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126화 (126/1,000)
  • 126화 저주받은 유빙 (2)

    쿠쿵-

    섬이 완전히 뒤집어졌다.

    육지였던 부분은 물에 잠겼고 물 밑에 잠겨 있던 부분이 새로운 육지로 떠올랐다.

    철퍽! 철퍽! 철퍼덕! 푸드드득!

    수류에 딸려온 수많은 물고기들이 난데없이 산으로 변한 땅 위에서 펄떡거린다.

    이내 그것들은 싸늘한 칼바람에 얼어붙어 투명한 유빙 속에 영원히 박제되었다.

    이 섬은 이렇게 12시간 간격으로 뒤집히길 반복한다.

    평화로운 분위기에 방심했다가는 순식간에 바닷물 속에 처박히게 된다.

    …….

    물론, 나는 그 전에 세이프 존을 찾아낸 상태였고 말이다.

    “유빙 주인들의 맘에 들려면 마음 안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나는 개드립과 함께 유빙 안으로 뚫려있는 얼음동굴을 향해 몸을 던졌다.

    이내, 요란한 알림음들이 들려온다.

    -띠링!

    <‘칼바람 싸움터 중립지대’에 입장하셨습니다>

    <최초 방문자의 이름이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됩니다>

    <고인물>

    저주받은 유빙 미트료시카의 내부로 들어가자, 이내 길고 복잡한 얼음굴이 나온다.

    철썩- 쪼르르륵…….

    처음에 들어갔을 때는 동굴 저 아래쪽까지 바닷물이 차올라 있었지만, 이내 수위가 슬슬 낮아지는가 싶더니 물이 전부 빠져 버렸다.

    “십년감수했군.”

    드레이크는 가슴을 쓸어내린다.

    까딱 잘못했으면 얼음산과 함께 바다 깊은 곳까지 끌려들어갈 뻔했다.

    그러기 전에 바다 밑에 잠겨있었던 얼음동굴의 입구를 찾아서 다행이다.

    “자자, 빨리빨리 내려가자고. 귀찮은 사람들이 올 것 같으니까.”

    나는 피식 웃으며 얼음굴을 거침없이 타 내려갔다.

    마치 괴물의 목구멍이 그대로 얼어붙은 것처럼, 얼음굴의 벽에는 징그러운 주름들이 져 있었다.

    굴은 실로 깊고 어두웠다.

    구불구불 뒤틀려 있어서 가만히 걷다 보면 정신병에 걸릴 것 같다.

    길이 하나뿐이라고 해도, 워낙에 위아래 상하좌우로 구불구불 꺾여 있었기에 길을 찾아 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험난하군.”

    드레이크는 어둠 너머의 벽을 더듬으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험난하긴.”

    나는 주렁주렁 열린 고드름들을 거침없이 부수며 앞으로 걸어 나간다.

    뉴비들에게야 으스스한 분위기이지, 고인물들은 밥 먹듯이 순례오던 구역이다.

    적어도 내게는 집 앞 뒷산이나 다름없다.

    이윽고.

    나와 드레이크는 한 갈림길에 도달했다.

    왼쪽 길, 오른쪽 길.

    선택지가 떴다.

    “어진, 어디로 가야 하나?”

    드레이크는 내게 물었다.

    “흐음.”

    나는 턱을 짚었다.

    길을 몰라서 고민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쪽 길로 가야 최종적으로 이득을 볼 수 있을까.

    그것이 문제로다.

    그때 문득.

    나는 내가 보유하고 있는 패시브 특성 하나를 떠올렸다.

    -<이어진>

    LV: 40

    호칭: 어둠 대왕 시해자 (특전: 선택)

    특성 ‘선택’

    예전에 어둠 대왕을 잡고 얻은 패시브 스킬이다.

    어둠 대왕의 정체는 솔로몬 대왕.

    그는 한 아이를 두고 다투는 두 어미 사이에서 진짜를 가려냈던 전적이 있는 왕이다.

    나는 ‘선택’ 특성을 발동해 보았다.

    이 특성은 양자택일의 선택지에서 언제나 유리한 길을 가르쳐 준다.

    어떻게 보면 엄청난 치트 스킬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윽고.

    -지잉

    내 눈에 가느다란 실선 하나가 보인다.

    그것은 왼쪽 길을 향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여러 변수들을 고려한 결과 저 쪽으로 가는 것이 생존 혹은 보상에 있어서 더욱 유리하다는 뜻.

    “왼쪽 길로 가야겠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바로 갈 수야 있나!

    뽕!

    나는 인벤토리를 뒤져 포션 병 하나를 꺼내 뚜껑을 땄다.

    코르크 마개가 열리자, 달달한 냄새가 동굴 전체에 흐른다.

    나는 뚜껑을 연 포션 병을 왼쪽 길의 경사로에 굴렸다.

    데구르르-

    이내, 포션 병은 왼쪽 길의 저 깊숙한 어둠 아래로 굴러 내려간다.

    우리가 갈 길을 포션 병이 앞서 굴러가는 것이다.

    그러자 드레이크가 내게 물었다.

    “왜 포션을 왼쪽 길에 버리나?”

    “귀찮은 추적자들을 따돌리려고.”

    나는 뒤에 따라올 유다희 일행들이 나와 반대인 오른쪽 길로 가는 것을 원한다.

    하지만 드레이크는 여전히 의문인 듯하다.

    “추적자들이 오른쪽으로 가는 것을 원한다면 오른쪽 길에다가 포션병을 굴리는 것이 옳지 않나? 우리를 따라오는 이들이니 우리가 오른쪽으로 간 척을 해야…….”

    “글쎄. 어떨라나?”

    나는 그저 희미한 미소만을 띨 뿐이다.

    ‘아마도 똑똑한 유다희 양이라면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을까?’

    우리는 계속해서 얼음굴을 타 내려갔다.

    굽이굽이 휘어지는 내리막길을 지나 제법 깊숙이 내려오자.

    이내 귓가에 차가운 알림음이 들러온다.

    -띠링!

    <‘칼바람 싸움터 좌파 군영’에 입장하셨습니다>

    <최초 방문자의 이름이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됩니다>

    <고인물>

    목적지 도착이다!

    *       *       *

    쿵-

    섬이 완전히 뒤집히는 순간.

    촤아아아악!

    동굴 안에 가득 차 있었던 바닷물들이 전부 빠져버렸다.

    “커헉!”

    유다희.

    그녀는 입에서 바닷물을 토해 내고 있었다.

    거의 바다에 빠지다시피 한 와중에도, 그녀는 근성 있게 유일한 활로인 이 얼음굴에 들어오고 말았다.

    물론 이를 위해 꽤 오랜 시간 잠수를 해야 했지만 말이다.

    “흐악… 흐악…….”

    “커흑! 우으윽…….”

    유창과 장태익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유다희의 상황 판단이 1초만 더 늦었어도, 그들 셋은 얼음섬의 절반과 함께 바다 깊은 곳에 파묻혔을 것이다.

    “젠장!”

    그녀는 목젖까지 차오르는 욕설을 시원하게 뱉어냈다.

    눈을 뜨자 낯선 천장이다.

    평범한 이세계 전생 소설의 도입부 같은 전개.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이곳의 천장은 낮고 좁고 음험하기까지 하며 또 지독시리도 춥다는 것이다.

    유다희의 앞에 펼쳐져 있는 것은 깊고 경사진 얼음동굴이었다.

    아래로 끝없이, 끝없이 이어진.

    바닥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깊은 지하굴.

    “…꿀꺽.”

    유다희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동굴은 존재 그 자체로 위압감을 주고 있었다.

    팔을 쫙 뻗으면 손가락의 개수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지독한 추위와 비린내, 압도적인 어둠이 도사리고 있는 입구.

    “젠장! 그래도 가야지! 가서 그 밉살맞은 놈에게 한 칼 먹여주기 전까진……!”

    유다희는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 공포보다 우선하는 감정은 분노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자기를 엿 먹였던 것에 대한 복수, 그리고 좋아하는 남자를 죽인 것에 대한 복수.

    그것이 지금 유다희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아니던가!

    그녀는 초인에 가까운 심지로 한 발을 내딛었다.

    얼음굴 내부는 복잡했다.

    “빌어먹을, 외길에서 길 잃게 생겼네.”

    유다희는 기가 막히다는 듯 중얼거렸다.

    상하좌우로 기괴하게 뒤틀려 있는 미로.

    경사로에서 굴러 떨어진 뒤 리본 모양으로 엉킨 길로 나오면 방금 전 자기가 걸어왔던 방향조차 까먹게 된다.

    그마저 횃불이 없으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치직-

    장태익이 커다란 나무뿌리 하나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들은 천장에 난 고드름들을 짚어가며 조심스럽게 아래로 내려갔다.

    이윽고.

    유다희는 우뚝 멈춰 섰다.

    “…으음?”

    그녀는 인상을 찌푸린 채 횃불을 앞으로 밀었다.

    양 갈래 길.

    길이 두 방향으로 쪼개져 있었다.

    왼쪽 방향과 오른쪽 방향.

    “뭐지? 놈들은 어느 쪽으로 간 걸까…….”

    유다희는 잠시 고민했다.

    그때.

    “누나! 이쪽!”

    유창이 왼쪽 길을 가리켰다.

    왼쪽 길의 바닥에는 희미한 분홍색 자국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포션이 흐른 흔적이다!

    “…흐음?”

    유창은 바닥에 떨어진 포션을 손가락으로 쓱 문지른 뒤 핥아 보았다.

    “포션이 맞아. 확실해. 냄새도 그렇고 맛도 그렇고. 아마 놈들이 흘리면서 갔나 봐.”

    “너는 그걸 꼭 찍어 먹어 봐야 아냐?”

    “원래 포션인지 된장인지는 찍어 먹어 봐야 알지.”

    “…됐다.”

    유다희는 동생에게서 신경을 껐다.

    그녀는 골똘히 생각했다.

    왼쪽 길에는 포션 자국이 나 있고 오른쪽 길에는 아무것도 없다.

    아니, 애초에 포션 자국은 지금까지 쭉 없다가 갈림길 앞에서 갑자기 생겨났다.

    “…….”

    유다희는 왼쪽 길에 난 포션 자국을 가만히 살폈다.

    일자로 가늘게 쭉 이어져 내려가는 포션 자국.

    자국은 굵어지지도 얇아지지도 않은 채 일정한 간격과 넓이로 쭉 이어진다.

    이내.

    유다희는 손뼉을 쳤다.

    “그래. 고인물 놈이 어디로 갔는지 알겠다. 놈은 오른쪽으로 갔어.”

    그러자 유창과 장태익이 고개를 갸웃한다.

    “하지만 포션 자국은 왼쪽 길로 나 있는데?”

    “그러니까 왼쪽 길로 간 거 아닌가요?”

    유다희는 피식 웃었다.

    “포션 자국을 봐. 방울져 떨어진 게 아니라 일렬로 쭉 이어져 있잖아. 이건 놈들이 포션을 흘리면서 간 게 아니라 포션 병을 아예 바닥에 굴려 버린 거야. 그리고 자기들은 반대편 길로 돌아갔겠지.”

    “왜 그런 짓을…?”

    “우리를 왼쪽 길로 보내고 싶었던 모양이지. 애초에 갈림길이 나오기 전까지는 포션 자국 같은 건 하나도 없었잖아.”

    “…오호!”

    “자기들이 왼쪽 길로 갔다고 착각하게끔 하려고 함정을 판 모양인데… 어림없는 일이다.”

    유다희는 확실하게 결론을 내렸다.

    “그놈들은 오른쪽으로 간 게 분명해. 바로 추격한다!”

    유다희를 필두로 한 3인 파티는 기운도 힘차게 오른쪽 길로 행진한다.

    이윽고.

    굽이굽이 휘어지는 내리막길을 지나 제법 깊숙이 내려오자.

    이내 귓가에 차가운 알림음이 들러온다.

    -띠링!

    <‘칼바람 싸움터 우파 군영’에 입장하셨습니다>

    <최초 방문자의 이름이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됩니다>

    <유다희>

    “어? 이게 뭐야?”

    유다희는 당황했다.

    왜 최초 방문자 타이틀이 뜬단 말인가?

    “…젠장!”

    이내, 상황을 파악한 유다희는 주먹으로 벽을 쾅쾅 내리치기 시작했다.

    또 당했다!

    고인물, 그 빌어먹을 놈은 아까 왼쪽 길로 갔던 것이다!

    “되돌아간다! 다시 왼쪽 길로 가서 놈의 목을 따…!”

    유다희가 도끼를 빼들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띠링!

    <‘칼바람 싸움터 양 군영’에 모든 필요 인원이 충족되었습니다>

    <‘칼바람 싸움터 양 군영’의 전사들이 눈을 뜹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알림음이 그녀의 발목을 붙잡았다.

    <…게임을 매칭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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