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132화 (132/1,000)
  • 132화 고인물 퀴즈대회 (3)

    LGB 방송국의 공개홀.

    게임 전문 방송국인 만큼 다양한 게임 방송들이 촬영되는 곳이다.

    한때는 대규모 게임 대회를 개최한 적도 있었을 정도이니 규모는 상당히 컸다.

    시설만큼은 어지간한 공중파 방송국에 밀리지 않을 정도.

    “오랜만이네.”

    나는 피식 웃으며 세트장 안으로 들어섰다.

    한 10년쯤 전에 와 본 기억이 난다.

    그때랑 비교해서 그리 달라진 것이 없었다.

    “오늘 퀴즈 참가자님들!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방송 스텝의 인도를 따라 공개홀 내부로 들어가자 공기가 확 더워진다.

    꽤 많은 숫자의 조명들로 인해 달아오른 분위기.

    텅 빈 관객석들 사이로 촬영 스텝들이 분주하게 오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퀴즈 세트장은 명성에 비해 상당히 허접했다.

    바닥에는 고무풀장처럼 커다란 천막떼기가 있었고, 거기에 얼음덩어리와 수돗물이 콸콸 채워지고 있다.

    오답만 남발하다가는 저기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풀장 중앙에는 사람이 올라갈 수 있게끔 테이블들이 놓여 있었다.

    문제를 맞히면 이 테이블들은 점점 높아지게 된다.

    퀴즈 참가를 위해 온 이들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저 테이블 부실해 보이는데… 괜찮을까?”

    “세트장 자체는 무지 허접하다. 저기 봐 각목에 지금 톱질하고 있어.”

    “진짜 카메라에 잡히는 부분만 딱 삐까번쩍하네.”

    뭐 예능이나 드라마 촬영장도 다 비슷한 분위기이니 그러려니 하는 부분이다.

    이윽고.

    방송 작가들은 담요와 마스크를 나눠주었다.

    혹시나 오답을 남발해서 얼음물에 빠질 경우를 대비한 것이다.

    “…….”

    나는 바로 마스크를 뒤집어썼다. 얼굴을 가릴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좋아! 오늘의 우승자는 나다!”

    저기 세트장 구석에서 활기차게 외치는 한 여자 때문이다.

    유다희.

    당연한 말이지만, 그녀도 오늘 여기에 참가했다.

    옛날에 내가 퀴즈대회에 참가했던 것도 그녀가 가자고 해서 그랬던 것이니, 이번에도 유다희가 여기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일단 마스크를 썼다.

    퀴즈쇼 시작 전까지 유다희가 알아보지 못하게 말이다.

    ‘PD들에게는 적당히 감기 탓이라고 둘러대면 되니까.’

    그때.

    “여러분! 잠시 모여 주세요!”

    PD 하나가 우리를 불러 모은다.

    낯익은 목소리, 바로 홍영화였다!

    그녀는 특유의 쾌활한 목소리로 참가자들에게 프린트물을 나눠준다.

    “자, 다들 촬영 들어가시기 전에 상금수령 동의서 작성해 주세요-오! 이거 작성 안 하시면 우승해도 상금 못 받으니까. 귀찮아도 꼭 작성하셔야 해요!”

    그러자.

    성질 급한 사람들 몇몇은 바로 펜을 꺼내 동의서에 사인을 해 건넨다.

    하지만 홍영화는 생긋 웃을 뿐, 동의서를 걷지 않았다.

    “지금은 괜찮으니까 나중에 우승하신 뒤에 주시면 돼요.”

    그녀의 말을 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멋쩍은 표정으로 동의서를 감춘다.

    …….

    하지만.

    오직 한 사람만은 당당한 기색으로 동의서를 내민다.

    “저는 상금 탈 확률이 높아서요. 미리 제출할게요.”

    시작부터 남다른 각오를 보이는 인물.

    바로 유다희였다.

    *       *       *

    이내.

    촬영이 시작되었다.

    커다란 풀장에 얼음물이 가득 채워졌다.

    그리고 일반적인 예능 세트장처럼, 수많은 테이블이 놓이고 그 위에 참가자들이 올라섰다.

    1. 앞에 있는 대형 전광판에 문제가 나오면 참가자들은 손에 들고 있는 벨을 눌러 선착순으로 정답을 외친다.

    2. 정답을 맞히면 테이블에 묶인 도르래가 올라간다.

    3. 오답을 내면 테이블에 묶인 도르래가 내려간다.

    4. 가만히 있으면 테이블도 가만히 있는다.

    5. 정답을 맞혔을 경우 자신의 테이블을 올리지 않고 남을 지목해 테이블을 내리는 것도 가능하다.

    “TV 예능 벌칙게임에서 많이 보셨을 겁니다. 생각보다 발판이 좀 높으니까 주의하시고요. 고소공포증 있으시거나 감기 때문에 입수 못 하시는 분들은 미리 말씀해 주세요.”

    스텝은 계속해서 주의사항을 외쳤다.

    “세트가 그렇게 튼튼하지가 않으니까 올라가셔서 와이어에 몸을 기대거나 발을 구르거나 하시면 안 됩니다. 잘못하면 무너져요. 이 점 꼭 주의 부탁드립니다!”

    모든 당부가 끝났다.

    이내, 현역 개그맨이 MC를 맡아 퀴즈쇼를 진행해 나간다.

    “자! 첫 번째 문제입니다!”

    이내, 전광판에 문제가 떴다.

    Q.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만든 회사인 ‘뎀’의 사옥은 어느 역 몇 번 출구에 있을까?

    시작부터 허를 찌르는 문제가 나왔다.

    게임에 관련된 문제들이 폭넓게 나온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회사의 위치를 물어볼 줄이야!

    수많은 참가자들이 머리를 쥐어뜯는다.

    그때.

    -삐익!

    재빨리 벨을 누르는 이가 있었다.

    바로 유다희였다.

    “정답! 가산디지털단지 5번 출구! 글로번 IT캐슬 918호!”

    시작부터 기세가 좋은 그녀이다.

    너무 기운이 넘치는 바람에 TMI(Too Much Information)도 서슴치 않는다.

    과연, 유다희는 엄청난 반사 신경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일부는 문제를 다 듣기도 전에 벨을 누르기도 했다.

    Q. 초보자 마을에 있는 NPC 중 가장 키가 큰 사람은 누구일까?

    “정답! 초보자 마을 남쪽 고물상에 있는 ‘홈리스’ 할아버지! 언뜻 보면 구부정한 노인이지만 허리가 S자 형태로 굽어 있어 허리를 펴면 총 2.7M의 키가 됩니다!”

    Q. 던전 ‘꼭두각시 회동’에 출몰하는 몬스터 ‘연쇄살인 삐에로’가 등장하는 다른 맵은?

    “정답! 없다! ‘연쇄살인 삐에로’는 오로지 꼭두각시 회동에서만 서식하는 몬스터입니다!”

    Q. 필드 ‘무통증 협곡’에 서식하는 화염 골렘의 몸에 붙은 불을 끄는 방법은?

    “정답! ‘화염 골렘’은 피부 표면의 유분기 때문에 불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클렌징 달팽이의 점액으로 유분기를 씻어 주면 불은 알아서 꺼집니다!

    Q. 던전 ‘악의 고성’에 출몰하는 몬스터 ‘숨바꼭질 썩은애기’의 특성은 모두 몇 개?

    “정답! 어둠, 언데드, 독, 자폭으로 총 4개!

    Q. 언데드 특성을 가진 몬스터를 20배로 약하게 만드는 공략법은?

    “정답! 언데드 몬스터는 낮에 랭크가 1단계 다운되므로 10배 약해지고, 거기에 습기가 많은 날에는 부패가 가속화되므로 2배 약해집니다! 고로 습기가 많은 낮에 가면 된다!

    .

    .

    유다희는 파죽지세로 정답을 맞혀 나간다.

    이윽고, 그녀의 발판은 쭉쭉 상승했다.

    천장에는 세 개의 동앗줄이 매달려 있었다.

    제일 긴 동앗줄에는 3등 상금- 5천만 원.

    중간 길이의 동앗줄에는 2등 상금- 1억 원.

    제일 짧은 동앗줄에는 1등 상금- 1억 5천만 원이 걸려 있다.

    유다희는 이제 손을 뻗으면 3등 상금에 손이 닿을 정도의 높이까지 왔다.

    MC는 물었다.

    “유다희 양! 다희(Die) 하시겠습니까! 고(Go) 하시겠습니까!”

    여기서 유다희가 다이를 선택하면 그녀는 3등 상금을 챙긴 채 퀴즈대회에서 배제되게 된다.

    하지만.

    3등 상금을 무시하고 계속 퀴즈를 진행하면, 2등 상금까지는 1문제, 1등 상금까지는 2문제만이 남아 있다.

    “…….”

    잠시 고민하던 유다희는 이내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들었다.

    “못 먹어도 고(Go)라 했습니다! 다음 문제 주세요!”

    아주 혼자만 퀴즈쇼에 나온 듯한 기세다.

    유다희가 모든 참가자들 중 단연코 압도적으로 앞서 나가고 있는 가운데, MC가 다음 문제를 출제했다.

    “네, 이번 문제는 조금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게임 속 남대륙에 있는 NPC들의 나라 ‘그레이 시티’를 알고 계시나요?”

    MC의 질문에 참가자들 모두가 수근거린다.

    회색 도시 그레이 시티, 아직까지 그곳에 가 본 이는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MC는 계속해서 질문을 이어갔다.

    “이곳 ‘그레이 시티’는 전부 시장 명령으로 인해 기물 파손을 엄금하고 있습니다. 도시 안에 있는 조형물을 파괴했다가는 상당한 액수의 손해배상 청구를 당하게 되는데요! 놀랍게도 이 도시에 있는 조형물 중 파괴해도 손해배상 책임을 지지 않는 기물이 있다고 합니다! 과연 어떤 것일까요?”

    MC의 말에 참가자들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애초에 그레이 시티는 남대륙의 최심부에 있는 구역이다. 파이오니아 급 랭커가 아니고서야 여기에 가 본 자가 있을 리 만무했다.

    바로 그때.

    -삐익!

    벨소리가 울려 퍼진다.

    유다희.

    그녀는 가슴을 쭉 펴고 당당하게 정답을 외쳤다.

    “정답은 전 시장 ‘로드리고’의 흉상입니다! 현 시장 ‘시혼’은 전 시장 로드리고와 사이가 나쁘기 때문에 오로지 그의 흉상만큼은 파괴해도 죄를 묻지 않습니다!”

    놀랍게도, 유다희는 이 문제의 정답을 맞혔다.

    MC는 깜짝 놀라 묻는다.

    “아니 유다희 양! 대체 이 문제의 답을 어떻게 알고 계시는 건가요?”

    “제가 얼마 전에 ‘그레이 시티’에 갔었거든요! 개인방송에서 남대륙 최심층부까지 가 보는 미션이 있었는데, 그때 이 도시의 설정에 대해서 알게 됐어요! 뭐, 그 뒤로 필드 몬스터들에게 바로 죽어서 자세히 탐험하지는 못했지만요.”

    유다희는 으쓱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내.

    기이이이잉-

    그녀의 발판이 한 단계 상승했다.

    손만 뻗으면 2등 상금 1억 원이 그녀의 손으로 들어온다.

    하지만.

    “못 먹어도 고!”

    유다희는 이 기세로 1등 상금을 노릴 기세였다.

    한 문제.

    딱 한 문제만 더 맞히면 1억 5천이 그녀의 손에 들어간다.

    이윽고.

    MC는 사실상 1등을 가를 문제를 냈다.

    “자, 게임을 하다 보면 ‘인기도’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나쁜 일을 하면 카르마 수치가 쌓이고 좋은 일을 하면 인기도가 쌓이는데요. 이렇게 인기도 혹은 카르마 수치에 따라 NPC에게 히든 퀘스트를 받거나, 특수 아이템을 구입하거나, 할인 이벤트 등 여러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들 아시죠?”

    MC는 긴장한 표정의 참가자들을 쭉 둘러보았다.

    동시에, 그의 입에서 문제가 나왔다.

    “보통 플레이어들에게 적용되는 이 인기도 시스템, 하지만 이 개념이 적용되는 몬스터가 유일하게 한 종류 존재한다고 합니다. 과연 어떤 몬스터일까요?”

    그러자.

    “…….”

    유다희를 비롯한 모든 참가자들이 입을 닫았다.

    어렵다. 파이널답게 과연 어려운 문제다.

    유다희는 끙 소리와 함께 입을 다물었다.

    아무래도 이번 문제는 그냥 스킵해야 할 것 같았다.

    ‘답을 말하지 않고 가만히만 있으면 발판이 내려가지는 않을 테니까.’

    어차피 이제 2등 상금까지는 따 놓은 당상이다.

    여기서 굳이 위험을 자초할 필요는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이 위치까지 올라오려면 아직 멀었다.

    아는 문제가 나올 때까지 버티기엔 충분하다.

    MC는 유다희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아~ 문제가 조금 어려웠나요? 정답을 아시는 분 없습니까? 없으시다면 이 문제는 그냥 넘어가도록…”

    바로 그때.

    -삐익!

    누군가가 MC의 말을 끊고 벨을 울렸다.

    동시에.

    세트장에 울려퍼지는 낭랑한 목소리.

    “정답. 필드 ‘숨죽이는 평원’에 서식하는 몬스터 ‘코딱쥐’입니다.”

    바로 나의 목소리다.

    내가 답을 외치자, MC는 격하게 반응한다.

    “정답입니다! 아니, 이 어려운 문제를 맞히시다니! 혹시 아는 게 더 있으시면 해설을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나는 기꺼이 그 요구에 응했다.

    “코딱쥐는 무리 생활을 하는 몇 안 되는 포유류형 몬스터입니다. 녀석들은 한 달에 한 번, 한 굴에 모여 자신들의 대장을 투표로 선출하는데 이때 마음에 드는 대장 후보의 등에 자신의 코딱지를 발라 놓습니다.”

    내가 말을 이어갈수록 다른 참가자들의 입은 점점 벌어져 간다.

    “1코딱지는 1인기도로 취급되며 전 대장이 계속해서 연임을 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대장이 통치를 잘 하지 못한다면 코딱쥐들은 대장의 등에 코딱지를 바르는 대신 털 하나씩을 뽑게 되는데 이렇게 해서 인기도가 –503 이하로 떨어진다면 그 코딱쥐는 탄핵 당하게 됩니다.”

    나는 거침없이 정답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마스크 밖으로 퍼지는 내 목소리에 유다희가 두 눈을 치켜뜬다.

    기이잉-

    어느새.

    내 발판은 한 단계 위로 올라왔다.

    이내, 유다희는 나를 알아보고는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유다희를 향해 싱긋 웃었다.

    “…못 먹어도 고(Go)라고?”

    그녀의 표정을 보아하니, 뒤의 말은 굳이 안 해도 될 것 같다.

    ‘진짜 못 먹게 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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