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138화 (138/1,000)
  • 138화 대심해의 유령도시 (2)

    해저왕국 아틀란둠의 군단장 ‘톱상어 귀스타프’

    그는 나를 데리고 아틀란둠의 중앙, 거대한 왕성으로 향했다.

    하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도로는 반들반들 윤이 흘렀다.

    거대하고 웅장한 조형물들이 왕권의 지엄함을 온몸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정지, 정지, 손들어. 움직이면 찌른다.]

    정문 앞에 선 해저인 병사들이 창과 칼을 들어 이쪽을 겨누었다.

    각각 해마, 바다뱀의 머리를 하고 있는 해저인들.

    [여고생들 한다.]

    톱상어 귀스타프가 문 앞에 서자.

    [헉! 군단장님!]

    [단결! 개문하겠습니다!]

    병사들은 고개를 숙이고는 문을 열었다.

    끼기기긱-

    이내, 거대한 왕성 내부의 모습이 눈 안에 훤히 들어온다.

    반짝반짝 빛나는 샹들리에 위에는 촛불 대신 진주들이 빛난다.

    그 아래 널찍한 홀에는 수많은 해저인들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게, 곰치, 멍게, 불가사리, 넙치, 짱뚱어, 참치, 가리비…….

    다양한 모습, 다양한 크기의 해양생물들이 갑옷에 창을 든 채 분주하다.

    아마도 전쟁 준비를 하는 모양이다.

    드레이크는 그 모습을 보고 내게 속삭이듯 말했다.

    “역시 오징어나 문어 같은 건 안 보이는군?”

    “쉿. 여기서 그 말은 금기야.”

    나는 드레이크를 향해 검지손가락 하나를 세워 입술에 대 보였다.

    이윽고.

    톱상어 귀스타프는 우리를 향해 입을 열었다.

    [지금 우리 해병대는 전쟁을 목전에 두고 있다. 때문에 왕성 안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소란스럽지. 이해해 주길 바란다.]

    그는 홀 내부에 길게 깔린 레드카펫 위로 올라갔다.

    그러자.

    보글보글보글…….

    레드카펫 밑에서 물거품들이 올라오며 카펫을 위로 띄웠다.

    이내, 우리는 왕궁의 가장 꼭대기 층까지 물거품을 타고 상승했다.

    그러자.

    눈앞에 커다란 왕좌가 나타났다.

    조개껍데기와 따개비들로 이루어져 있는 거대한 왕좌.

    그리고 그곳에 앉아 있는 이는 거대한 몸, 근육질의 육체, 날카로운 이빨과 지느러미를 가진 해저인이었다.

    아틀란둠의 국왕 ‘플라튠’

    커다란 상어의 외형을 하고 있는 그의 몸은 터질 듯한 근육으로 꽉 차 있었다.

    머리에 쓰고 있는 왕관과 그보다 높게 솟구쳐 있는 거대한 등지느러미는 매우 고압적으로 보인다.

    [오오! 이 자들이 용병 모집에 지원한 이들인가!]

    플라튠, 이 거대한 백상아리는 우리를 향해 노란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콱!

    그는 손을 뻗어 왕좌 옆 벽면에 가로로 걸려있는 거대한 삼지창을 집었다.

    쿠웅-

    삼지창의 손잡이 끝부분이 바닥을 때리자, 바닥이 쩍 갈라지며 옅은 지진이 일었다.

    드레이크는 그 모습을 보며 감탄했다.

    “창이 거의 전봇대 수준이군. 굉장한 크기야.”

    플라튠도 거대했지만 그가 쥐고 있는 삼지창은 더욱 거대하다.

    과연 ‘해저의 왕’이라고 불릴 만한 위압감이 있는 모습이었다.

    플라튠은 나와 드레이크를 내려다보며 가래 끓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아틀란둠은 오래 전부터 해저의 끝, 깊숙한 블루홀에 숨어있는 ‘여덟 마리의 괴물’과 영역 분쟁을 겪고 있지.]

    해저도시 아틀란둠을 노리고 있는 정체불명의 여덟 괴물들.

    마치 설화같은 이야기이다.

    플라튠은 날카로운 이빨을 뿌득 뿌득 갈기 시작했다.

    [이번에야말로 이 지긋지긋한 전쟁을 끝낼 차례야! 나는 함대를 이끌고 가 그 여덟 마리의 괴물들을 남김없이 죽여 없앨 생각이다!]

    줄다리기 밧줄 같은 핏줄들이 이마 위로 툭툭 불거져 나온다.

    칼처럼 생긴 상어의 비늘들이 빽빽하게 곤두섰다.

    플라튠은 노오랗게 타오르는 눈을 내려 나를 들여다보았다.

    [너희들에게 내 함선의 지휘를 맡길 테니 나를 실망시키는 일이 없도록 하라.]

    플레이어의 특권일까?

    플라튠은 바로 나에게 함장의 직위를 내주었다.

    [자, 그럼 너희들이 탈 배를 직접 보여 주지!]

    플라튠은 톱상어 귀스타프와 함께 몸을 일으켰다.

    이내, 레드 카펫이 꿈틀거리며 날아오른다.

    플라튠이 밟고 있는 자리에 눈이 있는 것을 보니, 이것은 한 마리의 커다란 가오리임에 분명했다.

    꾸물꾸물-

    빨간 가오리는 우리를 태우고 왕성의 창문 밖으로 나갔다.

    “오오…….”

    나는 창밖으로 보이는 경치에 감탄했다.

    이 풍경은 고인물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수백 번은 봤지만,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다.

    심해의 어둠에 잠긴 도시.

    하지만 산호와 진주, 물이끼들이 내뿜는 빛으로 인해 거리는 환하게 빛난다.

    마치 은하수 별무리가 땅을 기고 있는 듯한 풍경.

    그리고 수많은 행인들이 그 거리 위로 저마다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 어느 풍경과도 견줄 수 없는 최고로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이윽고.

    빨간 가오리는 왕성을 반 바퀴 빙 돌아 뽀죡한 첨탑으로 향했다.

    돔의 천장까지 닿을 정도로 높은 첨탑 주변으로는 총 8개의 칸막이가 있었다.

    그리고 그 8개의 칸막이 하나하나에는 거대한 배가 정박해 있는 상태.

    그 광경을 본 드레이크는 다시 한 번 놀라야 했다.

    “…엄청난 병력이로군.”

    그가 놀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여기에 있는 배와 병력을 보면 누구라도 탄성을 지를 것이다.

    총 8척의 거대한 갤리온 선.

    하나하나가 1만 톤이 넘는데다가 배의 좌우로 약 200문 이상의 대포가 탑재되어 있다.

    하늘을 찌를 듯 높게 솟은 3개의 돛대.

    뒷돛대에는 큰 삼각돛, 주돛대와 앞돛대에는 거대한 사각돛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 외에도 배의 양 옆과 하단에 따로 커다란 돛이 달렸다.

    사실 돛이라기보다는 지느러미에 가까운 외형.

    그 압도적인 높이, 크기, 넓이를 보면 배의 추진력을 짐작할 만하다.

    망루도 자그마치 7개나 된다.

    유선형의 몸체 곳곳에는 살벌하게 생긴 쇠돌기가 튀어나와 있었다.

    함저 구역에는 배의 중심을 잡아두기 위해 쇠사슬이나 예비용 닻 등의 무거운 것들을 적재했다.

    이는 유사시에는 바로 공격 및 나포용 무기로 돌변한다.

    하단 선창에는 화약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배 무게의 50% 이상을 차지할 정도의 엄청난 양.

    그리고 남은 공간에는 비로소 육포나 보드카 등이 실렸다.

    상단 선창에는 용맹스러운 해병들이 탑승했다.

    하나하나가 A급의 실력을 가진 전투원들이다.

    상부 포갑판과 하부 포갑판에는 총 400문의 대포가 실렸다.

    말도 안 될 정도로 많은 화물들이었지만 이 함선이 나아가는 곳은 수면 위가 아니라 까마득히 깊은 심해의 블루홀 속.

    당연히 일반적인 상식쯤은 아득히 벗어나는 것이다.

    “호오? 이것들은 전부 다 화약인가.”

    드레이크는 하단 선창에 가득 쌓인 화약들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딱딱한 휘발유라고 불리는 ‘나프타’ 등의 화약이 가득하다.

    포갑판 근처에 비치되어 있는 풀무를 가동하는 순간, 포의 노즐로부터 무시무시한 위력의 불벼락이 뿜어져 나올 것이다.

    (물속에서 불을 어떻게 당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일개 함선이 이 정도라니…….”

    드레이크는 기가 막히다는 듯 여덟 전함을 둘러보았다.

    사거리 자체는 그리 길지 않을지라도, 어지간한 소국(小國) 하나쯤은 반나절 만에 멸망시킬 수 있는 화력이었다.

    이것들을 플레이어 하나에게 온전히 지휘하게 맡긴다고?

    물론 수많은 해저인 병력들이 따라붙는 것이니만큼 헛짓거리는 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상당히 짜릿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해저왕 플라튠은 말했다.

    [너희들은 각자 이 배를 몰고 나가 각각 7마리의 괴물과 7번의 전투를 치러야 할 것이다. 마지막 8번째 괴물은 국왕인 이 몸이 친히 8번째 함선을 몰고 가 격퇴할 것이니 그리 알라.]

    그러고 보니, 해저왕 플라튠이 탈 예정인 8번째 전함은 가장 크고 웅장한 크기를 가지고 있었다.

    한 개 도시에 필적할 사이즈를 가진 다른 배들에 비해 1.5배는 더 클 정도였다.

    “자, 지금부터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하지.”

    나는 드레이크를 향해 말했다.

    “1번째 함대는 내가 지휘하게 될 거야. 그리고 레이드가 끝나면 다시 여기로 돌아와 네가 2번째 함대를 이끌게 되겠지. 그 다음 3번째 함대는 다시 나에게 지휘권이 돌아와. 그리고 4번째는 다시 너지. 우리는 이렇게 7번의 레이드를 차례차례 해야 해.”

    “흠, 그러니까 지휘관만 바뀌는 것이지 같이 싸우는 것은 똑같다 이거로군?”

    “그렇지. 배를 한꺼번에 몰고 나갈 필요는 없어. 한 놈, 한 놈 차근차근 확실하게 해치우면 되는 거야.”

    해저도시 아틀란둠을 노리고 있는 8마리의 괴물들.

    그리고 이에 맞서기 위해 여기에 8함대가 나선다.

    이윽고, 나는 모든 준비를 끝마쳤다.

    드레이크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언제든 출항할 준비가 되었다는 듯 고개를 들어 해저왕 플라튠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플라튠은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좋아. 그럼 이제부터 너희들에게 함선의 지휘권을 수여하겠다.]

    동시에, 나는 생각했다.

    ‘이제 내게 1함대의 사령관 보직을 내리겠지.’

    머릿속에 복잡한 계획이 가득 차오른다.

    ‘먼저, 플라튠이 내게 1함대의 사령관 직을 부여하면 바로 함대를 이끌고 나가서 12시 방향으로 돌진, 첫 번째 바다괴물과 교전 후… 재빨리 복귀한 뒤에… 드레이크가 바로 2함대를 이끌고 1시 방향으로 가서 두 번째 바다괴물을…….’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것이 어찌 그렇게 완벽하게 딱딱 맞아 떨어지겠는가?

    이내, 해저왕 플라튠의 입에서 내 모든 계산을 송두리째 뒤집어버리는 발언이 터져 나왔다.

    [너에게 나의 자랑스러운 ‘2함대’를 맡아 지휘할 권리를 수여하마!]

    ……?

    지금 내가 뭘 잘못 들었나?

    2함대라니? 이보시오 국왕양반. 그게 무슨 소리오?

    원래대로라면 이곳에 최초로 방문한 내가 1함대의 지휘권을 손에 넣어야 한다.

    한데 이 무슨……?

    그 순간.

    “……!”

    내 머릿속에 불길한 생각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머릿속에 지금껏 수도 없이 들었던 알림음이 떠오른다.

    -띠링!

    <‘해저도시 아틀란둠’에 입장하셨습니다>

    해저도시 아틀란둠에 처음 들어왔을 때 들었던 알림음.

    …한데, 이게 다였던가?

    원래라면 한 가지 알림음이 더 따라붙어야 한다.

    <최초 방문자의 이름이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됩니다>

    우리가 해저도시에 입장했을 때 이 알림음이 떴었던가?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제는 무덤덤해졌던 알림음이다.

    무심코 지나쳤기에 당연히 기억에도 남지 않는다.

    내가 드레이크를 쳐다보자, 그 역시도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든다.

    바로 그때.

    해저왕 플라튠이 껄껄 웃었다.

    [요즘은 용맹한 해병들이 많아져서 좋군. 1함대라면 이미 먼저 온 이를 함장으로 임명했지.]

    그는 말을 마친 뒤 삼지창을 들어 높은 곳에 위치한 1함대의 뱃머리를 가리켰다.

    그러자.

    “……?”

    내 두 눈이 절로 휘둥그레진다.

    1함대의 뱃머리, 톱상어의 톱처럼 커다란 쇠돌기가 튀어나와 있는 곳.

    그 끝에 한 사람이 걸터앉은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

    가녀린 몸.

    그리고 그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도끼.

    증오로 시뻘겋게 물든 눈.

    이마에 돋아난 파란 핏줄.

    유다희.

    어째서인지 그녀가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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