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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127화 (127/1,000)
  • 127화 한타 싸움 (1)

    유다희와 유창, 장태익은 자신들이 이상한 곳으로 와 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고인물.

    놈은 왼쪽으로 가면서 일부러 왼쪽으로 간 티를 있는 대로 다 냈던 것이다.

    그 점을 의심해 오른쪽으로 온 유다희는 역으로 고인물의 꿍꿍이에 넘어가 버린 셈이 되었다.

    “되돌아간다! 다시 왼쪽 길로 가서 놈의 목을 따 버리…!”

    유다희가 도끼를 빼들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띠링!

    <‘칼바람 싸움터 양 군영’에 모든 필요 인원이 충족되었습니다!>

    <‘칼바람 싸움터 양 군영’의 전사들이 눈을 뜹니다!>

    이어지는 알림음이 그녀의 발목을 붙잡는다.

    <…게임을 매칭 중입니다…>

    이게 무슨 소리일까?

    유다희는 고개를 갸웃했다.

    “게임? 매칭 중?”

    유다희는 눈앞에 뜬 로딩 표시를 보며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누나, 여기… 뭔가 심상치 않은데?”

    유창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주변은 온통 살풍경하다.

    얼음만이 가득한 거대한 광장.

    콜로세움처럼 생긴 둥근 공간에는 출구로 보이는 외길이 뻥 뚫려 있다.

    그 너머는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다.

    유다희 일행이 떨어진 곳은 천장에 나 있던 개구멍이었다.

    쩌저적!

    놀랍게도, 개구멍은 곧바로 얼어붙어 막혀 버렸다.

    그들은 이 공간에 완전히 갇혀 버린 것이다.

    “나가려면 저 출구로 나갈 수밖에 없다는 건가.”

    유다희는 직선 코스로 난 외길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한편.

    유창은 주변을 찬찬히 뜯어보고 있었다.

    사채업을 하려면 눈썰미가 좋아야 한다.

    채무자가 집 안에 숨어 있는지 도망쳤는지는 창틀, 현관의 먼지, 도어락의 지문, 화분의 신선함 정도 등을 자세히 살피면 알 수 있다.

    현관의 신문이나 우유, 고지서 등도 중요한 단서가 된다.

    유창은 그런 눈썰미를 갖추고 있는 남자였다.

    그는 아까부터 얼어붙은 광장에 수북하게 쌓인 것들에 주목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뼈’다.

    기괴하게 뒤틀린 뼈들이 얼음광장 가득히 쌓여 있었다.

    뼈도 보통 뼈가 아니었다.

    날카로운 가시가 잔뜩 돋아 있거나 꽈배기 모양으로 비틀려 있거나.

    눈구멍이 백 개나 되는 해골바가지나 커다란 꼬리가 달린 뼈도 있었다.

    “이건… ‘악마족’의 뼈로군.”

    유다희는 침음을 삼켰다.

    수없이 많은 악마들이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한 듯싶다.

    뼈만 남긴 채로 말이다.

    “누나, 저것 봐.”

    유창이 뼈 무더기의 저편을 가리켰다.

    “……!”

    유다희는 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수없이 많은 악마의 뼈 무더기 저편엔 정말 차원이 다를 정도로 거대한 해골 한 구가 앉아 있는 것이 보인다.

    일반적인 악마들의 키가 4~5미터라면 이 악마는 앉은키만 30미터에 육박했다.

    썩어서 문드러진 여섯 개의 눈두덩에는 구더기가 잔뜩 얼어붙어 있다.

    너덜너덜 헤진 잇몸을 뚫고나온 이빨들은 아직도 날카로웠다.

    뼈 위에는 바싹 마른 가죽이 덮여 있었는데 아직도 상당한 중량의 근섬유들이 그 안에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는 듯했다.

    “저 거대한 것도 악마인가? 보스 급 정도는 될 것 같군.”

    “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설정이 궁금해지는군요. 맵에 얽힌 히스토리라던가…….”

    유다희와 유창, 장태익은 저희들끼리 소곤거린다.

    바로 그때.

    <매칭이 성사되었습니다!>

    요란한 알림음이 떴다.

    동시에 모두의 귓가를 두드리는 퀘스트 알림음!

    -띠링!

    <히든 퀘스트를 발견하셨습니다>

    <‘심해의 악몽’ 005- 칼바람 싸움터의 좌파와 우파는 영원히 싸워야 할 처지입니다. 우파의 악마족을 도와 좌파의 거인족을 몰아냅시다!>

    유다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현재 자기들이 있는 쪽은 맵의 오른쪽 방향.

    ‘그래서 우파인가?’

    정황상 고인물 일행은 좌측으로 간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아마 그들이 좌파일 것이다.

    “결국 좌우전쟁이라는 것이군?”

    “근데 누굴 도와 누굴 몰아내라는 거야?”

    유창과 장태익이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우드득- 우드득- 우드득-

    얼음광장 곳곳에서 소름끼치는 소리들이 들려온다.

    이내 세 명의 표정이 해쓱해졌다.

    “…우, 움직인다!”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외친 말이었다.

    광장에 수북하게 쌓여 있던 뼈다귀들이 검은 마나를 피워 올리며 움직인다.

    알림음이 계속해서 터져 나왔다.

    -띠링!

    <미니언들이 생성됩니다>

    그것을 들은 유다희의 표정이 팍 일그러졌다.

    “…AOS 게임인가?”

    AOS 게임.

    적대하는 양 진영에 속해 다른 편의 진영을 밀어 버리는 공성전 게임.

    흔히 리그 오브 레전설로 대표되는 장르다.

    끼기기긱-

    광장에 수북하게 쌓인 뼈다귀 산에서, 해골만 남은 악마들이 몸을 일으켰다.

    <악마 해골병> -등급: B / 특성: 악마, 어둠, 언데드, 하수인.

    -서식지: 칼바람 싸움터 우파 군영, 거인국

    -크기: 5m.

    -죽은 악마가 뼈만 남아 되살아났다. 그는 영원히 싸움터를 누빌 운명이다.

    이 뼈만 남은 악마들은 정면을 향해 멍하니 걷기 시작했다.

    광장의 출구, 얼어붙은 외길을 향해서다.

    전생에는 A급 몬스터였을 악마들.

    그것들은 언데드가 되어 랭크가 두 단계 하락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놈들의 수는 어마무시하게 많았다.

    악마 해골병 군단은 뼈다귀만 남은 몸으로도 무시무시한 투쟁심을 보이며 전진하고 있었다.

    유다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알겠어, 이놈들과 함께 상대편 라인을 밀어 버리면 된다 이거지?”

    간단해서 좋다.

    상대방 역시도 좌파 군영에서 미니언들과 함께 이쪽으로 오고 있을 것이다.

    “가자! 빠르게 가서 밀어붙여야 해!”

    유다희는 나머지 둘을 데리고 출구를 향해 달려 나갔다.

    …….

    아니. 달려 나가려 했다.

    콰쾅!

    출구 쪽에서 굉음이 터져 나오지만 않았더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오-오오오오-

    외길로 몰려드는 상대편 군영의 해골병들!

    그것들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대체로 키가 훨씬 더 컸다.

    뼈다귀도 인간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굵다.

    <거인 해골병> -등급: B / 특성: 거인, 어둠, 언데드, 하수인.

    -서식지: 칼바람 싸움터 좌파 군영

    -크기: 5m.

    -죽은 거인이 뼈만 남아 되살아났다. 그는 영원히 싸움터를 누빌 운명이다.

    악마 해골병과 비슷한 체구의 거인 해골병들이다.

    놈들은 손에 든 뼈다귀 칼과 방패 등으로 악마 해골병들을 밀어붙이며 전진하고 있었다.

    실로 놀라운 속도다!

    동체급의 두 해골병이 붙는데 왜 악마 쪽이 밀리느냐?

    그것은 바로 저쪽에 가담하고 있는 챔피언들 때문이다.

    으득-

    상대편 진영에서 날뛰고 있는 챔피언을 본 유다희가 이를 으득 갈았다.

    고인물!

    저 빌어먹을 놈은 역시나 왼쪽 진영에 가 붙어 있었다.

    그리고 게임이 시작되자마자 바로 미니언들을 이끌고 여기까지 달려온 것이다.

    마치 이 게임의 구조를 미리 속속들이 알고 있기라도 한 듯이!

    *       *       *

    “휴, 저것들이 오른쪽 길로 안 갔으면 게임 자체가 성사 안 될 뻔했지 뭐야.”

    나는 저 멀리 악마 진영에 서 있는 유다희 일행을 보며 식은땀을 닦았다.

    드레이크는 그제야 납득했다.

    내가 왜 유다희를 죽일 수 있었던 찬스를 여러 번 그냥 날려 보냈는지.

    “이제는 이용가치가 없나?”

    드레이크는 내게 확인 차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이제 유다희를 이용할 일은 없다.

    퍼펑!

    나는 눈앞으로 다가오는 미니언에게 깎단을 날렸다.

    우드득- 쿵-

    도마뱀 모양을 하고 있는 거대한 악마 해골병이 도트 데미지에 천천히 무너져 내린다.

    나는 맨 앞에 서서 다수의 해골병 미니언을 처치했다.

    하지만, 이 라인전에서 단연코 월등한 가치를 발휘하는 이는 바로 드레이크였다.

    푸푹- 푹- 푹-

    드레이크는 원거리에서 화살을 쏴 상대 진영 미니언들을 농락했다.

    잔뜩 쌓인 아군 미니언을 방패삼아 하는 딜 교환.

    유일한 원딜이니만큼 압도적으로 이득을 볼 수밖에 없다.

    외길 라인인지라 한번 밀리면 끝이다.

    우리 진영의 미니언들은 드레이크의 엄호에 힘입어 거침없이 라인을 밀고 나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상대편 본진을 앞두고, 갑자기 우리 진영 미니언들이 한곳에 정체되기 시작했다.

    “이 자식들! 나를 우습게 봤구나!”

    유다희.

    그녀는 거대한 전투 도끼를 든 채 미친 듯이 전장을 휘젓고 있었다.

    B급 몬스터라고 해도 언데드 타입 몬스터는 동급 몬스터에 비해 공략 난이도가 낮은 편.

    상대적으로 단순한 인공지능과 단조로운 공격 패턴, 느린 움직임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외길에서는 능히 한 사람이 열 사람을 막을 수 있는 법이다.

    저쪽에는 유다희와 유창이 든든한 탱커가 되어 길을 막는다.

    자연스럽게, 거인 해골병들은 한 곳에 두텁게 쌓여 우왕좌왕한다.

    파팟!

    화살을 쏘던 드레이크는 인상을 찌푸렸다.

    유창이 커다란 방패를 들고 길을 막고 있자 화살이 지나갈 틈이 안 보인다.

    좁은 외길.

    작정하고 방어만 하는 수준급 탱커를 만났으니 일이 어려워졌다.

    궁수로서는 꽤나 난감한 일이다.

    한편.

    콰콰콰쾅!

    유다희는 도끼를 휘둘러 수많은 거인 해골병들을 쓸어버린다.

    거인 해골병들은 크고 단단했기에 유다희의 도끼질에 맞아도 밀려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동급의 악마 해골병들이 물밀 듯 밀려오는 것에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이런, 쪽수 차이가 좀 있네.”

    나는 뒷머리를 긁었다.

    저쪽은 탱커 둘에 서폿 하나. 이쪽은 근접 딜러 하나에 원거리 딜러 하나.

    애초에 3:2로 쪽수가 불리하다.

    초반에 기습적으로 선제공격을 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압도적으로 이기고 있었던 전세가 서서히 균형을 맞추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숫제 역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가자!”

    유다희가 도끼를 휘두르며 외쳤다.

    그녀의 함성이 좁은 얼음굴에 쩌렁쩌렁하게 메아리친다.

    그것에 버프라도 받은 듯, 악마 해골병들이 기세를 일으켰다.

    우직- 우직- 우직- 우직-

    놈들은 크고 단단한 몸뚱이로 거인 해골병들을 밀어젖히며 돌진하기 시작했다.

    “이런, 라인이 밀리겠다!”

    드레이크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저쪽은 대장장이 장태익과 방패탱커 유창이 막고 있어서 원딜을 넣기가 부담스럽다.

    심지어 유다희 역시도 상당한 방어력과 HP를 가진 근접 딜러가 아닌가!

    이내.

    유다희 쪽이 맹렬한 공세를 퍼붓기 시작했다.

    3명의 챔피언과 무수히 많은 미니언들이 역으로 우리 라인을 밀기 시작했다.

    “어진! 이제는 어떻게…….”

    드레이크는 다급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본다.

    하지만, 애초에 챔피언 수 하나가 부족한 마당에 뭘 어쩌겠나?

    또 조합으로만 따져도 저쪽이 우리보다는 조금 낫다.

    탱커가 없다는 건 한타 승부 때 매우 치명적이니까.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GG쳐야지 뭐.”

    내가 게임을 던짐과 동시에, 유다희와 그녀의 병력들이 우리의 본진으로 우르르 밀려들어왔다.

    “본진 점령이다! 넥서스는 어디에 있냐!?”

    유다희는 도끼를 들고 깔깔 웃고 있었다.

    난생 처음으로 나에게 이겼다는 생각에 행복회로가 불타고 있는 모양.

    하지만.

    그녀는 지나친 고양감에 깜빡 잊고 있었다.

    애초에 자기 본진에도 넥서스라는 존재는 따로 없었다는 것을.

    이내.

    칼바람 전장의 좌파 군영.

    거인족의 영역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음산한 경고가 들려왔다.

    -띠링!

    <좌파 진영이 함락 직전입니다.>

    <전사들의 맹렬한 투지가 ‘칼바람 싸움터의 지배자’를 자극합니다.>

    <‘대망자(大亡者)’가 눈을 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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