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난파선의 럼주 (1)
-띠링!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당신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
.
터키의 음악가 구라이 부랄(Güray Vural)이 작곡한 8분 17초짜리 BGM이 흘러나온다.
하지만 나는 술을 마시지 않은 상태였기에, 접속은 짧게, 3초 만에 이루어졌다.
위잉-
나는 설정에서 로그인 시 터져나오는 빛무리를 없앤 채 접속했다.
게임에 들어오자, 차갑고 비릿한 냄새가 훅 끼쳐 온다.
심해(心海).
오로지 어둠과 수압만이 가득한 해저 1만 미터의 세계.
나는 이곳에서 눈을 떴다.
-<심해의 정수> D
심해의 기운이 담긴 구슬이다.
나는 씨어데블을 잡고 얻은 이 ‘심해 엘리베이터’로 3일간 해저로의 항해를 시작했었다.
그리고 오늘은 딱 3일이 되는 날.
“도착한 모양이네.”
나는 발을 움직여 발바닥으로 느껴지는 ‘바닥’의 감촉을 느꼈다.
손을 뻗어 점액 구슬의 보호막이 잘 있는지 확인해 보려는 순간.
“…들어왔나?”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드레이크!
그는 나보다 먼저 접속해 있었다.
“뭐야, 언제 접속했어? 나는 시간 딱 맞춰서 들어왔는데.”
내가 묻자, 드레이크는 놀랄 만한 대답을 했다.
“나는 계속 접속해 있었다.”
……?
이게 무슨 소리야?
나는 믿기지가 않아서 다시 물어봤다.
“3일 내내 접속해 있었다고?”
“그래. 식사 시간과 배설 시간을 제외하면 쭉.”
“잠은?”
“접속한 채로 잤다.”
드레이크의 대답에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어두운 심해에… 아무것도 안 하고 3일을 있었다고? 그럼 미쳐 버릴 텐데?”
“의외로 버틸 만하더군.”
드레이크는 손에 든 약봉지를 흔들어 보이며 웃었다.
그것은 전에 북대륙의 설산 속 얼어붙은 마을을 통과할 때 폐허에서 얻었던 ‘잠수병 치료제’였다.
“뭐, 그 아이템을 쓰면 육지의 공기가 공급되니 답답함이 조금 가시긴 하지만… 그래도 3일 내내 어둠 속에만 있으면 보통 미치지 않아?”
“미쳐야 미칠 수 있지. 게임 속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그 정도 인내심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드레이크는 태연하게 대답한다.
나는 이마를 짚었다.
‘…진짜 고인물들은 떡잎부터가 다르구나.’
과거 PK랭킹 1위였던 자의 진짜 모습을 엿본 것 같아서 조금 오싹했다.
한편.
드레이크는 나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심해에 도착했는데 우리는 계속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건가? 밖으로 나갈 수는 없는지?”
“이대로 나갔다가는 수압에 눌려 죽어 버릴걸? 애초에 물속이라서 호흡도 불가능해.”
“쓸데없이 고증이 잘되어 있군.”
드레이크는 투덜거렸다.
기껏 고생해가며 심해까지 내려왔는데 이 구슬 보호막 안에 갇혀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니!
하지만.
당연하게도 방법은 있다.
“어디보자, 좌표가…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지?”
나는 투명한 점액 벽을 손으로 슬슬 밀었다.
구슬 보호막은 천천히 굴러서 앞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뿌그르륵!
저 앞, 시커먼 물 너머에서 물거품이 잔뜩 일어난다.
스윽-
투명한 막 앞을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너무 커서 무엇인지는 잘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푸르스름한 빛을 발광하며, 천천히 우리가 있는 보호막 앞을 헤엄쳐 갔다.
드레이크가 소름끼친다는 듯 물었다.
“…뭐였지? 뱀장어?”
“뭐든 간에, 심해의 주민들은 자극하지 않는 게 좋아.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다들 랭크가 높은 녀석들이니까.”
나는 주변의 몬스터들을 자극하지 않게끔 아주 천천히 이동했다.
정면.
오직 정면을 향해서.
* * *
시간이 꽤 많이 흘렀다.
내가 이동한 길은 뾰족한 지형물이 없었기에, 구슬 보호막은 순탄하게 앞으로 잘 굴러간다.
이윽고.
우리는 해저의 근저에 위치한 거대한 무언가를 발견하고야 말았다.
“오오!”
드레이크는 눈앞에 있는 거대한 조형물을 바라보며 탄성을 질렀다.
그것은 하나의 ‘돔’과도 같았다.
반투명한 해초가 잎사귀를 중첩하여 만든 커다란 벽이 커다란 반구형 건축물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뿌연 해초벽 안에서는 어슴푸레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우리는 점액 보호막을 굴려 해초돔에 접근했다.
그러자.
스르륵-
우리가 있던 막은 해초벽에 닿아 스르르 사라졌다.
동시에.
꿀렁-
해초벽의 일부가 열리며, 우리는 그 안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가게 되었다.
이윽고.
귓가에 알림음들이 들려온다.
-띠링!
<‘해저도시 아틀란둠’에 입장하셨습니다>
처음으로 맵의 이름이 표시된다.
“해저도시라고?”
드레이크는 기대에 부푼 표정으로 해초돔 내부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안의 모습은 상상하던 도시의 풍경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때는 화려하고 웅장한 건축물들이었을 존재들.
하지만 그것들은 심해에 버려진 지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난 듯하다.
커다란 왕궁의 벽에는 온통 해조류와 따개비들이 들러붙어 있었다.
탑과 콜로세움은 온통 낡고 부식되어 형체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마저 산호와 물이끼에 온통 뒤덮여 있어 그냥 바위인지, 유적인지 식별도 쉽지 않았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도 처치는 똑같았다.
버려진 지 오래 되어 보이는 거리는 말라붙은 소금과 물때, 무언가의 껍데기들로 가득했다.
온통 녹조류와 패류, 산호초에 뒤덮인 이 버려진 도시.
그래도 이 문명이 한때 왕성하게 변영했던 흔적은 도시 곳곳에 남아 있다.
거대한 왕성과 웅장한 건물들, 한때는 화려했을 시가지와 아직 높게 솟구친 탑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고토(古土)의 영광으로 변해 버린 지 오래다.
지금은 그저 으스스한 빛을 내뿜고 있는 물이끼들만이 이 망해 버린 문명을 비추고 있을 뿐이다.
“망해 버린 문명이로군.”
드레이크는 해저도시 곳곳을 두리번거리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망하지 않았어.”
내 대답이 의외였던지, 드레이크는 눈을 동그랗게 뜬다.
나는 말을 이었다.
“심해의 주민들은 분명 이곳에 살고 있다.”
“……? 내 눈에는 황폐한 유적만 보이는데?”
“그야 그렇겠지. 지금은.”
내 눈에도 똑같은 풍경이 보인다.
아주 오랜 시간 전에 멸망한 도시.
기껏해야 유적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이 유령도시의 주민들을 다시 불러올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
삐걱-
거리 외곽에 있는 한 건물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건물 내부 역시 상당히 지저분했다.
바닥엔 진흙이 잔뜩 깔려 있었고 벽과 천장에는 산호와 따개비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으스스한 형광빛을 내는 물이끼들이 썩어 문드러진 가재도구에 붙어 내부를 어스름하게 비춘다.
나는 그 와중에 방구석에 있는 궤짝 하나를 찾아냈다.
우직-
궤짝의 자물쇠는 잔뜩 녹슬어 있었기에 손만 가져다 대도 알아서 으스러진다.
안에는 흰 티셔츠 한 벌이 들어있었다.
-<산소코팅 셔츠> / D
해저의 주민들이 임시로 입는 구명복. 내구도가 짧아 오래는 쓸 수 없다.
“이 옷을 입으면 임시나마 심해의 환경에서도 돌아다닐 수 있어.”
호흡이나 움직임도 해결해 주는 만능 아이템, 하지만 24시간밖에는 유지되지 않는다.
이내, 드레이크 역시 다른 건물의 궤짝 속에서 이 셔츠를 찾아냈다.
“건물마다 한 벌씩은 있는 모양이군.”
나와 드레이크는 셔츠를 입었다.
이제는 씨어데블의 점액이 없어도 심해 밖을 활보할 수 있다. 비록 24시간 한정이기는 하지만.
* * *
우리는 다시 해초돔 밖으로 나갔다.
씨어데블을 죽이고 빼앗은 ‘심해’ 특성이 있었기에 물 밖에서의 운신은 꽤 자유로운 편이었다.
나는 어둠만이 가득한 심해의 바닥을 천천히 걸었다.
타박- 타박- 타박-
부글부글…
내 발자국 소리와 숨 끓는 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어디보자, 분명 남북쪽으로 1km정도였지?’
나는 15년 전의 기억을 더듬으며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옛날과 달리, 무거운 갑옷과 무기가 없어 몸을 움직이기는 훨씬 편했다.
“이래서 사람들이 한번 알몸으로 다녀버릇하면 갑옷을 못 입어요.”
나는 해류에 이끌리듯 스르르 이동한다.
씨어데블에게 빼앗은 ‘심해’ 특성은 심해의 수압을 훨씬 줄여 준다.
드레이크 역시도 잠자코 나를 따라왔다.
다만 그는 한 치의 방심도 하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언제 몬스터가 튀어나올지 모르지.”
심해에는 상식을 벗어나는 괴물들이 우글거릴 것이다.
드레이크는 긴장을 풀지 않은 채 내 등을 따라오고 있었다.
‘좋은 자세네.’
과연 내 경호원답다.
새삼스러운 말이지만, 그는 과거 고르곤과의 싸움에서 내게 빚진 목숨이 있다.
고로 내 목숨을 두 번까지는 구해주기로 약속한 상태.
한편.
드레이크는 섣불리 그런 약속을 한 것에 대해서 약간은 후회하는 눈치였다.
“애초에, 네가 게임 속에서 죽을 일 자체가 없을 것 같은데.”
“응. 없어. 절대로.”
“그럼 나는 평생 너를 따라다녀야 하는 것 아니냐?”
“어머? 방금 그거 프로포즈? 무드 없긴… 원한다면 언제든 떠나도 좋아.”
“그럴 수는 없지. 그것은 나의 신념이자 가훈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일이니까. 뭐, 그리고 너를 따라다니는 게 싫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매일매일이 모험이라서 늘 새로워.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뭐야, 진짜 프로포즈처럼 들려서 기분 나쁘네…….”
나는 드레이크와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았다.
다소 의미 없는 분량 때우기라고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사실 심해의 환경을 걸을 때는 이런 의미 없는 잡담도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자신의 숨결이 만들어 내는 기포 방울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묵직한 수압과 지독시리도 어두운 해저를 걷는 것은 상당한 정신력을 필요로 한다.
그 때문에 15년 뒤에도 해저의 사냥터를 찾는 사람들의 수는 굉장히 적다.
그야말로 극한지대!
몸도 마음도 극한까지 갈고닦은 게이머들이 아니면 진입할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지형.
그것이 바로 ‘대심해(大心海)’인 것이다.
‘그러니 이런 대화라도 해서 불안감을 해소해야지.’
나는 드레이크와 시시콜콜한 대화를 하며 계속해서 나아갔다.
그러는 동안, 나는 드레이크에 대한 꽤 많은 사적인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다.
가령, 그가 한때 군의 특수부대 출신이었고, 꽤나 많은 사선을 넘나들었다는 것.
그리고 은퇴 직전에 입은 약간의(?) 사고 때문에 지금 몸이 불편하다는 것 등이다.
그 말을 들으니 그가 왜 지난 3일 동안 씨어데블의 보호막 속에 접속해 있었는지 약간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게 있어서 캄캄한 것은 똑같거든. 현실의 병실 속이나 게임의 심해 속이나.”
드레이크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동정이 가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 역시도 동정을 바라고 말한 것은 아닐 것이다.
드레이크는 지금 이 상태로도 천상계 급의 게이머이다.
훌륭히, 넘칠 정도로 제 몫을 다하고 있는 나의 파티원이기도 하다.
어디에도 그를 불쌍하다거나 가엽게 여길 요인은 없었다.
…….
바로 그때.
우리의 귓가에 요란한 알림음이 들려왔다.
-띠링!
<히든 던전 ‘독주(毒酒)의 무덤’에 입장 하셨습니다>
<최초 방문자의 이름이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됩니다>
우리도 모르는 새, 우리는 던전에 입장한 모양이다.
<독주(毒酒)의 무덤> -등급: A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이 던전의 외형을 알고 있었다.
움푹 파인 분지 중앙에 떡하니 가라앉아 있는 거대한 떡갈나무 오크통.
그 거대한 통의 옆구리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다.
우리는 지금 그곳까지 들어온 것이다.
조금 더 걸어가자, 이내 떡갈나무 오크통 속의 광경이 어렴풋하게 보인다.
“오오!”
드레이크는 탄성을 질렀다.
오크통 속에는 수없이 많은 궤짝들이 있었다.
온통 산호와 따개비로 뒤범벅된 궤짝.
그 썩어가는 나무떼기들 속에는 마찬가지로 물이끼에 뒤덮인 유리병들이 보인다.
물이끼가 내뿜는 어슴푸레한 빛 아래, 갈색의 유리병들은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다.
병의 라벨에는 다음과 같은 글씨가 보였다.
-<레흐락의 럼(Rum)> / D
대해적 레흐락이 목숨 다음으로 아꼈던 명주.
알코올 도수 105%의 위엄을 자랑하는 독주 중의 독주(毒酒)로 너무 많이 마셨다간 실명한다.
실로 어마어마하게 독한 술이다.
“이것들을 챙겨야 해.”
나는 럼주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렵지 않은 일이지.”
드레이크는 선뜻 움직였다.
하지만.
“아니, 꽤 어려울걸?”
나는 그런 드레이크를 보며 픽 웃었다.
“……?
내 말을 들은 드레이크가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돌렸다.
바로 그 순간!
쨍그랑!
드레이크가 집어 들던 럼주 병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박살났다.
“…뭐야!?”
드레이크는 가슴팍을 스쳐가는 날카롭고 단단한 것의 존재를 느꼈다.
이내.
물이끼가 뿌리는 으스스한 빛 아래 무언가가 드러났다.
다각- 다가각- 끼긱-
썩은 나무궤짝 위를 긁는 단단하고 뾰족한 것.
[…뿌륵! …뿌그륵!]
물속에 뿌옇게 번지는 갈색의 럼주.
그리고 그 너머로 보이는 날카로운 뿔과 단단한 갑옷.
보는 것만으로도 위축되는 육중한 집게.
그것은 한 마리의 ‘게’였다.
“…역시 있었나.”
나는 그것을 바라보며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상대는 술을 지키는 파수꾼.
아주 귀찮은 녀석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