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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131화 (131/1,000)

131화 고인물 퀴즈대회 (2)

나는 바로 차를 몰고 약속장소로 향했다.

조금 뜬금없이 잡힌 저녁 약속이지만, 어차피 사흘간은 게임에 접속할 수 없으니 이런 식으로 시간을 때우는 것도 괜찮겠지.

만나기로 한 장소는 예전에 윤솔을 처음 만난 카페.

코너를 돌자, 이윽고 저 앞 건널목 앞에 서 있는 여자가 보인다.

윤솔.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바닥을 보며 신호대기를 하고 있었다.

몸매의 굴곡이 잘 드러나 보이는 검은 폴라티.

가뜩이나 긴 다리를 더욱 길어 보이게 하는 블랙 스키니진.

몸에는 밝은 갈색의 롱코트를 걸쳤다.

“자기 혼자서만 화보네.”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녀가 보도블럭 위에 서 있으니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일그러져 보일 정도다.

진짜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은 실제로 보면 얼굴이 CG같다던가?

윤솔은 그냥 평범하게 서 있을 뿐이지만, 이미 풍경 전체가 세트장 배경으로 변해 버렸다.

과연 잡지모델까지 하는 사람은 뭔가 다르구나 싶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윤솔을 스쳐 지나갈 때마다 흘끗흘끗 돌아보는 것이 보인다.

확실히 그녀에게는 특별한 아우라 같은 것이 있다.

“실로 강력한 OP캐릭터로군. ······뷰티계의 대망자.”

내가 막 코너를 돌며 클락션을 누르려 할 때.

“저기요.”

누군가 윤솔에게 말을 걸어왔다. 곱슬머리에 동그란 안경을 낀, 훤칠한 키의 남자였다.

“······.”

윤솔은 그것도 못 들었는지 그냥 멍하니 허공만 보고 있다.

“저기요!”

그러자 남자는 조금 목소리를 높인다.

“······네?”

윤솔이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남자는 멋쩍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었다.

“저 기억하시죠? 아까 촬영장에서.”

“·····?”

윤솔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남자는 민망한 듯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아휴, 아까까지만 해도 같이 얘기했었잖아요! 촬영장에서! 사진도 두 번이나 같이 찍었는데…”

“아아, 아까 그 모델 분… 죄송합니다. 제가 사람 얼굴을 잘 기억을 못해서…….”

윤솔이 고개 숙여 사과하자 남자는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뇨, 아뇨. 그럴 수도 있죠. 저도 원래는 여자 얼굴 잘 기억 못하거든요.”

“아아. 네.”

“그런데 그쪽은 뭔가 좀 다르네요.”

“…네?”

윤솔은 뭔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뭔가 얼굴이 처음 본 순간, 뇌리에 팍 박힌다고나 할까…….”

“·····.”

아무 대답이 없자, 남자는 더 신나서 떠들어 댔다.

“제가 원래 여자 얼굴 진짜 하나도 기억 못하거든요. 근데 윤솔 씨는 진짜 처음 본 순간부터 머릿속에 아우라가 팍 남더라니까요. 저도 영문을 모르겠어요!”

“…아, 하하… 네. 감사해요.”

윤솔은 난처한 표정으로 웃어 보인다.

그녀가 막 돌아서려는 순간, 남자는 황급히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저, 저기. 윤솔 씨! 실례가 안 된다면 핸드폰 번호 좀 받을 수 있을까요?”

그러자.

윤솔은 크게 당황해서 한 번 더 손사래를 친다.

“괘, 괜찮아요. 죄송하지만 지금 제가 약속 때문에 좀 바빠서…”

“네? 아아, 번호만 알려 주시면 바로 갈게요!”

“으음. 그, 그게…….”

그녀는 난감한 표정으로 우물쭈물한다.

그때.

빵빵!

나는 클락션을 가볍게 두 번 울리며 길가에 차를 댔다.

“어이, 연예인!”

내가 창문을 내리며 장난스럽게 부르자.

“어어! 어진아!”

윤솔은 여태까지 봤던 것 중에 가장 밝은 표정을 지으며 내게로 뛰어온다.

텅-

잽싸게 조수석에 타 문을 닫는 그녀, 나는 운전석 창문 너머로 멍한 표정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

“…….”

우리 둘 다 딱히 할 말이 없다.

이 상황에서는 무슨 말을 해도 뻘쭘하지 않겠나?

붕-

나는 엑셀을 밟아 그대로 차를 출발시켰다.

“후아, 진짜 난감했네.”

윤솔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쉬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향해 물었다.

“왜 번호 안 줬어? 훤칠하니 괜찮더만.”

“나는 잘생긴 남자는 너무 부담스러워서 싫더라.”

“거짓말쟁이네.”

“진짜야.”

“아니, 거짓말이야. 그렇게 따지면 너는 왜 나를 부담스러워하지 않지?”

내가 농담 삼아 묻자, 윤솔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응? 내가 너를 왜 부담스러워 해?”

…이 녀석, 이거 나를 멕이는 건가?

약간 울컥했지만 참기로 한다.

상대는 21살이다. 나는 36살이 아닌가.

“뭐 아무튼. 거절하기 껄끄러우면 그냥 남자친구 있다고 하지 그랬어?”

“…그건 거짓말이잖아.”

“음, 그럼 알려 주는 게 부담스럽다고 말하는 게…”

“그건 또 상처 줄 것 같고…….”

뭐 어쩌라는 거야?

내가 눈을 둥그렇게 뜨자, 윤솔은 자기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아악! 나도 이런 내 성격이 싫다 진짜. 방송 시작하면서 조금 더 외향적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에서는 그대로야!”

그 점에는 나도 꽤 공감한다.

나도 회귀하면서 성격이 좀 외향적이고 패도적으로 바뀌었나 했는데, 저번에 유튜뷰 축제나 동창회 나갔을 때 보니까 옛 성격은 그대로더라.

“사람이란 게 쉽게 안 변하지.”

나는 낄낄 웃었다.

그리고는 윤솔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너 부반장 시절에도 엄청 원리원칙주의자였잖아.”

“야! 놀릴래?”

윤솔은 내 어깨를 주먹으로 툭 쳤다.

바로 그때.

“…어?”

그녀의 눈이 동그래진다.

나 역시 사이드미러에 비친 것을 보고 조금 놀랐다.

[아니, 제가 진짜 여자 얼굴을 잘 기억 못하는데. 그쪽 얼굴은 어떻게 된 일인지 한번 보니까 뇌리에 팍 박혀서… 어휴, 이게 진짜 무슨 영문일까요?]

아까 윤솔에게 번호를 따 갔던 모델 남자.

그는 금세 다른 여자에게 번호를 따고 있었다.

“……이야, 진짜 영문 모를 새끼네 저거. 영문과인가?”

내가 황당하다는 듯 중얼거리자, 윤솔도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진짜 저런 사람들 요즘 많네.”

“자주 보나 봐?”

“응, 요즘 부쩍 엄청 많아졌어. 방송 시작하고부터는.”

“정확히는 안경이랑 앞머리를 없앤 뒤부터겠지?”

“뭐, 그렇지.”

윤솔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내게 묻는다.

“남자들은 다 저래?”

귀찮은 질문이 나왔군.

나는 대충 대답했다.

“나는 남자1이니까 전체는 모르지.”

“으음, 그런가? 그러면 너도 저래?”

나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응.”

“헉!”

“너한테는 안 그럴게, 걱정 마.”

내가 피식 웃자, 윤솔은 멍한 표정을 짓는다.

대답이 너무 중의적이었나.

‘아무튼 놀리는 재미가 있다니까.’

사회생활하면서 이런 천연계 캐릭터는 간만에 본다.

아 참, 애초에 난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하질 않았나.

뭐 아무튼.

이런저런 대화를 하는 동안에, 우리는 원래 약속장소였던 카페에 도착했다.

윤솔은 카페 의자에 앉아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는 기분 좋다는 듯 말했다.

“여기는 너를 처음으로 만났던 곳이라서 좋아. 내 인생이 변한 곳이기도 하고!”

“뭘 그렇게까지야.”

나는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웃었다.

“아무튼, 잡지 모델 축하해. 점점 승승장구하는 일만 남았네.”

“다 네 덕이지.”

해맑게 웃던 윤솔, 그녀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쳤다.

“아 참! 오늘 이거 때문에 만나자고 했지! 내 정신 좀 봐!

그녀는 등에 맨 커다란 백팩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슥-

윤솔은 이내 내 앞으로 커다란 종이 한 장을 내민다.

<제1회 멕심배 ‘데우스 엑스 마키나’ 퀴즈대회!>

심플한(?) 전단지.

하지만 디자인이나 인쇄 퀄리티는 상당히 훌륭하다.

대회에 공을 들인 흔적이 광고지에서부터 드러나고 있었다.

“호오, 총 상금 3억이라.”

나는 턱을 쓰다듬었다.

꽤 큰 패션잡지인 멕심이 유튜뷰, 에이프리카, 포도츄리TV 등등 방송 플랫폼의 제휴를 받아 진행하는 퀴즈쇼.

게임 전문 방송국인 LGB 역시도 참여하는가 보다.

‘나도 15년 전에 몇 번 나갔었지.’

그때는 유다희와 사이가 좋을 때라서 함께 나갔었다.

물론 그때 그녀는 나를 이용한 것에 불과했지만.

1회 퀴즈대회인지라 퀴즈의 콘셉트나 난이도 등이 공개된 적은 없지만…….

나는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다.

1. n명의 사람이 각자의 발판 위에 선다.

2. 주어진 문제의 정답을 맞히면 발판의 높이가 한 계단씩 높아진다.

3. 천장에는 1등 상금, 2등 상금, 3등 상금이 존재한다.

1등 상금이 가장 높은 위치에 있고 그보다 조금 낮은 곳에 2등 상금, 그보다 더 낮은 곳에 3등 상금이 존재한다.

4. 문제를 제일 많이 맞춘 이는 3등 상금이 있는 위치에 먼저 도달하게 된다.

이때 그 사람이 3등 상금을 고른다면 그 사람의 계단은 더 올라가지 않고 다른 이들이 나머지 1, 2등 상금을 놓고 경쟁하게 된다.

5. 제일 먼저 올라간 이가 3등 상금을 잡지 않는다면 그는 문제에 계속 도전해서 1등 상금이 있는 위치까지 올라갈 수 있다.

6. 자기의 발판을 1계단 낮추는 것으로 지목한 상대방의 계단을 1개 낮출 수 있다. 바닥에는 물이 고여 있어서 발판이 일정 높이 이상 낮아지면 물에 빠지게 된다.

7. 문제의 답을 모르겠으면 패스할 수 있다. 이때 발판 높의의 변동은 없다.

단, 답을 내놓았는데 틀렸을 경우 발판은 한 단계 낮아진다.

뭐 대충 이런 콘셉트의 퀴즈대회인 것이다.

1등 상금 1억 5천, 2등 상금 1억, 3등 상금 5천만 원.

아마 이런 역대급 규모의 상금이 걸리게 되는 것은 1회인 지금이 유일할 것이다.

‘나중에는 문제 족보를 누가 더 많이 외우느냐의 경쟁으로 변질되지만…….’

처음에 오프라인에서 열리던 대회는 점점 규모가 커지면서 온라인으로도 진행되게 된다.

그리고 15년쯤 뒤에는 족보 검색, 매크로 유저들이 판을 치게 되면서 퀴즈대회는 몰락하는 것이다.

차르르륵-

머릿속에 필름이 돌아간다.

멕심 퀴즈대회와 더불어 울고 웃던 추억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문제들.

집단지성의 힘으로 한 올, 한 올 짜 맞춰진 문제들과 해답들의 길고 장대한 나열.

그 모든 족보들이 머릿속에서 영화필름처럼 재생된다.

‘재미있겠네.’

내가 전단지를 보며 웃자, 윤솔은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네가 말한 대로 PD님한테 참가신청서 넣어 놨어.”

“고마워.”

나는 눈을 감고 조용히 커피의 맛과 문제의 냄새를 음미한다.

퀴즈대회는 바로 다음 날.

앞으로 13시간쯤 남았다.

문득.

게임 외의 현실에서 ‘두근거림’을 느낀 적이 꽤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이 기대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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