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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140화 (140/1,000)
  • 140화 침몰함대(沈沒艦隊) (1)

    함선이 워낙에 컸기에, 우리는 한참 동안이나 닻줄을 타고 올라가야 했다.

    하단 선창의 작은 창문으로 들어온 나와 드레이크는 재빨리 하단 갑판으로 향하는 계단을 타올랐다.

    “...음?”

    드레이크는 계단을 오르려다 말고 잠시 멈칫한다.

    “뭐야? 왜?”

    내가 돌아서며 묻자, 그는 손가락으로 선창 아래의 밑바닥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수없이 많은 쇠돌기들이 적재되어 있었다.

    쇠돌기들은 칼처럼 날카롭게 벼려져 있다.

    마치 지금 당장이라도 적 배의 함벽을 뚫고 박힐 준비가 되어 있는 듯하다.

    특이한 점은 그 쇠돌기들이 전부 천장을 향해 날카롭게 서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수만 개나 되는 엄청난 양이!

    그것은 마치 거대한 짐승의 아래턱을 보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저 칼날들은 다 뭐냐?”

    “호기심이 왕성해서 좋겠구만. 빨리 오기나 해, 바빠.”

    나는 드레이크를 끌고 계단 위로 올라갔다.

    상단 선창으로 올라가자, 아까와 비슷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칼처럼 날카로운 쇠돌기들이 이번에는 바닥을 향해 쭉 적재되어 있다.

    마치 거대한 짐승의 위턱을 보는 듯한 모습.

    그러니까 하단 선창에는 위를 향해 솟은 이빨이, 상단 선창에는 아래를 향해 솟은 이빨이 빼곡하게 달려있는 셈이다.

    마치 무언가를 콱 물어 버리기 위해 설계된 듯한 외형.

    “나중에 가면 알게 될 거야.”

    나는 수없이 많은 쇠돌기들의 미로를 피해 하부 포갑판으로 올라왔다.

    수많은 해저인들이 노를 젓고 있는 것이 보인다.

    노와 노 사이를 분주히 오가는 이들은 전부 폭약이 든 궤짝을 나르고 있었다.

    그것은 좌우 양편에 배열된 200문의 대포로 옮겨진다.

    여기서부터는 창문이 있어 배의 바깥이 들여다보였다.

    창틀에 붙어 있는 초롱아귀의 등불이 심해의 어둠을 훤히 비추기 때문에 시야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점액방울로 되어 있는 부드러운 창문은 깨져도 얼마든지 다시 만들 수 있다.

    얼굴을 들이밀자, 창문은 쭈욱 늘어나며 배 바깥의 풍경을 보여 준다.

    “오오, 이거 완전히 심해의 유람선이군!”

    드레이크는 저 멀리 보이는 심해의 풍경을 보며 감탄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둑어둑한 해저.

    으스스한 불빛을 비추는 배가 지느러미 돛을 꿈틀거리며 해류를 가른다.

    구불구불한 산맥들이 쭉 이어져 있는 땅.

    깊은 해구와 해구 사이에는 기괴하게 뒤틀린 바위들이 솟구쳐 있었다.

    그리고 그 밑의 절벽 아래에는 배가 내뿜는 등불로는 밝힐 수 없는 깊은 어둠이 도사리고 있다.

    함선은 그 어둠과 어둠의 사이에 난 좁고 가파른 길, 투명한 해류 한 줄기를 실날같이 잡고 헤엄치고 있었다.

    그 모습은 으스스했지만 달리 보면 장엄하고 신비로웠다.

    철썩-

    파도가 와 뱃전에 닿을 때면 낭화 대신 물거품이 피어올랐다.

    뿌그르륵-

    배가 지나가는 항로 옆 곳곳에서 공기방울들이 부글부글 끓는다.

    전부 다 해저의 바닥에 숨은 몬스터들이 내뿜는 것이었다.

    꿀렁- 꿀렁- 꿀렁-

    전신에서 연두색 빛을 내는 긴 뱀장어가 배 옆을 스쳐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놈은 함선의 길이보다도 훨씬 더 긴 몸을 흔들며 어둠 너머로 조용히 몸을 묻는다.

    드레이크는 십년감수했다는 듯 들었던 쇠뇌를 내려놓았다.

    “휴, 무시무시한 녀석이 나타난 줄 알고 경계했는데…….”

    나는 그런 드레이크의 어깨를 팡 쳤다.

    “너무 긴장할 것 없어. 이 배는 해저왕 플라튠의 가호를 받고 있다. 배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어 때문에 A급 이하의 몬스터는 선공을 해 오지 않아.”

    이곳에 존재하는 심해생물들은 열에 아홉은 거대한 덩치를 가지고 있다.

    당연히 스텟이나 특성 역시도 덩치값을 한다.

    (기괴하게 생긴 외형은 덤이다)

    하지만 해저왕 플라튠의 피어는 그런 괴물들을 전부 내쫓아 버릴 정도로 강력했다.

    ‘아마 A급 몬스터 중에서도 상당히 개체값이 높은 녀석들이나 먼저 공격을 해 오겠지.’

    하지만 이 드넓은 심해의 환경에서도 그럴 만한 괴물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니 한동안 전투가 벌어질 걱정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상부 포갑판을 지나 계단을 올랐다.

    이내, 해저의 전면이 보이는 하단 갑판이 드러났다.

    나는 조심스럽게 바닥의 나무문을 열고 위로 올라왔다.

    그러자.

    “…….”

    저 앞에 보이는 뱃머리에 앉아있는 유다희가 보인다.

    “…….”

    그녀는 칠흑 같은 어둠과 그곳에서부터 흘러오는 해류를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도끼 한 자루를 어깨에 걸쳐 메고 까마득한 높이의 뱃머리 위에 앉아 양반다리를 하고 있는 모습.

    마치 북유럽 신화의 전쟁영웅을 보는 느낌이다.

    “…휴.”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내 한숨 소리를 들은 유다희가 부리나케 자리를 박찼다.

    “뭐, 뭐야!? 너 언제 이 배에…!?”

    그녀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유다희는 나를 향해 도끼눈을 번뜩였다.

    “아, 그래? 차라리 잘됐다. 나도 너를 두고 떠나기 찜찜했거든. 차라리 지금 붙어 X발!”

    그녀는 도끼를 꺼내들고 자세를 잡았다.

    위험등급으로 따지면 기껏해야 B급 몬스터 수준인 그녀가 왜 이렇게 당당할까?

    “…….”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유다희의 표정을 읽었다.

    그녀는 겉보기엔 무대포에 다혈질, 막무가내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머릿속은 대단히 냉정하고 치밀하다.

    게임의 판도를 읽는 센스 역시도 뛰어나다.

    욱해서 나에게 덤벼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머릿속으로 냉정히 승률을 계산중이겠지.

    그리고 계산이 끝났으니 이런 다혈질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리라.

    나의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서.

    …하지만 그런 도발에 넘어가 줄 리가 없다.

    “계산 다시 해 봐.”

    동시에. 나는 좌로 두 발자국, 다시 우로 한 발자국 이동했다.

    퍼퍼퍽!

    좌측에서 창 두 정, 우측에서 칼 한 자루가 떨어져 내가 서 있던 자리에 꽂혔다.

    표정이 귀찮음 때문에 절로 찌푸려진다.

    ‘해저인들의 공격 패턴이야 뻔하지.’

    뒤편에 있는 상단 갑판에는 해저인 창병과 검병들이 우르르 서 있었다.

    1함대의 함장인 유다희의 명령을 듣는 존재들이다.

    내가 해저인들의 공격패턴을 미리 알고 있기라도 한 듯 피하자 유다희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는다.

    “…활! 활을 쏴라!”

    유다희는 뒤에 있는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그러자 해저인 궁병들이 앞으로 나와 나에게 화살을 쏘기 시작했다.

    “…….”

    나는 그저 조용히 숨을 참았다.

    꿀렁- 꿀렁- 꿀렁-

    전신의 땀구멍에서 끈적끈적한 점액이 나와 내 알몸을 코팅한다.

    반들반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내 알몸.

    해저인들의 화살은 씨어데블의 점액에 미끄러저 이상한 곳으로 휘어져 버렸다.

    퍼퍼퍽!

    창과 칼이 날아들었지만 나는 탭댄스를 추듯이 발을 굴러 모든 것을 피해 버렸다.

    해저인들의 투창, 투검은 항상 심장이나 머리가 아니라 발등을 노리고 날아들기에 발의 위치만 0.3초에 한 번씩 바꿔 주면 맞을 일이 없다.

    “머리! 심장! 아니 급소를 노리라고 이 머저리들아!”

    유다희가 고래고래 외쳤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해저인들은 나 같은 일반 플레이어(카르마 수치가 낮은)에게 급소 공격을 하지 못하게끔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발등과 바닥을 창으로 꿰어 도망을 방해하는 정도지 뭐.’

    때문에 나는 해저인들의 공격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창이나 칼 같은 공격력이 강한 공격은 발만 슥 움직여 피하고 눈먼 화살 등은 점액으로 흘려버리면 그만이다.

    나는 주변에 수북하게 쌓인 창과 칼, 화살들을 슬쩍 둘러보았다.

    물론 계속 창과 칼, 화살들이 날아오고 있었기에 부지런히 탭댄스를 추며 간간히 숨을 참아 점액을 짜내야 했다.

    “이제흡그만흡포기흡할때도흡되지흡않았나흡순순히흡내흡말흡듣는흡게흡좋을흡텐데흡?”

    나름 무게를 잡고 하는 대사지만, 요란하게 탭댄스를 추면서 숨까지 참아야 하니 영 폼이 안 난다.

    짜증이 난 유다희가 손을 들어 화살 세례를 중지시켰다.

    “뭐? 뭐라는 거야?”

    “휴. 아니. 이제 그만 내 충고를 좀 들을 때도 안 됐나 싶어서.”

    “…무슨 충고?”

    “항해를 멈춰. 너는 이 레이드에 참여하면 안 돼.”

    나는 진심을 담아 이야기했다.

    그리고, 유다의 역시 진심을 다해 대답했다.

    “까고 있네.”

    유다희는 도끼를 들고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당연히 해저인들의 공격 역시도 다시금 이어졌다.

    …아니.

    이어지려 ‘했다’

    콰-쾅!

    순간, 배가 크게 흔들린다.

    간판에 있던 모두가 몸을 가누지 못하고 휘청거린다.

    …나만 빼고.

    “핫챠!”

    나는 기울어지는 배 가운데서도 발레리노처럼 외발로 서 균형을 유지했다.

    ‘왜냐면 이 시점에서 한번 흔들릴 때가 됐거든.’

    내 예상과 현실은 거의 오차를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전방에 초대형 몬스터 출현! A등급 이상으로 추정!]

    망루 위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초를 서던 툭눈 망둥어가 다급하게 외치고 있었다.

    “…쳇!”

    유다희는 도끼를 든 채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이 배에는 현재 해저왕의 기운이 서려 있다.

    따라서 A등급 미만의 개체들은 아예 접근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습격해 오는 적은 최소한 A등급 이상이라는 소리!

    게다가 북해의 심해구역에 서식하는 몬스터이니만큼 동급 몬스터에 비해 강력할 것이 분명하다.

    이윽고.

    스윽-

    정면의 어둠 속에서, 거대한 안면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맛이 간 약쟁이의 눈처럼 멍한 동공.

    정면에서 보면 입술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크고 두터운 입.

    턱 밑으로 길게 자라난 두 가닥의 수염.

    눈앞에 나타난 것은 어마어마하게 큰 물메기였다!

    <아귀 메기> -등급: A+ / 특성: 물, 심해, 와류, 잠복

    -서식지: ‘가혹한 바다’ 전 구역

    -크기: 40m.

    -심해 깊숙한 곳에 서식하는 메기. 커다란 입으로 적을 한 입에 삼켜 버린다.

    일단 삼켜진 먹잇감은 뱃속까지 무사히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입 안과 식도에 난 무수히 많은 이빨들에 의해 난자당해 형체도 없이 으깨진다.

    자기와 같은 크기까지는 문제없이 집어삼키는 듯하다.

    너무 커서 머리밖에는 보이지 않는 괴물 어류가 모습을 드러냈다.

    메기는 나타나자마자 배를 향해 입을 쩍 벌린다.

    어마어마하게 큰 입이 벌어지자, 이내 무시무시한 광경이 펼쳐졌다.

    입천장과 벽, 혀 밑, 구강 내부를 온통 뒤덮고 있는 매복치가 보인다.

    하나같이 칼처럼 날카로운 이빨들.

    그것들은 심지어 아가미 안쪽, 식도 저 깊은 곳까지 빽빽하게 돋아나 있었다.

    [크하아아아압-]

    놈이 아가미를 부들부들 떨자 거대한 소용돌이가 일어 배를 앞으로 확 끌어당긴다.

    메기는 소용돌이를 일으켜 전방의 먹이를 확 빨아들이는 방식으로 포식활동을 하는 듯싶었다.

    하지만.

    순순히 당할 유다희가 아니었다.

    “전 병력 우측 포열로! 키를 좌현으로 돌려라!”

    그녀는 병력들을 일사분란하게 통제하기 시작했다.

    기우뚱-

    이내, 배가 왼쪽으로 기우는 순간.

    퍼퍼퍼펑!

    우측에 있는 200문의 대포에서 일제히 불벼락이 뿜어져 나간다.

    콰콰콰콰콰콰콰쾅!

    물속에서도 번쩍이는 불꽃.

    화약의 힘은 실로 강력했다!

    “오오! 이 정도라면 무리없이 잡겠어!”

    드레이크는 아귀 메기의 HP가 급속도로 줄어드는 것을 보며 감탄했다.

    하지만, 오직 나만은 어두운 표정을 지을 뿐이다.

    “아, 이러면 나가린데…….”

    머릿속은 앞으로의 계산으로 복잡하다.

    그리고 그런 내 심경과는 전혀 상관없이…….

    “쏴라! 화약을 몽땅 쏟아 부어! 죽여 버리라고!”

    유다희는 해저인들에게 발포 명령을 내리며 전장을 완벽하게 휘어잡는다.

    전세는 점점 1함대에게 유리하게끔 기울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모습을 약간의 조바심을 가진 채로 지켜본다.

    ‘아직… 아직이야.’

    결정적인 순간이 곧 온다.

    그때까지는 몸을 사려야 했다.

    ‘이거 본의 아니게 유다희에게 또 미안한 짓을 해버릴 것 같은데?’

    영원히 고통받는 유다희, 그녀는 ‘곧’ 자신에게 펼쳐질 미래를 알까?

    “……?”

    이리저리 발로 뛰며 함대를 진두지휘하는 유다희.

    목덜미에 오싹 돋는 영문 모를 소름에 고개를 갸웃하는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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