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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142화 (142/1,000)
  • 142화 침몰함대(沈沒艦隊) (3)

    <곧 심해지대 ‘가장 깊은 곳’에 도달합니다>

    <‘진(眞) 보스’가 눈을 떴습니다!>

    알림음들이 요란하게 들려온다.

    “…뭐야?”

    유다희는 표정을 찡그렸다.

    배는 고요한 심해를 천천히 항해 중이다.

    커다란 산맥 아래를 조용히 흐르는 해류.

    주변에는 어떠한 몬스터도 보이지 않았다.

    평화 그 자체.

    바로 그때!

    쿠르릉……

    난데없이 일어난 옅은 지진이 해류를 흔들어 놓는다.

    “…어?”

    유다희는 두 눈을 크게 떴다.

    방금 움직였다.

    조금이긴 하지만 분명히 봤다.

    지면에 굳건하게 박혀 있어야 할 산맥이 몸을 들썩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콰-쾅!

    무시무시한 굉음과 함께.

    산맥이 바닥으로부터 ‘뽑혀’ 나왔다!

    해류가 어지럽게 뒤엉키며 배가 난항에 부딪쳤다.

    “…???”

    유다희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산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 움직인다면 보통 사람은 자기의 눈을 먼저 의심하기 마련이다.

    심지어 ‘산’이 아니라 ‘산맥’이다.

    쿠구구구구…

    거대한 산맥이 그 길고 거대한 몸을 들어 아래를 내려다본다.

    후두둑- 후두둑-

    산맥이 뽑혀 나간 뒤 바닥에 패인 깊은 자국으로 바위와 뻘흙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으아… 으아아아…….”

    유다희는 입을 딱 벌린 채 갑판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산맥 그 자체가 융기해 오르는 걸 보았으니 당연하다.

    이 압도적인 광경 앞에 그 누가 놀라지 않을 수 있으랴?

    하지만.

    오로지 나만은 침착하다.

    “정신 차려.”

    나는 옆에 있는 드레이크의 등을 팡 쳤다.

    “……!”

    드레이크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눈앞에 펼쳐진 지괴를 바라보았다.

    “…저건. 대체 뭐지? 바다뱀?”

    그의 말대로,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뱀’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긴 몸통 표면에는 단단한 바위와 끈적한 뻘흙들이 잔뜩 붙어 있어서 진짜 모습을 볼 수가 없다.

    하지만 어차피 돌이나 흙이 없었어도 크기가 너무 커서 한 눈에 다 볼 수는 없었을 듯하다.

    “저게 뱀이라고? 거의 용인데?”

    유다희는 황당해했다.

    이런 놈이 8마리나 있다니, 아틀란둠은 대체 무엇을 적으로 돌린 것인가!

    하지만 이런 괴물들이 한 곳에 모여 있지 않은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8마리의 바다뱀들은 각기 다른 구역에 서식한다.

    유다희는 이를 뿌득 갈았다.

    “제까짓 게 커 봐야 뱀이지! 용이 아니라면 무서워할 이유가 없다!”

    그녀는 포갑판에 있는 부하들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발포!”

    포격 명령이 내려졌다.

    적의 크기가 워낙에 거대한지라, 좌우 양문의 포들이 전부 개방되었다.

    콰콰콰콰콰콰콰쾅!

    함대의 화력이 총동원되었다.

    무수한 불벼락이 일어 바다뱀의 전신을 때렸다.

    콰쾅! 우지지직!

    뱀의 몸 표면을 덮고 있는 진흙과 바위들이 부서져 나간다.

    자욱한 흙먼지 사이에서 적의 살점으로 보이는 흰 고깃덩어리들이 눈처럼 나부끼기 시작했다.

    ...! ...! ...!

    바다뱀은 고통스러운 모양이다.

    몸을 구불구불 움직이며 날뛰는 것이 데미지를 입고 있는 모양새!

    유다희는 자신감이 생긴 듯 씩 웃었다.

    “흠, 아마도 A+등급 중에서도 개체값이 꽤나 상위에 있는 몬스터 같은데…….”

    그녀의 판단은 정확했다.

    놈은 거대하기는 하지만 그렇게까지 무서운 적은 아니었다.

    “흠, 아까 그 물메기와 비교해 보면 그렇게까지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네.”

    체감 난이도는 아귀 메기의 1.5배에서 1.7배 정도.

    유다희는 그렇게 판단했다.

    하지만.

    바다뱀이 본격적으로 공격태세에 들어가자, 그녀의 판단은 수정되어야 했다.

    쉬이이이익-

    바다뱀은 엄청나게 유연했다.

    으레 뱀 계열의 몬스터들이 대체로 유연한 것보다 훨씬 더.

    놈은 허공에서 몸을 자유자재로 비틀며 함선을 향해 쇄도했다.

    중심각이 5˚ 이내일 정도로 날카롭게 꺾이는 놈의 몸통.

    심지어 상당히 재빠르다!

    “……!”

    유다희는 기겁을 하며 배를 뒤로 물렀다.

    바다뱀의 난이도를 조금 상향 조정할 필요가 있겠다.

    놈은 아까 그 물메기보다 적어도 두 배 이상은 강했던 것이다.

    “거리를 벌려! 곁을 내주지 마라! 계속 포격!”

    유다희는 대포 400문을 한꺼번에 쓰려던 전략을 수정했다.

    400개의 포신이 뜨겁게 달아오르면 그것을 식힐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함선이 무방비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좌열 200문, 그 다음에 우열 200문을 나눠서 쏘며 바다뱀의 접근을 저지한다.

    전신에 흩뿌리던 포탄도 바다뱀의 머리 부분으로 고정시켰다.

    후욱-

    바다뱀은 머리를 배에 대기 어렵게 되자 몸을 구불구불 흔들었다.

    불규칙적인 해류가 발생해 배의 항로를 어지럽힌다.

    하지만, 유다희는 당황하지 않고 대응했다.

    “하나! 둘! 삼! 넷! 좌포 200문은 포격을 계속해라! 우포수들은 포문들 사이로 가서 노를 잡아라!”

    포수의 절반이 노잡이로 바뀌었다.

    불규칙한 해류 속에서도, 노련한 해저인들은 배가 뒤집히는 것을 막아 냈다.

    그 와중에도 배 왼쪽의 대포 200문은 계속해서 불벼락을 쏘아 대고 있었다.

    푸시시시식-

    시뻘겋게 달아오른 대포들이 주변의 바닷물을 부글부글 끓게 한다.

    유다희는 대포의 내구도를 한 눈에 알아보고는 바로 공수를 교대했다.

    이번에는 좌포수들이 노를 잡는다.

    그동안 차가운 바닷물에 식은 우포 200문이 다시 포격을 계속했다.

    “모든 화약을 다 써 버려라! 이길 수 있다!”

    유다희는 해저인들을 향해 고함쳤다.

    함장 직위에 있는 그녀가 소리치자, 모든 해저인들의 HP가 약간씩 회복되며 이동 속도와 공격 속도가 높아졌다.

    함장 버프가 발동된 것이다.

    한편, 그 급박한 순간에도 유다희는 전세의 흐름을 냉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이길 수 있다!’

    그녀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행복회로를 돌린 것이 아니라 냉정한 판단이었다.

    몇 가지 근거를 대자면…….

    1. 화약의 양이 아직 충분히 남았다.

    2. 대포의 내구도가 아직 충분히 남았다.

    3. 처음 해보는 함대 컨트롤이 꽤 용이하다.

    그리고 마지막 4번째 이유가 가장 중요하다.

    ‘왜 꼬리를 안 쓰지?’

    유다희는 포격 세례를 받고 있는 바다뱀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저 저대한 괴물은 어째서인지 꼬리를 쓰지 않고 있었다.

    뱀 계열 몬스터들 중 덩치가 큰 개체들은 어김없이 꼬리 휘두르기라는 공격 패턴을 가지고 있다.

    사실 박치기나 이빨 공격보다도 꼬리를 이용한 채찍 공격이 더욱 더 귀찮은 경우가 많다.

    눈앞에 있는 저 바다뱀의 경우도 거대한 꼬리를 이용해서 공격해 온다면 상당히 난감해질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저놈은 꼬리 공격을 해 오지 않았다.

    움직이는 범위가 정해져 있는 듯, 오로지 머리로만 공격해 올 뿐이다.

    콰콰콰쾅!

    대포에서 뿜어져 나간 불벼락이 바다뱀의 머리통을 때렸다.

    뻘흙과 돌 부스러기, 그리고 심해의 어둠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지만 바다뱀은 충분히 괴로워하고 있다.

    허공에 나폴나폴 흩날리는 놈의 살점들이 이를 증명한다.

    “잡을 수 있다! 잡을 수 있겠어! 꺄아악! 이 상황 실화냐!?”

    유다희는 흥분에 몸을 떨었다.

    아마 여지껏 발견된 몬스터 중 가장 높은 등급, 가장 높은 개체값을 가진 몬스터임이 분명한 저 바다뱀.

    그것을 지금 자신이 ‘혼자’ 잡고 있는 것이다!

    (물론 실질적으로 딜을 넣는 것은 해저인들과 함선이기에 기여도는 거의 없다지만 말이다)

    유다희는 열정적으로 포갑판을 뛰어다녔다.

    포수와 노잡이들에게 함장 버프를 걸어주면서.

    콰콰콰쾅!

    진흙과 돌조각, 불길과 거센 물결.

    그 혼돈의 소용돌이 와중에도 함대는 계속해서 바다뱀의 몸통박치기를 피하며 포격을 날리고 있었다.

    가히 신들린 듯한 집단조종.

    과연 유다희는 무언가를 지배하고 통솔하는 데에는 도가 튼 여자다.

    쿠르릉-

    바다뱀의 움직임이 현저히 느려졌다.

    놈은 전신에 붙은 바위와 뻘흙을 떨구며 비척비척 뒤로 물러난다.

    “자! 끝장낼 시간이다! 키를 좌현으로 돌려라!”

    유다희는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좌포열이 한 차례만 더 가동되면 이 레이드에도 종지부가 찍힐 것이다.

    …….

    하지만.

    “…음?”

    유다희의 머리 위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배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푸시시시식-

    뜨겁게 달아오른 우포열만이 침묵하고 있을 뿐이다.

    여기서 더 이상 포격을 하면 열 때문에 포신이 휘어져 오발 사고가 날 수 있다.

    따라서 빨리 배를 반대쪽으로 들어 좌포열을 가동해야 한다.

    “뭐 하는 거야! 빨리 배를 틀…!?”

    재빨리 조타실로 뛰어간 유다희.

    그녀는 이내 충격적인 광경을 마주해야 했다.

    선미루에 있던 조타실이 처참한 몰골로 박살나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누군가 지진이라도 일으킨 듯 완파된 조타실.

    휘끼리리리리릭-

    박살난 키가 미친 듯이 돌아가고 있었다.

    모든 톱니바퀴들의 아귀가 죄다 부서져 제멋대로 돌아간다.

    좌우열의 포를 쏘려면 배를 S자로 몰아야 하는데 그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너무나도 치명적인 상처!

    “뭐, 뭐야!? 대체 이게 무슨…!”

    유다희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한 채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

    이내.

    그녀의 꽉 앙다물어진 입이 확 열렸다.

    “아아아아악! 고인물 이 개X끼이이이! 또 너지이이이!?”

    유다희가 핏발 선 눈으로 돌아본 것은 선미루를 슬그머니 빠져나가고 있던 나였다.

    “…나 아님.”

    나는 손사래를 치며 뒤돌았다.

    그리고는 유다희를 향해 단호하게 한 번 더 말했다.

    “아무튼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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