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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145화 (145/1,000)
  • 145화 침몰함대(沈沒艦隊) (6)

    해저왕 플라튠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꺼져라.]

    단 한 마디.

    해줄 말은 그게 끝인가 보다.

    동시에, 삼지창이 크게 한번 횡으로 휘둘러졌다.

    부웅-

    흐르던 해류가 방향을 통째로 뒤집을 정도의 위력!

    뻐-억!

    굉음이 터져 나왔다.

    플라튠의 공격 단 한 방에.

    콰콰콰쾅!

    씨어데블은 그 자리에서 수백 미터를 날아가 뒤편의 바위산에 처박혔다.

    우르릉……

    놈은 네 개의 바위산을 무너트리며 날아갔고 이내 자욱한 진흙구름 속에 묻혀 버렸다.

    [흥, 삼지창은 좋은 대화수단이지.]

    플라튠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콧방귀를 뀔 뿐이다.

    “……!”

    그것을 본 유다희는 두 눈을 크게 뜬 채 입을 딱 벌렸다.

    천하의 씨어데블을, 그것도 심해 특성 탓에 두 배나 강해져 있는 저 괴물을 일격에?

    대체 물리공격력이 얼마나 강하면 그 미끄러운 괴물을 저렇게 날려 버릴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여기 있는 모두가 알다시피.

    씨어데블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몬스터가 아니다.

    꿀렁- 꿀렁- 꿀렁-

    바위에 난 구멍에서 하얀 점액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하더니…….

    쾅!

    이내 바위에 박혔던 씨어데블이 암반을 부수며 바다로 뛰쳐나왔다.

    함몰된 두개골, 터져 나온 내장, 군데군데 끊어진 촉수.

    피부를 덮고 있던 복부의 점액 코팅은 왕창 벗겨져 나간 모양새다.

    꽤나 만신창이인 모양이었지만.

    [제물 내놔!]

    혈기왕성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니 아직 전투력이 꽤 남아 있는 듯했다.

    철썩-

    씨어데블은 8개의 촉수들을 어지럽게 놀려 거대한 해일을 만들어냈다.

    ‘풍랑(風浪)’ 특성!

    그랜드캐넌과 같은 크기의 해일을 만들어내는 괴물 같은 능력!

    그것은 바닷속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아니, 오히려 두 배로 더 강해졌다!

    이내.

    거대한 해일이 일어 함선을 덮쳐 왔다.

    콰콰콰콰콰쾅!

    물속에서 덮쳐 오는 파도는 보이지 않기에 더욱 더 무섭다.

    주변 광경이 일그러지며, 반투명한 충격파가 갑판 위를 통째로 쓸어간다.

    […젠장, 저 짜증나는 두족류 자식!]

    플라튠이 정말로 화났다.

    그는 커다란 손을 뻗어 한 손으로 함선을 떠받쳤다.

    기기기기… 긱!

    해일에 맞아 쓰러지는 중이었던 거함선이 우뚝 멈췄다.

    후두둑- 후두둑- 후둑-

    몇 개인가의 닻줄이 끊겼고 노가 부러졌다.

    거대한 배가 반쯤 기울어진 상태로 누워 있는 광경.

    그것은 지금 하나의 손바닥에 의해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끙!]

    플라튠이 손을 확 밀치자.

    쿠구구구구구.

    함선은 다시 원래 위치로 돌아왔다.

    씨어데블의 풍랑파를 맨손으로 버텨 낸 것이다!

    그 말도 안 되는 괴력에 유다희도 드레이크도 입을 딱 벌린다.

    “저 NPC…적으로 돌리면 안 되겠는데? 우리 괜찮은 거야?”

    “이봐, 어진. 씨어데블과 플라튠 중에 누가 더 센가? 둘 중 하나와 다시 싸워야 하는 건 아니겠지?”

    둘은 불안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본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퀘스트 도중 NPC가 몬스터로 변하는 경우는 딱 두 가지 케이스밖에 없어. 안심하라고.”

    내 말은 사실이다.

    천공섬의 식인황제 ‘보카사’, 거인국의 마지막 생존자 ‘이스비브놉’

    이 두 명을 제외하면 NPC가 갑자기 몬스터로 돌변하는 경우는 없다고 할 수 있다.

    뭐 내가 모르는 히든 퀘스트가 또 있다면 모르겠지만, 일단 공식적으로 밝혀진 경우는 그렇다.

    그러니 해저왕 플라튠을 적으로 돌릴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단 말씀.

    ‘패널티라고 해 봐야 기껏 국외추방밖에 더 당하겠어?’

    나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씨어데블과 플라튠의 격전을 지켜보았다.

    [이 귀찮은 놈! 비늘도 뼈도 없는 하등종족 주제에!]

    플라튠은 짜증이 머리끝까지 치솟은 듯했다.

    [제물 내놔아아!]

    씨어데블 역시 제물에 상당히 굶주렸다.

    그 둘은 허공에 십여 수를 맞붙었다.

    퍼퍼퍼퍽!

    씨어데블의 살점이 곳곳에 눈처럼 흩뿌려진다.

    끈적거리는 점액 때문에 플라튠의 삼지창이 슬슬 무뎌지기 시작했다.

    [그만하고 꺼져라 연체벌레 놈아!]

    플라튠은 삼지창을 높게 들었다.

    그러자.

    뿌지지지지지직-

    세 갈래로 뻗은 삼지창의 창끝에서 황금색 뇌전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쾅! 쾅! 우르릉!

    뇌전들은 사방팔방으로 뻗어 나간다.

    빠지직!

    이내, 플라튠은 섬광이 반짝이는 삼지창을 그대로 씨어데블의 복부에 내리찍었다.

    점액 코팅이 벗겨져 있는 곳이었다.

    콰콰콰쾅!

    요란한 굉음과 함께, 씨어데블이 두 번째로 격침당했다.

    뿌직! 뿌지직! 지지지직!

    살점이 까맣게 타들어 간다.

    전압 때문에 두 눈알이 퍽퍽 터져나갔다.

    지글지글지글지글지글……

    물속임에도 불구하고 어디선가 타는 냄새가 났다.

    뿌그르르륵……

    씨어데블은 너무나도 쉽게 격침당했다.

    팔다리를 비롯한 모든 촉수들이 까맣게 변해 돌돌 말렸다.

    털썩-

    놈은 그대로 해저의 한 움푹한 바위구멍에 떨어져 내렸고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얼마 되지 않은 물거품만이 허망하게 피어올랐을 뿐이다.

    유다희는 그 모습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퍄… 우리가 그렇게 고생했던 씨어데블을 10초도 안 돼서 잡네.”

    나는 그녀의 말을 정정해 주었다.

    “나는 고생 안 했는데?”

    실제로 나는 꼼수를 써서 매우 쉽게 잡지 않았는가?

    고생은 유다희 혼자 다 했다.

    그러자, 그녀는 벌컥 화를 낸다.

    “에이 X! 누가 너더러 고생했대!? 내가 고생했다고 내가!”

    “하지만 방금 ‘우리’라고 했잖아?”

    “내가 언제!? 우리는 무슨 얼어죽을! 은근슬쩍 동료인 척하지 말라니까!?”

    …이상하다? 내가 잘못 들었나?

    나는 이상하리만치 펄펄 뛰는 유다희에게 더 이상 신경을 끄기로 했다.

    “…….”

    어둠 너머, 씨어데블이 격침된 바위가 점점 멀어진다.

    나는 드레이크에게 작은 목소리로 귀띔했다.

    “씨어데블의 시체가 가라앉은 곳의 좌표 잘 외워 둬. 넌 눈썰미가 좋잖아?”

    “알았다.”

    드레이크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눈에 힘을 주고 좌표와 주변 지형을 살핀다.

    배는 어둠 속을 향해 조용히 스며든다.

    순항(順航)이다.

    *       *       *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이내 모두의 귓가에 시스템 알림음이 들려온다.

    <곧 심해지대 ‘가장 깊은 곳’에 도달합니다>

    동시에.

    저 앞 정면으로 목적지가 보인다.

    둥글게 고여 있는 시커먼 암흑.

    이 깊은 대심해보다도 더 깊게 뚫려 있는 구멍.

    <블루홀> -등급: ?

    -이 세상에서 ‘가장 깊은 곳’

    아예 다른 세계로 통하는 구멍이라는 소문도 있다.

    기괴하게 생긴 괴물들이 이 구멍을 통해서 이쪽 세계의 바다로 유입되고 있는 것을 봤다는 목격자들도 존재한다.

    던전 등급조차 알 수 없다.

    입장 조건도 불명.

    등급이 ‘?’

    즉 ‘알 수 없음’으로 처리된 던전들에는 어지간하면 까다로운 입장 조건이 붙어 있기 마련이다.

    그 조건이라는 것은 대부분 비밀에 감춰져 있으므로 일반 플레이어들은 알 수 없다.

    참고로 이 블루홀은 15년이 지난 뒤에도 입장 조건이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한 던전이다.

    ‘플레이 7만 시간([email protected])에 빛나는 나조차도 알지 못한다면 말 다한 거지 뭐.’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오늘의 목적은 저 던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심해지대 ‘가장 깊은 곳’에 도달했습니다>

    <‘진(眞) 보스’가 눈을 떴습니다!>

    이내, 요란한 경고음이 들려온다.

    지난 7번의 레이드에서 줄곧 겪어 왔던 현상이 일어났다.

    쿠르릉…….

    난데없이 일어난 옅은 지진이 해류를 흔들어 놓는다.

    우드득! 우직! 콰지지직!

    지면에 굳건하게 박혀 있어야 할 산맥이 몸을 들썩이기 시작했다.

    던전 옆에 길게 누워 있던 산맥이 바닥으로부터 ‘뽑혀져’ 나왔다!

    쿠구구구구…….

    거대한 산맥운 그 길고 거대한 몸을 들어 아래를 내려다본다.

    후두둑- 후두둑-

    산맥이 뽑혀 나간 뒤.

    바닥에 패인 깊은 자국으로 바위와 펄흙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드디어 우리가 나설 때인가!”

    유다희는 콧김을 힘차게 뿜어냈다.

    하지만.

    콰-쾅!

    이내 눈앞에 드러난 바다뱀의 새삼스러운 크기에 그들의 자신감은 순식간에 쪼그라들었다.

    [포격하라! 내가 엄호하마!]

    해저왕 플라튠이 삼지창을 들고 거대한 바다뱀에 맞섰다.

    콰콰콰쾅!

    아틀란둠 최강의 8번 함대가 플라튠의 뒤를 따라 불벼락을 토해 냈다.

    온 세상을 휘감아 버릴 듯한 기세로 달려드는 바다뱀!

    최후의 해전에 모든 것을 건 아틀란둠의 8함대!

    이제 끝장을 낼 때가 왔다.

    하늘.

    아니 위쪽의 바다를 통째로 가려버리는 거대한 바다뱀을 보며, 나는 눈을 감은 채 짧은 기도문을 중얼거렸다.

    “…빠요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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