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124화 (124/1,000)
  • 124화 악마의 식탁 (6)

    퍼엉- 철퍽!

    씨어데블은 자신의 몸을 긁어 점액을 모은 뒤 야구공만 한 사이즈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마구마구 던져 대기 시작했다.

    무수히 많은 점액탄이 날아든다.

    철퍽철퍽철퍽철퍽철퍽철퍽-

    마치 우박처럼, 그것은 쉴 틈 없이 배를 포격했다.

    배는 순식간에 허옇고 끈적끈적한 점액에 뒤덮였다.

    드레이크는 정신없이 날아드는 점액탄을 피해 소리쳤다.

    “어, 어진! 이런 건 어떻게 피해야 하는가!”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건 따로 패턴이 없는데?”

    “…그럼 어떻게 피하지?”

    “흠, 이봐. 기본을 잊고 있는 것 같은데. 공격은 원래 그냥 보고 피하는 거야.”

    나는 검지손가락을 저었다,

    그리고는 눈앞을 하얗게 매우는 점액탄들을 보며 씩 웃었다.

    “탄막 슈팅 게임 한다고 생각해.”

    탄막 슈팅 게임은 총알을 피해 적을 격추하는 장르의 게임이다.

    씨어데블의 점액탄 공격은 일반적인 탄막 게임의 정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게 무슨 소리지? 탄막 게임의 정석?”

    드레이크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눈치.

    나는 부가적으로 설명했다.

    꿀팁 #1

    “씨어데블의 점액탄 난사는 언뜻 보면 시야를 한가득 채우는 것 때문에 피하기 어려울 것 같지만, 사실 날아오는 탄알의 속도가 꽤나 느리지.”

    꿀팁 #2

    “또 점액탄의 피격 판정 범위도 상당히 좁기 때문에 여차해서는 맞은 걸로 간주되지 않아. 스쳐도 어지간하면 OK다. 전체 점액탄의 수는 신경 쓰지 말고 눈앞으로 다가오는 것만 잘 피한다면 의외로 쉽게 피할 수 있어.”

    꿀팁 #3

    “설령 재수 없게 점액에 맞는다고 해도, 데미지 자체는 적기 때문에 안심이다. 발을 묶는 끈적함이 문제인데… 그것은 이렇게 양 옆으로 좌우 반복 뛰기를 하다 보면 다 떨어져 나가지. 이렇게! 이렇게!”

    꿀팁 #4

    “점액에 뒤덮였다고 당황하는 순간 게임 끝이야. 한번 실수한 것쯤은 괜찮은 난이도이니 너무 걱정 마. 이 게임이 그렇게 양심 없지는 않다.”

    나는 열심히 탭댄스를 추며 몸을 좌우로 흔들었다.

    그러자 몸에 붙어 끈적끈적 늘어지던 점액들이 말끔하게 떨어져 나간다.

    “…어때요? 참 쉽죠?”

    나는 점액투성이가 된 드레이크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했다.

    “…….”

    드레이크는 마치 귀신을 보는 듯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본다.

    이내.

    우리는 점액탄 세례마저 깔끔하게 클리어했다.

    그러자.

    씨어데블은 진정코 격노했다.

    쿠-오오오오오!

    놈은 모든 힘을 끌어 모아 거대한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비장의 특성 ‘풍랑(風浪)’이 발현되었다!

    이곳이 땅이었다면 아마 무시무시한 지진이 벌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장소가 바다라고 해서 덜 위협적인 것은 아니었다.

    “쓰나미!”

    드레이크는 입을 딱 벌렸다.

    이 세상을 통째로 집어삼켜 버릴 듯 거대한 파도가 융기하고 있었다.

    높이 1,500m, 길이 445.8km의 해일.

    그랜드캐넌에 필적할 규모의 거대한 풍랑파가 하늘을 완전히 가려 버렸다.

    하지만.

    “적절한 타이밍에 궁극기가 터졌군.”

    나는 하늘을 가릴 정도로 거대한 해일을 앞에서도 태연하다.

    차라라락-

    나는 잽싸게 갑판 구석으로 뛰어가 모든 닻을 내려 버렸다.

    끼긱-

    이내,

    악마의 만찬 호는 바다에 정박하게끔 되었다.

    드레이크는 나를 바라보며 묻는다.

    “이, 이제 어떻게 할 건가?”

    그의 목소리에는 공포마저 묻어 나고 있었다.

    이 압도적인 범위공격에서 살아나갈 길이 있기는 한 것일까?

    …….

    ‘그야 당연하지.’

    다 방법이 있으니까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겠는가?

    난 배 앞쪽을 쳐다보았다.

    전력을 다해 포효하고 있는 씨어데블.

    놈을 중심으로 왼쪽 대각선 7시 방향, 거리는 약 15미터 정도.

    ‘보인다!’

    나는 배의 난간으로 올라가 펄쩍 뛰었다.

    “어엇!?”

    드레이크는 나를 만류하려 했지만 한 발 늦었다.

    나는 배에서 떨어져 바다에 빠져 버렸다.

    퐁당!

    한데.

    어째 빠지는 소리가 조금 작다?

    “……!”

    난간을 붙잡고 선 드레이크는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나는 지금 물 위에 서 있었던 것이다!

    (정확히는 바다에 무릎까지만 빠져 있었다.)

    나는 수면을 향해 발을 퉁퉁 굴러 보았다.

    발바닥 밑에 단단한 육지가 느껴진다.

    “역시나 이게 있군. 모든 것이 계산대로다.”

    내가 서 있는 곳은 망망대해의 한복판.

    수면 바로 아래까지 우뚝 솟아있는 암초(暗礁)의 위였다!

    씨어데블이 궁극기를 쓸 때, 놈은 항상 바다의 특정 좌표 포인트에 위치한다.

    그리고 놈을 중심으로 왼쪽 대각선 7시 방향, 거리는 약 15미터 정도.

    그곳에는 약 99%의 확률로 이 암초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암초 위에 서면 모든 공격이 자동으로 피해지지!”

    나의 외침과 동시에.

    콰-콰콰콰콰쾅!!!

    말도 안 되게 거대한 쓰나미가 수면을 덮쳤다!

    온 세상천지를 죄다 휩쓸어 버리는 거대한 풍랑!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나는 온 몸으로 해류를 느끼며 암초 위에 버티고 서 있다!

    교묘하게.

    정말 교묘하게 교차되는 해류와 해류 사이의 빈틈이 모조리 이 암초에 겹쳐지고 있었다.

    게임 설정상 해류는 ‘바다 지형’에서만 발생한다.

    당연히 해류로 인한 ‘지형 데미지’ 역시도 그렇다.

    ‘바다 지형’은 ‘바닥과 수면의 간극이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진 지형’으로 일괄 정의, 인식된다.

    그렇기에 당연히 이 근방의 모든 지형은 바다 지형이다.

    하지만.

    오직 이 암초 하나만큼은 ‘바다 지형’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암초의 정상과 수면과의 간극이 너무 가깝기 때문이다.

    의외로.

    이 암초는 월드맵의 시스템 규정상 ‘육지 지형’으로 인식되는 장소.

    고로 바다 지역에만 적용되는 해일의 데미지도 이 부분만은 빗겨 가는 것이다!

    (참고로 이 허점은 약 3년 뒤 지형 밸런스 패치 때 수정되어 사라진다.)

    나는 알몸으로 파도와 맞서 싸우며 울부짖었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 얼마든지 때려 봐라!!!”

    몸 전체가 부슬부슬 젖는 이 시원한 감각!

    세상천지를 휩쓸어 버릴 법한 풍랑도 이 암초 위에만 있으면 그냥 이슬비에 불과하다.

    절대적으로 안전한 세이프 존(Safe Zone)인 것이다.

    *       *       *

    이내.

    쿠구구구구…….

    거대한 풍랑도 막을 내렸다.

    파도가 휩쓸고 지나가자, 만신창이가 된 악마의 만찬 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닻을 내리고 있는 동안에는 파괴불가지! 요호호호!]

    키를 쥐고 있는 치 카이 선장은 럼주를 들이키며 껄껄 웃는다.

    […….]

    씨어데블.

    이 가엾은 녀석은 나를 보며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있다.

    어찌나 눈을 크게 떴는지 그만 찢어져 버렸다.

    “…믿어지지가 않아.”

    내 뒤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던 드레이크가 바다 위로 비치는 햇살을 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설마 그 악몽같은 쓰나미를 맞고도 살아남을 줄이야.

    “…….”

    “…….”

    “…….”

    어창에 숨어 있던 마교 3인방 역시도 혼이 나간 듯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모두가 멍 때리고 있을 때.

    착-

    나는 다시끔 레이드에 돌입한다.

    “씨어데블! 넌 내 꺼야!”

    오래된 애니메이션의 명대사를 내뱉으며, 나는 바다로 뛰어들어 씨어데블에게 헤엄쳐 갔다.

    […….]

    씨어데블은 황당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어차피 녀석은 풍랑 특성을 발현한 이후 약 1분간 스턴 상태다.

    PVP, 1:1 싸움에서 60초의 스턴이라는 것은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것!

    퍼퍼퍼퍽!

    나는 재를 바른 깎단으로 씨어데블을 마구 찔러 버렸다.

    안 그래도 계속해서 ‘능지처참’ 특성의 도트 데미지가 들어가고 있었던 마당이다.

    가뜩이나 물리 방어력과 HP가 약한 씨어데블, 심지어 스턴까지 걸려 있는 상태가 아닌가?

    뻔한 결과였다.

    나는 결국 씨어데블의 퉁퉁 분 목을 따 버리고 말았다.

    -띠링!

    <세계 최초로 ‘심해마귀 씨어데블’ 레이드에 성공하셨습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이름을 남기시겠습니까?>

    .

    .

    꾸르륵-

    물속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익사체.

    동시에, 나의 상태창도 변화를 일으켰다.

    -<이어진>

    LV: 40

    호칭:

    바실리스크 사냥꾼(특전: 맹독)

    메두사 킬러(특전: 마나 번)

    샌드웜 땅꾼(특전: 가뭄)

    어둠 대왕 시해자(특전: 선택)

    씨어데블 격침자(특전: 심해)

    HP: 400/400

    드디어!

    드디어 마의 구간이라고 할 수 있는 레벨 40을 돌파했다!

    씨어데블을 죽이고 ‘심해’ 특성도 빼앗았다.

    풍덩!

    씨어데블은 아이템도 두 개나 떨궈 놓았다.

    나는 그것들이 물속으로 가라앉기 전에 재빨리 건져냈다.

    -<심해마귀 씨어데블의 발가락> 신발 / A+

    익사 직전에 놓인 이가 마지막으로 치는 발버둥.

    그 필사적인 간절함이 담겨 있다.

    -이동 속도 +200% (특수)

    -물 속 이동 속도 +300% (특수)

    -특성 ‘마찰계수’ 사용 가능 (특수)

    말도 안 되게 좋은 아이템이 떴다!

    마동왕 때 신고 다니던 ‘간쇼마루의 발가죽’에 필적하는 아이템.

    불걸음 특성이 있는 ‘간쇼마루의 발가죽’에 비해, ‘씨어데블의 발가락’은 오로지 이동만을 위해 만들어진 아이템이다.

    평범한 이동 속도를 두 배 빠르게, 물속에서의 이동 속도를 세 배까지 빠르게 해 준다.

    그러니 물속에서라면 거의 5배 이상의 속도를 낼 수 있는 것이다.

    거기에 씨 디아블로 특유의 미끌미끌한 점액마저 쓸 수 있게 되었다.

    회피에 자신이 있기 때문에 일부러 방어력이나 HP를 올려 주는 아이템을 장비하지 않는 ‘고인물’에게 있어서는 최적의 아이템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앞으로 마동왕일 때는 간쇼마루의 신발을, 고인물일 때는 심해마귀의 발가락을 착용해야겠다.’

    나는 재빨리 신발을 갈아 신었다.

    그리고 두 번째 아이템을 살폈다.

    -<심해의 정수> D

    심해의 기운이 담긴 구슬이다.

    별다른 설명이 없는 아이템.

    D급으로 분류되는 것을 보니 잡템이다.

    하지만, A+급 몬스터가 떨어트린 아이템이니만큼 그냥 잡템일 리가 없다.

    ‘오히려 이게 제일 중요하지.’

    나는 A+등급의 신발보다 이 D급의 구슬을 더욱 소중하게 다뤘다.

    “어진, 그게 뭔가?”

    드레이크가 호기심을 보였다.

    나는 점액 구슬을 인벤토리에 넣으며 대답했다.

    “곧 알게 될 거야.”

    “……?”

    드레이크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무언가를 더 물어보려 했지만…….

    [요호호호호! 놀랍구만 승객들! 저 귀찮은 놈을 떼어내다니!]

    치 카이가 대화에 끼어드는 바람에 상황은 잠시 소강되었다.

    이내, 우리의 귓가에 요란한 알림음들이 이어졌다.

    -띠링!

    <히든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심해의 악몽’ 003- 씨어데블은 충분히 배 하나를 가라앉힐 수 있는 몬스터입니다, 잘 도망쳐 봅시다. (제물 2/4) or (씨어데블 처치 1/1)>

    히든 퀘스트가 완료되었다!

    제물을 바치지 않아도 씨어데블 자체를 물리쳤기 때문에 퀘스트는 클리어로 간주된다.

    그리고.

    이에 대한 보상 역시도 곧 주어졌다.

    [곧 목적지에 도착한다!]

    치 카이가 항해 종료의 임박을 알려온 것이다.

    “…….”

    나와 드레이크는 암초 위에 선 채로 고개를 들었다.

    씨어데블의 난동으로 인해 거칠었던 바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풍랑이 멎고 고요하다.

    바다가 잠잠해지자, 그제야 날이 개며 저 앞쪽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섬.

    아니, 섬으로 착각할 만큼 거대한 유빙(流氷)이었다!

    끼-걱-끼-걱-

    풍랑으로 인해 너덜너덜해진 악마의 만찬 호는 그 유빙을 향해 천천히 다가간다.

    이윽고.

    배에 탄 모두의 귓가에 음산한 알림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띠링!

    <‘저주받은 유빙 마트료시카’에 입장하셨습니다>

    <최초 방문자의 이름이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됩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