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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144화 (144/1,000)
  • 144화 침몰함대(沈沒艦隊) (5)

    시간이 꽤나 흘렀다.

    우리는 총 8척의 함선 중 7척의 배를 끌고 나갔다.

    그리고 그 결과.

    1함대 유다희 패배 (배 빼앗김)

    2함대 이어진 패배 (배 빼앗김)

    3함대 드레이크 패배 (배 빼앗김)

    4함대 유다희 패배 (배 빼앗김)

    5함대 이어진 패배 (배 빼앗김)

    6함대 드레이크 패배 (배 빼앗김)

    7함대 유다희 패배. (배 빼앗김)

    7번의 싸움에서 7번 졌다.

    심지어 일곱 척이나 되는 배를 모두 적에게 빼앗겨 버렸다.

    [이런 무능한 것들을 보았나!]

    해저왕 플라튠은 격분했다.

    처음에 보여 준 관대하고 인자하던 태도는 간 곳이 없다.

    플라튠은 수백 개나 되는 상어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근처에 있던 부하들이 납작 엎드려 덜덜 떤다.

    [이 벌레들을 잡아서 8함선의 뱃머리에 매달아 두어라!]

    그러자.

    수많은 해저인들이 창을 들고 우리를 포위했다.

    유다희가 기겁하며 나에게 말했다.

    “야 변태! 이제 어쩔 거야! 저것들을 무슨 수로 이겨!”

    그녀는 자신을 에워싼 창병들을 보며 내 옆구리를 쿡쿡 찌른다.

    드레이크 역시도 꽤나 난감한 기색.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못 이기지.”

    그 말이 끝나는 순간.

    나는 제일 먼저 포박되어 끌려갔다.

    “…….”

    “…….”

    유다희와 드레이크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런 나를 쳐다본다.

    이내, 그 둘 역시 나와 같은 처지가 되었다.

    꽁꽁 묶인 채 뱃머리의 쇠돌기에 대롱대롱 매달린 우리 셋.

    마치 도롱이벌레 삼총사가 된 기분이다.

    해저왕 플라튠은 우리를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거기에 매달려서 바다뱀을 유인할 미끼나 되어라!]

    나름 가혹한 처사를 내린다고 한 모양이지만.

    현실적으로 따져보면 7척이나 되는 범선을 적에게 고스란히 빼앗긴 외부인들에게 내리는 처벌 치고는 사실 꽤나 관대한 편이다.

    이내.

    [출항!]

    해저왕 플라튠이 이끄는 제 8함선이 힘차게 도시 밖의 바다로 뻗어나간다.

    다른 범선들에 비해 거의 두 배 가까이 육중한 메가톤급 선박이었다.

    해저왕 플라튠.

    그는 전신에 백상아리의 비늘을 빳빳하게 세운 채 뱃머리에 앉아 있었다.

    어지간한 전봇대만큼이나 큰 삼지창이 그의 어깨에 기대어 놓였다.

    쿠구구구구.

    그가 뿜어내고 있는 살벌한 기세는 가히 어마무시한 것이었다.

    단순히 기세만으로도 해류가 갈라져 그 일대가 무풍지대로 변할 정도.

    [전하, 위험하니 선장실 안에 계심이…]

    한 늙은 병사가 플라튠에게 다가가 말하자.

    [위험? 지금 나보고 말한 거냐?]

    플라튠은 선홍색 잇몸을 훤히 드러내 보이며 웃는다.

    그리고.

    콰-긱!

    충언을 건넨 병사의 머리통을 그대로 손아귀로 잡은 뒤 으깨 버렸다.

    뿌직-

    푸른 핏물이 바다에 번진다.

    플라튠은 콧방위를 뀐 뒤 다시 뱃머리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와들와들.

    해저인 병사들이 상부 갑판 위에서 그 모습을 보며 몸을 떨고 있었다.

    해저왕의 피어는 몬스터들뿐만 아니라 자기 병사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모양이다.

    한편.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린 유다희는 그 모습을 보며 어이없다는 듯 입을 벌렸다.

    “아니, 부하를 저렇게 막 다뤄도 되나? 보통 함장이면 부하에게 버프를 주는데, 쟤는 디버프를 거네.”

    그녀는 부하들을 통솔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

    플라튠의 공포정치형 리더쉽에 대해서 할 말이 많은 모양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원래 권력자들은 다 구린 곳이 있는 법이지.”

    그러자, 유다희는 정색을 한 채 돌아보았다.

    “뭐야? 너 지금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냐?”

    “…….”

    나는 그녀가 내뿜는 피어에 움찔 시선을 피했다.

    유다희는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상황이 이래서 네 말에 한번 따라 보지만, 그렇다고 널 믿는 건 아니야.”

    “…….”

    “기회만 엿보다가 틈만 나면 바로 배신할 거다.”

    아 예, 그러세요.

    그녀가 어떻게 행동할지는 빤히 보여서 별로 위협적이지는 않다.

    애초에, 당장 날뛰지 않고 이렇게 협박만 하는 게 어디냐?

    이렇게 얌전히 휴전 상태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다.

    한편.

    끼기기긱-

    배는 심해의 어둠 속을 천천히 헤엄쳐 간다.

    선벽에 튀어나온 돛과 지느러미들은 물살을 가르며 더 깊고 어두운 곳으로 침강하고 있었다.

    노잡이들이 우렁찬 구령과 함께 몸을 한 방향으로 움직일 때마다 배는 날치처럼 해류 위를 통통 튀며 오르내리길 반복한다.

    기괴하게 꺾인 암석과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은 절벽들.

    심해 중에서도 가장 깊은 곳.

    대심해의 심부를 향해, 배는 천천히 나아가고 있다.

    바로 그때.

    “……!”

    나는 무언가를 느꼈다.

    ‘조금 위험한데?’

    고인물의 감각이 말해 주고 있었다.

    쩌적!

    나는 재빨리 밧줄을 풀어 버렸다.

    그러자 그것을 본 유다희와 드레이크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뜬다.

    “야! 변태! 너 그거 어떻게 풀었어?”

    “뭐지? 이 매듭이 그렇게 쉽게 풀 수 있는 거였나? 나는 안 풀리는데?”

    둘 다 상당히 놀란 듯싶다.

    ‘뭘 이런 것 가지고.’

    나는 매듭의 남은 끈을 그 자리에서 한계까지 빙글빙글 꼬은 뒤 그냥 매듭 안으로 꾹꾹 밀어서 풀었을 뿐이다.

    비닐봉투 묶은 것 풀 때 쓰는 일상적인 방법과 똑같다.

    뉴비들은 잘 모르겠지만, 이 게임 속에서 NPC들이 짓는 매듭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그냥 풀린다.

    퀘스트의 흐름상 갇히게 되는 성내의 지하감옥이라거나 도적떼의 소굴 같은 곳에서 탈출할 때의 꿀팁이다.

    (물론 보통의 유저들은 이렇게 묶일 일 자체가 없지만)

    타탁- 써억!

    나는 깎단을 들어 유다희와 드레이크의 밧줄도 끊어 주었다.

    “근데 갑자기 왜 탈출하려고 하는 거야?”

    유다희가 수상쩍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쳐다본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짧게 말했다.

    “위험하니까.”

    동시에, 나는 유다희의 손목을 콱 잡아당겼다.

    “어맛!?”

    유다희가 내 품 안을 향해 확 끌려오는 순간.

    쉬이익-

    그녀를 향해 야구공 사이즈의 둥근 구슬 하나가 날아들었다.

    철퍽!

    그것은 정확히 유다희의 안면 정중앙을 가격했다.

    “꺄아아악!”

    유다희는 비명을 질렀다.

    “미친X끼야! 가만히 있었으면 안 맞았는데 왜 끌어당기고 X랄이야!”

    “맞아 봐야 위험성을 알지.”

    나는 낄낄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정면에서 날아온 둥근 구슬.

    하얗고 끈적끈적한 방울.

    데미지는 적지만 매우 끈적거려서 불쾌한 점액이다.

    …낯익은 공격 패턴이 아닌가?

    이내.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수없이 많은 점액탄이 날아들어 함선 곳곳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이런 식으로 공격해 오는 몬스터 하나를 알고 있다.

    뱃머리에 앉아있던 플라튠이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귀찮은 놈이 나타났군.]

    이내.

    그의 시야를 가로막으며 나타나는 몬스터가 하나 있었다.

    <심해마귀(深海魔鬼) ‘씨어데블’> -등급: A+ / 특성: 물, 심해, 마찰계수, 도장 깨기, 풍랑(風浪)

    -크기: 2.5m.

    -원념을 가진 익사체가 심해의 저주를 받아 두 번째 목숨을 얻었다.

    심해에 서식하는 강력한 몬스터들을 찾아가 싸우며 더욱 강한 육체로 진화해 왔다.

    놈이 심해에 둥지를 튼 이후 많은 심해 괴물들이 수면 위로 도망쳐 온다고 한다.

    머리에 게딱지를 뒤집어쓴 익사체.

    등에는 두족류 특유의 촉수들이 붙어 흐늘거린다.

    씨어데블.

    놈은 해저왕 플라튠의 함대를 향해 탁하고 퀭한 눈을 빛냈다.

    [제물 주세요.]

    그러자, 해저왕 플라튠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씨어데블을 바라본다.

    [뒈져라.]

    플라튠은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턱짓만 했을 뿐이다.

    그러자, 함벽에 설치된 대포들이 불을 뿜었다.

    콰콰콰콰쾅!

    포탄들이 날아가 씨어데블의 몸을 강타했다.

    하지만.

    미끄덩- 미끄덩-

    불벼락은 씨어데블의 몸에 닿자마자 궤도를 틀어 이상한 방향으로 꺾인다.

    휘리리릭- 타탁!

    씨어데블은 촉수를 뻗어 함선의 난간을 휘감았다.

    그리고 특유의 기술 ‘배 흔들기’를 시전했다.

    쿠구구구구.

    거대한 함선이 양옆으로 기우뚱거린다.

    “으악!? 쟤 힘이 이렇게 셌나!?”

    유다희가 비명을 지른다.

    수면 위에서 만났을 때는 이렇게까지 강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하지만, 나는 당황하지 않는다.

    씨어데블의 ‘심해’ 특성, 그것은 심해에서의 스텟을 배로 증가시켜 주는 특성이다.

    즉.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씨어데블은 수면 위에서 만난 개체에 비해 두 배 이상 강하다는 뜻이다.

    수면 위에서 악마의 만찬 호를 겨우 흔들 때를 생각하면 큰코다친다.

    쿠구구구국-

    씨어데블은 여덟 개의 팔을 뻗어 배의 난간을 잡아당겼다.

    배는 천천히 기울기 시작한다.

    함벽 양 옆으로 난 커다란 고래 지느러미가 아니었더라면 이미 뒤집혔을 것이다.

    해저인들이 아틀라틀을 집어 들고 갑판으로 뛰쳐나왔다.

    [이이익! 떨어져라 이 괴물!]

    [아니다 이 악마야!]

    투척용 무기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퍼퍼퍼퍼퍼펑!

    수없이 많은 투창들이 빗발쳤다.

    해류에 구멍이 나며 물거품들이 온 시야를 가린다.

    하지만 나의 몸조차도 뚫지 못했던 투창이다.

    내가 내뿜는 점액보다 훨씬 더 미끄럽고 끈적끈적한 씨어데블의 점액을 뚫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태앵- 탱! 미끄덩-

    씨어데블은 투창을 튕겨냄과 동시에 몸을 빠르게 움직였다.

    두 배로 빨라진 놈의 움직임에 해저인들은 속수무책이다.

    [으아아악!]

    몇몇 병사가 씨어데블의 촉수에 붙잡혀 끌려간다.

    [제물 주세요!]

    씨어데블은 입을 찢어질 정도로 크게 벌리고는 히죽이죽 웃는다.

    우득- 우드득- 뿌득!

    씨어데블의 촉수에 휘감긴 병사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죽어갔다.

    병사들의 몸에서 배어나온 핏물이 해류를 타고 번진다.

    한편.

    [킁, 킁.]

    해저왕 플라튠.

    백상아리 계열 해저인.

    피 냄새를 맡자, 씨어데블이 날뛰는 것을 바라보면서도 줄곧 심드렁하던 그의 표정이 급변했다.

    콰악!

    그는 전봇대만 한 삼지창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펄쩍 뛰어 심해의 망망공해로 헤엄쳐 올라간다.

    […이래서 두족류가 싫다니까.]

    플라튠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씨어데블의 앞으로 헤엄쳐 간다.

    그리고.

    [꺼져라.]

    단 한 마디를 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 한 마디의 힘은 실로 무시무시했다.

    왜냐하면 그 말과 동시에, 거대한 삼지창이 횡으로 휘둘러졌기 때문이다.

    모든 물리공격을 무효화하는 씨어데블의 몸.

    삼지창을 이용한 물리공격 하나로 해저왕의 자리까지 오른 플라튠.

    심해의 패자 두 명이 아득한 암공(暗空)에서 서로 맞붙는다!

    …….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시선이 하나.

    뭐 아이템 주워 먹을 것 안 떨어지나, 호시탐탐 주위를 기웃거리는 알몸의 얌체.

    “거, 관심도 없고 재미도 없는 싸움 되게 질질 끄네.”

    바로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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