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133화 (133/1,000)
  • 133화 고인물 퀴즈대회 (4)

    “답은 ‘코딱쥐’입니다.”

    나는 정답을 맞히며 생각했다.

    15년 전을 회상하자 그날 퀴즈대회에서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유다희는 결국 2등에서 떨어졌었다.

    ‘욕심 때문에 자꾸 오답을 남발하다가 순위가 계속 떨어져 결국 3등 상금도 건지지 못했었지.’

    애초에.

    당시 주최측에서는 일부러 문제 난이도를 미친 듯이 올려서 아무도 1등 상금을 가져가지 못하게끔 꼼수를 썼었다.

    게임 출시 1년밖에 되지 않은 시점에서 유저들이 알 수 없는 내용을 문제로 냈던 것이다.

    결국 그 누구도 우승은 하지 못했던 씁쓸한 기억이 남아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나에게는 닳고 닳은 지난 15년간의 숙련도가 있지 않은가!

    지금 시점의 유저들은 풀 수 없는 문제겠지만, 나에게는 해당 사항 없는 일이다.

    ‘이제부터가 본게임이지.’

    나는 무서운 기세로 문제들을 풀어 나갔다.

    Q. 남대륙 ‘잊혀진 유적지’에 있는 석상 중 가장 큰 석상은 어디에 있을까?

    “정답! 사막마을 ‘케투스’의 중앙 선인장 분수가 있는 곳! 그곳에 있는 커다란 낙타 조각상이 높이 11m로 제일 크다.”

    Q. 북대륙 잊혀진 마을 어딘가에는 일반 NPC인 빌 가족이 살고 있는데요. 이 중 빌의 딸의 이름과 현재 위치는?

    “정답! 딸의 이름은 ‘웬디’ 현재 있는 장소는 ‘얼어붙은 마을’의 입구 바로 앞.”

    Q. ‘테이머’ 메타 캐릭터가 ‘가축’ 대상으로 사용 가능한 특성인 ‘착유’ 이 착유 특성을 쓸 수는 있지만 젖을 얻을 수는 없는 몬스터는?

    “정답! ‘젖거미’ 젖거미의 젖은 강력한 유독성 물질인 동시에 먹이를 포획하는 끈끈이일 뿐, 엄밀히 따지면 젖은 아니지.”

    Q. 던전 ‘꼭두각시 회동’에 출몰하는 몬스터 ‘메두사’는 뱀과 용 중 어느 계열 몬스터일까?

    “정답! 둘 다.”

    Q. 이 호수는 게임의 세계관 상 가장 깊은 담수호수로 물밑 가시거리가 최고 40.5m...

    “정답! 북대륙의 ‘혼바이킹 호수’

    Q. 항상 입에 장미를 물고 다니는 여성체 몬스...

    “정답! 서대륙 ‘육중한 밀림’에 서식하는 하피 퀸.”

    Q. 3,021.1991m...

    “정답! 북대륙 ‘된서리 산맥 (1)’의 7부 능선 2번째 봉우리.”

    .

    .

    나는 이제 아예 문제를 듣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정답을 맞혀 나가고 있었다.

    MC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아니, 어떻게 문제를 듣지도 않고 정답을 맞히시죠?”

    “소수점까지는 모르겠지만. 3,021m라는 수치를 가진 에어리어(area)는 일단 거기 딱 하나뿐입니다.”

    나는 능글능글한 미소를 띤 채 MC와 방청객들을 구워삶는다.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 족보 다 외우고 있어요.’

    …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나?

    애초에 이 퀴즈대회의 모든 문제들은 내가 이미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알고 있는 것이다.

    직접 플레이해서 안 것 반.

    집단지성, 즉 꺼무위키 등 인터넷에서 보고 안 것 반.

    도합 100%.

    내가 모르는 문제 따위는 없다.

    ‘왜냐면 내가 모르는 것은 문제를 내는 GM들도 모르거든.’

    나는 팔짱을 낀 채 절대적인 자신감을 내보이고 있었다.

    어느덧, 나는 순식간에 발판을 높여 3등 상금을 손에 넣었다.

    MC는 물었다.

    “자! 이어진 씨,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여기서 3등 상금을 확정적으로 손에 넣고 내려가실 것인지, 아니면 더 높은 곳을 향해 도전하실 것인지! 선택해~ 주세…!”

    “고(GO) 하겠습니다.”

    나는 MC가 맥빠진 표정을 지을 정도로 간단하게 대답했다.

    빤히 아는 두 문제만 더 맞히면 상금이 3배로 뛰는데 당연한 것 아니겠나?

    부들부들……

    유다희가 부들거리는 것이 공기의 진동으로도 느껴질 정도였지만…….

    물론 그것은 내 알 바 아니다.

    *       *       *

    방청객들이 수군거리는 가운데.

    “…….”

    한 여자가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무대 위 세트장을 바라본다.

    윤솔. 바로 그녀였다.

    그녀가 응원하고 있는 대상은 뻔하다.

    이어진.

    혼자서 미친 듯이 무쌍을 찍고 있는 고인물, 아니 썩은물.

    전혀 응원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지만, 윤솔은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오빠 파이팅!”

    옆에 앉아 있던 한 여자가 남자친구로 보이는 참가자를 향해 외친다.

    이에 질세라.

    “얌마! 힘내라! 우승해서 술 쏴야지!”

    군복을 입은 사내들이 세트장을 향해 고래고래 고함을 친다.

    아마 대회에 참가한 친구를 응원하는 것이리라.

    “…….”

    윤솔은 약간 기가 죽은 채 움츠러들었다.

    ‘응원을 해야 하나?’

    그녀는 세트장을 바라보았다.

    1문제도 맞히지 못한 이들도 지인들에게 무수한 응원을 받고 있는 마당이다.

    아무도 어진을 응원하고 있지 않은 것을 확인하자, 윤솔의 표정은 이내 굳은 의지로 가득 찼다.

    ‘나라도 응원해 줘야 해!’

    윤솔은 슬쩍 주변의 눈치를 보았다.

    그리고는.

    “후읍!”

    배가 볼록 튀어나올 때까지 숨을 들이켰다.

    이내. 그녀는 사력을 다해 큰 소리를 냈다.

    “이어진 파이ㅌ…!”

    하지만, 이내 윤솔의 목소리는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고함이 묻혀 사라진다.

    “이어진 뽜이팅!!! 우승 가즈아아아앗!!!”

    기차화통을 삶아먹은 듯한 커다란 외침이 윤솔의 옆에서 빵 터져 나왔다.

    화들짝 놀란 윤솔이 고개를 돌리자, 흰 티에 청바지를 입은 미모의 여성 하나가 숨을 쒸익쒸익 몰아쉬고 있는 것이 보인다.

    가슴에는 PD임을 알리는 명찰이 달려 있었다.

    <홍영화>

    그녀는 관계자인 주제에 누구보다 열심히 어진을 응원하고 있다.

    “끼야호! 고인물 퀴즈대회 납셨다! 1억 5천 타면 저 김치냉장고 하나만 사 줘요! 워후!”

    타고난 긍정, 유쾌, 발랄 에너지를 아낌없이 뿜뿜 뿜어내고 있는 홍영화.

    윤솔은 다시 한 번 움츠러들었다.

    ‘누구지? 되게 예쁘네… 설마 여자친구인가?’

    윤솔은 옆에 있는 홍영화를 슬쩍슬쩍 바라보았다.

    그때.

    문득 옆을 돌아보던 홍영화와 윤솔의 시선이 한데 마주쳤다.

    “히익!?”

    윤솔이 잽싸게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아앗!?”

    홍영화는 갑자기 홱 달려가 윤솔의 손을 잡는다.

    “혹시 뷰티 방송 크리에이터 윤솔 님?”

    “아앗!? 저를 아세요?”

    “와아아아! 그럼요! 저 윤솔 님 완전 팬이에요! 매일 아침마다 화장법 잘 챙겨보고 있어요! 가슴골 특집 완전 대박!”

    홍영화는 깔깔 웃으며 윤솔의 어깨를 팡팡 쳤다.

    그녀의 손바닥을 통해 긍정 에너지가 팍팍 전해져 오는 것 같았기에 윤솔도 썩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이내, 윤솔은 내심 신경 쓰이던 것을 살짝 물어보았다.

    “저기, 혹시 어진이 친구 분이세요?”

    그러자, 홍영화는 잠시 움찔한다.

    약간 머뭇거리던 그녀는 이내 너털웃음과 함께 손사래를 쳤다.

    “아뇨 아뇨 아뇨. 그냥 완전 친한 누나동생 사이죠!”

    사적으로도 딱히 어진과 말을 놓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홍영화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버렸다.

    “평소에는 진짜루 친해요 저희!”

    “아아, 그런데 어진이 방송 출연하는 거 모르시고 계셨던 것 같은데…….”

    “어! 맞아요! 왜 나한테는 말 안 했지? 진짜 대박 섭섭하네 이거! 끝나고 따지려고요!”

    이내, 홍영화는 윤솔의 옆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때 서큐버스랑 온 몸에 젤을 바르고 알몸으로 끈적끈적하게 뒹구는데 진짜…! 괜히 청소년 관람불가 딱지를 받은 게 아니었다니까요!”

    “…….”

    윤솔은 애써 생긋 미소 짓고는 있었지만, 어쩐지 홍영화의 이야기가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정답!]

    저 멀리, 세트장 아래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정답만 맞혀 가고 있는 어진이 왠지 야속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       *       *

    한편.

    쾅!

    유다희는 주먹으로 자기가 딛고 있는 발판을 내리쳤다.

    기우뚱- 그르르륵-

    도르래가 크게 움직인다.

    가뜩이나 부실한 세트장이 더욱 더 불안정하게 변했다.

    “…! …! …!”

    유다희는 차마 주먹을 한 번 더 휘두르지는 못하고 그저 부들부들 떨 뿐이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빙긋 웃어 주었다.

    “안녕? 이웃사촌이네.”

    어느새 같은 눈높이까지 올라온 나.

    나와 유다희는 현재 2등 상금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위치다.

    이미 유다희가 2등 상금을 포기하고 1등 상금을 노린다고 선언했을 때부터, 2등 상금에 대한 권리는 나에게 있었다.

    하지만.

    나도 유다희를 따라 2등 상금에 대한 권리를 포기해 버렸다.

    이제 남은 것은 파이널 문제.

    이 문제를 누가 먼저 맞히느냐에 따라 1등 상금 1억 5천의 주인이 정해질 것이다.

    “어이.”

    나는 피식 웃으며 유다희를 향해 말했다.

    “거, 지금이라도 2등 상금 고르지?”

    그러자, 유다희는 화살 박힌 맹수처럼 으르렁거렸다.

    “살에 뚫린 구녕이라고 다 입이 아니야…….”

    헉. 뭐 저리 섬뜩한 대사를…….

    하지만 쫀 모습을 보일 순 없다.

    “후회할 텐데…….”

    나는 진심을 담아 유다희에게 조언했다.

    하지만.

    “…….”

    유다희는 대답 대신 중지 손가락 하나를 세워 보일 뿐이다.

    이윽고.

    MC는 다음 문제를 출제했다.

    사실상의 파이널 문제였다.

    Q. 로그인/로그아웃 할 때 들리는 공통 BGM의 총 재생 시간은?

    상당히 난감한 문제가 나왔다.

    모든 참가자들이 말도 안 된다는 듯 투덜거렸다.

    “에이, 이런 걸 어떻게 알아. 접속할 때 누가 이걸 끝까지 듣는다고.”

    “나는 들어보려고 해도 몇 초 뒤에 띠링! 소리 나면서 접속되던데.”

    “내 캡슐은 구형이라서 로딩이 좀 오래 걸리거든. 한 10초 정도까지는 들어본 것 같다.”

    수많은 불평이 나오는 가운데.

    “…….”

    천하의 유다희조차도 입술을 꾹 깨물고 말이 없다.

    게임에 접속하고 나올 때는 늘 후다닥 행동하기 바쁘니 한 번도 BGM에 신경 써 본 적이 없었다.

    ‘이건 제아무리 저 변태 X끼라고 해도 모르겠지.’

    유다희는 얌전히 벨을 내려놓았다.

    이런 문제는 조용히 패스하는 것이 상책이다.

    하지만.

    -삐익!

    나는 거침없이 벨을 눌렀다.

    MC와 유다희, 그 외 모든 이들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쳐다보는 가운데.

    “8분 17초. 작곡가는 터키의 음악가 ‘구라이 부랄(Güray Vural)’.”

    나는 이번 문제의 정답까지 맞혀 버렸다.

    “…….”

    세트장에는 잠시 침묵이 감돈다.

    방청객도, 참가자도. 전부 다 말문이 막혀 버린 모양.

    MC는 흘러내리는 안경을 고쳐 쓸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저… 이 문제는 어떻게 맞히셨는지 여쭤 봐도 될까요? 관계자를 떠나서 저도 한 사람의 게이머로서 너무 궁금합니다. 어떻게 아셨어요?”

    MC는 고민 끝에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까짓 거, 대답해 주는 게 뭐가 어렵겠는가?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물론. 보통은 BGM을 다 듣기 전에 로그인이나 로그아웃이 완료되죠. 때문에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이 음악을 끝까지 들을 수 없습니다.”

    “그, 그럼 대체 어떻게…….”

    “술을 먹고 접속하면 됩니다.”

    “…네?”

    MC가 약간 당황한다.

    나는 성실하게 답변을 계속했다.

    “혈중 알콜 농도에 따라서 게임 접속이 차단되기 때문에, 이에 준하는 기준치까지 아슬아슬하게 취한 뒤에 접속하면 숨을 쉴 때마다 혈중 알콜 농도가 계속 변화하여 동기화가 지연됩니다. 그러면 계속해서 소리가 끊겼다가 이어졌다가를 반복하게 되는데 이를 이용해서 BGM을 끝까지 들을 수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음악의 총 길이가 8분 17초인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음악 마지막에 나오는 시그니처 사운드 ‘제와피~’를 들어보면 개발 당시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프로듀서 ‘구라이 부랄(Güray Vural)’의 곡인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자.

    “…아. 네.”

    MC는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그는 정신을 차린다.

    그리고 내게 박수를 보냈다.

    “축하드립니다! 이어진 씨는 1등 상금 1억 5천만 원을 거머쥘 자격이 있으십니다! 어서 도르래를 올려 1위의 자리로 가시죠!”

    그는 세트장의 가장 높은 곳.

    1억 5천만 원의 상금이 매달려 있는 발할라로 나를 인도한다.

    …….

    하지만.

    올라가기 전, 나는 아직 이곳에서 할 일이 남았다.

    나는 MC를 향해 말했다.

    “아뇨. 저는 올라가지 않겠습니다.”

    내 폭탄선언에 촬영장에 있는 모든 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본다.

    이윽고.

    나는 시선을 돌려 옆을 바라보았다.

    “…….”

    헬쓱한 표정의 유다희가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

    나는 그런 유다희를 향해 피식 웃어 보였다.

    그리고 한마디 했다.

    “제가 올라가지 않는 대신, 여기 이쪽 분의 발판을 낮춰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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