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162화 (162/1,000)
  • 162화 17대 1 (1)

    삐익!

    저 멀리, 전광판에 쓰여 있는 숫자가 바뀌었다.

    <서울 ‘국K-1’ 마동왕 +3>

    그러자, 곳곳에서 불편해하는 듯한 신음들이 새어 나왔다.

    “역시.”

    “혼자 다 해 먹을 줄 알았어.”

    “신나셨겠구만 아주.”

    악의 고성 안쪽의 폐허, 2시 방향.

    17명의 플레이어들이 한곳에 모여 있다.

    그들 하나하나가 강력한 랭커들.

    각 도를 대표하는 강자들이 이렇게 모여 있는 모습은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그들은 서로를 향해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지만, 기묘하게도 분쟁은 일으키지 않고 있었다.

    공공의 적.

    더욱 더 강하고 위협적인 하나의 적을 앞두고, 그들은 조건부로 동맹을 맺은 것이다.

    “자자, 여기를 주목해 주세요.”

    한 여자가 앞으로 나섰다.

    밀랍인형처럼 창백한 얼굴, 축 쳐진 눈 아래에 짙은 다크서클이 나 있는 여자.

    복장은 전형적인 마법사 룩이다.

    얼굴의 절반을 가리고 있는 보라색 플로피 햇, 치렁치렁한 붉은색 로브.

    그녀는 강원도 대표팀 ‘매드독’의 리더인 김정은이었다.

    “여러 군소 팀들이 모여 우승후보를 미리 견제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중에서도 쟁쟁한 프로들을 상대로 거의 양민 학살을 하고 있는 저 마동왕이라는 존재는 더더욱 견제함이 마땅하지요.”

    김정은은 묘한 미소를 띤 채 좌중을 둘러보았다.

    그녀의 말에는 이상한 기운이 있었다.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설득이 되는 묘한 힘이다.

    결코 강제하지 않으면서, 거부감 없이 대중을 이끄는, 그런 어조였다.

    “프로라면 현상을 냉정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현재 마동왕 개인이 가진 전력은 일개 프로구단 하나와 맞먹습니다.”

    “우리를 응원하는 팬들이 어떤 걸 바랄까요? 어쭙잖게 자존심 내세우다가 벌레처럼 짓밟혀 죽는 모습? 그런 건 전형적인 3류 쌈마이 악당의 최후 아닙니까?”

    “냉정하게 봅시다. 지금 잠시 손을 잡고 마동왕, 나아가 서울 대표팀 국K-1을 꺾는다면 차후 우리끼리 공정하고 평등하게 왕좌를 나눠 가질 수 있습니다.”

    “원래 리그라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니까요.”

    김정은은 계속해서 말했다.

    그러자, 그녀가 은연중에 주도권을 잡는 것을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이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맞다이가. 머 붙으믄 몬 이길 것도 아이지만, 께림직하믄 일찌감치 다굴빵 까서 재껴 놓는 기 맞다.”

    앞으로 나선 이는 부산의 강팀 ‘스타파이브(S5)’의 리더 이준호였다.

    현 한국 랭킹 3위로 이 중에서는 가장 랭킹이 높은 플레이어였다.

    호쾌하고 패도적인 성격이었지만 남의 시선을 별로 염두에 두지 않는 성격 탓에 주변에 적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준호가 앞으로 나서자 곳곳에서 빈정거리는 목소리들이 들린다.

    “결국 여럿이 힘을 합치자는 거잖아? 랭킹 3위도 별 것 없구만.”

    “랭킹 1, 2위는 혼자 다니는데 역시 3위는 3위인 이유가 있어.”

    “큭큭큭, 부산이라 그런가 팀도 하나로 스까서 플레이하는구마잉. 엥? 이거 완전 스타파이브가 아니라 스까파이브 아니냐?”

    곳곳에서 작게 들려오는 빈정거림을 듣자, 이준호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기들도 마동왕에게 1:1로 안될 걸 아니까 모여 놓고 이제 와서 왜 비꼬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런 소란을 정리한 것은 다른 남자였다.

    “아따, 지역 가지고 놀릴 거면 느그덜이 일대일루 붙으러 가든가. 이런 느자구 없는 쉐끼덜.”

    익산의 강팀 ‘천지패황’의 리더 류요원이었다.

    그는 최근 한국 랭킹 4위였던 이연호를 5위로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

    쟁쟁한 랭커들이 일찌감치 두 손 두 발 다 들고 연합을 모의할 정도로, 마동왕이라는 이름이 가진 위압감은 엄청났다.

    그 뒤를 이어, 쟁쟁한 강팀들의 리더들이 파티 합류를 선언했다.

    전남 광주의 ‘다이너소어’, 충북 보은의 강팀이자 스폰 기업의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는 ‘코리아철강축산’, 그 외 ‘와이번즈’, ‘빅토리’, ‘프릭쇼’ 등등에 속한 랭커들이 전원 참전했다.

    총 17명.

    한국 랭커들 대부분이 모여 있다. 심지어 11위부터 20위까지는 전원이 포함되어 있을 정도였다.

    매드독의 리더 김정은이 박수를 쳤다.

    “와아, 총 열일곱 명이네요. 거의 한국 랭킹이 통째로 움직이는 수준이에요. 이 정도라면 다른 나라 정벌도 가능하겠는걸요?”

    그녀의 말은 장난처럼 들렸지만 사실 꽤나 현실적인 것이었다.

    한 국가의 최상위 전력 17인이 한 목적으로 한곳에 모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단순 전투력으로만 따지면 정말로 불특정 다수와의 전쟁도 가능할지 모른다.

    그래서일까? 17명의 랭커들 사이에서는 기묘한 자신감이 차오르고 있었다.

    “가즈아!”

    “마동왕 그까이꺼 뭐 별거냐!”

    “하나 잡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지!”

    누가 먼저 외친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다들 집단, 무리가 주는 안도감에 취해 버렸다.

    그것은 평소에 독고다이, 혼자서만 군림하던 탑 티어 급 플레이어들에게는 낯선 것이었고 어찌보면 그래서 더욱 더 짙게 취할 수 있었다.

    17명의 모인 전투력의 합보다 더 큰, [email protected]적인 고양감이 장내를 휘감고 있었다.

    그렇다.

    하늘에서 무언가 뚝, 그들의 사이로 떨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분명 그랬다.

    쿠-웅!

    하늘에서 뚝 떨어진 무언가는 폐가의 지붕을 부수고 대지에 깊은 자국을 남겼다.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흙먼지 사이로, 한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여기들 있었구나.”

    마동왕.

    바로 나다.

    *       *       *

    나는 붉게 물든 피카레스크 마스크 너머로 주위를 한번 슥 둘러보았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열일곱이라.”

    나와 눈이 마주친 랭커들은 하나같이 몸이 굳는다.

    ‘조금 양심 없는 짓인가?’

    ‘아무리 그래도 열일곱은 좀 너무했지?’

    ‘명색이 랭커이고 프로리그인데…….’

    17:1이라는 상황에 대한 양심의 가책이 몇몇 랭커들 사이에 감돌았다.

    그런 그들을 향해, 나는 깔끔하게 내 심경을 요약해 주었다.

    “에계?”

    그것이 도화선이 되었다.

    “이런 X!”

    3류 양아치스러운 대사와 함께, 한국 랭킹 3위가 움직였다.

    이준호.

    그는 특유의 패도적인 움직임으로 쌍검을 뽑아 들어 내게 달려든다.

    “전북익산!”

    류요원.

    한국 랭킹 4위인 그 역시도 거대한 참마도를 휘두르며 나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자, 지금입니다! 다들 포격!”

    마법사 김정은이 허공에서 화염구를 생성했다.

    동시에, 마법사와 궁수들이 나를 향해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하지만.

    콰-쾅!

    내가 주먹으로 지면을 때리자, 상황이 격변했다.

    주변의 폐가들이 우르르 무너져 내린다.

    랭커들이 발을 딛고 있던 지붕이나 굴뚝들 역시 당연히 붕괴했다.

    “어억!?”

    “꺄악!?”

    발을 디딜 곳이 사라진 랭커들은 땅바닥을 뒹군다.

    츠츠츠츠츠-

    땅에 닿으면 게임 끝이다.

    나를 중심으로 소용돌이치는 거대한 땅의 와류.

    지면 위 모든 것들은 내게로 끌려온다.

    쿠르르륵!

    시뻘건 불길은 덤이었다.

    한순간에 용암대지로 변해 버린 땅, 모든 랭커들이 작렬하는 화염 데미지에 비명을 질렀다.

    “제길! 아직 진형도 못 짰는데! 정보가 새어나갔나!?”

    김정은은 입술을 깨문 채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때.

    “이봐! 우리 좀 띄워 줘!”

    용암 구덩이 아래에서 김정은을 향해 외치는 사내가 둘.

    랭킹 3위 이준호와 4위 류요원이다.

    “…뭘 어쩌려고?”

    김정은이 묻자, 허공으로 떠오른 이준호와 류요원이 대답했다.

    “마동왕의 템트리는 이미 분석을 끝내 놨다이가.”

    “저놈이 쓰는 쌍 건틀릿은 각각 ‘지진골렘의 무한건틀릿’, ‘개미귀신의 집게발’. 둘 다 C+급 아이템이여!”

    ‘지진골렘의 무한건틀릿’은 C+ 등급의 한 손 무기.

    물리 공격력 +300에 암석 속성 공격력이 +50으로 총 350의 공격력을 가지고 있다.

    ‘개미귀신의 집게발’ 역시 C+ 등급의 한 손 무기.

    물리 공격력 +270에 땅 속성 공격력이 +60으로 총 330의 공격력을 가졌다.

    반면.

    이준호와 류요원이 가지고 있는 검과 도의 등급은 B등급, 공격력도 훨씬 높다.

    “예전에 중국 랭커 커제와 붙었을 때, 놈은 참마도의 공격을 부담스러운 표정으로 피했었지. 그 말인즉슨, 방어는 약하다는 뜻이여.”

    “문답무용! 이얍!”

    류요원과 이준호는 각각 자신의 한 방 기술을 펼쳤다.

    마법사 김정은이 그런 둘을 허공에 띄워 와류의 중심으로 향한다.

    바로 내가 있는 곳을 향해서.

    “얼쑤?”

    나는 피식 웃었다.

    설마 나를 향해 직접 뛰어들 줄은 몰랐는데.

    콰드드드드드득-

    이미 땅에는 지진과 와류가 날뛰고 있다.

    지형 변화가 일어났으면 게임의 절반은 이미 내 손에 넘어온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상황에서 자연재해의 중심에 있는 나를 향해 역습을 해 올 줄이야.

    “정면돌파는 정면으로 받아주는 것이 인지상정.”

    나는 떨어져 내리는 둘을 향해 손을 쫙 뻗었다.

    그걸 본 순간, 이준호와 류요원의 얼굴에는 회심의 미소가 깃든다.

    ‘이겼다!’

    B급 아이템이 C+급 아이템과 격돌하는 것이니 승패가 뻔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확신했다. 자신들의 공격이 내 건틀릿을 뚫고 치명적인 데미지를 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응 A+급이야.’

    나는 이미 심해에서 마동왕의 아이템을 업그레이드 해 온 바 있다.

    -<대왕게 집게해머 건틀릿> 한손무기 / A+

    단단한 키틴질 갑피에 덮여있는 건틀릿. 육중한 외형만 놓고 보면 자루 없는 망치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집게 안으로 들어온 것은 반토막 난다.

    -물리 공격력 +3,600

    -특성 ‘지진’ 사용 가능 (특수)

    -<아귀 메기의 이빨너클> 한손무기 / A+

    아귀 메기의 잇몸과 이빨이 그대로 붙어있 는 건틀릿.

    수많은 이빨들이 무작위로 배치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는 대단히 공식적인 배치이다.

    그래서 이 이빨들 사이로 흘러가는 공기나 해류는 불가해(不可解)의 소용돌이를 일으키곤 하는 것이다.

    -물리 공격력 +3,000

    -물 속성 공격력 +200

    -특성 ‘와류’ 사용 가능 (특수)

    공격력이 낮은 무기로 공격력이 높은 무기를 때리면 그 공격력의 차이만큼 무기는 내구도를 잃는다.

    자연스럽게도.

    와장창!

    이준호와 류요원의 칼날은 내 손에 잡히는 즉시 수수깡처럼 부러져 버렸다.

    역시 인생은 템빨이다.

    “???”

    그 둘은 자신의 애병이 눈앞에서 모래알처럼 흩어져 버리는 것에 경악했지만, 사실 마음 놓고 놀랄 시간도 없었다.

    아직 그들은 떨어져 내리는 중이었고, 내 주먹은 이제 그들의 코앞까지 짓쳐들어온 상태였으니까.

    이내.

    뻐뻑!

    둔탁한 소리가 연달아 두 번 울려 퍼졌다.

    흡사 달팽이를 커다란 망치로 내리쳤을 때 날 법한 소리.

    얇은 패각이 산산조각나고 그 안의 부드러운 것들이 한껏 처참하게 으깨지는, 그런 파육음(破肉音).

    푸슉- 푸슈슉-

    붉은 피가 안개처럼 흩어지며, 머리를 잃은 시체 두 구가 바닥에 발랑 까뒤집어진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세 번째, 네 번째로 강했던 영웅들의 말로다.

    “…….”

    뜻밖이어도 너무 뜻밖이다.

    생존자 15명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다음.”

    오직 나를 제외하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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