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158화 (158/1,000)
  • 158화 배틀로얄 그라운드제로 (2)

    충남 부여에서 올라온 신흥 강호 ‘블루스컬’

    충청남도 대표 선발전에서 대전의 강팀 ‘빅팜’을 꺾고 올라온 정예들이다.

    ‘배틀로얄 그라운드제로’가 시작되기 전.

    방웅진 감독은 블루스컬 멤버 다섯 명을 모아 두고 신신당부했다.

    “자, 다들 작전 알고 있지? 접속하자마자 보람이가 하늘로 화살을 한 대 쏠 거야. 그리고 딱 10초 뒤에 다른 곳으로 가서 한 대를 더 쏠 거고. 그러면 전원 그 중앙으로 모이는 거야. 알겠지?”

    방웅진 감독의 작전은 이와 같았다.

    팀원 5명을 시작부터 한자리에 모아 두려는 것이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자, 방웅진 감독은 다시 이야기했다.

    “그리고 다 같이 모이면, 일단 보이는 플레이어들을 하나씩 각개격파 하는 거야. 음, 이건 내 추측인데…….”

    그는 잠시 뜸을 들인 끝에 입을 열었다.

    “다른 팀 사람들을 만나도, 초반부터 너무 심하게 공격하진 마.”

    그러자 다섯 명의 멤버들이 모두 고개를 갸웃한다.

    적을 만나도 공격하지 말라니?

    방웅진 감독은 말을 이었다.

    “아마 다른 팀들 역시 너희들을 바로 공격하지는 않을 거다. 서울 대표 팀인 ‘국K-1’을 치려면 힘을 모아야 하거든.”

    그제야 모두가 방웅진 감독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국K-1을 초반에 잡고 간다는 전략은 다들 비슷할 것이니, 일단은 적의 의사를 알아보고 목표가 같거든 초반에 지나치게 소모전을 벌이지 말라는 뜻이다.

    방웅진 감독은 말을 계속했다.

    “임요셉의 특징은 다들 알지? 별명이 돌부처 아니냐, 만나면 4~5명이 둘러싸고 집중포격해라. 제아무리 돌부처가 단단하다고 해도 너희들이 세 명 이상만 모이면 답이 없을 게다.”

    “이연호는 너희들도 알다시피 공격형 마법사다, 그러니까 마법 저항력이 뛰어난 달진이가 발을 묶어 두면 보람이가 원딜로 잡으면 될 거야.”

    “송병건은 어쌔신이니 조심해야 한다. 클로킹이 귀찮긴 해도 시간 제한이 있으니까 달진이 주위로 모여서 잘 버티다 보면 분명 틈이 빈다. 송병건은 컨트롤이 빠르긴 해도 뒷심이 부족한 친구니까 너희들 선에서 잘 처리할 수 있을 거야.”

    “최연석은 서폿형 힐러이긴 해도 성기사 메타이니 아마 이번에 출전할 거다. 하지만 딜이면 딜, 탱이면 탱, 너희들이 다 앞서니까 쫄 것 없어. 아무나 두 명만 모이면 충분히 쌈 싸 먹을 수 있다.”

    방웅진 감독은 냉정한 어조로 국K-1 멤버들의 약점을 공략해 나간다.

    그리고.

    “…자, 이제 끝났다. 파이팅 해 보자.”

    방웅진 감독은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고 단체 파이팅을 제의한다.

    그때.

    원딜 장보람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감독님, 왜 마동왕 선수는 공략법 안 알려 주세요?”

    그렇다.

    방웅진은 국K-1 멤버들 4명에 대해서만 공략법을 알려 줬지 마동왕에 대해서는 전혀 지시한 바가 없다.

    모두가 의아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방웅진 감독은 무거운 한숨을 쉬었다.

    “…후.”

    이내, 그는 안경을 벗고는 와이셔츠 소매로 한번 닦았다.

    그리고는 다소 처진 어조로 말했다.

    “마동왕을 만날 경우엔 말이다…….”

    그는 자신의 팀원들을 한번 쭉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슬픈 어조로 입을 열었다.

    “답이 없단다.”

    *       *       *

    “아아아…….”

    장보람은 흔들리는 동공을 들어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파삭-

    든든한 탱커였던 오달진의 머리통이 수박 부서지듯 박살났다.

    모자이크의 격자무늬로도 확연하게 보이는 핏물들.

    줄줄줄-

    강력한 한 방기가 특기인 유한방의 복부에는 커다란 구멍이 났다.

    그 탓에 안에 든 것들이 모조리 흘러나와 바닥에 쏟아져 버렸다.

    “누구나 그럴 듯한 계획을 가지고 있지.”

    나는 장보람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한 대 처맞기 전까지는.”

    언젠가 이 말을 한 번쯤 해 보고 싶었다.

    파팟!

    장보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냅다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허공에서 재빨리 허리를 틀어 내게 장전된 샷을 날렸다.

    퍼-엉!

    강력한 화살 한 대가 날아든다.

    물론 강력하다고 해 봐야 고작 레벨 20대의 궁수, 장비하고 있는 아이템은 C+등급의 활이리라.

    내가 끼고 있는 건틀릿의 어깨 방어대를 뚫을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팅-

    나는 장보람의 화살을 어깨로 빗겨 튕겨냈다.

    그러자 그녀의 안색이 하얗게 질린다.

    “추격전은 별로. 나는 달리기가 느리거든.”

    나는 어깨를 한번 으쓱한 뒤 오른손 주먹을 들어 땅을 때렸다.

    콰쾅! 우지지지지직!

    지진파가 일어나 주변 십 수 미터의 대지를 왕창 뒤집어 놓는다.

    “꺄아아악!”

    장보람은 비명을 질렀다.

    땅에 발을 대고 가만히 서 있을 뿐인데 발가락과 발등의 뼈가 모조리 가루가 된 것도 모자라 무릎까지 박살났다.

    심지어 골반마저 탈골될 정도였다.

    뻑-

    나는 손바닥을 휘둘러 그녀의 얼마 남지 않은 HP를 바닥까지 날려 버렸다.

    삐익!

    저 멀리, 전광판에 쓰여 있는 숫자가 바뀐다.

    <서울 ‘국K-1’ 마동왕 +3>

    내가 딴 점수는 팀 점수로 들어간다.

    이렇게 해서 점수가 높은 팀 5개가 추려지는 것이다.

    충남의 블루스컬은 나로 인해 3명의 멤버를 시작하자마자 잃었으니 이제 남은 두 명이 미친 듯이 잘하지 않으면 2차전 진출은 물 건너갔다고 봐야 한다.

    “이래서 일부러 한 팀이 한 곳에 안 모이는 건데. 쯧쯧쯧.”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당장 수류탄이 떨어지고 있는데 뭉치면 쓰겠는가?

    전략도 다 적재적소에 쓰여야 좋은 전략인 것이다.

    한편.

    “…흐음.”

    주변은 고요하다.

    분명 내가 세 명의 랭커를 죽이는 소리가 들렸을 텐데 아무도 나를 찾아오지 않고 있었다.

    “왜지?”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이곳에 있다는 것쯤은 다들 눈치챘을 것이다.

    폭음이 나는 순간 전광판의 숫자가 바뀌었으니까.

    ‘국K-1’의 에이스가 이곳이 있다는 걸 알았으면 당연히 다구리를 치러 와야 정상인데…….

    “근데 왜 아직도 조용한 거냐고.”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이거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드는데?

    바로 그때.

    지잉-

    익숙한 효과음이 들린다.

    츠츠츠츠츠-

    주변 폐가들이 서서히 붉게 물들고 있었다.

    넘실거리던 물안개도, 썩은 냄새가 나는 부엽토도 전부 빨갛게 변해 간다.

    “에이 씨, 또 적색지대야?”

    짜증이 날 수밖에 없다.

    왜 내 주변에는 아무도 없는 거지?

    현실에서 아싸라면 게임 안에서 정도는 인싸여야 하는 것 아닌가?

    어쩌다 만난 다른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기나 하고.

    정말 외롭기 짝이 없다.

    “나는 개똥벌레. 친구가 없네~”

    나는 애절한 표정을 지은 채 적색지대를 피해 걸음을 옮겼다.

    바로 그 순간.

    스팍!

    옆에서 뭔가 스쳐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음?”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얼마 전까지 내가 서 있었던 폐가 안에서 누군가 부랴부랴 지붕 위로 뛰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오오!”

    나는 탄성을 질렀다.

    인천의 강팀 ‘와이번즈’ 소속의 프로 선수다.

    이름이 신창원이었던가?

    꽤나 유명한 도둑 메타의 랭커.

    그는 폐가 안에 숨어 있다가 적색지대를 피해 도망가는 것 같았다.

    “근데 왜 나를 봤는데도 가만히 숨어 있었던 거지? 기습이라도 할 것이지. 그럼 재밌었을 텐데.”

    나는 아쉬운 마음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콰쾅!

    무시무시한 속도로 땅을 박찼다.

    당연하게도, 그의 뒤를 쫓는 것이다.

    “으아아아아아! 따라오지 마!”

    신창원은 나를 돌아보며 고함쳤다.

    나는 그의 모습이 조금 의외였다.

    과거의 지식에 의하면 신창원은 자신의 메타에 자부심이 대단한 랭커였다.

    자존심이 워낙 강하고 승부욕도 세서 툭하면 PK를 하고 다니던 괄괄한 성격.

    실제로 PK랭킹도 꽤나 높았던 걸로 기억한다.

    한데?

    그런 친구가 왜 나를 보고 저렇게 도망간단 말인가?

    “왜, 왜 도망갑니까 왜!”

    나는 신창원을 추격하며 애타게 절규했다.

    그러자, 신창원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소리쳤다.

    “그야 네가 미친놈이니깐 그렇지! 네 낯짝 좀 보라고!”

    내 얼굴이 어디가 어때서?

    나는 달려가면서 빗물 고인 웅덩이에 내 얼굴을 슬쩍 비춰 보았다.

    핏물이 범벅된 하얀 마스크, 연쇄살인 특성으로 붉게 충혈된 눈, 그리고 사람 좋은 미소를 띤 채 휘어진 입꼬리.

    뭐 이 정도면 게임을 꽤 오랜 시간 즐긴 평범한 올드비의 모습 아닌가?

    ‘도무지 이해를 못하겠는걸?’

    뭐, 하지만 굳이 남을 이해하려 들 필요는 없다.

    21세기 대한민국은 다원화 사회이고 남을 존중하는 만큼 나도 존중받을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콰쾅!

    나는 발을 굴러 지진을 일으켰다.

    “사정없이 존중해 주지!”

    그리고 신창원이 막 딛으려 하는 집의 지붕을 집채로 무너트려 버렸다.

    “으아악!?”

    신창원은 발을 디딜 곳이 없어지자 그대로 땅바닥에 구른다.

    쿵!

    나는 그런 신창원의 앞을 가로막았다.

    고인물의 최대 행복은 뉴비와 함께하는 게임 플레이 아니겠는가?

    나는 옅은 흥분을 담아 신창원위 귀에 대고 속삭여 주었다.

    “도망가지 마. 같이 즐기자. 이 게임.”

    “으아아아아! 미친놈아! 날 놔 줘!”

    신창원은 나를 향해 마름쇠를 잔뜩 뿌렸다.

    하지만.

    겁을 먹은 와중에도 놈은 랭커였다.

    짤그랑-

    놈은 허공에 손을 뻗었고 눈 깜짝할 새에 내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포션병을 스틸했다.

    “호오?”

    나는 눈을 반짝였다.

    신창원의 특성 중 하나인 ‘금모으기운동’

    상대방의 아이템이나 돈을 중장거리에서 훔치는 횡령 스킬이다.

    이것은 허공을 격해서 통하는 손놀림으로, 중간에 얇은 벽이 있어도 사용 가능하다.

    훗날 신창원은 이 특성을 이용해서 천하제일 괴도라고도 불리게 되지만, 그것은 아직 먼 훗날의 이야기.

    호다닥-

    신창원은 그 와중에 벽과 벽 사이의 좁은 틈으로 내달린다.

    나는 껄껄 웃으며 그런 신창원을 뒤쫓았다.

    “내 포션을 훔치다니, 배포가 크구나.”

    사실 뉴비에게 포션 하나 도둑맞은 것 따위 하나도 화나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귀여워서 쓰다듬어 주고 싶을 지경.

    바로 그때.

    “……!”

    나는 신창원의 움직임에서 무언가 이상한 점을 눈치챘다.

    ‘나를 인적 드문 곳으로 유인하고 있어?’

    그렇다.

    신창원은 폐허의 중심가가 아니라 외곽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조금만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자기 대신 다른 사냥감들이 많은 곳으로 도망쳐야 유리할 것이다.

    하지만 신창원은 지금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지 않은가?

    “아하, 뭔가 노림수가 있는 게로군?”

    이렇게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이다.

    “좋아, 좋아.”

    나는 빙긋 웃었다.

    매복(埋伏).

    아마 저놈이 도망치는 곳으로 가면 수많은 딜러들이 한데 모여 십자포화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내가 원하던 바였다.

    나는 적들의 속임수에 기꺼이 한 몸 바쳐 넘어가 주기로 했다.

    “역대급 학살 기록을 세워 줄게.”

    앞으로 15년간 절대로 깨지지 않을 ‘피의 신기록’을 세워 보이련다.

    어쩐지 자꾸만 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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