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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159화 (159/1,000)
  • 159화 배틀로얄 그라운드제로 (3)

    히히히…히……히………흠?

    바람을 가르며 달리면서, 나는 심경의 변화를 겪었다.

    ‘이거 뭔가 좀 이상한데?’

    나는 눈앞에 보이는 신창원의 등을 보며 생각했다.

    녀석은 분명히 나를 유인하면서 도망치고 있는 중일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게임은 적과 아군의 구분이 없다.

    동맹도 배신도 언제든 재량껏 가능하다.

    고로 신창원은 나를 아군들의 매복지로 데려가 집중포격을 노리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내 그런 내 예상은 점점 빗나가기 시작했다.

    호다다닥-

    신창원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폐허 중심부가 아니라 외곽을 향해 도망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진짜 이상하잖아.’

    나는 참다못해 저 앞에 도망치는 신창원을 향해 물었다.

    “야! 여기로 가면 네 동료들 있는 거 맞냐? 슬슬 그만 도망치고 싸울 때도 됐잖아?”

    그러자.

    “……?”

    앞서 도망치던 신창원이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나를 돌아본다.

    “뭔 개소리야 미친놈아!”

    “……?”

    내가 고개를 갸웃하며 인상을 찌푸리자.

    “히이이이이익!”

    내 표정을 본 신창원은 또다시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도망친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아, 저 자식. 진짜 그냥 튀는 거였네.’

    너무 무서워서 상황 판단할 시간도 없이 그냥 필사적으로 달리는 중인가 보다.

    그래서 중심가가 아니라 외곽으로 가는 줄도 모르고 무작정 달리는 모양.

    “에라, 괜히 좀도둑 상대로 시간만 버렸네.”

    나는 지금이라도 추격을 관두고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방향을 틀까 고민했다.

    하지만.

    여기까지 추격해 놓고도 돌아서기엔 투자한 시간이 아깝다.

    ‘매몰비용도 비용이란 말이지.’

    나는 기왕지사 시간을 많이 버린 거 조금 더 버리기로 했다.

    “서라!”

    커다란 바위를 집어던지자, 신창원이 잽싸게 몸을 옆으로 튼다.

    콰쾅!

    비산하는 돌조각들 사이로, 나는 손을 쫘악 뻗었다.

    하지만.

    “으으윽! 나는 도망이라면 누구에게도 안 진다!”

    신창원은 잽싸게 뛰어 폐가의 창문을 깨고 안으로 들어간다.

    “폐가로 들어가면 독 안에 들어간 쥐지.”

    나 역시도 폐가의 벽을 부수며 안으로 난입했다.

    하지만.

    폐가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로지 굴뚝의 아궁이에 시커먼 자국들이 번져 있을 뿐.

    “그래? 굴뚝을 타올라 갔어?”

    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굴뚝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때.

    풀썩-

    굴뚝 위에서 시커먼 잿가루가 떨어져내려 내 얼굴에 끼얹어진다.

    신창원의 노림수였던 것이다!

    “푸학!”

    나는 입과 눈에 들어간 잿가루를 털어내며 기침했다.

    -띠링!

    <상태이상 ‘실명’ 상태에 빠졌습니다>

    나는 얼굴을 손으로 짚으며 비틀거렸다.

    “아악! 아무것도 안 보여! 이러다가 암살이라도 당하면 어떻게 하지!? 정말 너무 무섭다!”

    적이 들으라고 하는 대사다.

    그 와중에도 귀는 쫑긋 세운 채 창문이나 굴뚝을 살피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기회다!’

    어느새 창문으로 슬쩍 내려온 신창원이 단검 투척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와장창!

    나는 눈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귀신같이 손을 뻗어 창문을 깨부수고 신창원의 손모가지를 낚아챘다.

    “잡았다 요놈. 구라치다 걸리면 손모가지야.”

    “으아악! 어떻게 안 거야!?”

    “사플 몰라? 사플?”

    사운드 플레이(sound play).

    소리만 듣고 적의 위치를 알아내어 싸우는 기술.

    고인물이라면 누구나 가능한 기술이다.

    나는 뉴비를 위해 친절하게 사운드 플레이 강의를 시작했다.

    “우선 발걸음, 소수 대 소수의 실내전이 벌어질 경우 이것이 매복자에게 있어서 가장 큰 단서가 되지. 조용히 귀를 기울이면 지붕 위 굴뚝 쪽에서 창문 쪽으로 움직이는 네 발자국 소리가 천둥보다 크게 들려오거든. 지붕의 기와가 삐그덕대는 소리만 따라가도 네 위치와 공격 방향은 뻔히 보여.”

    “?”

    “그리고 다음은 무기 소리다. FPS를 비롯한 많은 장르에서 전투 시 반드시 무기별로 다른 소리가 나지. 화살, 단도 등은 저마다 마찰음, 파지음, 투척음이 다르기에 아이템의 옵션, 등급, 스탯을 파악할 수 있어. 그리고 장전, 겨냥할 때의 소리를 이용해서 무방비 상태에 놓인 적에게 역습이 가능하다.”

    “??”

    “그리고 다음은 오브젝트야. 일반적인 지형뿐만 아니라 부쉬, 궤짝, 트랩 등의 오브젝트가 따로 존재하는데 이를 지날 때 나는 소리를 이용하는 것이지. 물리엔진이 조금만 세밀해도 온갖 종류의 소리들이 들려오거든. 지붕에서 처마를 지나 창틀로 넘어올 때, 너는 처마 밑의 고드름과 창틀 밑에 낀 서리를 무시했어. 빠그작 거리는 소리 때문에 알기 싫어도 알게 되더군. 네 위치를 말이야.”

    “???”

    신창원은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이내, 그는 허리춤에서 다른 것을 꺼내들었다.

    스르릉-

    그것은 바로 채찍처럼 하늘거리는 칼이었다.

    “오오? ‘뱀비늘 연검’인가? 물리공격력 +400으로 C+급 아이템 치고는 좋은 편이지. 하지만 내구도도 약하고 근거리에서는 공격력이 50%로 반감되잖아? 그걸로는 날 어떻게 못할 텐데?”

    내가 보지도 않은 채 아이템의 이름과 등급, 스탯을 알아맞히자 신창원의 얼굴이 또다시 황당함으로 일그러진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나도 잘못 짚었다.

    뎅겅-

    신창원이 공격한 것은 내가 아니라 나에게 잡힌 자기 팔이었던 것이다.

    “헐.”

    나는 조금 놀랐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나에게서 도망치려 하다니.

    호다닥-

    신창원은 내게 잡힌 손목을 잘라버린 채 그대로 도망친다.

    마치 꼬리를 자르고 도망치는 도마뱀 같았다.

    “정말 귀찮네.”

    나는 폐가의 벽을 펑 부수며 뛰쳐나왔다.

    이때쯤 해서, 시력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저 멀리 신창원이 부리나케 도망가고 있는 것이 보인다.

    좁은 골목 사이로, 지붕과 지붕을 건너뛰어서, 난간을 타고 미끄러지며.

    신창원은 끊임없이 도주한다.

    쾅! 콰쾅! 퍼퍼퍼펑!

    나는 가로막는 모든 것을 다 짓밟아 부수며 그를 쫓았다.

    “…이제 슬슬 짜증이 나는데.”

    전광판에 적힌 시계를 보자 이제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은 것이 보인다.

    결국.

    나는 비장의 수를 쓰고 말았다.

    콰콰콰쾅!

    오른손으로 번갈아 지면을 쳐 양쪽의 건물을 무너트렸다.

    붕괴물은 서로 약간의 틈을 가진 채 무너졌고 그 사이로 좁디좁은 골목길이 생겨난다.

    “젠장!”

    신청원은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유일하게 나 있는 탈출구를 향해 몸을 던졌다.

    ‘우연히’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저 좁은 골목길을 향해서 말이다.

    타타탁!

    골목을 달리며, 신창원은 바짝 긴장했다.

    골목 여기저기에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는 녹슨 못, 썩은 나무조각, 오염된 물웅덩이 들은 천연의 함정이다.

    닿으면 상태이상 ‘파상풍’, ‘독’, ‘맹독’ 등에 걸릴 수도 있다.

    이내, 골목의 중간 부분이 나왔다.

    썩은 목재 더미가 골목을 가로막고 있었다.

    콰쾅!

    신창원은 거침없이 폐목 더미 위 판자들을 밟고 달려갔다.

    바로 그때.

    빠바방!

    썩은 널빤지 바닥 밑에서 무언가가 폭발하듯 튀어 올랐다.

    썩은 나뭇조각들이 사방팔방으로 튄다.

    [빼애애애앵!]

    그 밑에서 보라색 살덩이 같은 것이 신창원을 향해 달려들었다.

    <숨바꼭질 썩은애기> -등급: B / 특성: 어둠, 언데드, 독, 자폭

    -크기: 1m

    -숨바꼭질을 위해 숨어 있던 아이. 좁은 공간에 꼭꼭 숨었지만 감염은 피할 수 없었다.

    갑자기 툭 튀어나온 이 몬스터를 보고, 신창원은 기겁했다.

    “뭐, 뭐야!? 몬스터가 왜 나와!?”

    그는 길을 가로막는 몬스터를 향해 반사적으로 단검을 던졌다.

    푸확!

    그러자, 썩은애기는 신창원을 향해 오염된 혈액을 흩뿌려 놓았다.

    -띠링!

    <상태이상 ‘저속’에 걸렸습니다>

    신창원의 몸 움직임이 확 느려졌다.

    퍼퍼퍼퍼퍼퍼퍽!

    신창원은 썩은애기를 향해 혼신의 힘을 다해 단검 세례를 날렸다.

    그러자.

    콰쾅!

    썩은애기는 데미지를 견디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자폭해 버렸다.

    “끄아악!”

    신창원은 큰 데미지를 입은 채 나가 떨어졌다.

    그는 초토화된 골목을 바라보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주최 측에서 몬스터를 덜 청소했나? 왜 바닥에서 몬스터가 나오냐고!”

    뉴비의 의문은 풀어주는 것이 인지상정!

    나는 바닥에 나동그라진 신창원에게 다가가며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숨바꼭질 썩은애기’는 특정 골목의 썩은 널빤지를 3회 이상 연속으로 밟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는 히든 몬스터지. 주최 측에서는 눈에 띄는 몬스터들만 잡느라 숨겨져 있는 몬스터를 미처 발견하지 못한 모양이로군. 마법사들은 이런 외진 곳까지 일일이 발로 뛰지 않으니 발로 밟아야만 발견할 수 있는 몬스터로 인한 사고가 발발할 가능성이 크지.”

    “으으, 그게 말이 돼!?”

    “대회 역시도 사람이 주최하는 것이니만큼 실수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실수들까지 적절히 이용할 수 있어야 ‘프로’인 것이다.”

    나는 꼰대처럼 훈계를 늘어놓으며 신창원을 붙잡았다.

    “어디 또 자르고 도망가 봐.”

    이번에 잡은 것은 손이 아니라 목이었다.

    콰긱-

    내가 목을 조르자, 신창원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나는 말했다.

    “묻는 말에 순순히 대답하면 살려 주지.”

    “…정말?”

    “정말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

    “……? 뭐야 그게?”

    “내 기분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이야. 네가 시간을 끌수록 점점 나빠지겠지만.”

    “으으으…….”

    신창원은 내 팔에 매달린 채 바둥거린다.

    나는 다시 한 번 말했다.

    “어차피 너 하나 죽여 봐야 1점이야. 티끌이라고. 봐줄 수도 있어.”

    그 말에, 신창원은 결국 입을 열었다.

    “왜 네 주변에 다른 플레이어들이 없는지, 그거 물어보려고 하는 거지?”

    “빙고.”

    “…….”

    신창원은 잠시 뜸을 들인 끝에 말했다.

    “모든 팀이 시작하자마자 ‘국K-1’을 다구리 할 계획이라는 건 맞아.”

    “그래. 그렇겠지.”

    “…그런데, 거기서 너만은 예외야.”

    “……?”

    “너는 왕따라고. 모두가 너를 피한단 말이야.”

    “왜?”

    “…몰라서 묻냐? 네가 지금까지 한 짓을 봐.”

    신창원은 하나 남은 팔로 골목 반대편을 가리켰다.

    “…….”

    나 역시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돌아보았다.

    지금껏 내가 신창원을 추격한 루트. 그곳은 한 곳도 남김없이 모조리 파괴되어 있었다.

    마치 거대한 자연재해가 일어난 것처럼.

    이내, 신창원은 말했다.

    “너 싸우는 동영상 다 봤어.”

    “무슨 동영상? 챌린지리그에서 역올킬 하는 거?”

    “그거 말고. ‘고인물’이랑 싸우는 거.”

    아아 ‘고인물 VS 마동왕’ 전을 말하는 건가?

    이벤트성으로 벌인 매치였는데 꽤나 다른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준 모양이다.

    이내, 신창원은 빽 소리쳤다.

    “고인물, 그 미친놈이랑 붙어서 비기는 놈을 어떻게 이겨!”

    아하, 이제야 알겠다.

    왜 내 주변에 사람들이 없었는지.

    “그렇군. 나를 아예 게임에서 배제시키겠다는 건가? 승점이고 킬이고 아예 세울 기회를 안 주겠다 이거로군?”

    ‘고립(孤立)’

    다른 팀들이 다 그런 계획을 세우고 있을 줄은 몰랐다.

    전생의 기억과는 약간 다르지만, 뭐 어때?

    “…그래, 그런 전략이셨군들 그래?”

    이제야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

    괜찮다. 어차피 안 오면 내가 찾아갈 생각이 아니었나?

    내가 소리 없이 미소만 짓고 있자, 신창원은 불안해졌는지 한 가지 정보를 더 토해 놓았다.

    “그, 그러고 보니. 너를 사냥할 계획을 짜고 있는 정신 나간 팀들도 있는 모양이야.”

    “호오? 누가?”

    “그건 잘 모르겠는데, 선수 대기실에서 얼핏 들었어. 너를 죽이고 싶은 자들은 맵의 2시 방향으로 모이라고… 나는 관심 없어서 쌩깠지만…….”

    좋은 정보를 들었다.

    2시 방향이라면 제일 처음으로 적색지대가 되었던 곳이다.

    “아마 초반에는 적색지대 때문에 모이지 못했겠네. 지금쯤은 모여들고 있겠군.”

    적색지대는 약 5분간 지속된다.

    그러니 이제는 꽤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을 것이다.

    내가 혼자서 곰곰이 생각하고 있을 때.

    “…저, 이제 나는 살려 주는 건가?”

    신창원은 눈치를 보며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었으니 목숨만은 살려 주지.”

    “나, 나는 그럼 어떻게 되는 거지?”

    “죽을 것이다.”

    신창원의 머리 위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바로 그 순간.

    휘이이잉-

    하늘 위에서 무언가가 떨어져 내렸다.

    그것은 방금 전에 자폭해서 죽은 숨바꼭질 썩은애기의 살점이었다.

    철썩-

    꽤 큼지막한 살덩이였다.

    그것은 그대로 신창원의 정수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독성이 있는 살점에 피격당한 그의 HP가 완전히 바닥을 드러냈다.

    쿵-

    신창원은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고 말았다.

    -띠링!

    <‘zl존S2괴도™’ 님이 몬스터에게 처형당했습니다>

    나는 신창원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맵의 2시 방향을 쳐다보았다.

    ‘저쪽에서 나를 노리는 레이드가 결성되고 있다 이거지?’

    나는 재빨리 발걸음을 옮겼다.

    아싸 센서가 요란하게 울리고 있다.

    그래, 인기척이 난다.

    많은 사람이 모여들어 있는 것이 느껴진다.

    “왕따는 나쁜 거야, 친구들.”

    어디선가 다구리에 시달리고 있을 ‘국K-1’ 친구들을 위해, 그리고 지금껏 외톨이로 살아온 나를 위해.

    나는 앞으로 크게 한 걸음 내딛었다.

    친구 없는 개똥벌레의 반격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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