더러운 알몸으로!”

    “그때 성벽에 있을 때 그놈이 습격해 오는 거 봤어? 바바리맨 13명이 마라톤 하는 줄 알았다니까!”

    “벗고 다니는 것도 분명 쾌감 때문일 거야. 으, 역겨워.”

    물론, 이런 말을 듣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조금 난처하다.

    대신 변명을 하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나는 지금 쿨하고 시크한 프로게이머 마동왕이니까.

    “마왕님! 마왕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 변태.”

    한 팬이 내게 물었다.

    ……으음? ……음.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이걸.

    내 최대 후원자들의 던진 답이 정해진 질문.

    게다가 나를 위해 나를 북대륙까지 추격해 온 용자들이 아닌가!

    나는 그들의 기대어린 눈빛을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약간 뜸을 들인 끝에.

    “…그런 변태는 혼 좀 내줘야죠.”

    결국 셀프디스.

    나는 자본의 힘에 굴복하고 말았다.

    그러자 팬들은 일제히 빵긋 웃는다. 정해진 답을 들었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흑흑 또 다른 나야 미안해.’

    나는 속으로 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밤이 깊었다.

    달이 어슴푸레하게 진 새벽녘.

    많은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갔고 이제 파티는 완전히 파장 분위기다.

    나는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테라스로 나갔다.

    ‘바람이라도 좀 쐴까?’

    가면을 벗고 밤공기를 좀 쐬고 싶었다.

    막 손을 들어 가면에 가져가려는 순간.

    “앗?”

    테라스에 먼저 와 있던 손님이 나를 돌아보며 놀란다.

    유다희였다.

    그녀는 술에 취해 발그레해진 얼굴을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벗으려던 마스크를 그대로 푹 눌러 썼다.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했다.

    “바람 쐬러 나오셨어요?”

    유다희는 나를 향해 싱긋 웃어보였다.

    나는 대답하지 않은 채 테라스에 엉거주춤 섰다.

    그러고 보니, 그녀는 뒤에 무언가를 숨기고 있었다.

    나는 그런 유다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나도 한 대 줘.”

    유다희는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향해 고개를 갸웃한다.

    “…….”

    내가 손바닥을 내민 채 말이 없자, 유다희는 한숨을 쉬었다.

    “마왕님에게는 뭐 숨길 수 있는 게 없네요.”

    그녀는 내 손에 담배 한 개비를 올려놓았다.

    우리는 테라스에 서로 나란히 서서 담배를 태웠다.

    유다희는 꽤나 기쁜 듯 말했다.

    “즐겁네요. ‘오늘’.”

    “오늘이란 것은 늘 즐겁지.”

    나는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쳐 주며 말을 이었다.

    “북대륙에서는 고생 많았어.”

    “뭘요. 제 개인적인 복수심도 있었거든요.”

    유다희는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유다희는 약간 조마조마한 심경으로 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알고 계셨죠?”

    “뭘?”

    “제가 사적인 감정으로 마교를 움직였다는 거.”

    “원래 네 길드였잖아.”

    “지금은 거의 다 마동왕 님의 순수한 팬들로 이루어져 있죠.”

    “너도 마찬가지 아냐?”

    내가 묻자, 유다희는 순간 말을 멈췄다.

    잠시 침묵하던 그녀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처음의 의도가 어땠든, 저도 지금은 한 사람의 순수한 팬이에요. 당신의.”

    “그러면 됐지 뭐.”

    나는 허공에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이내, 나와 그녀는 북대륙 기행기를 화제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래서, 그때 ‘눈의 기러기의 눈’과 ‘근성의 얼음도끼’를 얻지 못했으면 아마 심해로도 가지 못하고…….”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눈의 기러기의 눈’은 거꾸로 해도 ‘눈의 기러기의 눈’이네.”

    그러자, 내 말을 들은 유다희는 빵 터졌다.

    “완전 재밌는 말장난 개그네요. 저 이런 것 좋아해요.”

    …거짓말쟁이. 분명 내가 고인물일 때도 쳤던 개그였는데.

    당시 유다희는 쓰레기 같은 개그라며 도끼를 집어던졌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녀의 온도 차이에는 참 적응이 안 된다.

    하지만 개그에 대한 평가는 거짓일지라도, 그 뒤부터 유다희는 내게 시종일관 진지하고 또 진솔했다.

    그녀는 북대륙부터 시작해서 저주받은 유빙, 그리고 심해의 대제국 아틀란둠, 나아가 깊은 해구 밑의 크라켄까지, 남김없이 이야기했다.

    이윽고.

    유다희는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내일 레이드 돌려면 일찍 가 봐야 해서요.”

    그녀는 만취한 유창을 차에 싣고는 운전석으로 향했다.

    그때.

    나는 그녀의 앞을 손으로 막았다.

    “술 마셨잖아. 대리운전 불러서 가.”

    “에이, 저는 MC보느라 술 얼마 안 먹었어요. 샴페인 두 잔 먹었는데요 뭐.”

    나는 유다희의 주량을 안다.

    그녀는 소주 5병을 한 자리에서 먹고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는 주당이다.

    하지만, 그래도 음주운전은 음주운전인 법.

    나는 기어코 대리를 불렀다.

    “지난번 담배찌꺼기도 그렇고…… 이렇게까지 미묘하게 신경 써 주는 사람은 처음이네요. 보통은 자기가 직접 데려다 주는데.”

    “나는 술을 마셔서.”

    나는 정중하게 선을 그었다.

    유다희는 나를 보며 생긋 웃었다.

    “또 봐요.”

    꽤 많은 감정이 농축되어 있는 대사였다.

    내가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입을 다물고 있는 사이.

    그녀는 내게 한마디를 더 남겼다.

    “꼭.”

    그것이 그녀와 나눈 ‘오늘’의 마지막 대화였다.

    붕-

    이내, 유다희는 대리운전에 실려 저 멀리 사라져 버렸다.

    미지근하게 부유하는 새벽. 네온의 도시.

    차갑지도 따듯하지도, 밝지도 어둡지도, 잠들지도 깨어 있지도 않은 거리로.

    그녀는 사라졌다.

    “휴.”

    나는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이제 또 일상이 시작된다.

    베스트리그 2/3차 ‘플레이 오프’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탑 티어 랭커들이 벌이는 제일 치열한 각축전(角逐戰).

    아마 배틀로얄 그라운드제로에 출전하지 않았던 숨은 고수들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물론 그들 중 대부분은 내가 이미 빠삭하게 알고 있겠지만.’

    약간의 나비효과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배틀로얄에 나온 면면들을 보니 그 여파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쯤은 느낄 수 있었다.

    꾸국-

    나는 주먹을 말아 쥐었다.

    한국 랭킹 1위.

    그간 어중이떠중이들이 서로 번갈아 앉았다 내려왔다를 반복하며 지저분해진 왕좌.

    이제 그것을 깨끗하게 집어삼킬 시간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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