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가장 깊은 곳의 왕 (1)
콰콰콰콰쾅!
800문이 넘는 대포에서 포탄의 소낙비가 떨어져 내린다.
시뻘겋게 변한 포신.
주변 바닷물이 요란하게 끓는다.
부글부글 피어나는 물거품 사이로 불벼락들이 뻥뻥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쏴라! 쏴! 아주 화약에 절여 죽여라!]
해저왕 플라튠, 그는 격렬한 기세로 헤엄치며 바다뱀과 싸우고 있었다.
콰쾅!
플라튠은 수없이 많은 이빨들을 드러냈다.
장검의 날처럼 길고 날카로운 이빨들이 어찌나 많은지 선홍색 잇몸 밖으로도 툭툭 불거져 나올 정도였다.
와드득-
플라튠의 이빨은 바다뱀의 피부를 덮고 있는 바위와 진흙층을 뚫고 들어가 박혔다.
그것도 모자라, 그는 삼지창을 들어 바다뱀의 목덜미를 꿴 채 고속으로 헤엄친다.
쿠구구구구…….
거대한 바다뱀이 플라튠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끌려다닐 정도였다.
그 틈을 타서.
8함선은 바다뱀의 텅 빈 복부에 대고 800발의 포격을 난사했다.
콰콰콰콰쾅!
바위 파편과 진흙 구름이 자욱하게 흩날려 시야를 온통 차폐했다.
그 시커먼 혼돈과 암흑의 중심에서.
펑- 펑- 펑-
탐스러운 함박눈이 쏟아진다.
온통 해설(海雪)로 가득한 바다.
[이 빌어먹을 놈! 정말 더럽게 크군!]
플라튠은 전신에 쌓인 눈을 털어내며 으르렁거렸다.
수없이 공격을 퍼부었지만 저 거대한 바다뱀은 아직도 꿈틀거리고 있다.
가히 불가사의한 생명력이었다.
바로 그때!
[대왕님! 큰일 났습니다!]
포갑판 위로 커다란 덩치를 가진 해저인이 달려나왔다.
그는 군단장인 ‘톱상어 귀스타프’였다.
플라튠은 눈살을 찌푸렸다.
[뭐냐 귀스타프?]
[포탄이 거의 다 떨어졌습니다!]
[…포탄이?]
플라튠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포갑판을 들여다보았다.
포탄이 없자 수많은 부하들이 손을 놀리고 있는 것이 보인다.
플라튠은 다시 귀스타프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화약은 얼마나 남았나?]
[화약은 아직 꽤 남았습니다! 아직 1000발 정도를 쏠 여력은 족히…]
그러자, 플라튠은 이빨을 드러내 보이며 씩 웃었다.
[그럼 여기서 놀고 있는 이 머저리들이라도 쏘면 되겠군.]
플라톤은 고개를 돌려 옆에 있던 다른 해저인 부하 하나를 콱 집어 들었다.
그는 성게 모양을 한 해저인이었다.
[대, 대왕이시여! 저는 포탄이 아니라 당신의 병사…]
하지만 성게 해저인은 대사를 다 끝맺을 수도 없었다.
퍼억-
플라튠은 성게 병사를 잡아끌고 가 커다란 대포 구멍에 처넣었다.
그리고.
빠방!
화약 터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퍼퍽-
성게 병사는 포탄처럼 날아가 바다뱀의 몸에 부딪쳤다.
푸확!
요란한 소리와 함께, 피와 살점이 뒤섞여 튄다.
바다뱀의 것인지 해저인 병사의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병사 하나를 포탄으로 쏜 것은 적에게 피해를 주기 위함이 아니다.
아군 병사들을 향한 본보기였다.
…….
갑분싸.
갑판의 분위기가 싸해졌다.
해저인들의 손과 발, 표정이 그대로 얼어붙는다.
플라튠은 핏발 선 눈으로 부하들을 흩었다.
[포탄이 떨어졌다고 놀지 말고 배에서 내려 싸워라! 놀고 있는 놈은 포탄으로 써 버릴 테다!]
그러자, 비명 소리와 함께 커다란 소란이 일어났다.
[히이이익-]
[살려줘! 대왕님은 우리를 다 죽일 거야!]
해저인 병사 몇몇이 배를 탈주한다.
[끼놈들!]
톱상어 귀스타프가 커다란 톱을 들어 탈주병들의 몸을 반으로 토막 내 버렸다.
[도망치는 놈은 가차 없이 죽여라! 그놈들은 대제국 아틀란둠의 시민이 될 자격이 없는 것들이다!]
플라튠은 창을 든 채 일갈했다.
결국, 도망치지 못한 병사들은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전장을 향해 내몰렸다.
아직 앳된 얼굴을 한 물고기들은 울먹이면서 앞으로 헤엄쳤다.
눈앞에 있는 산처럼 거대한 적을 향해서!
퍼억! 퍼퍽!
몇몇 해저인들은 긴 창을 가지고 바다뱀의 피부를 찔렀다.
하지만 대다수의 해저인들은 바다뱀에게 가까이 접근하기도 전에 거센 해류에 휘말려 전신이 비틀려 꺾였다.
우득- 뿌드득!
너무나도 허망한 개죽음이 아닌가?
하지만 아무도 뒤돌아 도망칠 수 없었다.
뒤에 있는 임금의 창끝이 등을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런 못된 X끼.”
그 광경을 본 유다희는 혀를 끌끌 찼다.
“NPC들의 행동에 감정이입하기는 싫지만, 저 국왕 자식 진짜 인성 별로네.”
“그것 봐. 내 말이 맞지?”
“네 인성은 더 별로야. 역겨우니까 말 걸지 말아 줄래?”
내가 슬쩍 말을 걸자, 유다희는 급정색을 하며 내 쪽을 향해 침을 뱉었다.
마동왕이라는 이름을 쓸 때와의 온도 차 무엇?
그녀의 두 얼굴은 너무나도 달라서 적응이 안 될 정도다.
한편.
드레이크는 내 옆에서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전쟁이란 참혹한 것이지. 한 명의 강한 자가 가진 욕심 때문에 아무 상관도 없는 약한 이들만 무수히 죽어가는구나.”
나는 평범한(?) 겜창이니만큼, NPC들에 대한 동정 같은 것은 없다.
하지만 드레이크는 아무래도 군인 출신이라 그런지 느끼는 것이 조금 다른 모양.
바로 그때.
콰쾅! 콰콰콰쾅!
산맥이 요동친다.
바다뱀이 괴로워하고 있었다.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어딘가 필사적으로 보이는 격렬한 반응!
유다희가 두 눈을 크게 떴다.
“저 자식! 궁 쓰려나 봐!”
궁극기(窮極奇).
지금까지 7번의 레이드를 뛰며 봐 왔던 한결같은 광경.
바다뱀은 HP가 일정 구간 이하로 떨어지면 미친 듯이 돌격해 와서 배를 휘어 감는다.
그 속도와 기세는 너무나도 엄청나서 조금이라도 후퇴 타이밍을 놓치면 바로 나포당할 수밖에 없다.
놈은 배를 휘어감을 뿐만 아니라 배에 구멍을 내고 그 좁은 틈으로 몸을 우겨넣어 배 안쪽을 자신의 몸으로 꽉 채워 넣을 것이다.
흡사 깡통 속에 머리를 처박는 꿩처럼.
바다뱀은 거대한 몸을 함선 벽에 난 구멍으로 밀어 넣는 습성이 있다.
이것이 곧 놈의 필살기이기도 하다.
“이거 당하면 또 무조건 리타이어(retire)되겠는데?”
유다희는 8함선을 휘감아 오는 바다뱀을 보며 기겁했다.
지금까지 매번 이 패턴에 당했었다.
한번 휘감기면 그 다음부터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무조건 배를 버리는 수밖에.
…….
하지만.
해저왕 플라튠은 바다뱀의 육탄 돌격에 굴하지 않았다.
[하하하하! 네놈이 드디어 궁지에 몰렸구나!]
플라튠은 노련하게 배를 조종했다.
수많은 노잡이들이 온 힘을 다해 노를 젓는다.
기기기기긱-
함선이 전진을 멈췄다.
플라튠은 함선을 뒤로 후퇴시킴과 동시에 삼지창을 앞으로 빼들었다.
[참으로 오래 기다렸다! 이제 뒈져라!]
플라튠의 삼지창에서 황금색 뇌전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무시무시한 벼락줄기가 바다뱀의 목 부분을 강타한다.
빠-지지지직!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쩌억-
바다뱀의 목이 잘려나간 것이다!
쿠-르르르륵…….
잘려나간 머리통은 그야말로 거대한 것이었다.
침강(沈降).
그것은 검은 물 아래로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
워낙에 거대하다 보니 마치 위에서 작은 섬 하나가 떨어져 내리는 것 같다.
푸확-
바다 전체가 일순간 끈적하게 변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투명한 액체들이 사방에 끼얹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뱀의 피가 원래 투명한 색이던가?”
드레이크는 신기하다는 듯 갸웃했다.
보통 뱀은 붉은 혈액을 가지고 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저 거대한 바다뱀은 투명한 피를 가졌다.
이내.
츠츠츠츠츠-
바다뱀이 흘린 투명한 피는 파란색으로 변해 번지기 시작했다.
바다 전체가 일순간 푸르게 물들었다.
펑- 펑- 펑-
쏟아지는 눈발이 점점 더 굵어지고 있었다.
바다뱀의 살덩이는 해저의 지면 전체를 하얗게 뒤덮었다.
언뜻 보면 설원(雪原)처럼 보일 정도다.
“…으윽.”
유다희는 긴 속눈썹 위에 올라온 살점들을 털어내며 인상을 찌푸렸다.
머리와 어깨에 수북하게 쌓이는 흰 살점들.
아무리 털어내고 털어내도 계속 쌓인다.
바로 그때.
“…어?”
유다희는 무언가를 향해 시선을 집중했다.
그것은 서서히 가라앉고 있는 ‘바다뱀의 머리’였다.
떨어져 내리는 바위 부스러기와 피어오르는 진흙 구름.
흩날리는 살점의 함박눈.
이 모든 것들에 가려서 지금껏 바다뱀을 똑바로 본 적이 없었다.
바다뱀은 전신을 진흙과 바위로 뒤덮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거대한 덩치에 걸맞지 않게 빨랐다.
그래서 더더욱 놈의 모습을 가까이서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해저왕 플라튠에 의해 잘려나간 바다뱀의 머리는 지금 움직임이 없다.
뿐만 아니라 살 표면을 뒤덮고 있던 진흙과 바위들도 전부 떨어져 나갔다.
때문에.
선내에 있는 모두는 바다뱀의 잘려나간 머리를 똑똑히 볼 수 있었다.
…….
그것은 바다뱀이 아니었다.
“…이, 이게 뭐야?”
유다희는 떨리는 눈으로 눈앞의 거대한 ‘살덩어리’를 바라보았다.
탁하고 퀭한 동그라미.
얼마 전까지만 해도 ‘눈’인 줄 알았던 그것이 유다희의 시선과 마주쳤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바다뱀’도 ‘머리’도 ‘눈’도 아니었다.
유다희, 드레이크의 시선과 마주했던 커다란 흰색 동그라미.
그것은 바로 ‘빨판’이었다!
쿠구구구구구-
머리를 잃은 ‘바다뱀’은 크게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놈은 이내 다시 자세를 잡는다.
후두둑- 후두둑-
몸을 감싸고 있던 진흙과 바위들이 떨어져 내렸다.
포탄에 맞아 찢어진 상처에서는 내장 따위가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잘게 찢어져 흐늘거리는 근육섬유들만이 유령처럼 나부낄 뿐.
그리고 피부 위에 무수히 돋아난 빨판들은 하나하나가 강력한 힘으로 주변의 바위나 진흙 등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이 거대한 것은 바다뱀 따위가 아니라 알 수 없는 무언가의 촉수였던 것이다!
모두가 넋을 잃어버리는 순간.
우…우우우…우우우……
심해의 아득한 저 너머 어디선가 으스스한 소리가 들려온다.
수백 구의 익사체가 일제히 장송곡을 부르는 듯 크고 낮은, 그리고 음울한 소리.
그것은 듣는 것만으로도 질식할 것 같은 울음.
심해의 아득한 어둠 속에 갇힌 듯한 폐쇄감과 공포를 가져다주는, 그런 소리였다.
그리고.
그 무시무시한 울음소리는 분명 눈앞에 있는 저 깊고 깊은 구멍, 블루홀 밑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이내.
모두의 귓가에 알림음이 메아리쳤다.
-띠링!
<블루홀 ‘입구’의 중간보스 ‘8번 촉수’가 물러납니다>
<블루홀 ‘심층부’의 ‘진(眞) 보스’가 자신의 해역을 침범한 이들에게 흥미를 보입니다>
<‘가장 깊은 곳의 주인’이 ‘바닥’에서 몸을 일으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