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배틀로얄 그라운드제로 (5)
“어라? 저건…….”
나는 2시 방향을 향해 뛰다가 잠시 멈칫했다.
콰쾅!
저 앞에 있는 건물들이 푹푹 주저앉는다.
굉음과 함께 땅이 흔들리고 있었다.
돌부처 임요셉과 질풍 홍지노가 맹렬하게 맞붙고 있는 것이 보인다.
“…오호.”
나는 사냥을 잠시 멈춘 채 그 둘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한국 랭킹 1위와 2위의 싸움을 직관할 수 있다니, 꽤 좋은 볼거리이다.
“그나저나, 홍지노는 엘리트즈에서 블루스컬로 완전히 이적한 모양이네.”
챌린지리그(서울 경합) 때 한번 붙었던 상대를 베스트리그에서 또 만나게 될 줄이야.
시스템 규정상 말이 안 되는 부분이지만…….
“뭐 높으신 분들이 게임리그 규정에 대해 잘 몰랐나 보군.”
상황이 이러하니 그냥 넘어가기로 한다.
어차피 지금 중요한 것은 베스트리그 2라운드로의 진출 아니겠나.
한데?
펑- 퍼펑- 퍼퍼펑-
계속해서 큰 기술을 난사하던 홍지노의 스타일이 조금 변했다.
그는 묵직한 한 방기를 쓰기보다는 가볍고 연타가 빠른 넉백기를 쓰기 시작했다.
물론, 나는 그것을 보자마자 바로 눈치 깠다.
“아하, 적색지대로 밀어 넣어서 리타이어 시키려고?”
상대방을 일부러 적색지대 깊숙이 몰아 놓고 자기만 빠져나가는 전략.
대회 초창기에는 신박한 전략으로 평가받지만, 시간이 좀 흐른 뒤에는 뻔한 전략이 된다.
아니나 다를까.
[빌어먹을!]
방어력과 체력이 높은 대신 움직임이 느린 임요셉은 적색지대에서 나오지 못하고 그대로 리타이어 되었다.
“쯧쯧, 저런 초보적인 실수를 하다니.”
나는 입맛을 다셨다.
하기야, 아직 1회 차이다 보니 룰에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명색이 한국 랭킹 1위씩이나 되는 존재가 적색지대에 갇혀 리타이어 당하다니.
‘새삼 이 시대 랭커들의 수준을 알겠네.’
나는 입맛을 다셨다.
아무래도 나는 15년 전 랭커들의 수준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긴, 이제 플레이 시간이 3천을 넘길까 말까 한 사람들이니…….”
참고로 말하자면 나는 전생 전 플레이 시간 7만, 그리고 회귀 후 플레이 시간 4천.
도합 7만 4천 시간이라는 레코드를 가지고 있지.
“좋아. 그럼 이제부터 적색지대를 이용해 먹는 고오급 전략에 대해 강의해 주도록 하겠어.”
자고로 뉴비는 뭐다?
사랑이다.
잘 가르쳐 줘야 하는 것이다.
나는 임요셉을 쓰러트리고 으쓱으쓱거리고 있는 홍지노를 향해 달려갔다.
폴짝-
내가 홍지노의 앞에 나타나자, 그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음.”
홍지노는 불편한 시선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발을 뒤로 살짝 뺀 것이 내빼려는 것 같기도 했지만, 자존심이라는 고삐가 그를 애매하게 옥죄고 있었다.
“어서 와, 나랑 붙는 건 처음이지?”
내가 홍지노를 향해 손짓하자.
빠직-
홍지노의 자존심에 불이 당겨진 모양이다.
그는 나를 향해 달려들며 앙칼지게 외쳤다.
“어디서 나를 루키 취급이야? 언랭 주제에!”
플레이 시간 4천 시간도 되지 않는 루키라서 루키라고 불렀는데 어째서 루키라 부르냐고 하시오면 제가 어찌 말해야 할지…….
나는 대장금에 빙의헤 청순가련한 눈빛을 보냈다.
그리고 지진의 힘이 담긴 건틀릿으로 홍지노의 안면 정중앙을 한번 대차게 한번 후려갈겨 주었다.
콰-콰콰콰콰쾅!
아차, 너무 셌나? 적당히 도발만 하려 했는데.
홍지노는 뒤로 8미터가량 나가 떨어졌다.
그 와중에 폐가의 기둥과 벽, 대들보가 우르르 무너져 내린다.
“커흑!”
그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일어났다.
‘카, 카운터를 치다니… 그 와중에…….’
홍지노는 질린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타고난 승부사인 그는 절대로 기죽지 않는다.
“죽어라!”
그는 두 주먹에 시뻘건 화염을 둘렀다.
그리고 그 상태로 나를 향해 무차별적인 폭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
나는 잠자코 홍지노의 공격을 맞아 주었다.
참고로, 나는 고인물 메타로 있을 때 착용했던 아이템은 모두 빼놓은 상태이다.
대신 내 몸은 심해에서 얻은 ‘지진’과 ‘와류’ 건틀릿, 그리고 그 외 방어력과 HP를 올려주는 아이템으로 중무장한 상태.
땅! 따앙! 땅!
홍지노의 주먹이 내 전신을 강타했다.
…….
한데?
‘뭐, 뭐야 이거!?’
홍지노는 내 몸을 때리면 때릴수록 자기 주먹이 아파 오는 것에 경악했다.
“후후후후.”
나는 그런 홍지노를 보며 음흉하게 웃었다.
-호칭: 지옥바퀴 대왕게 잡이(특전: 백전노장)
‘백전노장’
심해던전 ‘독주의 무덤’의 보스 몬스터 ‘지옥바퀴 대왕게’를 죽이고 얻은 특성이다.
이 특성은 맞으면 맞을수록 HP나 방어력이 올라가는 변태 특성.
홍지노가 가진 ‘난타’ 특성과는 상극의 관계에 있는 카운터 특성이다.
“더! 더 때려 줘! 더 세게!”
나는 홍지노를 향해 외쳤다.
그러자 홍지노는 오싹하다는 표정을 지은 채 뒤로 물러났다.
“젠장! 이거나 먹엇!”
그는 두 손을 모아 거대한 화염구를 만들어 투척했다.
콰쾅!
요란한 폭음이 일며, 주변이 온통 시뻘겋게 물들었다.
지글지글지글지글…….
주변 폐가에 불이 옮겨붙어 번진다.
나는 피식 웃었다.
“불이라면 나도 조금 쓰는데.”
동시에, 나는 ‘간쇼마루의 발가죽’이 가진 ‘불걸음’ 특성을 발현했다.
콰쾅!
내가 딛는 발자국들이 전부 불길로 뒤덮였다.
그 상태에서, 나는 ‘대왕게 집게해머 건틀릿’과 ‘아귀 메기 이빨너클’의 특성 역시도 꺼내들었다.
‘지진’과 ‘와류’가 동시에 땅을 뒤집어 놓았다.
콰콰콰콰쾅!
땅이 깨지고 박살나는 동시에, 그것들은 하나의 거대한 토류(土流)를 이룬다.
소용돌이에 불길이 얹히자 주변은 온통 화마에 삼켜졌다.
쿠르르르르륵-
시뻘건 열풍이 몰아쳐 모든 것을 삼켜 버린다.
하지만, 홍지노는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상관없다! 나는 화염 저항력이 극한이거든!”
홍지노는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어?”
홍지노의 표정은 이내 급변한다.
이건 뜨거워도 너무 뜨겁다.
“안됐네.”
나는 홍지노를 향해 애도를 표했다.
홍지노가 화염저항력을 아무리 극한까지 찍었다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뉴비의 기준이다.
내가 착용하고 있는 ‘간쇼마루의 발가죽’은 A+등급의 아이템이 아닌가?
잘 쳐 줘야 B급 몬스터 하나 정도의 육체 능력을 가진 홍지노가 버텨 낼 리가 없었다.
바로 그때.
“젠장! 할 수 없지!”
홍지노가 허리춤에서 무언가를 끄집어냈다.
“어?”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의외의 아이템이 등장했다.
-<고급 화상치료제> / D
화염 저항력을 일시적으로 대폭 높여 주는 물약.
홍지노는 폐가를 돌다가 주최 측에서 뿌린 구급약 키트를 파밍한 모양이다.
“이야, 운이 좋은데?”
나는 피식 웃었다.
내가 일으킨 불길과 홍지노가 일으킨 불길은 서로 뒤엉킨 채 번지고 있다.
주변은 온통 시뻘건 화광에 물들어 이글거린다.
“승부를 내자!”
홍지노는 자신의 모든 힘을 쥐어짜 강력한 한 방기를 준비했다.
‘백전노장’의 특성을 알아챘는지, 다소 데미지가 떨어져도 상대방의 방어도를 무시할 수 있는 ‘관통’ 특성을 발현한 상태.
“하아아아압!”
홍지노는 마치 소년만화 같은 기합성을 내지르며 나를 향해 돌격해 왔다.
투지! 열혈! 불꽃! 주먹!
우정! 만 있다면 영락없는 소년만화의 캐릭터다.
하지만.
나는 그와 어울려 줄 마음이 별로 없었다.
샥-
나는 약삭빠르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어?”
홍지노는 내가 뒤로 빠지는 걸 보고 당황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그는 나를 무섭게 쫓아오기 시작했다.
‘천하의 마동왕이 도망을 간다!?’
마동왕이 누구인가?
프로들 사이에서조차 공포로 통하는 존재가 아닌가?
그런 상대가 지금 자신을 피해 뒤로 내빼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홍지노는 용기백배했다.
“어이! 거기 서! 쫄았냐!”
그는 한껏 멋진 목소리로 외쳤다.
지금 영상으로 이 모습을 보고 있는 팬들을 의식한 멘트였다.
욕심에 몇 가지의 확신이 뒷받침되자 그것은 목표가 되었다.
‘임요셉에 이어 마동왕까지 죽인다면, 내가 넘버원이다!’
홍지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붉은 화광에 젖은 폐허 속을 질주하며 계속해서 앞으로 달려나간다.
바로 그때.
뚝-
나는 도망치던 것을 멈추고 제 자리에 섰다.
그리고 뒤로 돌아 홍지노를 바라보았다.
“이 자식!”
홍지노는 옳다 싶어 나를 향해 주먹을 날려 왔다.
뻐-억!
그의 주먹이 내 안면 정중앙을 강타했다.
하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
단 1mm도 뒤로 물러나지 않는다.
백전노장 특성이 극한까지 개화한 덕분이다.
“!?”
홍지노는 예상 밖의 상황에 당황한 듯싶었다.
적의 얼굴은 철판을 깔아 놓은 듯 단단하다.
몸도 천근추처럼 무거워 도저히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뭐, 뭐지? 그럼 지금까지 왜 도망간 거지?’
홍지노는 등골에 오싹 돋는 소름을 애써 무시했다.
뭔가 기묘한 위화감이 그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때.
“이제 알겠지? 이렇게도 쓸 수 있어.”
나는 짧게 말했다.
빙긋 미소 짓는 내 얼굴을 보며, 홍지노는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
이상한 점은 딱히 없다.
적팀 플레이어도 없고 숨겨진 함정도 없다.
주변은 온통 자신과 적이 일으킨 불길, 시뻘건 화광에 젖은 땅과 건물들 뿐.
…아니, 잠깐.
‘화광!?’
홍지노는 두 눈을 크게 떴다.
땅과 건물들, 그것들은 불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빨갛다.
불길이 내뿜는 붉은 빛이라면 분명 어딘가에는 그림자도 있어야 한다. 검게 타 버린 잿더미라도 보여야 하는데, 그런 것들이 일체 없다.
불타는 폐허 안에는 완벽한 ‘적색’뿐!
그것을 깨닫는 순간, 홍지노의 안색이 급변했다.
“적색지ㄷ…!?”
하지만 너무 늦었다.
상대방의 얼굴에 닿아 있던 주먹을 미처 회수할 시간도 없이, 그야말로 찰나에 벌어진 일이었다.
지이이잉-
아까는 폭음에 가려져서 들리지 않았던 소리가 똑똑히 들려왔다.
그것은 적색지대 안에 있는 모든 생명체를 날려 버리는 ‘배제(排除)’의 소리.
그렇다.
임요셉이 당했던 것처럼, 홍지노 역시도 적색지대의 마수에 걸려든 것이다!
파-앗!
이윽고, 내 눈앞에 있던 홍지노는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버렸다.
툭-
내 신발코 앞으로 무언가가 떨어져 내린다.
그것은 손목 부근부터 깔끔하게 잘려나간 주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