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163화 (163/1,000)

163화 17대 1 (2)

아무리 우겨 봐도 어쩔 수 없네.

가지 마라 가지 마라 가지 말아라.

마음을 다 주어도 친구가 없네.

나는 개똥벌레 어쩔 수 없네.

손을 잡고 싶지만 모두 떠나가네.

가지 마라 가지 마라 가지 말아라.

나를 위해 한 번만 손을 잡아 주렴.

-신형원, 개똥벌레 中-

[콰쾅!]

대형 스크린 안에서 굉음이 터져 나온다.

초대형 경기장의 벽면을 가득 채운 리어스피커들이 터질 듯 빵빵 들려오는 폭음.

동시에, 거대한 전광판에 적힌 숫자가 실시간으로 계속 갱신된다.

<서울 ‘국K-1’ 마동왕 +5>

<서울 ‘국K-1’ 마동왕 +6>

<서울 ‘국K-1’ 마동왕 +7>

<서울 ‘국K-1’ 마동왕 +8>

<서울 ‘국K-1’ 마동왕 +9>

<서울 ‘국K-1’ 마동왕 +10>

<서울 ‘국K-1’ 마동왕 +11>

.

.

압살(壓殺).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지금 실시간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맨 처음, 랭커들이 연합전선을 짤 때 관중들은 야유했다.

베스트리그에 나가기 위해 전 팀을 버리고 새 팀으로 이적하지를 않나, 초반부터 여러 명이 싸우지도 않고 햄스터처럼 옹기종기 모여들지를 않나.

관중들의 반응은 최악이었다.

다들 이번 대회는 역사상 최악의 대회가 될 것이라고 혹평했다.

1회부터 이렇게 재미없고 지루한 데다가 졸렬하기까지 한 대회를 보게 된 것에 격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오죽했으면 카메라로 관객 반응을 모니터링하던 주최 측이 당황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그 모든 지루함과 따분함, 찌질함을 한 번에 날려 버릴 존재가 등장했다.

마동왕!

한국 랭커 3명이 파티를 짰음에도 그 하나에게 무참하게 짓밟혔을 때, 관중들은 마동왕에게 조금 관심을 기울였다.

오로지 도망에만 집중하던 랭커가 히든 몬스터를 이용한 마동왕의 전략에 걸려 죽었을 때, 관중들은 응원했다.

랭킹 1위와 2위가 적색지대를 이용한 마동왕의 전략에 휘말려 리타이어당할 때, 관중들은 환호했다.

다구리를 위해 모였던 랭킹 3위와 4위가 마동왕에게 산 채로 찢겨 죽었을 때, 관중들은 기립했다.

그리고 지금.

한국 랭킹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17명의 랭커 연합.

그들이 마동왕에게 한꺼번에 몰살당할 때, 관중들은 전율했다.

17:1의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난 관객들은 전투가 끝날 때까지 단 한 명도 자리에 앉지 못했다.

…….

경기장에는 온통 침묵만이 흘렀다.

그 시끄럽던 MC들마저 할 말을 잃어버렸다.

단 한 명.

전용진 케스터만이 떨어지지 않는 입을 더듬더듬 움직여 현 상황을 간략히 중계했을 뿐이다.

[이,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죽음’ 그 자체가 강림한 느낌입니다.]

스크린 속에서는 피의 학살이 진행되고 있었다.

[우르릉…….]

악의 고성은 온통 불타고 무너진다.

마치 핵탄두가 떨어진 것 같은 광경, 하지만 더 무서운 것은 그것이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이다.

[콰콰콰쾅!]

마동왕이 한번 발을 구르고 주먹을 내뻗으면 용암의 파도가 몰아치고 깊은 절벽이 생긴다.

17명의 랭커는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몰살당했다.

그리고 이 소란을 듣고 이동해 온, 혹은 적색지대를 피해 넘어온 랭커들이 그 다음 표적이 되고 있었다.

[으아아악! 이게 뭐야!]

[히익!? 저런 걸 어떻게 이겨!]

[어어어어? 이거 버그 아니에요?]

와류의 중심에 완벽하게 자리잡은 마동왕은 그야말로 개미귀신과도 같았다.

그는 그저 가만히 서 있을 뿐이건만, 랭커들은 용암의 와류에 휩쓸려 죽거나 소용돌이의 중심으로 끌려온다.

[와작!]

그리고 지진파가 담긴 주먹에 맞아 머리가 깨져 즉사했다.

우-와아아아아아!

마동왕! 마동왕! 마동왕! 마동왕!

어마어마한 함성이 뒤늦게 경기장을 가득 채운다.

그때는 이미 마동왕이 배틀로얄 그라운드제로에 참가한 50명의 랭커 중 절반 이상인 26명을 혼자서 리타이어 시켜 버린 뒤였다.

“야, 야, 야, 야, 이거 실화냐!”

“않이, 저 파워 무엇?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이거 실제상황임? 혼자서 초고위 랭커 26명을 죽였다고?”

“적색지대에 밀어 넣은 거랑 몬스터한테 처형당하게 유도한 거 더하면 [email protected]임...”

“오져쓰 크라이스트! 이 경기 안본 눈 삽니다! 한번 더 보게! 나 소름돋았어 진짜!”

“직관 오길 잘했다. 이 경기는 게임사에 영원히 남을 거야 진짜…….”

경악은 흥분이 되고 흥분은 전율이 된다.

그 상황 속에서.

삐익-

경기 종료를 알리는 알림음이 들리자.

푸슉-

선수들의 몸을 가리고 있던 캡슐이 열린다.

드라이아이스 증기가 자욱한 무대 위로, 경기에 참여한 선수들이 걸어 나왔다.

와-아아아아아!

전투가 시작됐을 때 기립박수를 위해 일어난 관객들은 경기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자리에 앉지 못했다.

대신 발을 구르며 목이 터져라 환호할 뿐이다.

무대 위로 나온 랭커들은 그 뜨거운 함성에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관중들의 열화가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마왕아아아아아!”

감동으로 인해 얼굴이 눈물범벅이 된 안경 중년 하나가 무대 위로 난입했다.

서울 대표팀 ‘국K-1’의 감독 엄재영이었다.

그리고.

엄재영에게 어부바를 당한 채 무대로 나오는 남자가 하나.

마동왕.

바로 나다.

*       *       *

나는 캡슐 밖으로 나오자마자 가면이 잘 있는지 확인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저 멀리 전광판을 확인했다.

<국K-1>

-임요셉/ +0 Kill

-이연호/ +1 Kill

-마태강/ +1 Kill

-송병건/ +0 Kill

-마동왕/ +26 Kill

“나이스 샷.”

나는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예상했던 결과였다.

이윽고.

나를 중심으로 캐스터들이 다가왔다.

전용진 캐스터가 나에게 마이크를 들이밀며 물었다.

“네. 이번 리그의 MVP는 뭐, 따로 심사할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소감이 어떠신가요?”

그는 아직도 옅은 흥분으로 인해 떨리고 있는 자신의 손을 다른 손으로 꾹 누르며 물었다.

인터뷰를 하는 사람보다 시키는 사람이 더 떨고 있는 경우는 게임 리그 역사상 처음일 것이다.

“…….”

가면 속의 내 눈동자가 마이크를 향해 고정된다.

나는 짧게 입을 열었다.

“개똥벌레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

그러자, 경기장에 있는 모든 사람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무슨 뜻인가요?”

전용진 캐스터가 굳이 한 마디를 더 요구한다.

엄재영 감독이 불안한 표정을 짓는 순간, 나는 바로 대답해 버렸다.

“아무도 없었다는 겁니다. 제 주위에.”

내가 주먹을 살짝 들어 올리는 순간.

“히익!”

몇몇 랭커들이 헛바람을 집어삼키며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아무리 가상현실이라고는 하지만, 높은 싱크로율로 몰입해서 게임을 플레이하던 랭커들이다.

우악스러운 손에 사로잡혀 산 채로 찢겨 죽거나 머리통이 박살 나 죽는 경험을 했으니, 약간의 트라우마 정도는 생겼을 수 있겠지.

내가 피식 웃으며 손을 내리자.

“하나, 둘, 셋.”

“최고다 마동왕!”

무대 저 앞에서 수많은 인파가 내 이름을 연호하며 함성을 질렀다.

볼 것도 없이 유다희와 그녀가 이끄는 추종세력들이리라.

그리고.

경기 초반에야 내 이름을 부르는 이들이 마교뿐이었지만.

우-와아아아아아!

마동왕! 마동왕! 마동왕! 마동왕!

지금은 온 경기장이 통째로 다 나의 이름을 연호하고 있었다.

거대한 함성의 파도, 오로지 나 한 사람만을 위해 휘몰아치는!

나는 그 전장의 중심에 서서 격정에 몸을 떨었다.

꾸벅-

몸의 떨림을 숨기기 위해, 나는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리고 가능한 빨리 무대에서 내려가 경기장에서 모습을 감췄다.

무대 뒤, 선수 대기실로 향하는 계단에서.

“고생했다! 고생했어!”

엄재영은 나를 반쯤 껴안다시피 한 채 축축하게 젖은 목소리로 계속 중얼거린다.

‘나에게 하는 말이야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야 이거?’

그래도 옆에 있는 엄재영 감독을 보자 어쩐지 짠함이 느껴진다.

코치들에게 듣자 하니 그는 내가 17명에게 다구리를 당할 때 각 팀 감독들을 찾아가 거세게 항의했고, 심지어 주최 측 사람들과 주먹다짐을 하기 직전까지 갔었다고 한다.

그리고 피의 대학살이 시작되었을 때, 누구보다 크게 내 이름을 외치며 땀 흘려 응원했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지금 중얼거리고 있는 게 아니었다. 너무 고함을 쳐서 목이 쉬어 터져 버린 것이지.

와이셔츠도 어디 물에 한번 담갔다가 안 짜고 그대로 걸친 듯 땀이 흥건했다.

“…고생하셨어요.”

나는 음성변조된 목소리나마 엄재영에게 격려 인사를 건넸다.

“네가 웬일이냐?”

답지 않게 살가운 나의 인사에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뜬다.

나는 피식 웃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이제 겨우 베스트리그의 1차전이 끝났을 뿐이다.

하지만, 내가 관중들에게 박아 놓은 강렬한 첫인상은 이미 대회 전체의 이미지를 정해 버렸다.

아마 나의 활약은 아주 오랫동안 수많은 인구에 회자될 것이다.

“당장 내일이 기대되는데요.”

내 말에 엄재영 감독은 고개를 열심히 끄덕거렸다.

앞으로 정확히 12시간 뒤, 제1회 오뚝이배 베스트리그 1차 ‘배틀로얄 그라운드제로’의 풀 영상이 온갖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퍼질 것이다.

기분 좋은 노곤함, 후련한 성적, 보람찼던 오후.

벌써부터 내일의 댓글 반응이 기대된다.

오늘은 아마 새벽이 달 것 같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