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150화 (150/1,000)
  • 150화 가장 깊은 곳의 왕 (5)

    -띠링!

    <저주받은 유빙 ‘마트료시카’가 무너집니다>

    <‘칼바람 싸움터 양 군영’이 함락 직전입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알림음들이 떴다.

    동시에.

    “어어!? 저, 저기 좀 봐!”

    유다희가 눈을 휘둥그렇게 뜬 채 외쳤다.

    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

    물 밑에 잠겨 있는 얼음섬의 중앙 하단부 빙벽, 그곳에서 엄청난 양의 물거품이 끓어오르고 있다.

    퍼펑!

    이내 격렬한 포말과 함께, 그 안에서 수없이 많은 망자(亡者)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거인 해골병> -등급: B / 특성: 거인, 어둠, 언데드, 하수인.

    -서식지: 칼바람 싸움터 좌파 군영, 거인국

    -크기: 5m.

    -죽은 거인이 뼈만 남아 되살아났다. 그는 영원히 싸움터를 누빌 운명이다.

    <악마 해골병> -등급: B / 특성: 악마, 어둠, 언데드, 하수인.

    -서식지: 칼바람 싸움터 우파 군영, 거인국

    -크기: 5m.

    -죽은 악마가 뼈만 남아 되살아났다. 그는 영원히 싸움터를 누빌 운명이다.

    두 종류의 해골들이 바닷물에 잠긴 빙벽 밑에서 기어 올라온다.

    놈들은 몸에 묻은 바닷물이 얼어붙는 것도 무시하고 한쪽으로 돌격했다.

    얼음섬을 습격해 온 미증유의 심해괴물. 바로 크라켄을 향해서!

    드레이크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저 두 놈들이 힘을 합치는 걸 볼 줄이야.”

    거인과 악마.

    죽어서조차 싸우던 두 진영이 크라켄이라는 공통의 적을 맞아 힘을 합쳤다.

    아무래도 그들에게 있어서는 한쪽 진영을 멸망시키는 것 보다는 섬의 붕괴를 막는 것이 우선인 듯싶었다.

    [우오오오오!]

    해골병들은 벌떼처럼 달려들어 크라켄의 촉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퍼억! 퍽! 뿌지직!

    얼음섬 전체를 휘감아 조이고 있던 8번 촉수가 제일 먼저 타깃이 되었다.

    거대한 적에게 우르르 달려드는 개미떼처럼, 해골병들은 칼과 이빨을 들이밀고 크라켄의 8번 촉수에 달라붙었다.

    퍽- 퍽- 퍽-

    아작- 아작- 아작-

    거인 해골병은 이 빠진 대검으로 크라켄의 살점을 베어 낸다.

    악마 해골병은 날카로운 이빨과 뿔, 손톱으로 크라켄의 살점을 갈가리 찢어놓았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해골병들이 미친 듯이 달라붙자, 산맥으로 보일 정도로 거대한 크라켄의 촉수도 데미지를 입을 수밖에 없다.

    가랑비에 옷 젖는 법.

    해골병들 하나 하나는 약했지만 많은 수가 모이자 그것도 꽤나 무시할 수 없는 딜량이 된다.

    ‘…아프겠는데 저거?’

    나는 신중한 표정으로 크라켄을 주시하고 있었다.

    들어가고 있는 딜량을 냉철하게 계산하는 중이다.

    한편.

    크라켄의 HP바는 거세게 요동친다.

    떡락까지는 아니지만 꾸준한 하락세.

    크라켄의 생명력은 눈에 띄는 감소폭을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조금씩, 꾸준하게, 착실히 줄어들어가고 있었다.

    크라켄의 어마어마한 자연 치유력으로도 커버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우…우우우우!

    크라켄은 피어를 내보냈지만, 안타깝게도 이 해골병들은 ‘하수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하수인’ 특성을 가진 언데드 몬스터들은 자신의 ‘주인’이 되는 몬스터보다 약한 존재의 피어에는 겁먹지 않는다.

    해골병들은 크라켄 무서운 줄 모르고 계속해서 덤벼든다.

    투둑- 투둑-

    8번 촉수가 점점 너덜너덜해지고 있었다.

    해골병들이 몰려들어 한 군데만 집중 공략하니 당연한 것이다.

    우드드득- 우드득- 우득!

    얼음섬을 휘감아 조이던 힘도 조금은 약해졌다.

    결국, 크라켄은 우리를 공격하던 1번 촉수의 뱡향을 틀었다.

    해골병들을 처치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한 듯하다.

    콰쾅!

    크라켄이 촉수를 한번 휘젓자, 섬 위에 있던 해골병들이 우르르 리타이어되었다.

    절반이 넘는 해골병들이 속수무책으로 박살났고 나머지들은 그 여파에 날아가 바다에 거꾸로 처박힌다.

    우…우우우

    크라켄은 다시 나를 향해 시선을 돌린다.

    하지만!

    촤-악!

    물에 잠긴 빙벽 아래, 또다시 해골병들이 우르르 몰려나온다.

    그것을 본 유다희가 입을 딱 벌렸다.

    “아니, 이 안에는 대체 해골병들이 몇 마리나 있는 거야?”

    조금만 생각해 보면 어리석은 질문일 수밖에 없다.

    나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해 주었다.

    “AOS 게임에서 미니언들이 몇 마리 나오는지 정해져 있는 거 본 적 있나?”

    “…그 말인즉슨?”

    “무한대야. 적을 죽일 때까지.”

    나는 말을 마친 뒤 크라켄을 쳐다보았다.

    해골병들이 또다시 웨이브를 준비한다.

    뼈만 남은 악마와 거인들이 우르르 무리지어 크라켄의 촉수를 향해 돌격했다.

    하지만.

    크라켄은 지능이 상당히 높다.

    이제 더 이상 미니언들이 쌓이도록 두지 않는다.

    놈은 해골병들이 쌓이면 꽤나 귀찮다는 사실을 인지한 직후부터 바로 1번 촉수로 상황을 정리했다.

    쾅! 쾅! 쾅!

    크라켄은 촉수를 채찍처럼 휘둘러 조금씩 조금씩 모여드는 해골병들을 짓이겨 버렸다.

    해골병들의 수가 무한대라고 해도, 이대로라면 크라켄에게 어떠한 데미지도 입힐 수가 없다.

    심지어 그 와중에도 얼음섬은 계속 붕괴해 내리고 있었다.

    철-썩!

    크라켄은 촉수를 휘둘러 바다의 표면을 때렸다.

    바다 뒤집기!

    거대한 해일이 일어 해골병들이 아예 물 밑에서 올라오지 못하게 막아 버렸다.

    이제 해골병들은 아예 얼음섬에 발도 붙이지 못한 채 파도에 휩쓸려간다.

    바로 그 순간.

    -띠링!

    <저주받은 유빙 ‘마트료시카’가 무너집니다>

    <‘칼바람 싸움터 양 군영’이 함락 직전입니다>

    <전사들의 맹렬한 투지가 ‘칼바람 싸움터의 지배자’를 자극합니다>

    <‘망자의 잔류사념’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또 한 번, 알림음들이 무더기로 떴다.

    그리고 지금껏 내가 기다려왔던 마지막 알림음 역시도.

    <‘대망자(大亡者)’가 눈을 떴습니다>

    동시에.

    터-엉!

    빙벽을 향해 부딪쳐 가던 파도가 중간에 멈췄다.

    그리고 무언가에 부딪쳐 튕겨져 나왔다.

    촤아아악-

    흰 뼈의 벽이 파도를 막아낸다.

    이내, 파도를 찢어 버리며 나오는 거대한 몸뚱이!

    퍼-엉!

    파도를 뚫고 나온 커다란 주먹과 뿔이 크라켄의 안면을 강타했다!

    기우뚱…….

    크라켄의 거대한 몸뚱이가 또다시 바다에 드러눕는다.

    파도가 걷히며, 흉악한 괴성들이 터져 나왔다.

    [우-워어어어어억!]

    [갸-아아아아아악!]

    드디어, 저주받은 유빙 마트료시카의 보스 몬스터가 등장했다.

    <거인족 대망자> -등급: A+ / 특성: 거인, 어둠, 언데드, 하수인, 지진

    -서식지: 칼바람 싸움터 좌파 진영, 거인국

    -크기: 50m.

    -살아생전에는 위대한 거인족 전사였다.

    산을 들어 올려 바다에 집어던져 섬을 만들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악마족 대망자> -등급: A+ / 특성: 악마, 어둠, 언데드, 하수인, 지진

    -서식지: 칼바람 싸움터 우파 진영, 거인국

    -크기: 50m.

    -살아생전에는 위대한 마족 전사였다.

    단신으로 천족의 5개 군단을 격파한 사건은 아직도 만마전의 벽화에 기록되어 있다.

    두 마리의 대망자(大亡者)!

    A+등급 중에서도 최상위권의 피지컬을 가진 몬스터.

    단순히 지진을 일으키며 돌진해 오는 것 말고는 별다른 공격 패턴은 없다.

    하지만 단순히 그것만으로도 공략 난이도 ★★★★☆, 별 네 개에 빛나는 괴물들.

    우…우우…우우우우……

    크라켄은 대망자들이 뿜어내는 심상치 않은 피어를 감지한 듯 1번 촉수를 회수했다.

    크라켄은 S등급 몬스터.

    대망자 두 마리는 A+등급 몬스터.

    하지만 크라켄은 ‘심해’ 특성을 봉인당해서 힘이 전성기 시절의 50%밖에 되지 않는다.

    거기에 8함대의 포격, 해저왕 플라튠과의 일전, 해저도시 근위병들과의 싸움, 일곱 함선들의 화약고 폭발, 해골병들의 집단 린치 등등…….

    수많은 난관을 거쳐 온 끝에 HP도 너덜너덜한 상태.

    거기에 내가 건 ‘능지처참’ ‘맹독’ ‘마나 번’ 등, 온갖 상태이상이라는 상태이상에는 죄다 걸려있는 몸이 아니던가!

    그런 반면, 대망자들은 방금 막 잠에서 깨어난지라 풀 컨디션이다.

    우…우우…우우우!

    크라켄은 다시 한 번 피어를 내보냈지만, 대망자들 역시 ‘하수인’ 특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피어의 효과는 전혀 먹히지 않았다.

    “오오, 이거 흥미진진하군!”

    “꺄아악! 누가 이길까!? 예상을 못 하겠어!”

    드레이크와 유다희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세 마리의 거대 괴수가 싸우는 것을 지켜본다.

    하지만.

    나는 이 싸움의 승패를 명확하게 예상할 수 있었다.

    콰콰콰쾅!

    크라켄이 1번 촉수를 뻗어 두 마리의 대망자를 한꺼번에 휘감았다.

    우지지지직!

    두 마리 대망자는 변변찮은 저항도 하지 못한 채 크라켄에게 나포당했다.

    풍덩!

    그리고 힘없이 바다로 끌려 들어간다.

    [우-워어어어!]

    [가-아아아아!]

    괴성을 지르며 발버둥쳐도 소용없다.

    크라켄은 S급 몬스터.

    썩어도 준치다.

    아무리 약해져 있다고 해도 A+급 몬스터가 어떻게 비벼 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닌 것이다.

    유다희는 기대와 달리 허무하게 끝나버린 승부에 크게 안타까워했다.

    “아아, 맵이 바다라서 그렇구나! 진짜 아깝다. 발판만 있었어도…”

    대망자 두 구는 기본적으로 육전형 몬스터.

    하지만 놈들은 현재 바다에서 발버둥치고 있다.

    크라켄이 촉수를 뻗어 끌어당긴 탓도 있지만, 그 전에 얼음섬이 너무 많이 부서지는 바람에 디딜 곳이 마땅치 않았던 것이 한몫 했다.

    이대로라면 대망자들은 별다른 저항 한번 못해 본 채 속수무책으로 바다에 가라앉을 것이다.

    …….

    뭐, 어디까지나 ‘이대로라면’ 말이지.

    “그렇다면 ‘발판’을 만들어 줘야지.”

    나는 크라켄에게 붙잡혀 버둥거리고 있는 대망자들을 향해 말했다.

    그러자, 드레이크와 유다희는 나를 돌아본다.

    “……?”

    그들의 눈에 어려 있는 의문은 뻔하다.

    ‘무슨 방법으로 저 거대한 괴물들에게 발판을 만들어 준다는 것일까?’

    하지만.

    나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백번 말해 주는 것보다 눈으로 한번 보여 주는 것이 훨씬 더 이해가 빠르니까.

    “5…4…3…2…”

    나는 조그맣게 카운트를 중얼거렸다.

    “…1.”

    내 혀끝이 윗니 뒷면에 닿는 순간.

    쿠-구구구구궁!

    엄청난 굉음이 맵 전체를 뒤흔들었다.

    -띠링!

    <12시간이 경과하였습니다>

    <‘저주받은 유빙 마트료시카(최초 방문자: 고인물)’가 뒤집어집니다>

    시계 따위는 볼 필요도 없다.

    계산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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