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160화 (160/1,000)
  • 160화 배틀로얄 그라운드제로 (4)

    현 한국 랭킹 1위.

    현 아시아 랭킹 6위.

    현 세계 통합 랭킹 9위.

    한국 랭커의 자부심이자 아시아 최고의 탱커라고 불리는 존재.

    ‘돌부처’ 임요셉을 따라다니는 수식어들이다.

    단단한 방어력, 고강한 HP, 높은 원소 저항력, 거기에 상대방에게 거는 각종 상태이상까지.

    상대방의 공격을 버티고 막아내는 특성들로만 도배된 임요셉의 극탱 템트리를 본다면 적은, 특히 딜러들은 암담함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흐음.”

    임요셉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삭막한 폐가들로 가득한 중심지대. 플레이어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쉬익- 쉭-

    저 멀리 보이는 몇몇 플레이어들이 2시 방향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디로 가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전부 다른 팀 소속의 선수들이라는 점이 조금 꺼림칙했다.

    “빨리 다른 팀원들을 찾아야겠군.”

    탱커는 기본적으로 딜러가 옆에 있어 줘야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탱커이지만 딜링도 가능한 임요셉이기에, 그는 아무런 부담감 없이 악의 고성을 활보할 수 있었다.

    몇몇 플레이어들이 임요셉을 발견했지만 몇 대 때리다가 그냥 도망가고 말았다.

    아무리 때려도 딜이 박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좋아, 몇이든 간에 덤벼 봐!”

    임요셉은 싱글싱글 웃으며 계속 맵을 돌아다녔다.

    그 누구도 자신에게 딜을 넣을 수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하의 임요셉도 마냥 안심할 수는 없었다.

    “어이~”

    지붕 위에서 모습을 드러낸 한 명의 플레이어는 그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한국 랭킹 2위.

    아시아 랭킹 7위.

    세계 통합 랭킹 10위의 강적.

    ‘폭풍’ 홍지노가 나타난 것이다.

    미세한 차이로 임요셉보다 하위 랭킹에 배치된 홍지노.

    실제로 그 둘은 서로 공방을 주고받으며 한국 랭킹 1, 2위를 다투고 있다.

    심지어 세계 랭킹에서도 그 둘은 바짝 붙어 한 끗 차이로 등수를 겨루고 있었다.

    홍지노는 임요셉과는 모든 점이 반대였다.

    임요셉이 극탱이라면 홍지노는 극딜.

    오로지 상대방을 때려죽이기 위한 ‘폭딜 무투가’ 메타이다.

    전신에는 불꽃을 두르고 손에는 단단한 건틀릿을 착용했다.

    막강한 물리공격력과 화염 공격력으로 무장한 그의 몸은 바람처럼 빠르게 움직인다.

    눈 깜짝할 사이에 거리를 좁혀오는 모습은 흡사 폭풍과도 같았다.

    홍지노는 불길에 휘감긴 고개를 내려 지붕 아래 임요셉을 바라보았다.

    “하이 극탱돼지.”

    “네 다음 꿀주먹.”

    홍지노와 임요셉은 서로에게 안부를 물었다.

    동시에.

    콰쾅!

    홍지노가 지상을 향해 불벼락처럼 낙하했다.

    우지직-

    정면으로 날아드는 주먹을 향해, 임요셉은 두 장의 방패를 겹쳐 들었다.

    콰쾅!

    요란한 굉음과 함께, 주변은 잿더미가 되었다.

    뒤로 반걸음 정도 물러난 임요셉을 향해, 홍지노가 씩 웃었다.

    “여기서 설욕전을 하게 되는구나. 넌 죽은 목숨이야.”

    그러자, 임요셉은 차가운 어조로 비꼬았다.

    “설욕할 상대는 나 말고 따로 있을 텐데?”

    “이 자식!?”

    홍지노의 이마에 핏줄이 섰다.

    저번 리그에서 투신 마태강에게 3연뻥으로 대패했던 것을 비꼬는 것이리라.

    하지만 임요셉은 팩트 폭력을 멈추지 않는다.

    “베스트리그에 나오고 싶어서 팀까지 이적하다니, 꼼수도 정도껏 부려야지.”

    그렇다.

    홍지노는 서울 경합에서 떨어진 직후 팀을 이적해 상대적으로 인프라가 적었던 ‘블루스컬’로 이적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팀을 이끌어 베스트리그의 출전권을 따냈던 것이다.

    아직 대회가 1회 차이기에 규정이 허술했던 것, 그리고 이적시장이 지나치게 활기를 띠게 되어 지방 팀에서 수도권 팀의 선수들을 빼 오는 데 혈안이 된 점을 노린 것이리라.

    “이적하느라 수고 많았다. 헛고생이겠지만.”

    “입으로 딜 넣냐?”

    홍지노는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주먹을 날렸다.

    쩌-엉!

    건틀릿과 방패가 맞붙는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불똥이 튀고 있었다.

    홍지노가 이죽거렸다.

    “방패를 두부로 만들었나? 되게 물렁거리네.”

    “그 두부도 못 뚫는 네 주먹은 뭐임? 연두부?”

    홍지노와 임요셉은 계속해서 공방을 주고받고 있었다.

    홍지노가 강력한 물리공격력으로 한 방기를 날리면 임요셉은 침착하게 그것들을 막거나 흘려보낸다.

    임요셉이 반격을 위해 데미지를 반사하거나 상태이상을 걸면 홍지노는 바람 같은 움직임으로 그것을 전부 피해 버린다.

    전투는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공방전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하지만.

    ‘칫!’

    미약하게나마 손해를 보고 있는 쪽은 분명 홍지노였다.

    “젠장, 이 탱돼지 자식! 템트리 인성질 봐라, 진짜! 게임 줘까치 하네!”

    “꼬탱. 꼬우면 탱커하세요.”

    욕이 절로 나온다.

    그렇게 두들겨 댔지만 상대방의 HP는 아직 큰 변화가 없었다.

    10분, 아니 20분은 두들겨 댔지만 HP는 거의 깎지도 못하고 오히려 반동으로 인한 데미지나 상태 이상 때문에 손해만 누적된다.

    심지어, 임요셉은 마냥 탱만 하는 탱커가 아니다.

    뿔이 달린 방패 두 개를 한데 모아 매머드의 상아처럼 돌격해 오는 돌진기에 맞으면 어지간한 딜러의 폭딜보다도 더 아프다.

    게다가 심심찮게 반사되어 오는 데미지와 조금만 방심해도 바로 걸려 버리는 각종 상태이상도 아주 성가시다.

    ‘젠장.’

    결국 홍지노는 인정했다.

    PVP에서 딜러가 탱커를 이기는 것은 상당히 힘들다.

    이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는데 게임에 풀려 있는 아이템 중 무기와 방어구의 수준을 비교해 보면 미약하게나마 방어구의 수준이 더 높은 것이 큰 요인이었다.

    또한 탱커는 경기 내내 방어에만 집중하다가 상대가 틈을 보이면 툭툭 찌르기만 해도 되는 반면, 딜러는 시종일관 내내 집중력을 유지해야 하는 것도 큰 디메리트이다.

    컨트롤 실력과 운영력, 몰입도가 비슷하다면 장비가 좋은 수비 쪽이 아무래도 유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홍지노의 승부욕과 투지는 이 모든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그를 앞으로 이끌고 있었다.

    “…….”

    홍지노는 결국 전법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콰쾅!

    그는 두 손을 뻗어 임요셉에게 넉백(Knock-Back)기를 걸었다.

    “…뭐냐? 도망치려고?”

    임요셉은 뒤로 밀려나면서도 피식 웃었다.

    넉백 기술은 상대방으로 뒤로 크게 밀어내긴 하지만 실질적으로 데미지를 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홍지노는 임요셉을 뒤로 멀리 밀어냈음에도 불구하고 도망치지 않았다.

    다만 특유의 바람 같은 움직임으로 거리를 좁혀와 또다시 넉백기를 썼을 뿐이다.

    콰쾅!

    임요셉은 또다시 거북이처럼 몸을 웅크렸다.

    몸은 밀려나지만, HP바는 그대로이다.

    넉백기에 당했을 때 걸리는 상태이상도 전부 가드해 냈다.

    하지만, 홍지노는 또다시 거리를 좁혀 온다.

    굳이 넉백기로 거리를 벌려 놓은 의미가 없게끔.

    콰쾅! 콰쾅! 콰쾅! 콰쾅!

    홍지노는 계속해서 임요셉을 뒤로 밀어냈다.

    임요셉은 짜증스럽게 외쳤다.

    “이 자식! 무슨 장난이야!?”

    아무리 실질적인 피해가 없더라도 자꾸 뒤로 밀려나기만 하는 것은 짜증스러운 일이다.

    그가 막 방패를 푸는 순간.

    멈칫!

    홍지노가 달려들려다 말고 멈춰서는 것이 보인다.

    “……?”

    임요셉이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지이잉-

    어디선가 불길한 소음이 들려왔다.

    “……!”

    임요셉은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츠츠츠츠츠……

    주변의 땅과 건물들이 전부 빨갛게 물들고 있었다.

    ‘적색지대!’

    분명 사전에 경고를 들은 적 있다.

    이 안에서 1분 안에 탈출하지 못하면 강제 텔레포트에 휘말리게 된다.

    “이 자식!? 설마 이걸 노리고!?”

    임요셉은 경악한 채 고개를 들었다.

    “큭큭큭.”

    홍지노는 거침없이 적색지대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또다시 임요셉을 향해 강력한 넉백기를 걸었다.

    콰콰쾅!

    임요셉은 또다시 뒤로 밀려났다.

    콰쾅! 콰쾅! 콰쾅! 콰쾅!

    그 뒤로 홍지노의 넉백기가 계속해서 이어진다.

    이윽고.

    임요셉을 적색지대 중앙 깊숙한 곳까지 밀어넣은 홍지노는 뒤로 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파파팟!

    질풍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빠른 홍지노의 발걸음이다.

    “젠장!”

    임요셉은 황급히 뒤쫓아 갔지만, 그것은 잘못된 판단이었다.

    어차피 중앙까지 밀려난 이상 반대편으로 가는 것이 나았다.

    왜냐하면 홍지노는 앞서 도망치는 동안 틈틈이 뒤로 돌아 강력한 한 방기를 날려 왔기 때문이다.

    퍼펑!

    홍지노의 주먹이 방패와 방패 사이의 미세한 틈을 뚫고 들어와 임요셉의 쇄골 부근을 강타했다.

    “후후후, 이곳 3시 구역은 지금까지 한 번도 적색지대로 설정된 적이 없었거든. 곧 한 번은 되겠다 싶었지.”

    맵 전체를 살피고 있었던 홍지노의 전략이 우세를 점하는 순간이었다.

    이윽고, 뒤로 나가떨어진 임요셉의 몸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그는 인상을 찌푸린 채 고개를 들어 라이벌을 노려보았다.

    홍지노는 그런 임요셉을 향해 중지를 날려 보냈다.

    “0킬 1데스 수고요.”

    임요셉은 무어라 말을 하려 했지만, 시간이 없었다.

    피핏!

    임요셉은 그대로 홍지노의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자동 장외패.

    악의 고성 밖으로 텔레포트 된 것이다.

    “좋았어! 이겼다!”

    홍지노는 주먹을 쥐며 쾌재를 불렀다.

    그동안 이기고 지고를 반복하던 오랜 라이벌.

    오늘에야 통쾌한 승리를 거머쥐게 되었다.

    팀 엘리트즈에서 팀 블루스컬로 이적까지 해 가며 리그에 출전한 보람이 있는 것이다.

    “뭐, 이것 때문에 서울 팬들에게 욕 좀 먹고 대회 규정까지 바뀌긴 했지만. 그래도 값진 승리였다.”

    기본적으로 홍지노는 게임밖에 모르는 진성 게이머, 게임 외의 세상에서 욕먹는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는 3시 방향의 적색지대에서 서둘러 벗어났다.

    1킬을 했으니 이제 계속해서 킬 수를 쌓아 나갈 차례다.

    “다른 팀원들은 잘하고 있겠지?”

    홍지노는 고개를 돌려 2시 방향을 바라보았다.

    저곳에는 아마 상당한 인파가 모여 있을 것이다.

    마동왕.

    압도적인 신흥 강자.

    그를 꺾기 위해서 몇몇 팀의 플레이어들이 임시 동맹을 맺었다.

    홍지노는 그곳에서 가입 권유를 받았지만 쿨하게 거절한 상태였다.

    “바보 같은 놈들. 그런 놈이 뭐가 무섭다고.”

    홍지노는 팀 엘리트즈에 있을 당시 마동왕과 직접 겨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일까?

    그는 고작(?) 마동왕 하나를 잡기 위해 연합하는 이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개인전에서 1:1로 싸우면 누구라도 다 이길 수 있어! 어쭙잖은 팀 전만 아니면 내가 당해 내지 못할 상대는 없…….”

    그가 호기롭게 중얼거리고 있는 순간.

    타탁-

    지붕 위에서 들려오는 발소리.

    2시 방향을 향해 직선으로 달려가고 있던 발걸음이 뚝 멎는다.

    “어? 야, 너 오랜만이다?”

    이내, 지붕 위에서 인사말이 건네져 왔다.

    “……?”

    홍지노는 이글거리는 눈빛을 들어 지붕 위를 쳐다보았다.

    순간.

    오싹-

    그의 눈동자에 어려 있던 뜨거운 투지가 빠르게 식어 간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

    이 속담의 뒤에는 그 후의 상황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

    호랑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던 사람들은 제 이야기를 듣고 온 호랑이를 만난 뒤 어떻게 되었을까?

    “…….”

    홍지노는 불안한 표정을 지은 채 뒤로 반보 물러났다.

    마동왕.

    그가 지붕 위에서 이쪽을 향해 반짝거리는 눈빛을 보내오고 있었다.

    마치 신기한 곤충이라도 발견한 듯한 악동(惡童)의 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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