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침몰함대(沈沒艦隊) (2)
“쏴라! 화약을 있는 대로 퍼부어!”
유다희는 커다란 도끼를 뻗어 정면을 가리켰다.
기우뚱-
키가 우현으로 꺾인다.
배가 우측으로 기울며 좌열에 있는 대포 200문이 불벼락을 뿜어댔다.
콰쾅! 콰콰콰쾅!
좌열 대포들이 포격을 하는 동안.
치이이이익…
포신의 열 때문에 붉게 변한 우열의 대포들이 심해의 차가운 물에 식어 간다.
유다희는 배를 좌우 S자 모양으로 꺾으며 그 짧은 시간 안에 물메기를 향해 약 1,600발 이상의 포격을 퍼부었다.
꾸르르륵-
화약에 의해 데워진 심해의 바닷물이 끓어오른다.
미친 듯이 솟구치는 물거품 속에서, 물메기가 몸을 뒤틀며 소리 질렀다.
<아귀 메기> -등급: A+ / 특성: 물, 심해, 와류, 잠복
5,913,021/7,500,000
이 거대한 심해괴물은 물리방어력이 보기보다 약하다.
퍽! 퍽!
포탄이 날아와 살에 박힐 때마다 연한 살점들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튀어 올랐다.
그렇게 나부낀 살점들은 위로 높게 솟구쳤다가 이내 다시 하늘하늘 침강한다.
‘마린 스노우(Marine snow)’
심해에 눈이 내린다.
해설(海雪)이 거센 해류에 실려 나부끼는 동안, 유다희는 다음 지시를 내렸다.
“배를 정면으로 틀어라! 쇠돌기를 준비해!”
함장의 지휘 아래 해저인들이 수많은 쇠돌기를 가져와 배의 정면과 양측 함벽에 장착했다.
차르르르륵-
곳곳에서 쇠사슬 끌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이내 배는 날카로운 이빨들로 무장한 상태가 되었다.
“돌격!”
유다희는 가차 없이 배를 몰았다.
쾅!
뱃머리의 거대한 톱날이 물메기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파고든다.
뿌지지지지직-
동시에 배의 옆면에 있던 쇠돌기들이 물메기의 연한 살을 마구 찢어발겼다.
스치기만 해도 중상이다.
[꾸르르르륵!]
물메기는 몸을 비틀며 저항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살점들이 뜯겨져 나온다.
물메기는 상당 중량의 살점을 내어주고서라도 거리를 벌리려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것을 유다희가 허락해 줄 리 없었다.
“다시 포격!”
그녀는 물메기의 살을 꿰고 있는 쇠돌기들이 빠지기 전에, 차갑게 식은 우열의 대포 200문을 재가동시켰다.
콰콰콰콰쾅!
또다시 대포들이 불을 뿜는다.
연하고 두툼한 살점들이 또다시 뭉텅이로 뜯겨져 나왔다.
그리고 그 안으로 뻘건 내장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꾸욱! 꾸욱! 꾸욱!]
물메기가 볼살을 푸르르 떨었다.
놈은 포격으로 인해 배에서 멀리 떨어져 나갔지만 바로 반격 태세에 들어갔다.
[하아아아아압!]
놈은 절반쯤 뜯겨나간 입을 쩍 벌렸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거대한 소용돌이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쿠르르르륵!
거대한 소용돌이가 일어 배를 삼키려 든다.
“어엇!?”
유다희는 약간 당황했다.
물메기가 위치한 장소는 배의 후미! 대포도 쇠돌기도 없는 부분이다.
“젠장!”
그녀는 실책을 인정해야 했다.
후미에서 따라붙는 적에 대한 방어대책은 거의 세워 두지 않았다.
펑! 퍼펑!
유다희는 카로네이드, 팰코넷 등의 보조화기까지 총동원했다.
하지만 사정거리가 짧고 포탄이 느린데다가 포 자체의 중량이 너무 작고 가벼워서 큰 데미지를 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꾸릅! 꾸르르륵!]
물메기는 기회다 싶었는지 악착같이 배의 꽁무니를 빨아들였다.
…하지만.
“귀찮네.”
내가 그렇게 되도록 놔두지 않는다.
유다희의 레이드가 성공하는 것은 곤란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배를 ‘벌써’ 잃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뿌득-
나는 엄지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냈다.
바실리스크의 맹독이 함유된 나의 검은 핏방울.
그것들이 방울방울 해류에 실려 와류에 쓸려간다.
[헙!?]
물메기는 와류를 집어삼키던 도중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입을 닫았다.
하지만 이미 강력한 맹독에 중독된 뒤다.
바실리스크는 북대륙 가혹한 지대에 사는 동급 몬스터들에게도 전혀 꿇리지 않는 강력한 몬스터가 아닌가?
놈의 피는 아귀 메기에게도 충분히 위협적이다.
맹독이 물메기의 HP를 조금씩 깎아낸다.
그뿐이랴?
나는 함선의 난간을 박차고 훌쩍 뛰어올랐다.
가가가각-
그리고 물메기의 이마에 길고 얕은 흉터를 남겨 놓았다.
바로 ‘깎단’으로!
능지처참 특성이 또다시 물메기의 HP를 깎아 간다.
맹독까지 포함하면 수천이 넘는 HP가 매초 깎이는 것이다.
‘물론 맹독은 지속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계속해서 걸어 줘야 하지만.’
나는 물메기의 상처마다 내 핏방울을 뿌리며 생각했다.
그러자.
꿀렁-
물메기가 거대한 몸을 움직여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래도 전방의 함선보다 나의 위험성을 더 높게 평가한 듯싶다.
이내.
[꾸르르르륵!]
물메기가 나를 향해 거대한 몸을 꿈틀거리며 헤엄쳐 온다.
혼신의 힘을 다한 다이브.
육중한 몸통박치기!
이 공격을 함선에 대고 시전했다면 아마 함선은 반파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눈앞의 A+급 몬스터의 육탄공세와 정면으로 맞붙었다.
그것은 마치 버팔로와 개미가 맞붙어 싸우는 듯한 광경!
“뭔 미친 짓이야!?”
배의 후미에 있던 유다희가 깜짝 놀라 외쳤지만 무시한다.
이내.
물메기와 내가 정면으로 맞부딪쳤다.
콰쾅!
진동하는 해류, 박살나는 바닥.
모든 것이 산산조각난다.
…하지만!
나는 살아남았다.
샌드웜을 잡고 얻은 망토가 나의 몸을 지켜준다.
HP는 0이 되지 않았다.
-<이어진>
LV: 41
HP: 1/410
‘앙버팀’ 특성 덕분에 나는 아직 살아있다.
그리고 곧바로 이어지는 반격!
꾸드득- 꾸득- 우직- 우직- 우지직!
왼쪽 심장에서부터 불거지기 시작한 검은 핏줄들이 이내 내 몸을 뒤덮었다.
바실리스크의 심장이 약동하며 ‘패륜아’ 특성이 개화했다.
이제 돌려줄 시간이다.
콰콰콰쾅!
반사 데미지, 상대가 나보다 강한 적일 경우 공격의 99%까지 그대로 돌려주는 기술!
나에게 부딪쳐 온 물메기는 덩치가 커서 반사 데미지를 피할 수도 없다.
우지-끈!
물메기의 안면이 마치 투명한 벽에 부딪친 것처럼 으깨졌다.
콰쾅!
순식간에 터져나가는 물메기의 육체.
놈의 HP가 바닥을 드러낸 것은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좋다.
수없이 흩날리는 물메기의 살점, 그 자욱한 마린 스노우 속에 내 모습은 파묻힌다.
우르릉! 우릉!
곳곳에서 낙석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저 중 손톱만 한 조약돌이라도 내 몸에 닿으면 나는 죽을 것이다.
…하지만.
“흡!”
숨을 참자 씨어데블의 점액이 내 몸을 뒤덮었다.
미끈- 미끈- 미끄덩-
내 몸을 향해 떨어지던 낙석들이 미끄러져 내린다.
어지간한 물리 데미지쯤은 그냥 무시해 버리는 능력이 HP 1 상태인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그 상태에서, 나는 손가락을 쫘악 폈다.
혈액포식자!
적에게서 초당 HP의 0.01%를 빼앗는 ‘어둠 대왕’의 기술.
이내, 물메기에게서 HP가 빨려나와 내게로 흡수된다.
나의 최대 HP는 매우 낮다.
기껏해야 410.
물메기에게서 혈액포식을 하면 1초 만에 풀피로 회복할 수 있다.
결국 물메기는 얼마 되지 않는 딸피마저 나에게 모두 빼앗겨 버렸다.
파사사삭-
물메기가 죽으며 엄청난 양의 살점들이 함박눈처럼 분해된다.
그 와중에.
반짝-
나는 물메기의 몸통 중앙 부분에서 뿜어져 나오는 찬란한 빛 한 줄기를 감지했다.
아이템이 떨어진 것이다!
-<아귀 메기의 이빨너클> 한손무기 / A+
아귀 메기의 잇몸과 이빨이 그대로 붙어 있는 건틀릿.
수많은 이빨들이 무작위로 배치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는 대단히 공식적인 배치이다.
그래서 이 이빨들 사이로 흘러가는 공기나 해류는 불가해(不可解)의 소용돌이를 일으키곤 하는 것이다.
-물리 공격력 +3,000
-물 속성 공격력 +200
-특성 ‘와류’ 사용 가능 (특수)
“또 마동왕 템이로군.”
나는 누가 볼새라 재빨리 아이템을 수거했다.
새로 얻은 호칭은 ‘아귀메기 태공’, 특전은 ‘잠복’ 특성이다.
잠복 특성은 한 곳에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을 시 적의 눈에 띌 확률이 낮아지는 특성으로 나름 쓸만하다.
나는 모든 수확물을 확인한 뒤 잽싸게 발걸음을 돌렸다.
어차피 물메기의 살이 거센 눈발로 변해 흩날리고 있었기에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 *
착-
내가 전투를 끝내고 난간 위로 착지하는 순간.
“야! 너 아이템 뭐 얻었어!?”
유다희가 도끼를 들고 뛰어온다.
부웅-
나는 그녀가 휘두르는 도끼를 피해 갑판 위로 점프했다.
“거지던데?”
“뻥치지 마! A+급 템 얻었을 것 아냐!”
“A+등급 아이템 줍기가 쉬운 줄 알아?”
나는 짐짓 근엄하게 말했다.
A+등급의 몬스터는 처치하기도 어렵지만 아이템을 수거하기도 어렵다.
대부분의 고랭크 몬스터는 죽으면서 자폭을 하거나 이상한 지형, 가령 절벽이나 깊은 호수 등으로 다이빙하기 때문이다.
물메기만 해도 산산조각나는 동시에 해구 아래 깊은 곳으로 침강해 버리지 않았는가?
따라서 아이템도 같이 딸려가 버렸다는 것이 나의 논리.
“으아아아! 그게 말이 되냐고오오오!”
유다희는 팔팔 뛰었지만, 내가 알려 주지 않는 데에는 도리가 없다.
‘물메기를 잡고 얻은 아이템은 마동왕의 새로운 무기가 될 거야, 너한테만은 죽어도 공개할 수 없지.’
나는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
내가 못 주웠다는데 뭘 어쩔 거야?
유다희는 씩씩대고는 있지만 아까처럼 나에게 맹렬하게 달려들지는 못한다.
물메기의 몸통박치기를 제압하는 내 힘을 봤기 때문이다.
해저인들 역시도 아귀 메기로 인핸 피해를 복구하는 데 몰두하는 중이라 나를 공격할 시간이 없었다.
때문에 그녀는 그저 씩씩거리며 나를 쳐다볼 뿐이다.
딜을 넣은 것은 대부분 해저인들이었기에 기여도 보상도 얻지 못했으니 기분이 나쁜 것은 당연한 것이리라.
유일한 보상인 아이템마저 날려버렸으니 허탈하기도 하겠지.
이쯤 해서, 나는 유다희에게 반 보 물러나 주기로 했다.
“한동안은 휴전하지?”
“…….”
유다희.
그녀는 중부대륙 초보자마을의 성벽에서부터 나를 따라왔다.
그 동안 그녀는 핑크 알몸 대머리 도플갱어들에게 시달려야 했고, 이히히히의 저주에 떨어야 했고, 서리이빨에게 두들겨 맞아야 했으며 해골병 군단의 습격을 받아야 했고, 거대한 대망자에게 쫓겨야 했으며 심해의 어둠에 24시간 동안 삼켜져야 했다.
그 와중에 친동생을 비롯한 500명의 성실한 길드원들마저 모두 잃어버렸다.
확실히. 이런 입장이라면 먼저 휴전 제의를 하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전력 차는 명백하다.
나를 죽일 힘도 없거니와, 그럴 수 있다고 해도 내가 여기서 작정하고 날뛰면 괜히 유다희의 레이드만 망치는 꼴이 될 것이다.
“…….”
유다희는 분한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내 말에는 동의하는 듯해 보였다.
그녀는 아무런 대꾸 없이 홱 돌아서 다시 뱃머리로 향했다.
“…휴.”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일단 1함대의 함장이 유다희로 임명된 이상, 그녀의 심기를 완전히 거스를 수는 없었으니까.
그런 나에게, 드레이크가 다가왔다.
“저 여자, 아귀 메기를 상대하는 걸 보니 통솔력이 상당하던데. 이번 레이드 기대해 봐도 되지 않겠나?”
또 또 속편한 소리 한다 또.
나는 한숨을 쉬었다.
“오빠는 내 맘 X도 몰라.”
내가 퉁명스럽게 대답하자 드레이크는 고개를 갸웃한다.
바로 그때!
[목적지에 도착하였습니다! 목표물이 보입니다!]
망루 위에서 정찰병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
유다희가 벌떡 일어났다.
배는 심해 해류를 타고 천천히 앞으로 전진 중이다.
이내, 초롱불의 빛이 비추는 범위 안에 무언가가 보인다.
그것은 거대한 산맥이었다.
길고 높은, 끝없이 뻗어 있는 산맥.
그것은 평평한 대지 위에 긴 장벽처럼 우뚝 솟아 있다.
그리고 그 산맥의 끝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구멍이 보인다.
심해의 어둠 속에서도 혼자 압도적으로 시커멓게 보이는 어둠이 그 구멍 속에 가득 고여 있었다.
드레이크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블루홀(Blue Hole)’인가.”
바다 밑에 뚫려있는 깊은 구멍.
너무 깊어서 혼자만 주변 바다와 색깔이 다르게 보이는 이 지형을 블루홀이라고 부른다.
배는 천천히 이 블루홀로 다가간다.
<블루홀> -등급: ?
블루홀은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던전인 듯했다.
바로 그때.
어디선가 요란한 경고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띠링!
<곧 심해지대 ‘가장 깊은 곳’에 도달합니다>
<‘진(眞) 보스’가 눈을 떴습니다!>
알림음들이 연달아 들려오자 유다희가 당황했다.
[…….]
배는 고요한 어둠 속을 순항 중이다.
전방에 보이는 깊은 블루홀은 던전이기에 입장객이 들어가지 않는 한 몬스터가 먼저 나올 일은 없다.
주변에는 아무런 조짐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거대한 산맥만이 존재할 뿐, 그 어떤 몬스터도 없다.
유다희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야, 산밖에 없잖아. 보스가 어딨어?”
그러자.
사색이 된 해저인들이 덜덜 떨며 손가락을 뻗었다.
[저게 적입니다!]
해저인들의 반응에 유다희는 고개를 갸웃했다.
“……?”
그녀는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해저인들이 덜덜 떨며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
그것은 바로 길고 거대한 산맥 그 자체였다.
바로 그때!
쿠르릉……
난데없이 일어난 옅은 지진이 해류를 흔들어 놓는다.
“…어?”
유다희는 얼빠진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기분 탓일까?
눈앞의 산맥이 방금 꿈틀한 것 같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