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156화 (156/1,000)
  • 156화 폭풍전야 (4)

    크르릉!

    묵직한 엔진음.

    간만에 타는 차다.

    나는 포르쉐 크로커다일을 몰고 도로로 나섰다.

    오늘은 옷도 잘 입었으니 공연음란죄로 단속될 일도 없겠다.

    부우웅-

    한적한 도로를 달리고 있자니, 도로 옆에 설치되어 있는 거대한 옥외간판이 보인다.

    <제1회 오뚝이배 ‘뎀’ 프로리그>

    <베스트리그 IN 용산 E스포츠 스타디움>

    크고 화려한 간판은 도로를 지나다니는 운전자들의 시선을 한번쯤은 훔치고 있었다.

    “간판 되게 비싸 보이네.”

    나는 새삼 이번 프로리그가 얼마나 빵빵한지 실감했다.

    수많은 고수들이 모여 PVP최강자를 가리는 대회.

    이는 그야말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었다.

    1999년 처음 열렸던 게임 프로리그는 2021년인 지금 어마어마한 부흥을 이뤄내었다.

    작은 방송국 직원 휴게실의 탁구대 하나가 전부였던 경기장은 이제 거대한 스타디움이 되었다.

    깃털 펜이 타블릿 펜이 된 것만큼 어마어마한 진화였다.

    뎀이 E스포츠 계에 끼친 영향력은 짧은 시간임에도 막대했다.

    국내의 수많은 기업들이 뎀 프로리그에 몰려든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 개의 프로구단이 생겨나고 있었다.

    “아마 유튜뷰 역시도 곧 뛰어들겠지.”

    나는 이마에 걸쳐놨던 선그라스를 내려 썼다.

    원래 내가 알던 미래에서도 유튜뷰는 내년 말쯤 프로구단을 창립한다.

    들인 돈에 비해 성적은 별로 신통치 않았지만 말이다.

    나는 그것을 조금 근래로 앞당기려 하고 있을 뿐이다.

    어차피 구린 성적으로 날아갈 투자금이면 내가 먹어서 성과를 내는 게 더 좋을 테니까.

    “윈윈이지 뭐.”

    내가 유튜뷰를 일방적으로 이용해먹으려는 것처럼 보인다면 오산이다.

    나는 내 꿈을 이뤄서 좋고, 유튜뷰는 인지도를 쌓아서 좋고.

    이게 바로 진정한 의미의 상부상조가 아닌가?

    이처럼 민간에서는 게임에 대한 투자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국가 역시도 대놓고 E스포츠를 밀어주고 있었다.

    온갖 규제들이 풀려났고 감세 조항들이 넘쳐났다.

    심지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불법이라며 근절의 대상이 되었던 토토까지 합법적으로 운영되고 있지 않은가?

    시장은 정말 날이 가면 갈수록 거대해졌다.

    기업 투자, 민간 투자, 정부 투자, 해외 투자.

    돈이 시냇물에서 강물이 되고 바닷물이 되어 흘러든다.

    이 거대한 황금의 흐름!

    돈 놓고 돈 먹기나 다름없다.

    뛰어들지 않는 놈이 바보다.

    이에 따라, ‘프로 선수’들의 위상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었다.

    야인(野人)으로 군림하던 랭커들은 엄청난 고액연봉을 받아가며 줄줄이 스카웃되었다.

    랭킹 100위, 아니 1000위 안에만 들어도 모든 기업들에게서 러브콜을 받는다.

    어지간한 중소 프로팀 정도는 골라서 갈 수 있다.

    개인방송 규제도 풀렸기에 시청자, 팬들로부터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스폰도 받을 수 있었다.

    실제로 며칠 전 중국에서는 한 거부의 딸이 좋아하는 프로게이머에게 조공을 바친다며 800평짜리 대저택을 사 주기도 하는 일도 벌어졌다.

    바야흐로 ‘랭커들의 황금기’ 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시대.

    그리고 나는 그 시대의 중심에 서 있었다.

    “이제부터가 진짜로군.”

    나는 오픈카 앞유리를 넘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생각했다.

    얼마 전, 나는 서울의 내로라하는 강팀들을 모두 꺾고 챌린지리그를 통과했다.

    이제부터는 베스트리그, 전국의 강팀들과 맞붙게 되는 것이다.

    서울의 경쟁은 치열해서 전부 다 강팀들뿐이지만, 전국으로 따지면 어중이떠중이 팀은 상당히 많다.

    그런 뜨내기들은 일찌감치 걸러지고 난 곳, 그것이 베스트리그다.

    진짜배기 전장.

    이제부터는 정말로 대단한 강팀들과 붙게 될 것이다.

    …물론.

    나는 대진표와 각 팀 랭커들의 템트리, 성향, 공략법을 모조리 다 알고 있는 상태지만.

    *       *       *

    삐걱-

    ‘국K-1’ 연습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안녕하십니까!”

    3군 연습생들의 인사 소리가 우렁차다.

    나는 1군 로스터, 명찰에는 팀 내 서열 1위를 알리는 뱃지가 붙어 있어…야 할 터.

    하지만.

    “어? 마왕아, 너 왜 유니폼 안 입었냐?”

    감독실에서 나오던 엄재영 감독이 나를 보고 묻는다.

    나는 선뜻 대답했다.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들어서요.”

    그러자, 모든 선수들이 다 경악한다.

    다른 사람들은 한번 입어 보지 못해서 안달인 서울 대표팀 ‘국K-1’의 유니폼이다.

    거기에 팀 내 서열 1위를 알리는 뱃지, 그것은 거의 신물(神物)과도 같은 존재.

    다른 이들은 감히 만져보지도 우러러보기만 하는 아이템이 아닌가.

    하지만 내게 있어서는 그런 게 다 뭐냐.

    다 허례허식, 아무 필요 없는 것들이다.

    한편.

    내 말을 들은 엄재영은 껄껄 웃었다.

    그리고 흔쾌히 물었다.

    “으하하, 그래? 우리 유니폼이 좀 촌스럽긴 하지? 이참에 바꿀까? 디자인.”

    그러자, 선수들은 한 번 더 경악했다.

    유니폼 착용에 엄격한 엄재영의 말을 씹는 것도 모자라 말 한마디로 유니폼의 디자인을 바꿔 버리는 힘이라니.

    “저런 게 바로 권력인가…….”

    “멋지다…….”

    주변 선수들이 모두 눈을 반짝거린다.

    한편.

    “…….”

    나는 주변 시선들을 등진 채 소파에 앉았다.

    그러자, 엄재영 감독이 내 옆으로 다가와 브리핑을 시작했다.

    “베스트리그의 구조는 대충 알지?”

    엄재영 감독의 질문을 듣자, 오래 전의 과거가 떠오른다.

    내 기억 속, 베스트리그의 구조는 다음과 같았다.

    서울. 인천. 경기. 강원. 충남. 충북. 전남. 전북. 경남. 경북.

    이 10개의 구역에서 살아남은 대표팀들이 서울 용산 E스포츠 스타디움에서 자웅을 겨룬다.

    서울 청담 ‘국K-1’

    인천 부평 ‘와이번즈’

    경기 수원 ‘K2빅토리’

    강원 문막 ‘매드독’

    충남 부여 '블루스컬'

    충북 보은 ‘코리아철강축산’

    전남 광주 ‘다이너소어’

    전북 익산 ‘천지패황’

    경남 부산 ‘스타파이브(S5)’

    경북 대구 ‘헬하운드’

    경기 방식은 간단하다.

    베스트리그는 총 3라운드를 거쳐 1, 2, 3위를 선발한다.

    1라운드는 ‘배틀로얄 그라운드제로’

    통칭 ‘배그’라고 불리게 될 경기방식이다.

    폐허가 된 유령도시에 10개 팀의 참가자 5명, 즉 50명이 무작위로 배치, 소환된다.

    그리고 그냥 이 폐허 안에서 제한시간이 될 때까지 생존하는 것이 과제다.

    총 12개로 나뉜 구역은 시시때때로 ‘적색지대’로 설정되며 이 안에 갇히게 되면 자동으로 탈락된다.

    상대를 죽이면 1점을 얻게 되고 이 점수를 많이 모은 팀 5개가 순서대로 추려지게 된다.

    2라운드는 ‘플레이 오프’

    살아남은 5개의 팀이 서로 한 번씩 싸워 보는 것이다.

    여기서 승리하면 1점, 올킬은 2점, 역올킬은 3점으로 승점을 따져 3개의 팀을 추린다.

    3라운드는 ‘얼티메이트 리그(ultimate league)’

    3위와 2위가 싸워서 이긴 쪽이 1위와 붙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총 1, 2, 3위가 가려지게 되는 구조.

    “배그라, 간만이네.”

    나는 오랜만에 듣는 이름에 미소 지었다.

    50명이 한 폐허도시에 떨어져 생존하는 것.

    이 시합에서 절반이 넘는 선수들이 탈락의 고배를 마시게 된다.

    따라서.

    현재 유력한 우승후보인 국K-1팀의 선수들은 걱정에 여념이 없었다.

    “으으, 분명 경기가 시작되면 다들 우리를 먼저 다구리칠 거야.”

    “하긴, 우리가 제일 유력한 우승후보이니 자기들끼리 손을 잡고서라도 견제를 해 오겠지.”

    “엥? 각축전인데 자기들끼리 동맹을 맺는 게 가능해?”

    “가능하지, 이 라운드는 자유도가 높은 경기야. 동맹도, 배신도 자유로워.”

    선수들은 자기들끼리 자구책을 논의하기에 정신이 없다.

    전부 맞는 말이었다.

    서울 대표팀인 국K-1은 이름이 알려진 강팀이기에 다른 수많은 팀들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다.

    ‘배틀로얄 그라운드제로’는 강팀 다구리에 특화된 시스템이니까.

    때문에 유력한 우승후보 팀이 베스트리그 1회전에서 광탈하는 현상이 심심찮게 일어나기도 한다.

    그래서 국K-1의 선수들은 저마다 고민이 많았다.

    “일단 소환되면 바로 은신처를 찾아야겠어.”

    “어디에 숨는 게 좋을까?”

    “초반 아지트 및 거점을 미리 정해 두자.”

    “맵이 어디일 줄 알고?”

    “생존률을 높이려면 일단 곳곳에 랜덤으로 비치될 포션이랑 구급약을…….”

    다들 초반 다구리를 걱정하며 대비책을 세운다.

    하지만.

    “…….”

    오직 나만은 입을 다문 채 다른 생각에 여념이 없다.

    그런 나에게, 임요셉이 슬쩍 질문을 했다.

    (내가 나이를 제대로 밝히지 않았기에, 임요셉은 나를 형님이라고 부른다)

    “형님, 무슨 생각하고 계시나요?”

    “…아아.”

    나는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대답했다.

    “애들이 주로 어디에 많이 숨을까 생각 중이었어.”

    “…네?”

    임요셉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반문한다.

    나는 조금 더 친절하게 다시 설명했다.

    “초반에 가능한 많이 죽여 놔야 하잖아. 어디 숨었는지 찾아내야지.”

    그러자.

    오싹-

    연습실 내부의 온도가 조금 낮아졌다.

    내 대답을 들은 임요셉은 약간 어색하게 웃는다.

    “저, 형님. 아마도 다른 팀에서는 저희를 다구리 치러 올 텐데요.”

    그의 말이 맞다.

    그들은 그럴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맞아. 그놈들은 전부 죽게 될 거야.”

    “…….”

    “그 뒤에는 나를 피해 숨은 놈들을 찾아야 할 테니까.”

    그러자.

    연습실에는 침묵이 감돈다.

    ‘이 사람은 생각하는 게 달라.’

    모두가 공통적으로 하는 생각이었다.

    숨을 생각은 애초에 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죽일 생각만 가득.

    옅은 전율이 선수들의 다리를 떨리게 하고 있었다.

    ‘그래 이거야!’

    엄재영은 나와 다른 선수들이 만들어 내는 기묘한 열기를 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 시너지(synergy)야 말로 그가 나를 고액 연봉으로 스카웃한 이유가 아니겠는가?

    많은 이들의 입장과 생각, 열망이 한데 모여 뜨겁게 꿈틀거린다.

    당장 내일이 와도 좋을 것 같은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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