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134화 (134/1,000)
  • 134화 고인물 퀴즈대회 (5)

    “축하드립니다! 이어진 씨는 1등 상금 1억 5천만 원을 거머쥘 자격이 있으십니다! 어서 도르래를 올려 1위의 자리로 가시죠!”

    MC는 나를 향해 외쳤다.

    동시에, 퀴즈쇼의 우승자가 정해졌을 때 나오는 축하 빵빠레가 울려 퍼진다.

    아니, 울려 퍼지려 했다.

    나는 재빨리 손바닥을 들어 빵빠레를 막았다.

    “아뇨. 저는 올라가지 않겠습니다.”

    내 폭탄선언에 촬영장에 있는 모든 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본다.

    이윽고.

    나는 시선을 돌려 옆을 바라보았다.

    “…….”

    아까까지만 해도 나에게 욕을 퍼붓던 유다희가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

    “그러게 말 들으라고 했잖아.”

    2등 상금이라도 받으라고 했을 때 말을 들었다면 이런 일도 없었겠지.

    나는 유유히 말했다.

    “제가 올라가지 않는 대신, 여기 이쪽 분의 발판을 낮춰 주세요.”

    그러자.

    내 발판은 올라가다 말고 자리에 우뚝 멎었다.

    동시에.

    유다희의 발판이 아래로 한 단계, 그러니까 3등 상금이 있는 곳으로 떨어졌다.

    ‘이쪽 신사 분이 낮춰 드리는 겁니다.’

    나는 레스토랑에서 남의 테이블 식사비를 내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눈을 찡긋했다.

    한편.

    유다희는 도르래를 꽉 잡고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

    졸지에 상금 1억이 5천으로 줄었다. 5천만 원이 순식간에 증발한 것이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말했다.

    “거, 지금이라도 3등 상금 고르지?”

    아까 2등 상금 때와 같은 대사다.

    하지만, 유다희는 당연하게도 상금을 잡지 않았다.

    그저 붉게 변한 눈으로 나를 죽일 듯 노려볼 뿐이다.

    “두고 봐, 꼭 복수할 거야!”

    유다희는 이마에 핏줄을 세운 채로 다음 문제를 기다린다.

    이내, MC는 다음 퀴즈를 냈다.

    Q. ‘악몽숲 (5)’에 서식하는 몬스터 ‘붉은피갑 털지네 크륵아약’의 다리 개수는 총 몇 개일까요?

    또다시 난이도 높은 문제가 나왔다.

    유다희는 이를 뿌득 갈았다.

    ‘애초에 이딴 걸 어떻게 알아!’

    문제는 내는 놈도 맞히는 놈도 다 죽이고 싶은 심경이다.

    하지만.

    -삐익!

    나는 이번에도 거침없이 벨을 누른다.

    “정답! 42개! ‘크륵아약(kırkayak)’이라는 이름 자체가 터키어로 ‘40개의 다리’라는 뜻이라서 언뜻 보기엔 40인 것 같지만, 사실 놈의 긴 더듬이 한 쌍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관절을 가지고 있는 다리이기 때문에 총 42개!”

    결국 나는 이번 문제도 맞혀 버렸다.

    하지만.

    나는 이번에도 역시나 1등 상금 수령을 거부한다.

    “대신 저 사람의 발판을 한 단계 낮추겠습니다.”

    나는 싱글싱글 웃는 얼굴로 유다희를 가리켰다.

    이렇게 하여, 유다희는 3등 상금도 손에 넣을 수 없는 위치로 내려가게 되었다.

    “…너…너…으으으으윽!”

    유다희는 뒷목을 잡고 나를 노려보았지만, 나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옛날 생각나는군.’

    나는 유다희에게 15년 전에 당했던 퀴즈쇼에서의 빚을 갚아 주고 있는 것뿐이다.

    그 당시, 유다희는 바로 옆자리였던 나에게 일부러 오답을 알려 주어 상금 직전에서 떨어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자기는 나를 밟고 2등 상금까지 올라갔었지.’

    나중에 착각했다면서 사과하기는 했지만, 그때부터 그녀는 나를 착실하게 이용해 먹고 있었다.

    ‘뭐, 그래도 그때만 해도 귀여운 축이었지.’

    퀴즈쇼에서 컨닝을 하거나 오답을 알려 주는 것쯤이야 앙큼한 장난이다.

    나중에는 아이템을 빌려가서 안 갚거나 사채를 끌어다 쓰게 만들기도 하지 않았던가?

    나는 유다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나는 너와 달라.”

    “……?”

    “나는 그래도 기회를 줬으니까.”

    그렇다.

    나는 항상 유다희에게 기회를 줘 왔다.

    악의 고성에서는 조디악의 위험성을 알려줬고 북대륙에서는 더 이상 추격을 하지 말 것을 권했다.

    방금의 퀴즈쇼에서도 2등 상금을 먼저 양보했고 3등 상금을 고르라는 조언도 해 줬다.

    ‘근데 말을 해도 듣지를 않으니…….’

    나는 부들거리는 유다희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여전히 거침없이 퀴즈쇼의 문제를 풀어나간다.

    Q. ‘데우스 엑스 마키나’ 이하 ‘데엑마’에서 가장 방어력이 낮은 몬스터는 누구일까요?

    이번에는 꽤 쉬워 보이는 문제가 나왔다.

    곳곳에서 수많은 참가자들이 벨을 누른다.

    “슬라임!”

    “토끼!”

    “개미!”

    “다람쥐!”

    “살육 벌!”

    다양한 몬스터들의 이름이 쏟아진다.

    하지만, 그것들 중 정답은 없었다.

    기이이잉-

    오답을 말한 이들의 발판이 전부 한 단계씩 낮아진다.

    이윽고.

    나는 벨을 누른 뒤 정답을 말했다.

    “정답. 무통증 협곡에 사는 아르마딜로! 방어력이 우수한 중급 몬스터로 알려져 있지만, 가끔 0.001%의 확률로 껍질이 없는 채 태어나는 아르마딜로가 있지. 이 아르마딜로는 방어력이 10인 슬라임보다 내구가 약하다. 놈의 방어력은 1로 모든 몬스터 중 가장 취약한 방어력을 가지고 있는데 플레이어들이 보지 못하는 이유는 필드에서 부는 바람의 공격력이 2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며, 껍질이 없는 아르마딜로를 보기 위해서는 잊혀진 유적지, 사막마을 케투스에 있는 NPC 토굴러 아저씨에게 ‘모래요정 바람돌이의 축복’ 아이템을 받아 일시적으로 무풍지대로 만들면 된다. 그럼 바람으로 인한 지형 데미지가 2에서 0으로 변하고 껍질 없는 아르마딜로도 굴 밖으로 나오게 되지.”

    이번에도 역시 정답이다.

    나는 또다시 유다희의 발판을 한 단계 내렸다.

    그리고 다음 문제.

    Q. ‘혼바이킹 호수 (17)’ 구역에서 낚을 수 있는 ‘거대 스네이크헤드’가 산란기 때 낳는 알의 개수는?

    “정답. 3만 하고도 21 마리. 이건 심심할 때마다 친구들끼리 직접 세 봐서 정확하다.”

    정확히는 고인물들이 꺼무위키 항목을 수정하며 노는 것을 봐서 아는 것이다.

    그리고 이쯤 되니, 이젠 아예 MC도 나만 쳐다보고 있다.

    마치 ‘이번에도 누를 거지?’ 하는 표정으로 말이다.

    한편.

    나는 문제를 클리어할 때마다 유다희의 발판을 하나씩 내렸다.

    그 누구보다 높은 곳까지 올라갔던 그녀는 그 누구보다 낮은 위치에 있게 되었다.

    “으으으으으…….”

    유다희는 바로 발바닥 아래에서 넘실거리는 얼음물을 보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전생과 현생을 보는 듯, 아이러니한 추락이다.

    나는 그런 유다희를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젠 그만 괴롭혀야겠다.’

    아무리 그래도 유다희를 얼음물 속에 처박고 싶은 생각까진 없다.

    그냥 상금을 못 타게 방해했으면 그걸로 족했다.

    이제 슬슬 다음 문제를 맞히고 1등 상금을 손에 넣을 차례.

    이윽고.

    최종 문제가 전광판에 모습을 드러냈다.

    Q. ‘뎀’의 세계관 속에서 가장 높은 음을 낼 수 있는 목관 악기는?

    또다시 괴랄한 난이도의 문제가 나왔다.

    내가 손을 들고 벨을 누르려는 순간.

    -삐익!

    다른 곳에서 벨소리가 먼저 터져 나온다.

    유다희!

    놀랍게도, 이 궁지까지 몰린 상황에서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그녀의 투지와 집념에 혀를 내둘렀다.

    이윽고, 그녀는 정답을 외친다.

    “정답! 악의 고성 초입부, 폐허가 된 성당에 있는 호른!”

    유다희는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땡!

    오답을 알리는 종소리만이 들려왔을 뿐이다.

    “…어?”

    유다희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있을 때.

    -삐익!

    나는 벨을 누르고 정답을 가로챘다.

    “정답. 악의 고성 초입부. 폐허가 된 성당에 있는 호른! …옆에 숨겨져 있는 사제용 오보에! 좀비가 되어 버린 성가대원 카밀라가 베개와 함께 지니고 다니는 히든 피스로 습득 후 150시간 이상 연습하면 숙련도가 MAX까지 오르게 되고 이때 불면 최고 음역대를 낼 수 있다. 단 인간의 가청음역대는 아니기에 유저들은 그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것이 문제.”

    이건 정말로 고일 때까지 고인 고인물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문제.

    물론 나는 이번에도 깔끔하게 정답을 맞혔다.

    기이이잉-

    내 발판이 1등 상금이 있는 곳으로 올라감과 동시에.

    풍덩!

    유다희의 발판은 차가운 얼음물 아래로 빠진다.

    자업자득(自業自得).

    나는 얼음물에 빠진 채 멍하니 서 있는 유다희를 보며 한마디 했다.

    “마트료시카 때 생각나지?”

    현실에서도, 게임에서도 얼음물 참 좋아한다 싶다.

    그러자.

    울컥!

    유다희는 귀신같은 얼굴로 나를 올려다본다.

    “크…크큭…큭큭큭큭큭…….”

    그녀는 손으로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죽-여-버릴거야아아아아!”

    이내 옆 사람의 발판을 딛고 올라가 도르래 밧줄을 잡고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히익!”

    나는 공포에 질려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아니, 저번에 유튜뷰 시상식에서 만났을 때는 뭐 현실과 게임을 구분 못 하진 않는다고 안심하라 그러더니…….

    이윽고.

    몰려든 스텝들에 의해 난동은 종료되었지만, 세트장은 한동안 유다희의 난동 때문에 혼란을 겪어야만 했다.

    *       *       *

    “에취!”

    나는 파들파들 떨리는 몸으로 담요를 뒤집어썼다.

    옷은 펑퍼짐한 프리 사이즈 셔츠에 수면바지를 입었다.

    깔끔한 투룸 빌라.

    나는 지금 새로 이사한 윤솔의 방 안에 있었다.

    참고로 이 옷은 윤솔의 부친께서 생전에 입으시던 것.

    “이제 몸은 좀 괜찮아?”

    그녀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퀴즈쇼 우승 직후, 나는 유다희를 피하려다가 발판에서 미끄러져 얼음물 속에 빠져 버렸다.

    유다희는 그런 나를 보고서는 조금 진정해 돌아갔고, 나는 그대로 윤솔에게 손을 잡혀 그녀의 집으로 옮겨진 것이다.

    담요를 덮고 드라이기로 몸을 말리자, 이제야 조금 살 것 같다.

    한편.

    윤솔은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나 아까 진짜 놀랐잖아. 아니, 그 여자는 대체 누구기에 너를 그렇게 잡아먹으려 들어? 전여친?”

    “그럴 리가. 그냥 게임에서 만난 악연이야.”

    나는 유다희와의 관계를 단호하게 일축했다.

    애초에 더 설명하고 말고 할 것도 없지 않은가?

    그러자, 윤솔은 뭔가 더 묻고 싶은 말이 있다는 듯 머뭇거린다.

    “…그, 객석에서 보다 보니까 너 응원하시는 분 있던데.”

    “뭐? 그래? 누구지?”

    “그 LGB였나? PD분이라고…….”

    “아아! 홍영화 씨.”

    그러고 보니 문제에 집중하는 내내 객석 쪽이 시끄러웠던 것 같기는 하다.

    확실히 그녀의 목청이라면 그렇겠지.

    나는 홍영화에게 딱딱 사무적인 존칭을 붙였다.

    “그분 좋은 분이지. 내 사업에 꽤나 도움을 많이 주신 분이라.”

    “…되게 친한 것 같던데.”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음. 우호적이라고 봐야지?”

    “…사적으로 친한 건 아니고?”

    “전혀.”

    나는 담요를 돌려주며 말했다.

    그러자, 내 말을 들은 윤솔은 어딘가 안심한 눈치다.

    이내.

    나는 윤솔의 어머니에게 인사를 드리고 현관으로 나왔다.

    “아, 어진아 잠깐만. 옷 빤 거 건조기 다 돌렸을 거야. 기다려~”

    윤솔은 베란다에 있는 내 옷을 가지러 간다.

    그때.

    윤솔의 어머니는 내게 살짝 말했다.

    “어진아.”

    “네?”

    “우리 솔이 좀 잘 부탁한다.”

    어머님은 밑반찬이 잔뜩 든 쇼핑백을 건네주며 내 손을 잡으셨다.

    “우리 솔이가… 보기에는 억척스럽고 그래도 사실은 엄청나게 여린 애야.”

    “…예?”

    “그래도 너 만나고 부터는 좀 꾸미고 다니고, 웃는 것도 많이 보이고 해서 너무 마음이 놓인다. 앞으로도 모쪼록 잘 좀 부탁해.”

    어머님은 갑자기 눈시울을 붉히신다.

    ……?

    아무래도 뭔가를 좀 오해하고 계신 것 같은데.

    내가 무어라 말을 하려는 순간.

    “으악! 엄맛!”

    윤솔이 화다닥 달려와 나와 어머니 사이를 가로막았다.

    “엄마 얘한테 또 뭐, 뭐, 뭐, 막 이상한 말 했지!?”

    “얘는, 엄마가 이상한 소리만 하는 사람인 줄 아니?”

    어머니는 언제 눈시울을 붉혔냐는 듯 태연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신다.

    “그럼 어진아, 잘 가고 또 놀러와~”

    어머님은 상당한 포커 페이스.

    윤솔은 그런 어머님과 나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한다.

    “…진짜 아무 말 안 했어?”

    “안 했다니까. 얼른 가~ 어진이 바쁠 텐데.”

    이내, 윤솔은 계속 고개를 갸웃하며 현관으로 나섰다.

    내 차가 있는 곳까지 걸어가며, 윤솔은 평소와 달리 말이 많아졌다.

    “…아니, 우리 엄마가 요즘 감수성이 좀 풍부해지셔서 그런가! 실없는 소리 많이 해! 전혀 신경 쓸 필요 없어! 다 이상한 소리야!”

    “으응 뭐. 별 말씀 안 하셨는데?”

    “…무슨 얘기 했는데?”

    “그냥 밑반찬 잘 먹으라고.”

    나는 쇼핑백을 들어 보이며 웃었다.

    “…….”

    윤솔은 그제야 약간 안심한 기색이다.

    이내.

    나는 윤솔의 배웅을 받으며 차에 탔다.

    부웅-

    묵직한 엔진음을 들으며, 나는 운전석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길고 긴 퀴즈쇼가 이제야 막을 내렸다.

    “이제 집에 가서 한숨 푹 자고 나면 게임 접속할 시간이겠네.”

    나는 저 멀리 시뻘겋게 물든 노을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자, 이제 또 다이브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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