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가장 깊은 곳의 왕 (7)
자잘한 알림음들이 많이 떴지만, 사실 다 필요 없는 내용들이다.
중요한 내용은 딱 두 개뿐.
<세계 최초로 ‘크라켄’ 레이드에 성공하셨습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이거 둘 말고는 신경 쓸 필요 없다.
심해 몬스터의 랭킹을 따지면 크라켄은 3위에 불과하다거나, 풍랑이나 밀물 현상이 사라진다거나, 그로 인해 해저의 생태계가 바뀐다거나…….
‘그런 설정들은 설정충들에게나 중요하지, 나랑 뭔 상관?’
나는 손사래를 휘휘 저어 나머지 알림 표시들을 치워 버렸다.
다 아는 것들이니 굳이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이제 크라켄을 잡은 결과를 확인할 시간이었다.
다 필요 없고 아이템, 아이템을 보자!
“상태창은 분량 잡아먹어서 원래 잘 안 켜는데, 아시죠? 죄송합니다.”
나는 시청자들에게 양해를 구하듯 고개를 꾸벅 숙였다.
비록 동영상 녹화는 크라켄이 죽는 알림음이 들리는 순간 종료했지만, 그래도 예의바른 양해 멘트는 습관이다.
-<이어진>
LV: 50
호칭:
바실리스크 사냥꾼(특전: 맹독)
메두사 킬러(특전: 마나 번)
샌드웜 땅꾼(특전: 가뭄)
어둠 대왕 시해자(특전: 선택)
씨어데블 격침자(특전: 심해)
대망자 묘지기(특전: 언데드)
지옥바퀴 대왕게 잡이(특전: 백전노장)
아귀메기 태공(특전: 잠복)
크라켄 킬러(특전: 고생물)
HP: 500/500
레벨이 9올랐다.
새롭게 얻은 호칭은 ‘크라켄 킬러’ 이에 따른 특전 보상은 ‘고생물’ 특성이었다.
‘고생물’
↳태고 시절부터 살아온 존재들은 늘 묵직하게, 변함없이 제자리를 지킵니다.
언뜻 보기에는 당최 무슨 특성인지 잘 알 수가 없다.
내가 앞으로 펼쳐질 15년의 미래를 알고 있지 않았더라면 아마 끝까지 몰랐을지도 모른다.
‘으음, 확실히 이 특성의 효과가 알려진 것은 게임 출시 후 수 년이 지난 뒤였으니까.’
나는 턱을 쓰다듬었다.
‘뭐, 후반부로 갈수록 꽤 쓸 만해지는 특성이긴 하지. 나쁘지 않겠다.’
원래 내가 노렸던 것은 크라켄의 ‘풍랑’ 특성이기는 했다.
특성이야 뭐 랜덤으로 떨어지는 것이니만큼,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고생물’ 특성은 ‘정신계’ 마법에 저항하는 카운터 특성.
‘세뇌’나 ‘최면’, ‘혼란’, ‘언데드’, ‘피어’, ‘자학’ 등의 정신계 마법 저항력을 거의 100%에 가깝게 올려주는 패시브 특성이다.
지금 당장은 별로 효과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훗날 대격변이 일어난 뒤에는 쓸모가 많아진다.
특히나 ‘어둠’ 속성을 가진 몬스터들이 대체로 피어나 언데드 마법을 쓴다는 것을 감안하면 아주 요긴한 특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둠’ 특성을 맞받아치기 위해서는 ‘빛’ 특성을 손에 넣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천사들의 가호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 세계관에서는 천사란 이미 퇴물이 된 지 오래된 종족.
망한 종족 편에 붙어서 무슨 이득을 취할 수 있으랴?
대세는 용족, 혹은 악마족이다.
그 외의 종족들에게 붙으면 대격변 이후의 겜생이 피곤해질 것이다.
“크라켄의 ‘고생물’ 특성으로 ‘어둠’ 특성을 견제할 수 있다면 나쁘지 않네. 같은 특성도 누구에게 빼앗았느냐에 따라 급이 나뉘니까.”
S급 몬스터인 크라켄의 ‘고생물’ 특성은 A급 몬스터인 둔클레테의 ‘고생물’ 특성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
그러니 크라켄의 특성 중 ‘풍랑’ ‘지진’ ‘나포’ 등 파괴적인 광역기를 빼앗지 못했다고 해서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는 것!
뭐, 아무튼.
레벨이 9 오르고 ‘고생물’ 특성을 얻었다는 것.
일단 내 몸에 관련된 보상은 여기까지가 끝이다.
다음은 아이템이었다.
나는 얼음바닥에서 타오르고 있는 광채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화아아아-
눈이 타 버릴 듯 강렬한 빛줄기.
그것은 하늘 끝까지 닿을 듯 높게 솟구쳐 있었다.
나는 허리를 굽히고 크라켄의 시체를 뒤적였다.
이내.
산처럼 커다란 크라켄의 시체 아래, 새끼손톱보다도 작은 아이템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것은 문어 모양으로 잘린, ‘비엔나 소시지’였다.
그것을 본 순간, 나는 몸을 파르르 떨 수밖에 없었다.
“이건… 이건 진짜 대박이네, 미쳤따리!”
전신에 오싹 끼치는 소름과 전율을 주체하지 못할 지경이다.
-<크라켄의 알껍질 귀걸이> 귀걸이 / S
크라켄은 평생을 살며 단 하나의 작은 알을 낳는다.
부화한 크라켄의 새끼는 평생토록 자신이 나온 알껍질을 소중히 보관한다고 한다.
-이동속도 +300%
-파괴불가 (특수)
-특성 ‘틈’ 사용 가능 (특수)
크라켄을 잡고 얻은 작은 문어 모양의 귀걸이.
모양만큼이나 옵션도 심플하다.
이동 속도 300% 증가.
방어력, 공격력, 체력 같은 거추장스러운 옵션 싹 빼고 심플하게 이동속도에만 초점을 맞춘 옵션이다.
가히 나를 위한 옵션이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시선을 끄는 것은 바로 ‘틈’ 특성이었다.
“이 특성만큼은 꼭 얻고 싶었는데, 캬, 이걸 아이템으로 커버하네!”
나는 서둘러 귀걸이를 착용했다.
주위를 둘러보자, 얼어붙은 크라켄의 시체가 보인다.
“…….”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단단하게 얼어붙은 크라켄의 촉수와 촉수 사이.
주먹 하나가 겨우 들어갈 만큼 작은 ‘구멍’을 들여다보았다.
“가능.”
말을 마친 뒤, 나는 그 작은 구멍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우직- 우직- 우지직-
그러자, 내 몸은 그 작은 구멍으로 빨려들 듯 삽입된다.
뿌드드득!
나는 마치 좁은 구멍을 통과하는 문어처럼, 크라켄의 촉수와 촉수 사이의 좁은 틈을 통과해 건너편으로 나왔다.
보기에는 조금 징그러워 보일 테지만, 그거야 뭐 내 알 바 아니지 않은가?
“좋아! 성공이다!”
나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내 몸을 내려다보며 외쳤다.
이 ‘틈’ 특성은 말 그대로 이런 능력이다.
어떤 좁은 곳도 구멍만 있다면 어떻게든 통과할 수 있다.
몸의 살, 뼈, 심지어 아이템까지도 극도로 작게 수축된다.
하여간 바늘구멍만큼의 틈만 있어도 나는 건너편으로 넘어가거나 밀폐된 공간에서 탈출할 수 있는 것이다.
“으으, 구멍이 너무 좁으면 조금 아픈데. 피부에 젤을 바르면 되려나.”
나는 숨을 참아 보았다.
꿀렁- 꿀렁- 꿀렁-
씨어데블의 미끌미끌한 점액이 내 피부를 뒤덮는다.
“이러면 구멍을 통과할 때 조금 덜 아프겠군.”
나는 안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크라켄과 씨어데블의 특성을 합치니 꽤나 상성이 좋다.
‘둘 다 심해에 서식하는 몬스터라서 그런 걸까?’
나는 귓불에 매달린 작은 귀걸이를 만지작거리며 생각했다.
착용감도 거의 없고 존재감도 희박하다.
과연 S급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좋은 아이템.
하지만 겉보기에는 그냥 흔한 액세서리와 다를 바가 없었다.
누가 이것을 S급 아이템이라고 생각할까?
그때.
-땡그랑!
어디선가 아이템 하나가 또 떨어진다.
눈앞에 피어오르는 붉은 광채.
이것은 A+등급 아이템 특유의 빛깔이 아닌가?
그 아이템의 주인은 바로 드레이크였다.
“으음?”
드레이크는 뜻밖의 특전에 눈을 크게 떴다.
데미지 기여도가 별로 없어서 보상이 주어지지 않을 줄 알았는데, 생각 외의 행운이다.
-<크라켄의 껍질 방패> 방어구 / A+
크라켄의 질긴 가죽을 햇볕에 오랜 시간 말려서 만든 가죽 방패.
성능은 좋지만 유통기한이 짧다는 단점이 있다.
-방어력 +5,800
-화염 속성 방어력 +∞ (특수)
-내구도 1/1 (특수)
-수리불가 (특수)
특수 옵션이 무려 4개!
하지만 하나같이 괴랄한 특성만 붙었다.
우선 5,800이나 되는 엄청난 방어력, 거기에 화염 속성 방어력은 아예 무한대로 설정되어 있다.
하지만 내구도는 불과 1, 거기에 수리도 불가능하다.
평범한 플레이어라면 똥템을 얻었다며 투덜거렸겠지만, 드레이크는 고인물답게 이 아이템이 말하고 싶어 하는 바를 빠르게 눈치챘다.
“1회용이라는 소리구먼. 불 속성 몬스터를 잡으라는 건가?”
드레이크는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 내가 있다.
“그 아이템이 기가 막히게 쓰일만한 곳을 내가 한 군데 알고 있지.”
“…따라가겠다.”
내 말에, 드레이크는 별다른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뭣에 필요하랴?
그동안 보인 신뢰가 있지 않나?
나는 얻은 호칭과 특성, 아이템들을 한번 쭉 정리해 보았다.
비록 ‘심해의 악몽 시리즈’라는 히든 퀘스트는 실패했지만, 그 퀘스트를 클리어 하기 위해선 해저왕 플라튠과 손잡고 크라켄의 8촉수를 모두 공략해야 한다.
이 경우, 촉수 8개를 모두 잃은 크라켄은 블루홀 밖으로 나오지 않고 깊게 숨어 버리기 때문에 다시는 잡을 수 없다.
히든 퀘스트 완주의 보상이라고 해 봐야 해저왕 플라튠이 가지고 다니는 A+등급 양손무기인 삼지창이 고작이다.
플라튠의 삼지창은 뇌전 마법이 깃들어 있고 물리공격력이 높아 꽤 인기 있는 무기이지만, 변태 메타를 추구하는 나에게는 별로 필요 없는 아이템.
장래의 ‘활용도’를 고려하면 크라켄의 알껍질 귀걸이가 압도적으로 더 좋다.
이 귀걸이를 이용해 무단침입 할 수 있는 곳들을 떠올리고 있자니…….
‘…하아, 벌써부터 흥분되네.’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수많은 ‘폐쇄형 던전’들을 떠올리며 음흉하게 미소 짓는다.
한편.
“왜! 나만! 아무것도! 없는! 거냐고!”
유다희는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고 있다.
하긴 그녀는 억울할 만하다.
심해까지 내려가며 그 고생을 했는데 얻은 보상이라고는 ‘호칭’ 하나다.
나는 혀를 차며 말했다.
“기여도가 낮으니까 그렇지. 그래도 호칭과 특성이라는 개념을 안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해.”
“뭐야!? 너희들은 초 레어 템 먹어 놓고 나한테 그런 소리가 나와!? 난 아무 쓸데 없는 ‘고생물’ 특전밖에 못 얻었다고!”
“…너도 그거 얻었냐? 고생물 특성도 후반부에 가면 좋아. 그때가 되면 알게 될 거다.”
내 말을 들은 유다희는 그제야 조금 진정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투덜거림은 멈추지 않는다.
“경황이 없어서 동영상도 못 찍고, 아이템도 안 떨어지고, 히든 퀘스트는 실패하고. 죽어라 죽 쑤어서 결국 개 줬구만?”
나는 유다희의 도끼눈을 슬쩍 외면했다.
드레이크가 그런 나와 유다희 사이로 끼어들어 중재했다.
“자, 이제 육지로 어떻게 돌아갈지가 중요하지. 그거나 논의해 보자고.”
하지만 그 점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어-이!]
파도 저 멀리서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악마의 만찬 호!
선장 치 카이가 뱃머리 위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것이 보인다.
이내, 그녀는 끌고 온 유령선을 다 무너져 가는 얼음섬 옆에 정박시켰다.
[크라켄을 퇴치해 준 바다의 영웅들을 모시러 왔지, 요호호호! 덕분에 풍랑이 없어져서 말이야. 당연히 승선비는 무료다!]
이것 역시도 크라켄을 해치운 용사들에게 주는 특전이다.
삐걱-
치 카이는 손가락을 구부려 저 멀리 보이는 어창의 문을 열었다.
좁고 더러운 어창, 토할 것 같은 비린내가 확 풍겨온다.
치 카이는 우리들을 향해 활짝 웃으며 말했다.
[타! 1등석이야!]
나는 이 말뿐인 1등석으로 서둘러 탑승했다.
“…….”
“…….”
유다희와 드레이크 역시도 내 뒤를 따라온다.
이번에는 아무도 투덜거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