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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123화 (123/1,000)
  • 123화 악마의 식탁 (5)

    뻐-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씨어데블의 몸이 배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만찬들은 잘 즐기고 계셨나?”

    나는 난장판이 된 갑판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너…너!”

    유다희는 나를 보며 부들부들 떤다.

    당장이라도 벌떡 일어나 내게로 달려올 모양새.

    하지만 요란하게 출렁이는 배 위에서 그렇게 하는 것은 무리다.

    촤악!

    바다에 빠졌던 씨어데블이 다시 갑판 위로 올라왔다.

    녀석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왜? 또 한 대 맞고 싶어?”

    나는 깎단을 거꾸로 쥔 채 야구배트처럼 한번 붕 휘둘렀다.

    바로 쥐면 송곳, 거꾸로 쥐면 둔기다.

    [끄르르륵!]

    씨어데블은 물 간 생선 특유의 희멀건 눈동자를 굴려 나를 노려본다.

    휘리리릭!

    그리고 이내 6개의 촉수들을 휘두르며 공격해 왔다.

    그러나.

    뻐엉!

    나는 또 한 번 깎단을 들어 놈의 뚝배기를 깼다.

    뿌직-

    정수리가 찌그러지자, 씨어데블의 눈알 하나가 안와 밖으로 뿍 튀어나왔다.

    “옆으로 한 발 물러나 주겠나?”

    내 뒤에 있던 드레이크가 쇠뇌를 들었다.

    푸푸푹!

    화살 세 대가 정확히 씨어데블의 미간과 볼, 목에 박혔다.

    그러자.

    씨어데블 본인보다 더욱 놀라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마교인들이다.

    “이럴 수가!”

    유다희가 입을 딱 벌린 채 소리 질렀다.

    지금껏 난공불락이었던 씨어데블에게 이렇게 쉽게 데미지를 먹이다니!

    유창과 장태익 역시도 황당하다는 표정.

    “말도 안 돼! 지금까지 우리가 했던 공격들은 뭐였는데 그럼!”

    “이상하다? 분명 씨어데블의 점액은 마찰력을 0으로 만들어 버릴 텐데?”

    그렇다.

    씨어데블의 특성 ‘마찰계수’는 몸에 닿는 모든 것을 미끄러지게 하는 능력.

    마법공격도 물리공격도 모두 미끄러진다.

    회피율 99.99%의 절대방어인 것이다.

    하지만.

    뻐-억!

    나는 계속해서 깎단으로 씨어데블의 몸뚱이 구석구석을 두들겨 패고 있었다.

    “이야, 이거 쫀득쫀득해서 패는 맛 나는데?”

    나는 때리는 족족 딜이 푹푹 박히는 씨어데블의 유리 같은 몸뚱이를 향해 픽 웃어 주었다.

    이 녀석은 회피율이 극강으로 높지만, 물리방어력 자체는 정말 터무니없이 허약하다.

    차라리 A4용지가 더 튼튼하다고 생각될 정도.

    그러니 일단 딜을 꽃을 수만 있으면 절반, 아니 거의 다 먹고 들어가는 것이다.

    “윤활유도 없이 힘으로만 하려고 하니까 안 되지. 그러면 아프기만 할 뿐이야. 섬세하지 못하구나 너희들.”

    나는 마교인들을 향해 윙크를 해 보였다.

    지금 내 몸에는 씨어데블의 ‘마찰계수’ 특성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시즈닝이 잔뜩 뿌려져 있다.

    재(ash).

    [명사] 불에 타고 남는 가루 모양의 물질.

    바로 이것이다.

    나는 어창에 갇히자마자 이히히히의 폐허에서 얻었던 물건들을 전부 끄집어냈다.

    그중에는 분명 말라비틀어진 잿나무 장작이 있었다.

    -<잿나무 장작> / D

    언뜻 보기엔 평범한 나무로 보이지만, 다 타고 나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잿가루가 생겨난다.

    타는 시간은 다른 장작과 비교해 딱히 더 길지는 않다.

    “많이 발라. 바르는 게 남는 거야.”

    나는 온몸에다 잿가루를 묻혔다.

    우선 이히히히의 폐허에서 얻은 고래지방 덩어리를 불에 달궈 녹인 뒤 몸에 바른다.

    그리고 그 위에 잿가루를 뿌리자, 재는 몸에 착 달라붙었다.

    드레이크 역시 군말 없이 내 지시에 따랐다.

    그는 화살촉과 마름쇠 하나하나에 고래지방을 바른 뒤 잿가루에 묻힌다.

    당연히 단검이나 기타 다른 무기에도 그렇게 했다.

    [끄르르륵!]

    씨어데블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재가 닿자 미끌미끌한 점액이 걸쭉하게 굳어지는 것이 보인다.

    점액이 단단하게 굳으니 0이었던 마찰력도 다시 생겨났다.

    마찰계수 특성 봉인!

    그것은 놈에게 있어 사형선고와도 마찬가지였다.

    “개X끼!”

    씨어데블을 향해 제일 먼저 달려든 이는 유다희였다.

    그 와중에, 그녀는 나와 씨어데블을 통째로 죽일 수 있는 광역기를 난사했다.

    콰쾅!

    도끼가 만들어 내는 거대한 참격이 갑판을 가로지르며 날아온다.

    나는 슬쩍 피했지만, 씨어데블은 그러지 못했다.

    뻐억!

    도끼에 맞은 씨어데블이 괴성을 질렀다.

    옆구리가 퍽 터져 나가며 형형색색의 내장들이 튀었다.

    폭딜!

    현 시점에서 유다희의 깡 공격력은 나보다도 높다.

    그런 참격을 고스란히 맞는다면 씨어데블의 퉁퉁 불은 두부 같은 몸뚱이는 금방 무너져 내리겠지.

    그러자.

    씨어데블은 유다희가 쏘아낸 참격의 힘을 빌어 갑판에서 멀리 떨어졌다.

    첨벙!

    이내 바다로 도망치는 씨어데블.

    “도망가는 거냐!?”

    유창이 바스타드 소드를 들고 난간까지 달려 나갔다.

    하지만.

    [끅끅끅끅…….]

    씨어데블은 도망가지 않는다.

    놈은 바다에 몸을 파묻은 채 머리만 반쯤 내밀고 배를 노려보고 있었다.

    “재를 씻어내려는 걸까?”

    “하지만 무기에 재를 발라 놓은 이상 딜은 문제없어!”

    유창과 유다희는 그새 어창으로 내려가 무기에 재를 발라 온 모양이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철-썩!

    씨어데블은 수면에 몸을 숨긴 채 바다를 휘젓고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거대한 물보라가 일어 배를 흔들기 시작했다.

    “이, 이 자식! 배를 침몰시킬 셈인가!”

    유다희가 기겁했다.

    철썩-

    쿠오오오-

    씨어데블은 물속에 숨어 거대한 파도와 소용돌이를 만들어 낸다.

    공격 패턴이 원거리&광역기로 바뀐 것이다!

    철썩-

    몇 개나 되는 거대한 파도가 일어 배를 덮쳐 온다.

    “으아아아! 이런 걸 어떻게 버텨!”

    유다희가 공포에 질려 소리쳤다.

    하지만.

    “몬스터의 공격은 피하라고 만들어 놓은 거야. 게임이잖아.”

    나는 어깨를 가볍게 으쓱할 뿐이다.

    그 말에, 유다희는 기가 막히다는 듯 외쳤다.

    “저 쓰나미들을 어떻게 피하라고! 무조건 맞을 수밖에 없는 공격이잖아!”

    그녀의 말에는 드레이크도 공감한다.

    “어진, 저거 피할 수 있나? 무슨 패턴이 있는 건가?”

    하지만, 나는 그들의 기대를 저버렸다.

    “씨어데블의 공격에는 정해진 패턴이라는 게 없어. 이 세계에 기반을 두고 있는 자연상수를 변수로 하고 있고, 원주율을 기반으로 행동 패턴을 정하기 때문에 작게는 수백 개, 많게는 수십 억 개의 형태를 지닌 파도와 소용돌이가 복합적으로 닥쳐 오지.”

    “…….”

    “그것뿐 아니라, 상대가 2회 이상 공격을 회피하게 되면 상대의 동작을 딥러닝으로 습득해서 예측 샷을 날린단 말이야. 이건 외우거나 간파해서 피할 수 있는 공격이 아니야.”

    “어떻게 하라고 그럼!”

    유다희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나는 귀찮다는 표정으로 모두에게 손짓했다.

    “드레이크만 빼고 다 들어가.”

    지금 시점에서는 유다희는 방해일 뿐이다.

    “…….”

    유다희와 유창, 장태익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들은 재빨리 갑판에서 몸을 빼 어창으로 들어갔다.

    이내, 그들은 어창에 난 불투명한 창문으로 나와 드레이크를 바라본다.

    [거기서 발버둥치다가 콱 죽어 버려라!]

    유다희가 빽 소리치는 것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한편.

    드레이크는 내게 물었다.

    “저들을 어째서 또 살려 주나?”

    나는 간단히 대답했다.

    “아직 이용가치가 남아서.”

    “…….”

    드레이크는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너는 수박도 껍질까지 벗겨 먹을 것 같다.”

    “말했잖아. 껍질에 영양가가 많다니까.”

    나는 고개를 돌려 씨어데블이 만들어 내고 있는 풍랑을 바라보았다.

    지금 이 시점에서, 나의 움직임을 따라올 수 있는 피지컬을 가진 존재는 드레이크뿐이다.

    “가즈아!”

    나는 배를 침몰시키려는 씨어데블의 공격에 맞섰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나는 드레이크에게 먼저 시범 강의를 보여 주었다.

    “…씨어데블의 공격은 피할 수가 없을 것 같아 보이지만, 의외로 파훼법은 간단하다!”

    꿀꺽.

    등 뒤에서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파도를 잘 보면 군청색, 남색, 파란색, 청록색, 하늘색, 이렇게 5가지의 색 패턴이 뒤엉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중 하늘색 부분이 가장 파도가 얇아서 데미지도 적은 부분이지! 그 부분을 후면 구르기로 맞아 가면서 피하면 된다! 아파 보이지만 실제 데미지는 극소량!”

    “이렇게 왼! 지금은 오른! 아니 밑! 이 아니라 위! 훌라우프를 통과하는 돌고래처럼 앞으로 스무쓰하게 넘어서 다시 왼! 오! 빈 공간 찾아서 슈욱! 구르기로 피해 주고!”

    “…어때요, 참 쉽죠!?”

    내가 흠뻑 젖은 몸으로 뒤돌아서자.

    “!?!?!… 허억… 허억…!?!? …흐억! 아니, 허윽! 아니… 내가 지금 살아있기는 한 건가?”

    숨을 미친 듯이 몰아쉬고 있는 드레이크가 어느새 내 뒤로 바싹 따라와 있다.

    잘 따라왔으면서 엄살 부리긴.

    나는 바로 다음 공략으로 넘어갔다.

    츠츠츠츠츠-

    씨어데블은 파도가 통하지 않자 소용돌이를 만든다.

    거대한 물기둥이 회오리처럼 몰아닥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용오름을 보며 또다시 중계를 시작했다.

    “자, 지금 여기 어지럽게 덮치는 소용돌이는 워낙 기형적이라 눈으로 보고 피할 수 없어! 그렇다면! ‘사운드 플레이’를 이용! 눈이나 레이더에 안 보인다면 귀로 들어야지!”

    “자, 좌측에서 도는 급류는 ‘휘크류류’ 우측으로 도는 급류는 ‘푸크류류’ 왼쪽은 휘! 오른쪽은 푸! 그것만 기억해라!”

    “휘크류류가 올 때는 이렇게 좌측 대각선 35˚ 방향으로 뒷구르기를 해 주고! 푸크류류가 올 때는 이렇게 우측 대각선 70˚ 방향으로 앞구르기를 해 준다!”

    “어떤 경우에도 물살의 진행 방향 반대로 구르면 안 돼! 그랬다간 몸 전체가 으스러질 거다! 참고로 물살은 너무 빨라서 눈에 잘 안 보이니까 소리를 잘 들어야 해! 엇차!”

    “…어때요, 참 쉽죠!?”

    어느덧, 세 번의 소용돌이 공격 역시도 잘 피해 냈다.

    고개를 뒤로 돌리자.

    “…….”

    말수가 많이 적어진 드레이크가 물에 흠뻑 젖은 채 서 있는 것이 보인다.

    HP가 상당히 깎인 걸 보니 나를 완전히 따라오진 못했군 그래.

    “괜찮아. 처음치곤 잘했어.”

    나는 그런 드레이크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러자 드레이크는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너… 처음이 아닌 건가?”

    “그런 걸 물어보면 실례지.”

    나는 새침한 표정으로 드레이크의 질문을 무시한다.

    15년 전에 밥 먹듯이 깼던 판이라고 해 봤자 믿어 줄 리도 없으니까.

    한편.

    어창의 창문으로 우리를 보고 있는 유다희, 유창, 장태익의 표정은 그야말로 볼 만한 것이었다.

    “저, 저 또라이 샊…”

    “…저게 가능한 거야? 버그 아냐!?”

    “저건 진짜 사람이 아니다…사이버 망령이지…….”

    하지만.

    아직 진짜 놀라운 일은 일어나지도 않았다.

    [꾸르르르륵!]

    모든 공격이 실패하자, 씨어데블은 격노하기 시작했다.

    2페이즈가 온다!

    이내, 놈은 전신의 모든 힘을 끌어 모았다.

    고-오오오오오!

    마치 이 세상이 통째로 떠오르는 것 같은 광경.

    꿀렁- 꿀렁- 꿀렁- 꿀렁-

    마치 염력으로 바닷물 전체를 허공으로 들어 올리는 것처럼, 거대한 물무리가 배 밑에서 융기해 오르기 시작했다.

    꿀렁- 꿀렁- 꿀렁- 꿀렁-

    꿀렁- 꿀렁- 꿀렁- 꿀렁-

    바다가 하늘과 닿을 듯 가까워졌다.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쓰나미가 몰려온다.

    악마의 만찬 호가 모래알처럼 보일 정도로 거대한 해일이었다.

    신에게조차 데미지를 입힌다는 A+급 몬스터의 궁극기.

    높이 1,500m, 길이 445.8km의 쓰나미가 지금 그 압도적인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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