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165화 (165/1,000)

165화 팬미팅 (2)

대회가 끝난 뒤,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다음 플레이 오프까지는 일주일.

챌린지리그를 통과한 10개 팀 중에 살아남은 팀은 절반뿐이다.

서울 ‘국K-1’

강원 ‘매드독’

충북 ‘코리아철강축산’

전북 ‘천지패황’

경남 ‘S5’

제일 치열한 각축전이 곧 시작된다.

이 중에서 두 팀이 떨어지고 세 팀이 3/3차인 ‘얼티메이트 리그’로 올라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서 승패에 따라 1, 2, 3위가 정해지게 되겠지.

2/3차 플레이 오프에서, 5개의 팀은 각각의 팀과 모두 한 경기씩 대전을 치른다.

팀 대 팀의 경기 방식은 챌린지리그 때와 동일한 태그매치 방식이다.

1승 당 1점, 상대 팀을 올킬 시 2점, 역올킬 시 3점의 승점을 받게 되며 승점의 합이 가장 높은 3개의 팀을 추려내는 구조.

“일주일간은 컨디션 조절 해 놔야겠네.”

나는 앞으로 다가올 수많은 대전을 예상해 보았다.

15년 전, 베스트리그에 올라왔던 팀들의 엔트리는 현재와 똑같았다.

“내 기억이 맞다면, 아마 엔트리까지도 똑같을 텐데.”

나는 배틀로얄에서 만났던 선수들의 얼굴들을 떠올렸다.

아마도 플레이오프에서 만나게 될 선수들 역시도 내 기억 속 인물들과 똑같을 확률이 컸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 ‘이변’도 일어나게 되려나?”

나는 턱을 짚은 채 고민했다.

제1회 뎀 프로리그.

이 대회에서는 상당히 커다란 이변이 하나 일어나게 된다.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서울 대표팀 ‘국K-1’이 고작 3위에 그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1, 2위를 차지했던 팀은 다소 뜻밖의 팀이었다.

“아마 지금까지 페이스로 보면 ‘이변’이 그대로 일어날 가능성이 크지. 미리 준비해 놔야겠군.”

나는 달력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바로 그때.

지이이잉-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뭐지?”

나는 전화를 받으려다 말고 멈칫했다.

지금 저 핸드폰은 마동왕 전용 번호다.

이 번호를 알고 있는 존재는 몇 되지 않는데?

전화를 받자, 이윽고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안녕하세요 마동왕님! 유튜뷰 게임콘텐츠부 미래전략팀 송승우 팀장입니다.]

아, 어디서 들어본 목소리다 했다.

고인물 전용 핸드폰으로는 뻔질나게 들었던 목소리지만, 마동왕으로 듣는 것은 처음이니 신중해야 한다.

나는 음성변조기를 켠 뒤 입을 열었다.

“네.”

짧은 대답.

그러자 송승우 팀장은 조금 당황하는 기색이다.

[아아, 다름이 아니오라. 이번에 최단시간 내에 골드 버튼을 다신 일 때문에 축하차 연락을 드렸습니다.]

그렇다.

얼마 전부터 마동왕의 유튜뷰 채널 역시도 구독자 백만을 돌파했다.

특히나 이번 대회 영상의 효과가 컸다.

이미 짐작하고 있던 사실이지만, 관계자를 통해 사실을 전달받으니 어딘가 흐뭇하다.

…그래서 이왕 흐뭇한 김에, 나는 슬쩍 장난을 쳐 보기로 했다.

“제가 최고 기록이라고요?”

[네! 마동왕 님이 현재 겜방 부문에서 최단 기록을 보유하고 계십니다!]

“제가 알기로는 아닌데…….”

[…네?]

“딱 한 명, 저보다 골드 버튼을 더 빨리 단 사람이 있지 않나요?”

‘고인물’을 의식하고 한 말이다.

그러자, 송승우 팀장은 쩔쩔매는 기색으로 어버버하기 시작했다.

[어, 아니. 다른 분이 또 계시기는 한데, 마동왕 님과 사실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 정도이고, 또 뭐, 막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은 무리도 있으니까요, 또 말이 최단이라는 것이지 사실 마동왕 님의 페이스가 워낙 남다르신 것에 진짜 의미가… 에, 또…]

그렇다.

마동왕 계정의 구독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는 있지만, 아직도 고인물 계정의 구독자 상승세에 비하면 조금 밀리는 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뭐 어떤가?

고인물도 나고 마동왕도 나인데.

나는 피식 웃고는 송승우 팀장을 달랬다.

“네, 괜찮습니다. 고인물 씨에 비하면 아직 제가 좀 밀리죠.”

[아휴, 그건 또 아닌데. 단순 비교를 하자면 뭐 또 그렇게 느끼실 수도 있지만, 그래도 또 마동왕 님의 성적만 놓고 보면 게임방송 계에서 거의 적수가 없으시죠! 또 고인물 님은 아예 인방 전문이시지만 마동왕 님은 프로게이머이시고 또 경기에만 집중하셔야 하는 몸이시니…]

내 사정을 알 리 없는 송승우 팀장은 고인물을 깎아내리고 마동왕을 추켜세우기 바쁘다.

나는 또다시 장난기가 발동했다.

“아, 그러면 고인물 씨보다 제가 낫다는 건가요?”

[네네, 제가 보기엔 그렇습니다! 어디까지나 제가 보기엔.]

송승우 팀장은 열심히 내 눈치를 살핀다.

혹 내가 고인물과 비교당해서 심기가 불편해진 게 아닐까 싶은 모양.

하긴, 당연히 눈치를 볼 만도 하다.

고인물은 유튜뷰 독점 스트리머 제안을 확실하게 거절한 상태지만 마동왕은 유튜뷰 독점 스트리머가 될 가능성이 있는 인물이니까.

나는 한 번 더 물었다.

“그러면 이 말씀을 혹시 고인물 씨에게 전해 줘도 괜찮을까요?”

[네? 무슨 말씀을…….]

“팀장님께서 제가 고인물 씨보다 낫다고 말씀해 주신 거요.”

그러자, 송승우 팀장은 기겁을 하며 펄쩍 뛰었다.

[아휴! 아휴! 제가 언제…]

“방금 그러셨잖아요? 제가 더 낫다고.”

[에이! 에헤이! 그건 어디까지나 제가 보았을 때…….]

“그러니까요. 그게 중요하죠.”

[으아아아, 그, 그게… 아이고 마동왕 님이 고인물 님과 친하신 줄을 제가 몰랐네요.]

“아뇨, 전혀 안 친해요.”

[그, 그럼 아무쪼록 비밀로 좀… 고인물 님 담당자도 저인지라 아무래도 눈치가 좀 보일 수밖에 없거든요…….]

나는 계속해서 송승우 팀장을 놀렸다.

“제가 더 좋아요? 고인물 씨가 더 좋아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의 사회생활 버전이다.

핸드폰 너머로 송승우가 울상을 짓는 것이 느껴졌다.

[아아, 저에게 이러시면…….]

나는 곤란해하는 송승우 팀장을 향해 낄낄 웃어 주었다.

예전에 내가 고인물의 입장에서 독점 계약, 그리고 구단 창립 및 스폰 제의를 했을 때 빈말로 대충 주워 넘긴 복수다.

그 이후로, 나는 송승우 팀장과 후원수익과 광고 수익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송승우 팀장은 내가 유튜뷰 슈퍼노바 시상식 겸 연말 파티에 오지 않은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고 나는 그저 피식 웃어 주었다.

‘마동왕은 안 갔지만 고인물은 갔다네.’

약 30분간의 통화 끝에, 나는 전화를 끊었다.

딱히 영양가는 없었지만 재미있는 통화였다.

고인물에 비해 다소 후발주자로 출발했던 마동왕이 양지에서 꽤나 입지를 다지고 있는 것 같아서 뿌듯하다.

나는 핸드폰을 대충 침대에 던져둔 뒤 인터넷에 접속했다.

마동왕에 대해 올라온 수많은 기사와 게시글, 댓글들을 눈팅하기 위해서였다.

바로 그때.

-띠링!

읽지 않은 메일 하나가 모니터 중앙에 떠올랐다.

마동왕 계정으로 온 메일이었다.

“…유다희?”

나는 메일 발신자의 이름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메일을 클릭하자.

[안녕하세요 마왕 님. 부족하게나마 마교의 교주로 있는 유다희입니다. 경기도 끝났는데 몸조리는 잘 하고 계신지요? 저번 경기 정말 멋졌습니다. 직관하러 간 보람이 넘쳤어요. 다른 팬들도 모두 기뻐했습니다.]

메일은 무난한 안부인사와 칭찬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조금 읽어 내리자, 밑에 메일을 보낸 진짜 용건이 적혀 있다.

[다름이 아니오라. 마교의 이름으로 들어오는 후원금에 대한 전달 문제 논의, 그리고 경기 당시 응원을 갔던 팬들의 의견 등으로 인해 팬들과 선수가 만나는 자리를 한번 마련해 보고 싶어서 연락 드렸습니다. 혹시 시간이 되신다면…….]

요컨대 팬미팅을 잡고 싶다는 말이다.

“흠… 마교라.”

나는 잠시 고민했다.

지난번 용산까지 와 준 마교인들이 고맙긴 하다.

반면, 지난번 북대륙까지 추격해 와 준 마교인들이 무섭기도 했다.

“뭐, 어찌 되었든 간에… 나를 향해 그런(?) 관심을 주는 사람들인데. 한번 봐서 나쁠 건 없겠다.”

마교는 고인물도, 마동왕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집단이 아니던가.

이참에 한번 봐 두는 것도 예의 상, 전략상 좋을 것 같았다.

*       *       *

며칠 뒤.

<서울 역삼동 멀티문화공간 파티홀> / 등급: S+

-인싸들이 모여 노는 장소.

주말 성수기 하루 대관료가 50만 원이 넘는 무시무시한 던전이다.

‘우와, 서울에 이런 데도 있었네.’

나는 파티룸의 복도로 들어오며 혀를 내둘렀다.

룸의 내부는 온통 번쩍번쩍 화려했다.

평생 경험해 본 적 없는 이 인싸들의 st에, 나는 마치 레벨에 맞지 않는 초위험군 던전에 떨어진 듯 압도당했다.

언뜻 보기에도 굉장히 세련되어 보이는 파티룸.

약 50명 정도는 너끈히 수용할 수 있는 이 공간에는 귀엽고 아기자기한 테이블, 의자들이 가득하다.

구석에는 고급스러운 와인바가 있었고 부엌에는 예쁜 조명과 식기들이 아담하다.

그 맞은편에는 디제잉을 즐길 수 있는 엠프, 이퀼라이저, 믹서 등 전문 음향 장비들이 완벽하게 세팅되어 있었다.

중앙에는 워크샵을 위한 빔 프로젝트도 보인다.

인싸의 냄새가 물씬 풍겨 나오는 이 공간이 바로 프로게이머 마동왕과의 팬미팅 장소.

동시에 팬클럽 ‘마동왕사랑교’ 일명 ‘마교’의 정모 장소이기도 했다.

“마왕님 오셨다!”

내가 입장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향해 몰려든다.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 파티룸에 모인 50명의 성비가 남녀 약 2:8, 여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이다.

“꺄악! 마왕님! 배틀로얄의 황제!”

“손가락을 튕겨 과반수를 죽이셨어! 당신은 프로리그의 타노스!”

“사진 한번만 찍어 주세요!”

“저 여기 오려고 제주도에서 올라왔어요!”

“전 중국에서 날아왔어요!”

“저는 우루과이! 지구 반대편!”

의외로, 마교에는 외국인들도 많이 보인다.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에서는 뜨거운 꿀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아아! 자자, 모여 주세요 여러분! 이제부터 팬미팅 진행하겠습니다!”

오늘의 메인 MC는 유다희였다.

그녀는 주최자답게, 그리고 조직(?)의 숨은 보스답게 놀라운 통솔력으로 파티를 이끌어 나갔다.

첫 번째는 가벼운 식사와 반주, 그리고 레크리에이션이었다.

유다희는 특유의 예쁜 얼굴, 유쾌한 어조로 행사를 진행했다.

“모든 행사에는 마동왕 님의 친필 사인이 들어간 기념품들이 제공됩니다! 전부 마동왕 님이 직접 사용하셨던 거예요! 말하자면 팬들을 향한 사랑이 듬뿍 담긴 애장품이죠!”

그녀의 말에 모든 마교인들이 눈에 불을 켰다.

상품이라고 해도 내가 몇 번인가 만지작거렸을 뿐인 마우스나 목 베개, 등 마사지 기계 따위의 것들로 전부 협찬 받은 것들이다.

“쓰셨던 가글은 없어요? 뱉은 거.”

“미용실에서 자르고 남은 머리카락이라거나.”

“지금 신으신 양말도 상품으로 거시면 안 돼요?”

조금 무서운 의견들도 있었지만…어찌어찌 잘 넘어갔다.

이내, 쇼가 진행되었다.

“나는 노래를 기깔 나게 부를 수 있다!?”

“섹시댄스 하면 나다!?”

“마동왕 님의 힘을 현실에서 재현할 수 있다!?”

유다희의 응모 접수에, 곳곳에서 손들이 번쩍번쩍 올라온다.

나 같은 아싸들이 모인 곳에서 이런 질문을 던졌으면 365일을 기다려도 대답을 들을 수 없었을 텐데, 과연 내가 인싸들의 모임에 있다는 것이 실감난다.

이윽고.

파티의 하이라이트, 음주 타임이 왔다.

나의 경험상, 일반적으로 게임 정모를 나가면 99%의 확률로 시커먼 아저씨들이 소주를 들고 접근해 온다.

연탄갈비와 소주를 잔뜩 먹고 마시고 만취한 채 PC방이나 캡슐방에 가서 게임을 하거나 당구장 등에서 담배를 뻑뻑 피며 큐대를 놀리는 것이 일상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뭔가 느낌이 다르다.

대부분 우아한 유리잔에 와인이나 샴페인을 따라서 선 채로 돌아다니며 음주를 즐긴다.

마치 판타지 세계의 사교장을 보는 느낌이었다.

내가 마스크를 살짝 들어 샴페인을 마시고 있을 때.

“마왕님!”

내 어깨를 툭 치는 손길이 있었다.

고개를 돌리자, 오프숄더 원피스를 입은 유다희가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 게 보인다.

그 옆으로는 유창을 비롯하여 마교 길드를 운영하는 운영진들이 나란히 서 있다.

“마왕님은 원래 그렇게 조용하세요?”

유다희가 묻자 나는 뭔가 뜨끔했다.

아싸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술자리 질문 1위가 바로 이것 아니던가?

‘원래 과묵해?’

‘원래 조용해?’

‘원래 낯가려?’

‘원래 말 없어?’

‘원래 잘 안 웃어?’

‘원래 술 잘 못 마셔?’

상대방이 별 생각 없이 던진 이 질문은 누구에게는 엄청나게 뜨끔 포인트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아니나 다를까, 유창이 약간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내 팔뚝을 툭 쳤다.

“형님, 길드원들이 저마다 장기자랑 하나씩 다 한 것 같은데. 형님도 하나 어떠십니까?”

언제 봤다고 자연스럽게 형님이다.

그러자 유창의 친한 척을 본 유다희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해요 마왕님, 동생이 사회생활을 원체 덜 해 봐서 개념이 덜 잡혀 있…….”

하지만.

나는 수락했다.

“장기자랑이라…….”

그러고 보니 하나 있다.

옛날 게임 정모에 나갔을 때 한 돌팔이 도사 아저씨가 전수해 준 장기가.

그 장기에 내가 알고 있는 15년간의 미래 지식이 융합된다면, 꽤나 재미있는 레크리에이션이 될 것 같기도 했다.

내가 운을 띄우자, 유다희와 유창을 비롯한 50인의 마교인들이 나를 향해 눈을 빛냈다.

그들 중에는 꽤나 유명한 일반인 랭커들도 몇 섞여 있었다.

이내, 나는 입을 열었다.

“내가 게이머들의 관상을 좀 볼 줄 아는데….”

미래 지식을 아는 것이 이럴 때는 좀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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