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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129화 (129/1,000)

129화 한타 싸움 (3)

[그아아아악!]

요란한 포효와 함께.

끼기긱…….

얼음 구덩이 속에서 거대한 뼈다귀 괴물이 기어 나온다.

<악마족 대망자> -등급: A+ / 특성: 악마, 어둠, 언데드, 하수인, 자연재해

-서식지: 칼바람 싸움터 좌파 진영, 거인국

-크기: 50m.

-살아생전에는 위대한 마족 전사였다. 단신으로 천족의 5개 군단을 격파한 사건은 아직도 만마전의 벽화에 기록되어 있다.

두개골에 뚫린 백 개의 텅 빈 눈알구멍.

안면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는 이빨.

전신 뼈대에 가득 돋아 있는 가시와 뿔.

…살아생전에는 어떤 모습이었을지 짐작도 되지 않는 골격이다.

[갸아아아악! 그으윽!]

악마 대망자가 얼음광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압도적인 위용을 본 거인 해골병들이 주춤한다.

하지만.

[우워어어어어억!]

거인 대망자는 주저 없이 달려가 거대한 주먹을 내리꽃았다.

콰쾅!

폭탄이 터진 듯한 굉음!

악마 대망자가 정타를 허용하고 말았다.

...

하지만!

[그아아악!]

악마 대망자 역시도 강력한 OP몬스터!

거인 대망자에게 당하고만 있을 리 없다.

콰긱-

악마 대망자는 거인 대망자의 복부에 청새치의 윗턱과 같은 뿔을 찔러 넣었다.

악마의 뿔은 거인의 갈비뼈 사이를 관통해 삐져나온다.

원래대로라면 폐에 구멍이 날 중상이었겠지만, 거인은 지금 뼈만 남은 상태.

뿌지지직-

찢어진 것은 가죽에 지나지 않는다.

거인 대망자는 노련한 움직임으로 자신의 갈비뼈들 사이에 악마의 뿔을 끼워 넣었다.

그리고 두터운 팔을 뻗어 악마 대망자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원래대로라면 목이 꺾여 안의 신경들이 죄다 끊어졌겠지만, 악마는 지금 뼈만 남은 상태.

우드득-

부러진 것은 뼈에 지나지 않는다.

<거인족 대망자> -등급: A+ / 특성: 거인, 어둠, 언데드, 하수인, 자연재해

-서식지: 칼바람 싸움터 좌파 진영, 거인국

-크기: 50m.

-살아생전에는 위대한 거인족 전사였다. 산을 들어 올려 바다에 집어던져 섬을 만들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악마족 대망자> -등급: A+ / 특성: 악마, 어둠, 언데드, 하수인, 자연재해

-서식지: 칼바람 싸움터 좌파 진영, 거인국

-크기: 50m.

-살아생전에는 위대한 마족 전사였다. 단신으로 천족의 5개 군단을 격파한 사건은 아직도 만마전의 벽화에 기록되어 있다.

두 거대 몬스터의 싸움은 던전 전체를 초토화시켜 놓았다.

악마가 뿔과 이빨로 거인의 몸뚱이를 난자한다.

거인은 주먹과 칼로 악마의 몸뚱이를 부숴 버린다.

산이 무너지고 바다가 뒤집히는 듯한 대격전!

그리고 나는 그 혼란의 소용돌이의 중심으로 거침없이 다이브했다.

“핫챠!”

나는 깎단을 세워 대번에 악마의 두개골을 꿰뚫었다.

[갸아아아아악!]

악마는 머리를 저으며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거인에게 헤드락이 걸려 있는 상황인지라 나의 공격을 피할 수는 없었다.

우드득- 우득-

악마는 이빨과 손톱, 뿔로 거인의 뼈다귀를 긁는다.

거인의 단단한 뼈와 질긴 가죽도 악마의 저돌적인 공격 앞에서는 얼마 버티지 못했다.

두 해골은 서서히 무너져 내린다.

단, 깎단에 의한 도트 데미지가 들어가 있는 악마 대망자의 몰락이 먼저였다.

콰쾅!

악마 대망자는 부러진 뿔을 감싸쥔 채 빙벽에 부딪쳤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집채만 한 얼음덩어리들이 떨어져 주변의 해골병들을 죄다 깔아뭉갠다.

쿠-웅!

거인 대망자가 악마 대망자의 머리 위에 발을 올리고 짓눌렀다.

콰쾅!

거대한 지진이 얼음 광장을 떨어 울린다.

기나긴 전쟁의 승자가 정해지는 순간이었다.

동시에.

나와 드레이크의 귓전을 때리는 알림음.

-띠링!

<히든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심해의 악몽’ 005- 칼바람 싸움터의 좌파와 우파는 영원히 싸워야 할 처지입니다. 좌파의 거인족을 도와 우파의 악마족을 몰아냅시다! (악마족 대망자 처치 1/1)>

칼바람 싸움터의 히든 퀘스트, 5번째 심해 퀘스트를 완료했다.

그리고.

퀘스트 안내음이 뜨는 동시에, 나는 지금껏 든든한 아군이었던 거인 대망자를 향해 달려갔다.

퍼억-

나의 깎단이 거인 대망자의 두개골 한복판을 찌른다.

[우어어어어어!]

악마 대망자에 의해 HP가 한계까지 내려가 있던 거인 대망자가 비틀거린다.

지금 레벨로는 절대 잡을 수 없었던 강력한 OP몬스터 둘이 결국 무릎을 꿇었다.

<‘칼바람 싸움터’ 선취점에 성공하셨습니다!>

<세계 최초의 ‘칼바람 싸움터’ 선취점입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세계 최초로 ‘아군 대망자’를 처형했습니다!>

<보상이 취소됩니다!>

<이름을 남기시겠습니까?>

.

.

요란한 알림음들이 뜬다.

내가 아군 대망자까지 죽여 버리는 바람에 공성 보상이 취소되었다.

‘호칭: 대망자 묘지기’

(특전: 언데드)

얻은 것이라고는 소소한 호칭과 특전 정도?

하지만 나는 전혀 아쉽지 않았다.

‘칼바람 싸움터에서 얻을 수 있는 보상이라고 해 봐야… 거인의 창, 악마의 철퇴, 용 참수 대검… 뭐 이런 것들이지.’

기껏해야 B~A+ 등급의 아이템을 줄 뿐.

그마저도 나에게는 필요 없는 무거운 양손둔기를 떨굴 것이다.

그마저도 A+등급 아이템이 떨어질 확률은 극히 낮다.

나도 칼바람 싸움터 레이드를 1만 번 정도 해서 겨우 한 번 먹었을 정도니까.

“뭐 첫 클리어라서 A+등급 템은 무조건 받겠지만, 사실 별 필요는 없지.”

나는 쿨하게 레이드 보상을 포기했다.

그 대신, 내가 택한 것은…….

“어진! 큰일이다! 뭔가 잘못된 것 같다!”

드레이크가 사색이 된 채 소리쳤다.

우르르릉!

두 구의 대망자가 모두 죽자, 맵 전체가 뒤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저주받은 유빙 마트료시카!

이 거대한 얼음섬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진동하고 있었다.

우드득- 콰쾅- 쿠르릉-

벽과 바닥, 천장 뭐 할 것 없이 모조리 균열이 생긴다.

섬 전체가 무너지고 있는 듯하다.

“나가자.”

나는 거침없이 뒤돌아섰다.

두 마리의 대망자가 서로를 향해 내뿜는 증오는 섬의 저주를 지탱하는 원동력.

그것이 전부 사라졌으니 섬이 무너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X끼야! 어딜 도망가!”

멍하니 있던 유다희가 황급히 정신을 차렸다.

이내, 그녀의 귓가에도 섬뜩한 경고음이 들린다.

<대망자의 잔류사념이 사라집니다>

<저주받은 유빙 마트료시카가 무너집니다!>

“뭐? 무너져?”

유창이 멍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바로 그 순간.

콰쾅! 우르르릉!

맵 전체가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퍼석! 퍼석!

꼿꼿하게 서 있던 거인 해골병들은 허연 뼛가루로 변해 풀썩 무너졌다.

천장에서 집채만 한 얼음덩어리들이 소낙비처럼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젠장! 저 미친놈이 또 뭔 짓을 한 거야!? 나가야 해!”

유다희는 동생 유창의 뒷목을 잡고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       *       *

콰콰쾅!

요란한 굉음과 함께, 나는 얼음굴에서 탈출했다.

그러자, 저 멀리 얼음절벽 아래의 바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제 나왔나 친구들!]

치 카이.

두 눈이 없는 여자가 이쪽을 올려다보며 입이 찢어져라 웃고 있다.

바다 위에는 악마의 만찬 호가 을씨년스러운 돛과 밧줄들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치 카이는 마치 이 거대한 유빙이 무너질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절묘한 위치에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타자!”

드레이크가 내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놉.”

“……?”

“저건 타지 않는다.”

나는 배에서 시선을 뗐다. 그리고는 저 멀리, 무너져 가는 얼음산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타야 할 건 배가 아니라 산이야.”

말을 마침과 동시에, 나는 재빨리 배의 반대편 얼음산을 향해 달려갔다.

길게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

빨리 서두르지 않으면 타이밍을 놓친다!

“…미친 건가?”

드레이크는 멀어지는 내 등을 보며 입을 딱 벌렸다.

사방이 미친 듯이 요동치고 있다.

철-썩!

고층빌딩도 단숨에 삼켜 버릴 정도로 큰 해일이 몰려와 빙벽을 때렸다.

쩍 소리와 함께 금이 갔고 또다시 유빙의 일부가 무너져 내려 바닷물 속에 잠겨든다.

드레이크는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더 가는 건 아닌 것 같군.’

그는 나를 향해 작별인사를 했다.

“어진! 지금까지 고마웠다!”

가고 싶은 길이 다르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딱히 배신하는 것은 아니니 여기서는 잠시 갈라지는 것도 좋겠지.

드레이크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치 카이 선장을 향해 외쳤다.

“이봐! 나는 배에 타겠다!”

드레이크는 재빨리 줄사다리 하나를 잡았다.

그리고 악마의 만찬 호의 난간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삐죽-

난간 위에서 치 카이가 고개를 내밀었다.

손에는 시퍼렇게 번뜩이는 단도 하나가 들려 있었다.

턱!

치 카이는 단도를 들어 줄사다리에 가져다 댔다.

드레이크의 눈이 가늘게 좁아졌다.

“…뭐 하는 거냐?”

[뱃삯은?]

치 카이가 빙글거리면서 하는 말에 드레이크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올 때 돈 냈잖아. 삼천만 골드.”

[그건 편도 요금이고.]

“뭐라고? 지금 삼천만 골드를 더 내놓으라는 거냐?”

[그건 아니지.]

치 카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자 드레이크는 약간 안심했다.

돌아갈 때는 조금 더 싼가?

하지만.

치 카이의 대답은 더욱더 기가 막힌 것이었다.

[갈 때는 3억 골드야.]

“…….”

드레이크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줄사다리를 놔 버리고는 재빨리 뒤돌아 달릴 뿐이다.

“……?”

나는 어느새 내 옆까지 바짝 따라온 드레이크를 향해 물었다.

“뭐 하러 돌아왔냐?”

“차마 의리를 저버릴 수가 없었다.”

드레이크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나는 웃음을 터트릴 뻔한 것을 간신히 꾹 눌러 참았다.

쾅!

밑에선 여전히 해일이 미친 듯이 몰아치고 있다.

눈사태와 우박의 폭풍이 모든 것을 삼키고 있었다.

나는 산 밑을 내려다보았다.

악마의 만찬 호가 파도에 밀려 심하게 기우뚱거리는 것이 보인다.

당연한 말이지만, 악마의 만찬 호에는 왕복 티켓이 없다.

되돌아가려면 막대한 돈을 내고 가야 한다.

‘대망자 두 구를 전부 죽이지만 않았어도 돌아가는 티켓이 저렇게 비싸지진 않았을 텐데.’

치 카이는 똑똑한 AI다.

상대가 다급한 상황에서는 판돈을 올릴 줄 안다.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도 천천히 침몰하고 있는 마트료시카.

“어이.”

나는 드레이크를 향해 손짓했다.

“이쪽으로 좀 와 봐.”

그러자, 드레이크는 뾰로통한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이제 어쩔 거냐, 다 죽게 생겼다.”

“잔말 말고 이리 가까이 붙기나 해.”

드레이크가 내게 가까이 오자, 나는 인벤토리에서 아이템 하나를 꺼냈다.

그것은 투명한 구슬이었다.

-<심해의 정수> D

심해의 기운이 담긴 구슬이다.

씨어데블을 죽이고 얻은 아이템.

드디어 이것을 쓸 때가 왔다!

대망자를 한 구만 죽였거나 씨어데블에게 제물을 바쳐 평화적으로 섬에 온 이들이라면 선택할 수 없는 히든 선택지.

나는 지금부터 그것을 고르려 한다.

부웅-

심해의 정수를 발동시키자, 이내 나와 드레이크를 주변으로 반경 5미터 안에 투명한 점액 구슬이 생겼다.

철썩-

그것은 커다란 파도에 닿았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일그러지지 않는다.

물에 의한 지형 데미지를 0으로 만들어 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콰쾅!

또다시 큰 해진이 일었다.

저주받은 유빙 마트료시카는 이제 바다에 절반쯤 침수되어 있었다.

드레이크는 걱정스럽게 물었다.

“이 점액 구슬이 물에 뜰까?”

그는 치 카이의 배를 타지 않고 이런 구슬에 의존하는 것이 못내 불안한 듯하다.

하지만, 나는 드레이크의 불안감에 부채질을 할 뿐이다.

“당연히 가라앉지.”

아까 나를 버리고 가려던 것이 조금 괘씸하다.

아무리 극한상황이라도 그렇지 혼자 튀려고 하다니.

한편, 내 대답을 들은 드레이크는 안절부절 못하는 기색이다.

물에 뜨지도 않은 점액 구슬 속에 들어가서 뭘 어쩔 셈인지.

바로 그때.

“어디 있냐 이 변태 X끼야!”

산 아래에서 쩌렁쩌렁한 고함소리가 들려온다.

유다희, 그녀는 핏발 선 눈으로 나를 찾고 있었다.

“히익?”

나는 점액 구슬 속에 들어간 채로 숨을 죽였다.

경황이 없어 유다희 생각을 못 했다. 이렇게나 빨리 따라나올 줄이야!

이내, 눈썰미 좋은 유다희는 내 발자국을 따라왔고 점액 구슬 속에 들어가 있는 나를 발견했다.

“무슨 꿍꿍인지 모르겠지만, 그 구슬… 무지 약해 보이는걸?”

유다희는 내 점액 구슬을 보며 눈을 빛낸다.

스릉-

그녀는 등에 짊어지고 있던 거대 도끼를 빼들었다.

“네 구슬을 으깨 주마! 이 변태 X끼야!”

듣기에 따라서 퍽 무시무시하게 들리는 말이다.

이 점액 구슬은 물리공격에는 형편없이 약하다.

유다희가 도끼로 한번 휘젓기만 해도 바로 깨질 것이다.

‘제발, 제발, 제발!’

나는 두 손을 꼭 말아쥔 채 기도했다.

제발 유다희가 여기에 도착하기 전에 섬이 무너지게 해 주세요!

“으아아아아! 죽어어어어어어어!”

유다희는 나를 향해 냅다 도끼를 내리찍는다.

바로 그 순간.

콰-쾅!

반대편, 거대한 빙산 옆구리에서 자욱한 얼음 연기가 툭 터져 나왔다.

그리고.

끼기기기기기…….

마트료시카가 완전히 기울기 시작했다.

“꺄악!?”

허공에 붕 떴던 유다희는 갑작스럽게 뒤집히는 지면 때문에 잠시 주춤했다.

얼음섬의 몰락!

그것은 너무나도 거대한 침몰이다.

수백 미터도 넘게 솟구친 쓰나미가 악마의 만찬 호까지 집어삼켜 버렸다.

콰쾅!

썩어빠진 널빤지들과 삭은 밧줄들이 허공으로 높게 떠올랐다.

거대한 물무리가 생겨났다가 천천히 가라앉는다…….

이윽고.

섬도 배도 사람도 모두 사라져 버렸다.

철썩-

파도치는 바다 위에는 그저 조각난 유빙들만이 떠다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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